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기야 왕은 참으로 중요한 시기에 유다 왕이 되었습니다. 앗수르의 침략으로 북쪽 이스라엘은 멸망했을 때입니다. 열왕기하 18장 9-12절에 보면 히스기야 왕 제사년 곧 이스라엘의 왕 엘라의 아들 호세아 제칠년에 앗수르의 왕 살만에셀이 사마리아로 올라와서 에워쌌더라 삼 년 후에 그 성읍이 함락되니 곧 히스기아 왕 제육년이요 이스라엘 왕 호세아의 제구년에 사마리아가 함락되매 앗수르 왕이 이스라엘을 사로잡아 앗수르에 이르러 고산 강 가에 있는 할라와 하볼과 메대 사람의 여러 성읍에 두었으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고 그의 언약과 여호와의 종 모세가 명령한 모든 것을 따르지 아니하였음이더라. 이렇게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히스기아 왕 때에 북쪽 이스라엘이 앗수르의 침략을 받아서 나라가 없어져버렸습니다. 그리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모두 포로로 잡혀 갔습니다. 그리고 이 앗수르 군사는 남쪽 유다 나라까지 포위를 하고 항복하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31-33절에 보면 너희는 히스기야의 말을 듣지 말라 앗수르 왕의 말씀이 너희는 내게 항복하고 내게로 나아오라 그리하고 너희는 각각 그의 포도와 무화과를 먹고 또한 각각 자기의 우물의 물을 마시라 내가 장차 와서 너희를 한 지방으로 옮기리니 그 곳은 너희 본토와 같은 지방 곧 곡식과 포도주가 있는 지방이요 떡과 포도원이 있는 지방이요 기름 나는 감람과 꿀이 있는 지방이라 너희가 살고 죽지 아니하리라 히스기야가 너희를 설득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건지시리라 하여도 히스기야에게 듣지 말라 민족의 신들 중에 어느 한 신이 그의 땅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진 자가 있느냐. 하면서 항복하라고 권유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러니까 나라가 풍전등화와 같이 아주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이때에 히스기아는 기도로 이 모든 위기를 극복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열왕기하 19장에 보면 히스기아 왕이 듣고 그 옷을 찢고 굵은 베를 두르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하나님 앞에 부르짖으며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을 하셨는데 이사야 선지자가 이렇게 하나님의 응답을 전해줍니다. 6-7절에 보면 너희는 너희 주에게 이렇게 말하라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앗수르 왕의 신복에게 들은 바 나를 모욕하는 말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한 영을 그의 속에 두어 그로 소문을 듣고 그의 본국으로 돌아가게 하고 또 그의 본국에서 그에게 칼에 죽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더라. 앗수르의 랍사게가 돌아가다가 8-11절에 보면 앗수르 왕이 이미 라기스에서 떠났다 함을 듣고 립나로 가서 앗수르 왕을 만났으니 왕이 거기서 립나와 싸우는 중이더라 앗수르 왕은 구스 왕 디르하가가 당신과 싸우고자 나왔다 함을 듣고 다시 히스기야에게 사자를 보내며 이르되 너희는 유다 왕 히스기야에게 이같이 말하여 이르기를 네가 믿는 네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앗수르 왕의 손에 넘기지 아니하겠다 하는 말에 속지 말라 앗수르의 여러 왕이 여러 나라에 행한 바 진멸한 일을 네가 들었나니 네가 어찌 구원을 얻겠느냐. 하며 편지를 써 보냈을 때 14-19절에 보면 히스기야가 사자의 손에서 편지를 받아보고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서 히스기야가 그 편지를 여호와 앞에 펴 놓고 그 앞에서 히스기야가 기도하여 이르되 그룹들 위에 계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천하 만국에 홀로 하나님이시라 주께서 천지를 만드셨나이다 여호와여 귀를 기울여 들으소서 여호와여 눈을 떠서 보시옵소서 산헤립이 살아 계신 하나님을 비방하러 보낸 말을 들으시옵소서 여호와여 앗수르 여러 왕이 과연 여러 민족과 그들의 땅을 황폐하게 하고 또 그들의 신들을 불에 던졌사오니 이는 그들이 신이 아니요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 곧 나무와 돌 뿐이므로 멸하였나이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우리를 그의 손에서 구원하옵소서 그리하시면 천하 만국이 주 여호와가 홀로 하나님이신 줄 알리이다. 이렇게 기도했더니 20절에 보면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히스기야에게 보내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앗수르 왕 산헤립 때문에 내게 기도하는 것을 내가 들었노라 하셨나이다. 라며 하나님께서 응답하셨다고 말씀했습니다. 이 기도가 어떻게 이루어졌느냐 하면 열왕기하 19장 32-34절에 보면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을 가리켜 이르시기를 그가 이 성에 이르지 못하며 이리로 화살을 쏘지 못하며 방패를 성을 향하여 세우지 못하며 치려고 토성을 쌓지도 못하고 오던 길로 돌아가고 이 성에 이르지 못하리라 하셨으니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시라 내가 나와 나의 종 다윗을 위하여 이 성을 보호하여 구원하리라 하셨나이다 하였더라. 