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왕의 대적들
(왕상 11:12-26)
그러나 네 아비 다윗을 위하여 네 세대에는 이 일을 행치 아니하고 네 아들의 손에서 빼앗으려니와 오직 내가 이 나라를 다 빼앗지 아니하고 나의 종 다윗과 나의 뺀 예루살렘을 위하여 한 지파를 네 아들에게 주리라 하셨더라
여호와께서 에돔 사람 하닷을 일으켜 솔로몬의 대적이 되게 하시니 저는 왕의 자손으로서 에돔에 거하였더라
전에 다윗이 에돔에 있을 때에 군대 장관 요압이 가서 죽임을 당한 자들을 장사하고 에돔의 남자를 다 쳐서 죽였는데 요압은 에돔의 남자를 다 없이 하기까지 이스라엘 무리와 함께 여섯 달을 그곳에 유하였었더라
그 때에 하닷은 작은 아이라 그 아비의 신복 중 두어 에돔 사람과 함께 도망하여 에굽으로 가려 하여 미디안에서 발행하여 바란에 이르고 거기서 사람을 데리고 애굽으로 가서 애굽 왕 바로에게 나아가매 바로가 저에게 집을 주고 먹을 양식을 정하며 또 토지를 주었더라
하닷이 바로의 눈앞에 크게 은총을 얻었으므로 바로가 자기의 처제 곧 왕비 다브네스의 아우로 저의 아내를 삼으매 다브네스의 아우가 그로 말미암아 아들 그누밧을 낳았더니 다브네스가 그 아이를 바로의 궁중에서 젖을 떼게 하매 그누밧이 바로의 궁에서 바로의 아들 가운데 있었더라
하닷이 애굽에 있어서 다윗이 그 열조와 함께 잔 것과 군대 장관 요압의 죽은 것을 듣고 바로에게 고하되 나를 보내어 내 고국으로 가게 하옵소서 바로가 저에게 이르되 네가 나와 함께 있어 무슨 부족함이 있기에 네 고국으로 가기를 구하느뇨 대답하되 없나이다 그러나 아무쪼록 나를 보내옵소서 하였더라
하나님이 또 엘리아다의 아들 르손을 일으켜 솔로몬의 대적이 되게 하시니 저는 그 주인 소바 왕 하닷에셀에게서 도망한 자라 다윗이 소바 사람을 죽일 때에 르손이 사람들을 모으고 그 떼의 괴수가 되며 다메섹으로 가서 웅거하고 거기서 왕이 되었더라
솔로몬의 일평생에 하닷의 끼친 환난 외에 르손이 수리아왕이 되어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미워하였더라 솔로몬의 신복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또한 손을 들어 왕을 대적하였으니 저는 에브라임 족속인 스레다 사람이요 그 어미의 이름은 스루아니 과부더라
본문에 나오는 솔로몬 왕은 이 땅에 살면서 부귀와 영화가 극에 달했던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공중에 나는 새의 비유를 말씀하시고 들의 백합화를 말씀하시면서 솔로몬의 부귀 영화를 예를 들 정도로 그의 인생은 찬란한 영화가 함께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최고 영화와 부귀를 맛보았던 솔로몬이라도 그에게 아무 근심 걱정 고통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의 후반기의 생애 속에서 그는 아픔을 경험해야 했고 늘 그치지 않는 고통을 맛보면서 살아야 했습니다. 적들이 일어나서 솔로몬과 그의 나라를 대적하였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살다가 보면 근심 고통 걱정이 없을래야 없을 수 없겠지만 그렇다고 \"누구나 다 그렇다\"라고 하면서 그냥 넘겨 버리기에는 우리에게 있는 근심과 걱정이 부담과 큰 짐이 됩니다. 이러한 근심 고통이 좀 해결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루에도 몇 번씩 해보게 되고 그리고 좀더 행복하고 평안한 인생을 살고 싶어하는 것이 누구나의 마음일 것입니다.
그 근심 고통이 그의 인생에 있어서 피할 수 없는 필연적이라면 어쩔 도리가 없겠지요. 필연이라면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안 당해도 되는데 사서 고생하는 경우 자기의 잘못으로 그같은 어려움을 당하면서 세월이 흘러가는 것이라면 그것은 정말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예레미야애가 3장 33절에 보면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로다』 라고 했습니다.
