C.S 루이스는 부유하거나 열리하거나 잘생겼기 때문에 사람이 교만하지는 않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더 부자이거나 또는 더 영리하거나 더 잘생겼기 때문에 교만해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만약 이 비교 의식이 없다면 교만이라는 단어는 이 지구상에서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바리새인이 자기가 의롭다고 감사 기도한 것은 아닙니다.
감히 고개도 못들고 기도하는 세리와 비교해서 더 낫다고 하는 교만에 빠졌던 것입니다. 당신의 비교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어떤 사람입니까? 그로 인해 얻어진 것이 무엇입니까?
때로는 우월감이겠지요. 또 때로는 열등감이었을 것입니다.
비교의식은 교만이라는 죄로부터 출발합니다.
주님은 누구를 의롭다고 하셨습니까?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눅 18:14b).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것이 비교 의식에서 벗어나는 비결입니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위해 비교하고 있는가? 남보다 우월해지기 위한 비교가 아니라 스스로의 발전을 위한 건전한 비교를 해 보라
(눅 18:9-14).
눅 18:9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눅 18: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눅 18:11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눅 18:12 나는 이레에 두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눅 18: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눅 18:1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사람이 저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에 내려 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1. 마산시민교회의 설립예배를 하나님의 은혜속에 드렸습니다. 기도해주신 회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2. 카페와 회원들을 위해 기도해 주세요. 특히 사역자들과 선교사님들을 위해 기도해주세요
3. 요즈음 북한의 핵실험으로 인한 국가안보 문제가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이땅위에 공산주의가 무너지고 진정한
통일된 나라가 이루어 지길 위해 기도합시다.
교만이 깃든 영성은 아무리 찬란해도 모두거짓입니다 . 본 문 : 잠16:18-19
(잠16:18)교만(驕慢)은 패망(敗亡)의 선봉이요 거만(倨慢)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16:19)겸손(謙遜)한 자(者)와 함께하여 마음을 낮추는 것이 교만(驕慢)한 자(者)와 함께 하여 탈취물(奪取物)을 나누는 것보다 나으니라.
인생이면 교만이 없을 수 없습니다. 교만하지 않다 할 수 없습니다. 인간으로서는 이 교만을 어찌 할 수 없기에 고통 중에 있으며 이것 때문에 슬픔 중에 있습니다.
교만 때문에 고통하고 교만 때문에 언제나 슬프고 큰소리치지 못하는 것이 인생입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입니다. 교만하면 넘어짐의 지름길입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심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교만하다 하면 무조건 듣기 싫어서 너나 잘해라 하고 반응을 합니다. 누구든지 너 교만해 하면 거의 100% 너나 잘해 하면서 듣기 싫어합니다. 교만에 대해 교훈하면 듣기 싫어합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넘어짐의 앞잡이기 때문에 교만에 대해서 우리는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교만에 대하여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찾으십니다. 그리고 교만한 자를 대적하십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세상에 살아 갈 때는 적당히 교만해 가면서 살면 살맛이 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축복은 받지 못합니다. 우리는 내세를 믿는 종교인입니다. 내세에 멸망으로 가지 않고 축복으로 가려면 현세에 자중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따라서 교만에 대한 설교는 아무리 많이 해도 양약이 되는 설교입니다.
살리는 방법은 하나님께서 멸망으로 들어가는 길을 거만한 길을 오만의 길을 돌아서게 하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교만은 교만이 가지고 있는 특성이 있습니다. 교만에 잘 속아 넘어갑니다.
1. 속임과 함께 일하고 2. 자랑과 함께 일하고 3. 경쟁과 함께 일하기에 속기 쉽습니다. 교만이 나가면 거기에 껌처럼 따라 다닙니다.
속임이 있기에 교만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자랑과 함께 높아지기에 교만을 모릅니다. (옷 잘 입는 것, 건강, 돈 있는 것, 권세, 명예 등등 ) 사람은 자랑거리가 없으면 축 늘어져 살맛이 없습니다. 이렇게 가장하고 다니기에 사람들은 발견하지 못합니다.