그리고 35-37절에 보니 이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진영에서 군사 십팔만 오천 명을 친지라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보니 다 송장이 되었더라 앗수르 왕 산헤립이 떠나 돌아가서 니느웨에 거주하더니 그가 그의 신 니스록의 신전에서 경배할 때에 아드람멜렉과 사레셀이 그를 칼로 쳐죽이고 아라랏 땅으로 그들이 도망하매 그 아들 에살핫돈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히스기야의 그 기도가 얼마나 강했는지 이런 위기 가운데서 모든 어려움을 기도로 해결하고, 쳐들어 왔던 앗수르 군사는 모두 전멸하고, 왕은 돌아갔다가 자기 신하에게 죽고, 그 아들이 대신 왕이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역대하 32장 22-23절에 보면 이와 같이 여호와께서 히스기야와 예루살렘 주민을 앗수르 왕 산헤립의 손과 모든 적국의 손에서 구원하여 내사 사면으로 보호하시매 여러 사람이 예물을 가지고 예루살렘에 와서 여호와께 드리고 또 보물을 유다 왕 히스기야에게 드린지라 이 후부터 히스기야가 모든 나라의 눈에 존귀하게 되었더라. 그 기도가 이루어지니까 모든 사람들이 와서 축하를 합니다.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고 보물을 히스기야에게 가져다 주고 그 때부터 히스기야가 모든 나라 사람들이 볼 때 존귀한 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27-30절에 보니 히스기야가 부와 영광이 지극한 지라 이에 은금과 보석과 향품과 방패와 온갖 보배로운 그릇들을 위하여 창고들을 세우며 곡식과 새 포도주를 위하여 창고를 세우며 온갖 짐승의 외양간을 세우며 양 떼의 우리를 갖추며 양 떼와 많은 소 떼를 위하여 성읍들을 세웠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재산을 심히 많이 주셨음이며 이 히스기야가 또 기혼의 윗샘물을 막아 그 아래로부터 다윗 성 서쪽으로 곧게 끌어들였으니 히스기야가 그의 모든 일에 형통하였더라. 히스기야는 위기를 기도로 극복했습니다. 그래서 나라를 구원할 뿐아니라 얼마나 하나님이 축복하시는지 히스기야가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게 해주셨다고 했습니다. 참으로 히스기야 왕은 축복을 많이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역대하 32장 24절에 보니까 히스기야가 갑자기 병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이사야 38절 1절에 보면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니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나아가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는 네 집에 유언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 하나님께서 히스기야를 불러가시려고 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후에 일어난 일들을 보면 히스기야가 이 때에 죽는 것이 오히려 더 좋았다고 생각이 됩니다. 하나님이 그동안 베풀어 주신 은혜와 축복을 감사하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면서 기쁨으로 죽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입니다. 히스기야가 천국에 소망을 가지고 있었다면 기뻐하고 찬양하면서 죽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처럼 슬퍼하고 괴로워했습니다. 아사야 38장 2-3절에 보면 히스기야가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주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며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히스기야가 심히 통곡을 했다고 합니다. 3절의 말씀을 보면 좀 이상합니다. 히스기야가 내가 주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며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것 즉 그동안 하나님 잘 섬기고 얼마나 좋은 일을 많이 했는가를 기억해 달라고 통곡을 했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히스기야의 믿음이 부족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병들어 죽게 되었다고 하면 제일 먼저 자기 자신의 죄가 무엇인지 하나님 앞에 잘못한 것이 무엇인지 그 생각부터 하면서 자신의 부족했던 것을 하나님 앞에 겸손히 회개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히스기야는 자기가 하나님 앞에서 진실히 행하고 전심으로 행하고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해달라고 자기 공치사하듯 이야기했습니다. 이것은 뭔가 잘못된 것 아닙니까? 이 세상에서 선한 일만 행하고 산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가 얼마나 허물이 많습니까? 