오늘 성경에는 한 인간이 경험하는 그 안타까운 모습들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고통 안 당해도 될 인생인데 사서 고생하며 자기의 잘못으로 인해서 고생하다가 한 평생을 끝마치는 안타까운 인생의 모습이 여기에 기록되어 있는 말씀입니다.
자기의 인생을 두고 나중에 후회 하지 않는 사람이 정말로 한 평생을 잘 살았던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자기의 인생에 대해서 나중에 너무 많은 후회를 한 케이스일 것입니다. 그가 그와 같은 길을 간 것이 하나님의 예정이요 뜻이라면 문제는 간단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두 가지 길을 예정하고 계셨다면 문제는 달라집니다. 내 인생에서 오직 한 길만을 준비해 두셨다고 한다면 나는 필연적으로 그 한 길을 가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내 인생에 두 가지의 길을 준비해놓고 계시는데 사람이 그 둘 중에 하나의 길을 갈 수가 있습니다.
물론 세번째 길은 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예정에 없기 때문에. 두 가지의 길을 하나님이 준비해 놓고 계시고 그 두 길 중 어느 길로 가는가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자유의지에 맡겨 놓으셨다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둘 중에 어느 한 길을 가는 것은 내 책임이 되는 것이고, 좀 더 축복의 길을 갈 수 있고 좀 더 평강의 길을 갈 수 있고 좀 더 아름다운 승리의 길을 갈 수 있는데 그 길을 가지 못하고 다른 길을 가게 된다면 그의 인생, 하나밖에 없는 인생의 길은 아쉬움과 안타까움의 인생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신명기서에 보면 가장 일반적인 하나님의 뜻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예정과 뜻에 인간에게 허용하신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순종하면 축복이요,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면 멸망이다. 이것이 신명기서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하나님의 가장 일반적인 뜻 두 가지입니다.
인생 앞에 두 가지의 길을 하나님이 놓아 두셨습니다. 두 가지 길 외에는 인생이 갈 수있는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두 가지가 제시되었는데 내가 그 둘 중의 하나를 택하고 그 길을 갔기 때문에 어떤 결과에 도달하게 된것입니다. 여기서 문제는 내게 잘못이 있다 고 한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인생이 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그러한 안타까운 솔로몬의 인생을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오늘 본문의 전 장, 열왕기상 10장은 스바여왕이 솔로몬을 방문하는 모습과 그리고 솔로몬의 부귀에 대해서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위 각국의 사람들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각종 금은보석들을 가지고 솔로몬을
찾아오고 그리고 솔로몬의 궁전은 금으로, 상아 보석으로 만들었으며 솔로몬 시대에는 은
을 귀하게 여기지 않았다고 할 정도로 그가 부강 부요했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11장에 와서 솔로몬이 바로의 딸과, 그리고 이방의 많은 여인들을 사랑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너무나도 부귀 영화가 함께 하다 보니까 마음의 고삐가 풀려서 그랬는지 그만 다른 쪽으로 마음이 돌아가 버리고 만 것입니다.
여기에 바로 문제가 있습니다. 이것이 인간입니다. 모든 것이 잘 되어지고 모든 것이 여유 넉넉하면 다른곳에 신경을 쓰게 마련입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중에 그런 사람들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처음에 어려울 때는 조강지처만 생각하다가 재산이 모아지고 부가 축적되고 좀 여유있게 살 만하면 조강지처를 버리고 다른데 신경을 쓰게 됩니다. 솔로몬도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경우가 바로 이러한 경우였습니다.
솔로몬이 이방여인을 사랑하게 되자 자연히 이방여인들이 궁전에 들어와서 각기 자기 신들을 궁전에 들여놓게 되었고 \"솔로몬이 여호와 앞에서 악을 행하여 그 자기 첩들을 위해서 이방 산당을 만들어 주었다\"라고 성경은 계속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두 번씩이나 나타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에게 나타나셔서 먼저 말씀으로 경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이 듣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잘못할 수는 있습니다. 또한 실수할 수도 있고 한 때 범죄할 수도 있습니다. 다윗도 그랬고 솔로몬도 그랬고 바울도 그랬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가 잘못을 하였느냐 안 하였느냐보다도 그 후에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범죄한 자에게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느냐 못 듣느냐에 따라 문제가 달라집니다. 바로 이것이 성경이 보여주는 진리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죄인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사람들이 죄인이기 때문에 그 죄때문에 멸망받는 게 아닙니다. 옛날, 율법의 시대에는 죄 때문에 멸망받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가 죄인인 사실로 인해서 멸망받는 게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죄인인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죄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 죄에 대한 해결책으로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용서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 위에 보내 주셨습니다. 문제는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다 죄인인데 그 하나님의 용서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느냐 안 받아들이느냐 이것이 문제가 되고 우리 시대에 멸망하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기 때문에 멸망하는 것입니다.