교만해서는 다툼만 일으킵니다.
교만 옆에 가면 다툼이 일어납니다. 높아지려는 성향이 있기에 경쟁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경쟁하는 마음은 좋습니다. 누구보다 높아지길 원하는 것이 본성입니다. 인간의 본성입니다. 자녀를 가르킬 때 남보다 잘하라고 합니다. 사회생활도 사업도 무엇이든지 남보다 잘 하라 합니다. 이것은 좋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운데 교만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교만 빼고 잘하는 것 얼마든지 좋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경쟁의식이 들어갑니다. 경쟁의식이 들어가지 않으면 교만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경쟁은 함께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고 시기와 질투가 뭉쳐있는 것입니다.
교만함은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끼칠 뿐 아니라 본인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칩니다. 교만의 한계는 인간이 숨 쉬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어떤 일을 하든 교만은 속임 간교함을 파고 들어갑니다. 인간이 살아가고 있는 모든 전반에 들어가 있기에 교만한 점은 너무 많습니다. 교만의 한계는 인간인 이상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인간 안에서는 무한량 무한대에 교만입니다. 끝낼 수 없는 것이 인생입니다. 교만 한 가지만 해결한다면 모든 죄악을 다 해결 할 수 있습니다. 죄악의 악질이 교만입니다. 도적, 술 취함, 음행보다 더
악질이 교만입니다. 도적, 음행, 등은 들어 나지만 교만은 들어나지 않습니다, 피부 세포까지 들어가 있는 것이 교만입니다. 따라서 인생 안에서는 교만은 떠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겸손은 없습니다. 인생을 저울에 올려놓으면 모두 교만뿐이지 겸손은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저울에 올려놓으면 교만도 측량 불가이며 겸손도 측량불가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시작되면서 교만 끝이요 겸손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겸손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사랑은 교만하지 아니하며 !
인생은 높아지려고 합니다. 누구보다 나아지려고 하고 나아지려는 성향이 있기에 그렇습니다. 구역장, 지역장, 지구장에서 한 단계 내려앉으면 큰일이 납니다. 절대 내려가지 않으려 합니다. 인생의 체질입니다.
교만은 인생가운데 왕 노릇을 합니다. 렘49:16절에 에돔 족속에게 경고를 내립니다. 에서의 별명입니다. 이 에서는 이미 멸망으로 정한 백성입니다. 이는 네 마음의 교만이 너를 속였도다. 교만은 교만이 들어와 속여서 높아지면 좋다 하늘에 오르라고 종용을 합니다. 교만이 오면 자꾸 위로 올라가라고 합니다. 뭇별 위에 거하라 ! 별들 사이에 거하라 합니다. 이렇게 해서 올라간 자가 아침의 계명성입니다. 에돔에 관한 경고를 보면 히브리서에서는 망령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영을 잃어버렸다 합니다. 세상에서는 노망 들린 자 (정신을 놓아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신이 옳은 판단을 하지 못합니다. 성경은 에서를 망령된 자라 합니다. 에서는 무엇을 했기에 저주의 백성으로 간주했나요? 에서가 먼저 나서 장자이지만 장자의 명분을 소홀이 여겨 배가 고파 팥 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팔아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면 예수님의 혈통을 따라 믿음으로 하면 맏아들의 혈통입니다. 장자의 혈통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명분 뿐 입니다. 이 명분을 소홀이 여기는 것은 먹을 것 때문에 소홀이 여깁니다. 배고픔으로 장자의 명분을 쉽게 여기고 내어 버리는 것입니다. 당시에 장자의 명분은 축복의 혈통이 이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맏아들의 혈통입니다. 따라서 우리도 믿음으로는 장자의 혈통입니다. 그런데 에서는 장자의 혈통인데 혈통을 잃어버린 것이요 야곱은 장자의 혈통이 아닌데도 장자의 혈통을 알았습니다. 장자권이 그만큼 소중한 것을 야곱은 마음에 둔 것입니다. 이 장자권이 팥죽 한 그릇에 팔려나가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오늘날 먹고 마시는 일에 예수이름을 팔아버리는 일은 장자권을 잃어버린 자들입니다.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했습니다. 그리하면 나머지는 보너스입니다. 그런데 다급하면 먹을 것 입을 것을 위해 달려갑니다. 하지만 순서가 있습니다. 먼저 영혼이 잘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요즘 순서를 바꾼자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가난해도 하나님을 먼저 찾으시길 바랍니다. 그렇다고 먹을 것 마실 것을 경시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장자권을 먼저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여기지 말라 하신 것은 그 뒤에 망령되이 여기는 자가 있으면 죄 없다 할 수 없습니다. 죄 있다는 것입니다. 망령되이 한 것은 죄악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을 때는 어떤 때인가요? 예수님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오신 분입니다. 즉 예수님의 이름에 겸손한 자리에 가지 않고 먹을 것 입을 것에 가는 것은 망령된 일입니다.