그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렇게 갑자기 병들어 죽게 하실 때에는 분명히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알기위해서 기도했어야합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뜻을 알기위해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무조건 하나님 앞에서 살려달라고 이사야 38장 16절에 보면 그렇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히스기야가 이렇게 죽을 병을 고침 받고 좀 더 살기를 원해서 하나님 앞에 살려달라고 기도를 했다면 자기가 지금 죽지 않고 살아야 할 이유를 하나님 앞에 말씀드려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전혀 그런 기도는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언제 죽어도 천국에 가서 영생복락을 누리게 될 줄 믿습니다. 천국에 가게 되면 이 세상 고생은 모두 끝나고 오직 기쁨과 평강이 넘치는 가운데 날마다 기뻐 뛰며 즐거워하며 찬양하는 가운데 행복하게 살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화 대학교 김활란 총장님이 세상을 떠날 때 이렇게 유언을 했다고 합니다. “울지 마라. 내가 죽었다고 해서 울지 마라. 나는 더 좋은 곳에 간다. 그리고 찬송만 불러라.” 그리고 아주 행복한 모습을 눈을 감았다고 합니다. 천국에 소망이 분명한 사람은 이 세상을 일찍 떠난다 해도 슬퍼하지 않고 오히려 천국에 소망을 바라보면서 기쁨으로 찬송하며 천국에 갈 줄 믿습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더 살아야 할 이유도 모른 채 오직 더 살고 싶은 욕심에 사로잡혀서 하나님 앞에 통곡하면서 살려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의 믿음이 이렇게 부족했지만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어 주셨습니다. 이사야 38장 5-6절에 보면 네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네 수한에 십오 년을 더하고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져내겠고 내가 또 이 성을 보호하리라. 라고 하나님의 응답을 이사야 선지자가 전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이루어질 증거로 해시계의 해 그림자가 뒤로 십 도나 물러가게 해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응답으로 히스기야는 십오 년을 더 살게 되었고 유다 나라는 앗수르에게 멸망당하지 않고 백이십 년 더 연장되다가 바벨론에게 멸망당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는 히스기야는 유다 역사상 큰 공헌을 한 인물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십오 년을 더 살게 되었을 때 삶의 목적이 무엇이며, 더 살아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 보지 못한 것이 히스기야의 약점입니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도 히스기야처럼 약점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사업이 잘되게 해달라고 기도는 하지만 왜 사업이 잘되게 해달라는지 그 이유는 분명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돈 많이 해달라고 기도는 하지만 그 목적이 무엇인지는 분명하지 않은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덮어놓고 사업 잘되게 해달라고, 돈 많이 벌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여러분, 이렇게 기도하는 사람은 그 기도대로 응답받아서 사업이 잘되면 타락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사업이 잘되면 더 잘되게 해달라고 기도하겠지요. 잘되면 뭐합니까? 하나님을 위한 목표가 있고 이 물질로 어떻게 주의 일을 하겠다는 기도를 한다면 자기 할 일을 아니까 하나님 영광을 위해 살 수가 있습니다. 또 죽을 병에 걸린 사람이 하나님 앞에 고쳐달라고 할 때 그 이유가 분명치 아니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더 살아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천국가면 더 좋은데요. 구체적인 계획 없이 덮어놓고 고쳐달라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사람은 기도응답을 받아서 건강이 회복되었을 때에 잠시는 기쁘고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을 가질지 모르지만 하나님 뜻대로 살면서 하나님 영광을 돌리며 살기는 어렵습니다. 히스기야가 바로 그러했습니다. 십오 년을 더 살게 되므로 나타난 결과를 보면 그는 병들었을 그 때에 차라리 죽었다면 더 좋았을 사람입니다. 첫째로 그의 삶의 자세가 잘못되었습니다. 나음을 입었을 때에 아주 교만해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죽을 사람이 살았다면 겸손하고 하나님 앞에 더 감사했어야 했는데 히스기야는 반대로 교만해졌습니다. 역대하 32장 24-26절에 보면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므로 여호와께 기도하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대답하시고 또 이적을 보이셨으나 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하여 그 받은 은혜를 보답하지 아니하므로 진노가 그와 유다와 예루살렘에 내리게 되었더니 히스기야가 마음의 교만함을 뉘우치고 예루살렘 주민들도 그와 같이 하였으므로 여호와의 진노가 히스기야의 생전에는 그들에게 내리지 아니하니라. 