어느 청년이 살인죄를 저지르고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살인은 실수로 인한 살인이었고, 우연히 일어난 살인이었습니다.
그 청년에게 사형이 확정되었으나, 그 어머니와 마을사람들이 주지사를 찾아가 탄원하고 간청하여 주지사는 그 청년을 한번 만나기로 했습니다.
주지사가 감옥에 찾아가 그 청년을 면회하려고 했는데, 도무지 청년이 나오지를 않습니다. 오히려 죄가 없는 자기가 감옥에 와서 사형을 당하게 되었다는 사실에 분노하면서 모든 사람을 미워하고 아무도 만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 다음날 주지사는 한번 더 그 청년을 만나러 갔지만, 역시 청년은 감옥에서 한발도 움직이지 않으며 오히려 주지사를 욕하고 나라를 욕하기만 했습니다. 할수없이 주지사는 청년을 만나지 못하고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시간이 흘러 그 청년의 사형이 집행되는 날이었습니다. 사형 집행장으로 그 청년을 인도하여 가는 간수가 안타깝게 말을 했습니다.
“이봐 청년 얼마전에 주지사님께서 오셨을때 왜 만나지 않았나? 그 주지사님은 자네를 석방시켜주실 수 있는 권한이 있으신분인데...그 분이 오셨을 때 자네의 이야기를 듣고 타당하다면 자네를 석방시킬수 있는 사면권을 쥐고 오셨네만 자네가 만나지 않아 그 사면권을 버리시고 말았지...”
이 이야기를 들은 청년은 대성통곡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 청년이 죽게 된 것은 그의 죄때문이 아니라 주지사를 만나지 않았던 그의 고집스러움과 세상을 향한 원망때문이었던 것입니다.
오늘 성경 본문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말씀하는 것은 솔로몬의 죄보다도 그 죄를 지은 것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다는 데에서 더 큰 문제가 발생함을 보게 됩니다.
9절에 『여호와께서 일찌기 두 번이나 저에게 나타나시고 이 일에 대하여 명하사 다른 신
을 좇지 말라 하셨으나』라고 하나님이 조용히 말씀으로 하셨습니다.
\"다른 신을 좇지 말라.\"
그러나 이 하나님의 명령의 말씀을 솔로몬은 지키지 않았습니다. 환상 가운데 보였는지 천사가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났는지 선지자가 나타나서 말씀을 전했는지 그 방법은 잘 모르겠으나 솔로몬 왕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전달된 것만은 틀림이 없습니다. 그것도 두 번씩이
나 말입니다. 그런데 솔로몬이 그 두 번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인줄 몰라서 그랬는지 또는, 그 말씀을 너무 경솔히 들어서 그랬는지 둘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만 솔로몬은 반신반의하면서 그냥 흘려 버렸습니다. 바로 이것이 문제가 됩니다.
그러자 이제 솔로몬에게 어려움이 닥쳐오기 시작합니다. 말로 해서 안 되니까 하나님께서는 이제 어려움을 그의 인생 가운데 주시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대적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 전에는 주위 나라 왕들이 솔로몬의 지혜의 말씀을 들으려고 찾아왔고 그 다음에, 온갖 금은보석을 다 갖다 바치면서 경의로운 솔로몬을 한번 만나려고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이 범죄하고 하나님께서 경고하셨지만 솔로몬이 돌이키지 않자 이제 대적을 일으키는데, 먼저 하닷이라는 사람이 일어난 것입니다. 우연히 일어난 게 아닙니다. 이상하게도 이 사람이 왕이 되어서 그렇게 솔로몬을 대적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옛날 다윗왕 시절에 이스라엘이 에돔을 공략했습니다. 그 남자들을 다 쳐서 멸절시켰습니다. 다윗의 군대 장관 요압이 에돔에서 6개월 간을 머물면서 에돔 족속의 남자들의 씨를 말렸습니다. 그 이유는 에돔 족속이 하나님 앞에 범죄하므로 하나님께서 심판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에돔 족속들을 멸망시킨 것입니다.
