릭조이너- 이기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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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설교문 ()  작성일  2008-03-22
 제목  [릭 조이너] 이기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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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출처    성경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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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앞에서 살펴본대로, 이스라엘은 홍해를 건너는 것으로 대표되는 세례에 자진해서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실상 주님은 이스라엘이 그들을 뒤쫓는 적 때문에 다른 선택을 할 수 없도록 이스라엘을 속여서 그 세례에 들어가도록 하셔야 했습니다. 그렇지만, 요단 강을 건너는 것으로 대표되는 세례는 자발적인 것이었고, 원수들을 그 땅에서 몰아내기 위한 추격이 시작되었습니다. 환경이 바뀌어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 아니라, 광야에서 오래 머물르며 사람들이 변화되어서 이런 일이 나타난 것입니다.

교회는 마치 지난 2천년간 광야에서 방황한 것처럼 보입니다. 이스라엘의 광야 여행처럼, 이 시간도 헛되지 않았습니다. 백성들 안에 한 위대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오는 것과는 별개로, 백성들에게서 애굽을 뽑아내는데는 더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와 같이 그의 백성들이 인생에서 목적을 잃고 방황하는 것 같이 보여도, 하나님은 그들의 마음에서 깊은 역사를 행하고 계십니다. 이러한 시간은 헛되지 않습니다. 앞에 놓인 큰 도전에 걸맞게 준비되어서, 하나님의 나라가 오는 길을 예비하게 될 것입니다.

이 변화는 악한 자에게 쫓기고 시달리는 과정에서 생겨납니다. 하나님은 우리 자신의 마음을 깊이 만지셔서 정복정신을 갖게 하십니다. 우리가 지금 완벽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앞으로의 정복은 우리가 계속 연단되도록 도울 것인데, 이 전투에는 큰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우리는 우리를 노예삼은 원수와 싸우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노예로 삼고 있는 원수와 싸우기 시작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전투가 개인의 이득과 출세를 위해 욕심대로 추구하는게 아니라는 점을 절대 잊어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보화는 지금 어둠에 갇힌 영혼들을 해방시키는 것입니다. 우리의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진리가 갇힌자를 자유케함을 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진정한 자유의 용사로 부름받았습니다. 우리 삶에 있어서 성공이란 악한 자가 그의 뜻을 이루려고 속박한 갇힌 자들을 얼마나 많이 자유케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교회에서 우리 스스로를 자유케할뿐만 아니라 열방을 자유케하는 큰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습니다. 요단강을 건너갔을때, 이스라엘의 겉모양은 애굽에서 나왔을때와 별로 달라보이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내면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들은 더이상 갓 해방된 노예들이 아니었습니다-그들은 정복자였습니다! 바로 지금, 외양상으로는 교회가 수세기 동안 달라진게 없어보여도, 실제로 교회는 변화했습니다! 우리도 더이상 갓 해방된 노예가 아닙니다-우리는 위대한 목적을 가진 용사이며, 위대한 전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저는 요즘 교회에 대해서 격려하는 말 한마디를 들으면, 부정적인 말은 그 열 배나 듣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말들은 볼 눈이 없는 사람들이 하는 얘기입니다. 1960년에 3천만명의 사람들이 성령 세례로 능력을 받았습니다. 그 숫자는 오늘날 10억에 이릅니다! 교회역사상 가장 위대한 목사, 교사, 복음전도자들이 오늘날 살아있습니다. 구약에 나타난 어떤 예언에도 비할만하고 또 앞으로는 의심할바없이 구약의 정도를 뛰어넘을 예언적인 은사들을 갖추고 진리의 성경적 기준에 맞게 일어난 최근의 예언적인 사역들도 있습니다. 전혀 새로운 사역들이 일어나서 진실한 사도적 수준과 권위와 지혜안에서 행하게 될 것입니다.

500여년 전 종교개혁이 시작된 이후, 하나님의 모든 위대한 역사 뒤에는 다음번 역사가 일어날때까지 소강상태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모든 새로운 하나님의 역사하심은 이전의 역사의 한계를 상당한 수준으로 뛰어넘습니다. 많은 비판을 받고 있는 카리스마파 운동의 결과로 사실상 이전에 있었던 하나님의 사역을 합한 것보다 더 많은 구원과, 더 많은 교회 개척과, 더 많은 사역과, 더 많은 선교사가 나왔습니다! 카리스마파 운동이 정점을 지난 후, 적어도 서부에서는 일시적인 소강상태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세워지고 있는 한가지 사역은 분명히 주시할만한 것이 될 것입니다. 예언자들과 옛 의인들이 보고자 원했던 것이고, 구름같은 증인들이 기다려온 것입니다.