여기 보면 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해졌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만한 사람의 특징이 바로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어떤 성도들은 일 년 동안 헌금 한 것을 보면 십일조는 많은데 감사헌금이 한 번도 없는 분이 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감사할 것이 없었을까요? 우리가 날마다 사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공기 속에 얼마나 무서운 균이 많은 줄 아십니까? 그리고 날마다 우리 몸의 세포 속에 얼마나 암세포가 많이 생기는지 아십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우리는 살 수가 없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우리 교회에 고등학교 일 학년 학생 한 명이 안수 집사님 아들인데 얼마나 착하고 건강했는지 모릅니다. 평생 한 번도 병원에 간 적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특별히 건강의 축복을 받아서 약도 먹어본 적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런데 여름에 동네에서 아이스크림을 집에서 만들어서 파는 장사한테서 사먹었는데 얼음이 비위생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먹고 배가 아파서 쩔쩔 맸는데 가족들은 그 아이가 아픈 적이 없으니까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고 약 사먹으라고 말만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약을 먹어도 계속 아프니까 우리가 서울 변두리에 살았는데 큰 병원이 없었습니다. 작은 병원에 가서 배가 아프다고 해도 장비가 별로 없다보니 큰 병원으로 가라고 했습니다. 큰 병원으로 갔더니 창자에 무서운 균들이 침투해서 벌써 많이 썩어서 엄청난 부분을 잘라내는 대 수술을 받다가 죽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아무리 건강해도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것이지 건강하다고 해서 오래 사는 것이 아닙니다. 건강한 사람도 자다가도 죽습니다. 등산하다가 쓰러져 죽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는 교만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잘나서 잘살고 내가 건강해서 오래 산다는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기도 많이 해서 축복 받았고 남보다 신앙이 좋아서 축복 받았다는 교만한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는 겸손한 마음으로 “아버지 하나님, 우리는 그저 하나님의 은혜로 삽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영광 받아주옵소서.” 라는 자세로 살아야 할 줄 믿습니다. 두 번째로 그의 언행이 지혜롭지 못한 자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그만큼 기도생활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하나님을 가까이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지혜롭지 못한 자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열왕기하 20장 12-15절에 보면 그 때에 발라단의 아들 바벨론의 왕 브로닥발라단이 히스기야가 병 들었다 함을 듣고 편지와 예물을 그에게 보낸지라 히스기야가 사자들의 말을 듣고 자기 보물고의 금은과 향품과 보배로운 기름과 그의 군기고와 창고의 모든 것을 다 사자들에게 보였는데 왕궁과 그의 나라 안에 있는 모든 것 중에서 히스기야가 그에게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더라 선지자 이사야가 히스기야 왕에게 나아와 그에게 이르되 이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였으며 어디서부터 왕에게 왔나이까 히스기야가 이르되 먼 지방 바벨론에서 왔나이다 하니 이사야가 이르되 그들이 왕궁에서 무엇을 보았나이까 하니 히스기야가 대답하되 내 궁에 있는 것을 그들이 다 보았나니 나의 창고에서 하나도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나이다 하더라. 얼마나 어리석은 짓입니까? 도둑놈에게 우리 집에 이렇게 보물이 많다고 보여준 격입니다. 그래서 이사야가 히스기야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여호와의 말씀이 날이 이르리니 왕궁의 모든 것과 왕의 조상들이 오늘까지 쌓아 두었던 것이 바벨론으로 옮긴 바 되고 하나도 남지 아니할 것이요 또 왕의 몸에서 날 아들 중에서 사로잡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이르되 당신이 전한 바 여호와의 말씀이 선하니이다 하고 또 이르되 만일 내가 사는 날에 태평과 진실이 있을진대 어찌 선하지 아니하리요 하니라(16-19절). 이렇게 책망을 들었으면 자가가 얼마나 어리석은 짓을 했는가 깨닫고 눈물을 흘리고 통회자복을 하고 회개해야 하고 나라가 망하게 될 것을 말씀하고 바벨론이 쳐들어 와서 모든 금은보화를 빼앗고 왕의 자손들이 포로로 잡혀가는 일이 있다고 하면 가슴을 치고 울어야하는데 자기만 평안하면 된다는 이 자세가 잘못되지 않습니까? 여기에 대해서 역대하 32장 31절에는 히스기야에게 사신을 보내어 그 땅에서 나타난 이적을 물을 때에 하나님이 히스기야를 떠나시고 그의 심중에 있는 것을 다 알고자 하사 시험하셨더라. 바벨론 신하들이 찾아 왔을 때 하나님이 히스기야를 떠나셨다고 합니다. 히스기야가 얼마나 잘못됐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죽을 병에 걸렸다가 살아난 다음에 히스기야의 모습은 영적으로 보면 너무나도 잘못되어 있습니다. 말과 행실이 어리석고 분별력이 없습니다.