6개월 동안이나 요압 장군이 그 에돔 지방에 머물면서 집집마다 뒤져서 남자란 남자는 다 죽이는 것입니다. 엄청난 일입니다. 그런데 그 엄청난 일 가운데도 하닷이라는 어린 남자아이가 살아남았습니다. 묘하게 한 사람이 살아났습니다. 그 아이 하닷이 애굽으로 도망을 가서 이상하게 애굽 왕 바로 앞에 크게 총애를 입어서 그 궁전에서 자라나고 나중에 바로 왕이 자기 처제를 하닷에게 아내로 주어서 바로 왕과 이 하닷이 둘 사이가 동서지간이 되었습니다. 출세를 하게 된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서 호강하고 있는 하닷이 어느 날 갑자기 폐허로 변해 버린 자기 고향 땅으로 돌아가겠다고 나선것입니다. 바로 왕이 하닷을 말립니다. 무슨 부족함이 있냐고까지 말합니다. 그러나 하닷은 그냥 고향땅으로 가겠다고 합니다.
어떤 타당한 이유도 없이 하닷이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합니다. 돌아가서는 군대를 규합해서 솔로몬의 대적이 되서 솔로몬이 죽기까지 그를 괴롭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애굽에서 편안하게 먹고 잘 살고 있을 하닷이 에돔으로 와서 다시 군대를 규합해서 솔로몬을 평생 대적합니다. 왜 그럴까요? 물론 그 하닷의 마음 속에는 복수심이 불타고 있어서 그랬겠지만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고 했습니다. 하닷이 이렇게 분노심을 발휘해서 자기 고향으로 돌아와 군대를 규합해서 솔로몬을 대적한 것은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솔로몬이 말씀을 듣지 아니하고 주께로 돌아오지 않으니까 하나님이 하닷을 일으키신 것입니다.
그래도 솔로몬이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또 역사하십니다.
23절에 보니까 \"르손\"이라는 사람이 일어났습니다. 르손이라는 사람이 일어나 솔로몬의 대적이 됩니다. 그도 처음엔 도망한 자였습니다. 다윗이 소바 사람들을 격퇴시켰는데 이 르손도 살아남아서 나중에 사람들을 규합해서 왕이 되었고, 두고두고 솔로몬의 대적 노릇을 합니다.
세번째가 또 있습니다. 11절에 나옵니다.
『내가 결단코 이 나라를 네게서 빼앗아 네 신복에게 주리라』
이번에는 신복입니다. 솔로몬의 신복의 아들 여로보암이라는 사람이 솔로몬의 대적이 되었습니다. 솔로몬에 반기를 들어서 솔로몬을 괴롭게 하더니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 중에 열 지파를 빼앗아서 북이스라엘 왕국을 건설해 버렸습니다.
이것은 사람의 맘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들었다라고 했습니다. 당대의 부귀와 영화를 누리던 솔로몬이었으나, 그에게 이러한 중요한 대적 집단 세 개가 등장하여 늘 솔로몬에게 두려움과 걱정, 아픔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고통이 솔로몬의 운명이라면 할 수 없습니다. 바울에게도 육체의 가시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일부러 주신 것입니다. 그 가시가 있음으로해서 바울로하여금 교만하지 못하도록 하나님이 주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에게 임한 이 세 대적들로 인한 고통은 바울과 틀립니다. 안 당해도 되는 고통을 사서 당하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이방 여인들을 사랑하고 이방 신을 좇아서 산당을 만들고 거기에 절하여서 사서 고생을 하는 것입니다. 참 찬 안타까운 모습니다.
인생이 두 개, 세 개도 아니요, 하나밖에 없는데 하나님의 진노로 인해서 사서 고생하다가 그의 인생이 끝난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인생입니까? 아무리 이 세상의 부귀와 재산을 가지고 살아서 뭐합니까? 후세에 사람들이 평가하기를 솔로몬의 인생은 안타까운 인생이었다라고 역사는 말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왕이었으니까, 그 당시에 정치를 하며 살았을 것입니다. 특별히 그의 정치는 무엇에다가 역점을 두었을까요? 그 당시 이스라엘은 세계 최강의 국가가 되었기 때문에 여기저기서 게릴라 같은 집단들이 그의 나라를 대적하였고, 이러한 하닷과 르손과 여로보암의 세력을 막아내느니라고 솔로몬은 노심초사하며 밤새도록 작전을 새우고 고심하고 애를 쓰면서 그의 정치 인생을 살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솔로몬이 자기의 대적을 애를 쓰면서 격퇴시키고 근절시키고자 하였으나 그것이 성공적으로 이뤄지겠습니까? 안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일으켰기 때문에 안되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그의 말년에 모든 시간과 힘과 정성과 노력을 다 기울여서 대적을 퇴치하는데 전심전력했으나 결과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면 솔로몬이 그 동안에 시간과 정성과 노력을 다 기울여서 노력했던 그것이 바로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도다가 된것입니다.