베드로는 = 그리스도의 사랑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우리를 구속하신 사랑입니다. 우리를 조상에게로부터 유전된 망령된 행실에서 건져내시려고 주님이 고난의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따라서 주님 아니고는 망령됨에서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세상에 교만을 치료할 약이 없습니다. 고쳐지지 않는 교만과 싸우고 씨름해도 이길 수 없습니다. 교만이 깃든 영성은 아무리 찬란해도 거짓 영서입니다.
사랑은 교만하지 않습니다. 교만에서 벗어날 유일한 길이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교만하지 않습니다. 독생자의 혈통은 사랑의 혈통입니다. 장자의 명분 속에는 하나님의 사랑의 권능이 들어 있습니다. 장자권을 소중이 여기는 그 독생자의 혈통을 보전하려면 하나님의 사랑이 깃듭니다. 교만의 영이 세상의 권세를 가지고 들어오고 세상의 이권과 힘을 가지고 들어와 영성을 망치는 것입니다.
신앙의 경륜이 쌓인 장로, 목사, 봉사 많이한 권사 구제 많이 한 권사 등 이렇게 했다는 자들은 교만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정해진 시간에 기도도 잘하죠? 예배도 참석하죠? 날마다 열정적으로 전도도 하죠? 헌금생활도 잘하죠? 신앙인으로 열정적이죠? 신앙의 인격을 가진자로 교만한 자라 할 자 없지만, 그런데 자기가 교만하다는 것을 알면서 교만하다는 자는 그래도 구제할 기회가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교만을 모르고 교만을 지적한 자는 구제불능입니다. 마음의 영성이 교만이 가득 깃들인 마음으로 지혜, 지식, 은사가 많다 해도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모두 거짓입니다. 그 사람은 멸망으로 들어갈 교만으로 했기 때문입니다. 그의 행위가 아무리 훌륭하고 찬란해도 교만과 자랑의 근성에서 뿌리에서 시작되었기에 그렇습니다.
교만 때문에 질투 때문에 지식의 욕심 때문에 하나님의 일에 열정적으로 달려 왔다면 하나님은 받아 주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지식의 유혹으로 말미암아 여기까지 달려왔지만 이제 열매를 맺을 때는 꺾어 버리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속에서 반발이 나와도 참으며 경계할 것도 슬적 넘어가면서 적당히 넘어갑니다. 자기를 온유함이나 넓은 아량으로 위조합니다. 그래서 적당히 넘어가려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분 좋게 넘어갑니다. 교만은 여우가 달라붙는 것 같습니다.