그뿐 아니라 히스기야는 병 고침을 받은 후 삼 년이 되었을 때 아들을 하나 더 낳습니다. 므낫세라는 이 아들이 행한 것을 보면 히스기야가 십오 년을 더 산 것이 오히려 화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차라리 히스기야가 십오 년 전에 그냥 죽었더라면 이런 악한 왕이 생기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역대하 33장을 보면 므낫세가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십이 세라 예루살렘에서 오십오 년 동안 다스리며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들의 가증한 일을 본받아 그의 아버지 히스기야가 헐어 버린 산당을 다시 세우며 바알들을 위하여 제단을 쌓으며 아세라 목상을 만들며 하늘의 모든 일월성신을 경배하여 섬기며 여호와께서 전에 이르시기를 내가 내 이름을 예루살렘에 영원히 두리라 하신 여호와의 전에 제단들을 쌓고 또 여호와의 전 두 마당에 하늘의 일월성신을 위하여 제단들을 쌓고 또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서 그의 아들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며 또 점치며 사술과 요술을 행하며 신접한 자와 박수를 신임하여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많이 행하여 여호와를 진노하게 하였으며 또 자기가 만든 아로새긴 목상을 하나님의 전에 세웠더라 옛적에 하나님이 이 성전에 대하여 다윗과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한 이 성전과 예루살렘에 내 이름을 영원히 둘지라 만일 예루살렘 사람이 내가 명령한 일들 곧 모세를 통하여 전한 모든 율법과 율례와 규례를 지켜 행하면 내가 그들의 발로 다시는 그의 조상들에게 정하여 준 땅에서 옮기지 않게 하리라 하셨으나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이 므낫세의 꾀임을 받고 악을 행한 것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멸하신 모든 나라보다 더욱 심하였더라(1-9절). 가나안 족속들이 우상을 섬기고 타락했기 때문에 멸망을 당했는데 그 나라 그 사람들보다 더 심하게 우상숭배를 했다고 합니다. 얼마나 지독한 짓을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10-13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므낫세와 그 의 백성에게 이르셨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의 군대 지휘관들이 와서 치게 하시매 그들이 므낫세를 사로잡고 쇠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고 간지라 그가 환난을 당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간구하고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앞에 크게 겸손하여 기도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의 기도를 받으시며 그의 간구를 들으시사 그가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다시 왕위에 앉게 하시매 므낫세가 그제서야 여호와께서 하나님이신 줄을 알았더라. 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열두 살짜리가 무엇을 안다고 그렇게 철저하게 우상숭배를 하게 되었을까요? 므낫세가 이렇게 행동하게 된 것은 첫째 히스기야가 신앙의 본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히스기야가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6장 4-9절에 보면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고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대로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야 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말씀으로 잘 자라나게 해주어야 하는데 이 명령을 지키지 않은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간 후에 나라가 망하게 되고 원수 나라들이 쳐들어와서 많은 고통을 당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자녀들에게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는데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사사기 2장 6-10절에 보면 전에 여호수아가 백성을 보내매 이스라엘 자손이 각기 그들의 기업으로 가서 땅을 차지하였고 백성이 여호수아가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큰 일을 본 자들이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를 섬겼더라 여호와의 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백십 세에 죽으매 무리가 그의 기업의 경내 에브라임 산지 가아스 산 북쪽 딤낫 헤레스에 장사하였고 그 세대의 사람도 다 그 조상들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왜 그 자손들은 몰랐을까요? 