그 노력과 그 열심에 십분의 일만 가지고 돌이켜서 깨닫고 겸손히 하나님께 돌아와 산당을 없애고 우상을 다 버렸다면 하나님께서 대적을 다시 잠재우지 않으셨을까요?
이 옛날 역사적인 모습을 지금 제가 다시 끄집어내는것은 솔로몬의 안타까운 모습이 바로 우리 시대에도, 우리 삶 속에 재연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신앙인 가운데에 이 경우가 적용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혹시 나에게는 지금 적용되는 것이 아닐까?
분명 우리 삶 속에 축복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며 살아갑니다. 솔로몬도 그 놀라운 왕의 자리를 빼앗기지는 않았습니다. 그의 부귀영화가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축복으로써 그가 옛날에 하나님을 섬기고 일천번제를 쌓아서 하나님께서 지혜와 부귀영화를 주셨습니다.
이렇듯 한쪽으로는 축복을 받고 살아가지만 또 한쪽으로는 내 잘못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한 잘못이 있어서 근심과 걱정이 떠나지 않고, 아픔이 떠나지 않는 상태 속에서 자기 인생이 다 흘러가 버린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노릇이겠습니까?
그리고 그 아픔과 걱정을 해결해 보려고 자기 젊은 인생과 시간과 모든 정열을 다 바쳐서 그 대적의 문제를 해결할려고 발버둥하지만 결국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결과는 뻔한 것입니다. 십 년, 이십 년, 삼십 년 세월이 그냥 흘러가 버리게 됩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앞에서 돌아오지 않자 하나님이 건강을 치셨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병원이란 병원 다 찾아다니고, 의사란 의사 다 찾아다니고, 약이란 약은 다 찾아다닙니다. 그러면서 세월과 젊음, 재물을 다 쓰고 맙니다. 문제는 하나님이 이 사람의 신앙이 주께로 돌아오지 않자 하나님이 어려움을 주셔서 그 고난을 당하는 것인데, 이것은 해결하려고 하지 아니하고 눈앞에 보이는 어려움만 해결하려고 평생 쫓아다녀봐야 아무런 효험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먼저 말씀을 주셨습니다. 말씀을 여러번 주셨습니다. 그런데 깨닫지 못하자 하단을 일으켰고, 그래도 깨닫지 못하자 르손을 일으켰고, 그래도 깨닫지 못하자 마지막 방법 여로보암을 일으켜서 이제 나라 둘로 쪼개 버리셨습니다.
결론적으로 마지막에 솔로몬이 어떻게 합니까? 열왕기상 11장 40절, 열왕기상 11장 40절. 『이러므로 솔로몬이 여로보암을 죽이려 하매』
여로보암을 하나님이 일으키셨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이 그 대적 여로보암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의 신복의 아들이니 왕인 솔로몬이 군대를 동원하고 장관들을 동원해서 계략을 짜고 밤새도록 작전을 짜면서 여로보암을 죽이려고 죽이려고 했습니다. 얼마나 정력을 낭비하고 힘을 낭비하며 그의 인생을 낭비했습니까?
솔로몬이 여로보암을 죽이려고 하자 여로보암이 일어나 애굽으로 유유히 도망했습니다. 애굽왕 시삭에게 이르러 오히려 솔로몬이 죽기까지 애굽에 있었습니다. 솔로몬의 계획은 성공하지 못한 것입니다.
이 안타까운 말씀이 우리 시대의 사람들에게 교훈을 주고 또 이러한 케이스가 우리 시대에 나타납니다. 혹시 지금 현재 내게 있는 고통과 아픔이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순종하지 아니하고 주께로 가까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내게 일으켜서 채찍과 아픔으로 주시는 그런 아픔이 아닐런지요? 그렇다면 모든 문제는 하나님께로 돌아와야만 해결이 됩니다.
우리의 인생은 결코 길지 않습니다. 결코 우리의 나머지 인생에서 헛된 우물을 파느라고 시간과 노력과 정성을 낭비해 버리는 안타까운 인생 되지 말고 바로 깨달아서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심으로 우리의 인생이 복되고 하나님께 영광돌리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인생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