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운데 서있다

생수의 강
- 새생명전도축제설교 -

\'그 한 가운데\'서 있다

(요한복음 8장 1절~11절)

■ 요한복음 1장 1절~11절
(1절) 다 각각 집으로 돌아가고 예수는 감람산으로 가시니라
(2절)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시니 백성이 다 나아오는지라 앉으사 그들을 가르치시더니
(3절)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4절)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5절)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6절) 그들이 이렇게 말함은 고발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7절) 그들이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이르시되 너희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8절)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한 여인이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붙잡혀 예수님 앞으로 질질 끌려왔습니다. 죄목은 ‘음행(淫行)’이었습니다. 저들은 주변사람들이 다 들으라는 듯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는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저들은 돌을 들어 당장이라도 내려치려는 기세였습니다.

간음하다가 들켰다? 그것도 현장에서? 2,000년 전 그 아득한 옛날, 하나님의 율법을 엄격히 지켜야 하는 그 땅에서, 음행을 저지르다 현장에서 발각된 여자가 끌려왔다니, 이런 사건이 어디 자주 있을 법한 일입니까? 때문에 그 주변에는 순식간에 수많은 사람들이 호기심어린 표정으로 모여들었습니다(요8:9). 그런데 그 중에 군중들과는 다른, 특이한 행동을 하는 한 분이 있습니다. 땅에 앉아계신 그분은 시선을 여인이 아니라 땅 바닥을 향하고 글을 쓰고 계십니다. 그러다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라고 말씀하시고는 다시 땅에 글을 쓰셨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어떻게 발각되었을까요? 이 여인이 밝은 대낮에 보란 듯이 공개적으로 했을리가 만무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다른 사람도 아닌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발각되었을까요? 그리고 또 한 명의 당사자는 도데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상대(相對)가 없는 음행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함께 있던 남자도 함께 붙잡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남자는 어디로 가고 여자만 끌고 왔을까요?

위의 질문들을 정리하자면, 여기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현장을 덮쳤다는 것은 그들이 그 은밀한 현장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을 반증(反證)합니다. 어쩌면 저들은 그 현장을 드나들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때문에 그 현장에 있던 남자의 행동은 전혀 문제 삼지 않았고 여자만 붙잡아 온 것입니다. ‘초록동색(草綠同色)’, 이런 자들은 같은 부류의 남자들에 대해서는 관대하고 여자의 정조와 정절을 더 따지고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은 세상에서 가장 의로운 양, 여인을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며, 정죄하고, 돌로 쳐 죽이려고까지 했던 것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사회 또한 이런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아서 모든 것이 다 여자의 책임이요, 잘못이었습니다. 가정에 어떤 일이 터지면 여자가 잘못 들어와서 그런 것이요, 심지어 아이를 낳지 못해도 무조건 그 책임을 여자에게 떠넘겼습니다. 이제 세상이 바뀌어 ‘남존여비(男尊女婢)’라는 말이 이제는 ‘남존여비(男存女脾)’, 즉 ‘남자가 존재하는 이유는 여자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라고 해석할만큼 남자와 여자의 위치가 바뀐듯 합니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지금 이 여자가 서 있는 위치입니다.

먼저 그녀는 지금 음행(淫行) 가운데 서있습니다(요8:3, 4). ‘음행 중에’ 이 말은 죄짓는 가운데 서 있다는 뜻이고, 가운데란 큰 죄, 깊은 죄란 뜻도 담고 있습니다. 죄짓는 중심에 서 있었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이 여인이 지금 서 있는 위치다. 이 위치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어디에도 없습니다(요8:7). 마태는 간음죄에 대하여 그들과는 전혀 다른 기준(基準)을 제시합니다(마 5:27, 28). 그러므로 단언(斷言)하건데 의인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다 죄인(罪人)입니다(롬3:9-12; 요일1:8-10; 시51:5; 롬7:19). 둘째, 그녀는 지금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가운데, 즉 정죄(定罪) 한가운데 서서 자신을 향한 손가락질, 조롱, 망신, 모욕을 당하고 있습니다. 정말 견디기 힘든 상황입니다. 그 삶의 환경이 얼마나 힘들고, 척박했으면 이런 자리에까지 떨어졌겠습니까? 셋째, 죽음의 절망 한 가운데에 서 있습니다. 저들이 이 여인을 가운데 세우고 돌로 쳐 죽이려고 합니다. 때문에 이 자리는 손가락질과 조롱을 넘어 죽음의 위협과 공포의 자리입니다. 단순히 사람 가운데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죽음의 절망 가운데 서 있는 것입니다(롬7:24). 이렇듯 죄(罪)와 정죄(定罪), 사망(死亡)의 한 가운데 서있는 이 여인을 과연 누가 건질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런데, 그 절망의 현장에 기적(奇蹟)의 드라마가 펼쳐지기 시작합니다. 그녀를 겹겹이 둘러싸고 있던 절망의 꺼풀들이 하나둘씩 벗겨지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죄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요8:10). 그리고 정죄가 사라지고 있습니다(요8:11). 더불어 죽음의 공포도 어느 순간 다 사라져버렸습니다(요8:9). 주님께서 죽음의 절망 한 가운데 던져진 그녀를 만나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함께 하시는 순간, 그 무서운 절망들은 눈 녹듯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인간을 죄와 정죄와 죽음의 절망으로부터 영원히, 그리고 온전히 구해 내실 수 있는 분은 영원한 생명이신 주님밖에 없습니다(요10:14-15; 14:6). 그분이 우리에게 찾아오시는 순간, 그분을 내가 구주로 영접(迎接)하는 순간 내 안에 있는 절망과 어둠의 세력들은 다 물러가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여러분은 무엇에 둘러싸여 있습니까? 죄로 인해 힘들어 하십니까? 남편에게, 자녀에게 말 못할 습관적인 죄악으로 양심에 가책을 받고 있습니까? 힘쓰고, 애써도 끊을 수 없습니까? 해결할 수 없습니까? 그래서 늘 정죄, 손가락질, 모멸의 한 가운데서 고통스럽게 서 있습니까?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으며, 멸시와 조롱과 숙덕거림의 대상이 되어 있습니까? 죽음의 문턱에 서 있습니까? 소망이라고는 바늘구멍만큼도 기대할 수 없는 어떤 환경에 던져져 있습니까? 죄 가운데 있는 나를 구원할 수 있는 분은 오직 주님밖에 없습니다.

현장에서 잡혀와 죽음의 공포 앞에서 덜덜 떨고 있는 여인, 그녀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바로 그곳에 주님께서 이 여인과 함께 계셨습니다. 그분은 다른 사람들처럼 죄를 정죄하지 않으십니다. 물론 손을 돌을 들고 계시지도 않습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으시다는 듯이 땅 바닥에 글을 쓰고 계실 뿐입니다. 그분이 계시는 순간, 그를 둘러싸고 있던 모든 어둠의 세력들이 다 물러갔습니다(요1:9-12). 지금 주님이 여러분 곁에 계십니다. 여러분은 그저 그분을 바라보기만 하면 됩니다(사45:22). 죄와 정죄, 사망, 이 한 가운데 나를 건지실 분은 오직 주님뿐이십니다. 이 주님을 영접하길 바랍니다. 마음에 모셔들이시길 바랍니다.

- 권 다니엘 목사(주님의영성교회 담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