하나님도 모르고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을 왜 하나도 모를까요?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모르는 백성이 되고 만 것입니다. 11-15절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을 섬기며 -하나님을 모르니까 우상을 섬깁니다- 애굽 땅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신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 곧 그들의 주위에 있는 백성의 신들을 따라 그들에게 절하여 여호와를 진노하시게 하였으되 곧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겼으므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노략하는 자의 손에 넘겨 주사 그들이 노략을 당하게 하시며 또 주위에 있는 모든 대적의 손에 팔아 넘기시매 그들이 다시는 대적을 당하지 못하였으며 그들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의 손이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시니 곧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고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맹세하신 것과 같아서 그들의 괴로움이 심하였더라.
여러분은 자녀들에게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는데 성공하고 있습니까? 신앙교육은 어렸을 때 할수록 좋습니다. 늦게 할수록 성공할 확률이 별로 없습니다. 이것은 토기장이가 토기를 만들 때와 같습니다. 진흙을 반죽하는데 반죽을 했을 때 금방 그 자리에서 토기를 만들면 아주 쉽게 원하는 대로 모양을 잘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루를 묵혀 놓으면 굳습니다. 이틀을 묵히면 더 굳습니다. 열흘을 두었다가 만들려고 하면 그릇이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 신앙교육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렸을 때 신앙교육을 할수록 효과가 나타납니다. 요즘은 초등학교 4학년만 되어도 컴퓨터에 빠져서 좀처럼 말을 듣지 않는다고 합니다.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더 어렵고 대학생이 되어서는 부모가 무슨 말을 해도 잘 듣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자손들에게 신앙교육을 하는 것은 일찍 해야 합니다. 말을 배울 때부터 찬양을 하게 하고 기도하게 하고 또 글을 깨칠 때부터 성경부터 읽게 하고 세상 지식을 받아들이기 전에 성경 지식을 먼저 받아들이게 해서 하나님을 먼저 알게 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히스기야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자손들에게 신앙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열두 살짜리 므낫세가 우상 숭배를 그렇게 철저하게 하는지 기가 찬 노릇입니다. 므낫세가 성전에도 우상을 가져다 놓고 섬기고 별 별 짓을 다하는 것을 히스기야가 천국에서 내려다 볼 수 있었다면 자기가 십오 년 더 산 것에 대해서 후회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녀들이 장성하기 전에 신앙교육을 열심히 하시기 바랍니다. 신앙교육을 게을리 하시지 말고 미루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공부가 중하다 하더라도 공부보다 더 중한 것이 하나님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학원 보내고 과외 시킨다고 정신없어서 아이들을 일주일에 한 번 겨우 교회에 나오게 하면 그 아이들이 일주일 내내 컴퓨터 앞에 앉아있고 세상 것만 접하고 있는데 그 아이들에게 어떻게 신앙이 들어가겠습니까?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저는 중학교 일 학년 때부터 하루에 세 번씩 교회에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학교가기 전에 기도하고 학교마치고 올 때 기도하고 저녁 먹고 나면 기도하고 그래도 부족하면 철야기도하고 학교에서 졸았습니다. 하도 제가 조니까 국사 선생님이 오셔서 제 교과서를 보시더니 교과서 사이사이에 “주여 어찌하오리까?” 하고 적힌 것 을 읽는 바람에 아이들이 와하고 웃었습니다. 그래서 정신이 버쩍 났습니다. 너무 어려운 형편에 있어서 밤새 기도했다고 말할 수가 없으니 내가 왜 조는지 말 할 수가 없었습니다. 선생님은 내 사정도 모르고 저를 데리고 가서 양동이에 물을 받아서 제 머리를 박았다가 정신 차리게 해서 공부하게 했습니다. 