저는 NFL(미식축구리그) 시합 전에 몇몇 팀들에게 설교를 부탁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 선수들의 얼굴에 서린 것과 같은 집중력을 이전에는 본적이 없었습니다. 1990년에 저는 덴버 브로노코스 팀에게 설교를 했는데, 라이벌인 캔사스 시티 치프 팀과 중대한 경기를 앞둔 월요일 밤이었습니다. 주님은 저에게 선수들의 \"경기에 임하는 얼굴\"을 주의해서 보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네가 나의 백성들의 얼굴에서 이러한 집중력을 보게될 때, 때가 이를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날 밤으로부터 제가 가는 곳 어디에서나 하나님의 백성의 얼굴에서 이런 집중력을 찾았습니다. 수년동안 대부분의 교회는 올라서서 정복하는 군대보다는, 방과후에 교실에 남아 벌을 받는 어린아이쪽에 가까웠습니다. 그렇지만 지난 4년간 저는 집중력과 전심전력하는 것이 증가하는 것을 보았고, 이제 위대한 진군이 가까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경기가 시작하기 직전에 축구선수들의 모습을 본다면, 이 선수들이 빨리 적수와 싸우지 않으면 같은팀 선수들끼리 싸우게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때때로 교회에서는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주의 백성들을 세운 뒤에 적과 싸우도록 하지 않으면, 이들의 집중력은 다른 신자들에게 욕구불만으로 표출됩니다. 이러한 이유로 많은 교회가 분열되었고, 다른 파괴적인 문제들도 생겼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원수와 맞붙을 때입니다! 교회를 세우는 사람들이 필요하고, 이 일은 누군가가 언제나 해야 하는 일입니다만, 지금은 우리가 단지 우리 자신을 세우는 것에만 신경을 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것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입니다.

이 말은 우리 속사람이 완성됐다는 뜻이 전혀 아닙니다. 반대로, 우리에게 필요한 깊은 내적인 변화는 오직 우리가 적과 싸우도록 부름받은 전투에서만 일어납니다. 그리스도인의 최악의 적은 자기만족, 또는 주님께서 표현하신대로, 미지근함입니다. 이것은 그 어떤것보다도 가장 기만하고 속이는 것입니다. 어느 누가 불가운데 있지 않으면서 소멸하는 불이신 주님을 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주님의 참된 사역자를 \"불꽃\"이라 하십니다. 미지근함은 이 세상의 염려와 근심으로 우리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말라버리면 생겨나는 것입니다. 전쟁만큼 사람이 자기만족을 떨치고 나오게 하는 것이 없습니다. 경기에 임하는 프로선수들의 얼굴에서보다 더 큰 집중력을 볼 수 있는 것은, 전투를 앞둔 군사의 얼굴에서일 것입니다.

다윗왕은 이 땅에 살았던 가장 위대한 영혼중의 한사람이며, 평생토록 하나님을 좇은 사람인데, \"왕들이 출전할때에\"(
삼하 11:1) 집에 머물렀고, 간음을 저지름으로 그의 인생에 가장 심각한 문제들이 들어오는 문을 열어주게 되었습니다. 싸워야할 때에 우리가 싸우지 않으면, 우리는 거의 확실히 원수 앞에 어떤 형태로든 무기력하게 되고, 패배를 당합니다. 지금 이 때에 우리는 공격적으로 나가야 하고, 이기적으로 자기 교회만 세울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영토의 확장이 시작되도록 우리의 사명을 찾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행한다면, 우리의 교회들은 성장할 것이고 지금보다 더욱 강해질 것입니다.

인간은 모험의 욕구를 갖도록 창조되었습니다. 인생에서 그리스도인의 삶보다 더 위대한 모험은 없습니다. 특별히 젊음은 모험하기를 원합니다. 젊은이가 어떤 형태로든 사명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세상의 영에 사로잡히기 쉽습니다.

종교보다 더 지루한 것은 없습니다. C.S 루이스는 지옥을 정의하기를, 하나님의 임재 없이 끝없는 교회 예배에 앉아있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예배는 사단이 신자들을 사로잡고 가둬놓기 위해서 만들어낸 고안물들입니다. 우리는 사단에게 넘어갔던 거룩하고 능력있는 무기를 쓰고, 당연히 우리의 것인 땅을 취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어떤 교회든 사명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물리적으로는 아니어도 적어도 영적으로는 시들어버릴 것입니다. 우리는 단순히 일반적인 어떤 사명을 받으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사명을 받고자 합니다. 우리는 주님께 파송받고 주님께 인도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사명에 맞게 구체적인 목표들을 두면 우리가 전진하고 있는지, 성공하고 있는지, 혹은 실패하고 있는지 알수 있게 됩니다. 우리는 우리가 건너가서 정복할 약속의 땅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요단강을 건너기 전에, 약속의 땅은 이스라엘 지파 사이에서 나누어집니다. 이스라엘은 모두 함께 싸웠고, 모든 지파가 자기의 땅을 취할때까지 계속 싸웠습니다. 우리도 이와 같이 해야 합니다. 최근 몇년간, 서로 다른 사역에서 이 시대의 위대한 지도자들이 모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임으로부터, 의회가 만들어졌고, 거룩한 전략이 빛을 밝혔습니다. 이들은 아직도 발달 단계에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에게 명백하고 분명한 기름부으심이 있습니다. 복음에 있어서 유례가 없는 진보가 눈앞에 있다는 데에 이의를 다는 사람은 없습니다. 모든 능력이 나타나기까지는 몇년 더 걸릴수도 있지만, 이것은 분명히 나타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