교만은 여우 같이 달라붙어 속입니다. 사람을 신나게 만들고 웃게 만듭니다. 사람들이 저 죽을지 모르고 교만에 빠져 들어가는 것입니다. 교만이 싫으면 가지 않겠죠? 교만을 위장해서 우리의 신앙을 외식하는 신앙으로 변질시킵니다. 바리새인, 율법사는 처음부터 그렇게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인도와 하나님의 보호를 받은 자로 선민사상이 들어가고 유일사상이 들어가면서 높아지고 다른 것을 없이 여기며 상종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기를 높이고 높이는 족속이 이스라엘 족속입니다. 우리의 믿음도 높아지는 교만이면 외식으로 변질됩니다.
바울이 그렇게 열정적이고 열성이고 진실하게 믿었던 신앙이 하나님이 저주한 신앙으로 변한 것은 교만 때문입니다. 우리만 하나님의 사랑을 독차지한 것처럼 우월사상 나만 깨달았다고 우월하다고 다른 사람은 없이 여기는 자는 교만합니다. 교만한 자의 특성은 = 너희는 다 몰라 합니다. 그리고 나만 알아! 이것이 교만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부족해서 어떤 한 사람만 주겠습니까? 우리는 지체의 분량대로 받은 것입니다. 자기만의 특별한 것을 고집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자기 것도 있지만 남의 것도 인정해 주어야 합니다. 같을 수는 없지만 비교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심장과 간을 어찌 비교할 수 있습니까? 기능은 다르지만 비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각 지체의 분량대로 주시는 것입니다. 이로서 하나 되는 지체사상을 가져야 합니다. 내가 남다른 것을 가졌다 해도 내가 가지지 못 한 것을 상대방은 가진 것입니다. 교만의 특징은 너는 못 깨우치고 나는 깨우친 것입니다. 롬14장에 하나님은 적당한 때에 일으키십니다. 하나님이 일으키신다면 먼저 일어난 자보다 더 나을 수 있습니다.
경건의 삶을 파괴하는 가장 강력한 힘은 교만입니다. 교만은 경건의 모양만 나타내고 열심인양 모양만 갖추게 하고 모양만 만들어 내고 자기 속에는 여전히 돈을 사랑하고 앙금이 남아있고 시기하고 미워하며 원통함을 풀지 않고 사납고 급하고 오직 경건의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경건의 능력은 사랑 가운데 있어야 합니다.
마음의 즐거움으로 웃으면 교만도 살아집니다. 본성적으로 자기를 사랑하고 자긍하고 자기를 불쌍히 여기면서 남을 보면서 이렇게 여기지 않는 것, 사납고 조급하고 급합니다. 한 템포만 참았으면 좋았을 것을 이런 고질 적인 인성을 주님의 사랑으로만 가능합니다. 우리의 모든 삶을 근신토록 하고 경건하도록 하고 의롭도록 살기 위해 양육하는 힘이 있는데 이것은 주님의 사랑입니다.
주님의 사랑은 경건의 능력입니다. 교만이 없습니다. 사랑은 교만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교만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나를 살리는 것입니다.
교만은 겸손 같이 옵니다. 열정의 모양,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진실로 사랑하시길 바랍니다. 옆 사람과 사랑합니다. 하시길 바랍니다. 진실함으로 사랑하시길 바랍니다. 진실함으로 가슴에 양심의 가책이 있습니다. 그래도 사랑을 하셔야 합니다. 사랑하지 못해도 사랑합니다. 하고 계속 변하지 말고 외치면 사랑이 옵니다. 비록 사랑합니다가 거짓이라도 세포 마디, 마디 들어가 진짜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의 형제에게 사랑합니다. 라고 외쳤지만 사랑이 일어나지 않는것은 뜻을 두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합니다. 말하는 마음 안에 뜻을 두시길 바랍니다. 반드시 나는 당신을 사랑하고 말겠다. 라는 뜻을 두고 말을 하시길 바랍니다. 이제 형제와 연습을 많이 했으니 집에 가셔서 반드시 실천하시길 바랍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받는 사람은 얼굴의 생기가 있습니다. 사람은 사랑에 멍들고 사랑에 굶주려 있습니다. 사랑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