그래도 야단 안치고 그렇게라도 공부하게 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어렸을 때 그렇게 기도하고 모든 예배시간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성경을 적어도 한 장 이상 씩 어떤 때는 수십 장 씩 읽고 그렇게 하면서 자라났습니다. 부흥회를 하면 학교를 가지 않았습니다. 부흥회를 그 옛날에는 월요일 저녁부터 하면 토요일 아침까지도 했습니다. 한 주간을 새벽, 낮, 저녁에 하는데 저는 목사가 될 사람이니까 설교를 모두 받아썼습니다. 어떻게 보면 공부보다 기도하는 것을 더 중하게 생각하고, 공부보다 하나님 섬기는 것을 더 귀하게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성령께서 그렇게 길러주셨습니다. 부모님이 그렇게 해주지 않았지만 어렸을 때 그렇게 자라난 것이 평생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모릅니다. 어렸을 때 주님을 만나는 체험을 하고 어렸을 때 기도하다가 성령의 불이 임하는 것을 체험하고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받는 것을 어렸을 때부터 체험을 하니까 너무도 구체적으로 아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린 아이들이 은혜를 어른보다 빨리 받는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집회를 해보면 유치부 아이들이 더 은혜를 받는다고 합니다. 자녀들에게 신앙교육을 게을리 하지 마시고 미루지 마시고 어렸을 때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또 열두 살 밖에 안 된 어린 아이가 우상숭배를 철저히 하게 된 것은 타락한 어머니의 영향이나 타락한 신하들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히스기야 생전에는 그렇지 않다가 히스기야가 죽자마자 그렇게 돌변할 수가 있을까요? 그들이 그동한 형식적으로 히스기야의 비위나 맞추면서 신앙생활을 했기 때문입니다. 거듭나지 못한 신자들의 특징입니다. 형식적으로 기분 따라 신앙생활하기 때문에 언제 돌변할지 모릅니다. 얼마나 안타까운지 모릅니다. 히스기야가 십오 년을 더 연장 받은 것은 자신을 위해 살라고 하신 것이 아닌 줄 믿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살라고 하나님이 살려주신 줄 믿습니다.
그런데 히스기야는 하나님을 위한 계획이 없었습니다. 다만 자신의 병이 낫게 된 것에 흥분되어 있었을 뿐입니다. 십오 년을 어떻게 살아야할지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신앙생활도 제대로 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교만한 사람이 되었다고 성경에 말하고 있습니다. 죽을 병에 걸렸다 나았으면 하나님 앞에 정말 감사하고 영광을 돌려야 마땅한데 감사할 줄을 몰랐습니다. 그리고 바벨론 왕이 신하를 보내왔을 때도 지혜가 없고 언행이 너무도 경솔했습니다. 히스기야의 시작은 좋았으나 그의 마지막은 참으로 불행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면서 하나님의 뜻대로만 살기를 원했다면 그렇게 살지 않았을 것입니다. 제 생각에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십오 년을 더 살게 해주셨다면 이 십오 년은 나를 위해 사는 시간이 아니고 하나님만을 위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이런 계획을 세웠을 것입니다. 첫째로는 국가적인 기도운동을 일으키고 말씀 공부 운동을 일으켜서 다시는 이스라엘 민족이 우상숭배하는 일이 없도록 만들기로 계획을 세웠을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자녀들에게 신앙교육을 철저히 시켜서 다윗처럼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살도록 만들기로 계획을 세우고 십오 년을 살았을 것입니다. 세 번째로는 가족과 주변의 신하들을 말씀무장을 시키는 계획을 세웠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앞으로 여생을 어떻게 살다가 하나님 앞에 가기를 원하십니까? 구체적인 계획이 필요합니다. 덮어놓고 살려고만 하지 마십시오. 덮어놓고 건강한 몸으로 잘살겠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여생을 무엇을 위해 살기 원하는가, 어떤 소원을 가지고 있는가 한번 오늘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남은 생에 대한 소원과 계획이 아주 분명합니다. 왜 살아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하는지 목표가 분명하고 할 일이 분명합니다. 저는 목표를 어렸을 때부터 정해놓고 살아왔습니다. 이 나라 이 백성을 완전히 복음화하고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고 주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 일만하고 살다가 주님 앞에 가는 것이 내 목표요 소원입니다. 저는 살기위해 살지 않습니다. 여러분들도 오늘밤 이 말씀을 통해서 여생에 대한 계획을 세우시기 바랍니다. 내가 여생을 살아야할 이유가 무엇인지 분명히 밝힐 수 있기 바랍니다. 삶의 목적을 분명히 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산다면 우리 여생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복된 삶이 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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