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문에 은혜가 있다


 주일설교 - \'때문에의 은혜\'가 있다

 주님의 영성 교회 / 권 다니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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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수의 강 - 6월 7일 -

\'때문에의 은혜\'가 있다

(요한복음 1장 14절~16절)

■ 요한복음 1장 14절~16절
(14절)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15절)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언하여 외쳐 이르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
(16절)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위에 은혜러라


세상에는 25,000개 이상의 수많은 종교(宗敎)가 있습니다. 아니 어쩌면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의 숫자만큼이나 종교가 많을지도 모릅니다. 그 많은 종교들 가운데서 하필이면 왜 기독교, 왜 하필이면 예수일까요? ... 예수를 주(主)로 믿는 크리스천이라면 자신이 왜 예수를 믿고 있는지에 대한 분명한 대답이 있어야 합니다(벧전3:15).

기독교를 기독교 되게 하는 기독교만의 특징, 그것은 바로 은혜(恩惠)입니다. 성경은 ‘은혜(caris)’의 개념을 ‘스토리(story)’를 사용하여 설명합니다. ‘믿음’을 설명할 때 아브라함을, ‘인내’를 설명할 때 욥을(약5:11), ‘영화’를 설명할 때 요셉을 예로 들어 이해시킵니다. 성경은 ‘은혜’와 관련하여 노아를 제일 먼저 언급합니다(창6:8). 그러므로 은혜를 이해하려면 노아의 일생을 먼저 추적(追跡)해야 합니다.

온 세상이 죄악으로 관영(貫盈)했던 노아시대, 하나님은 사람 지으신 것을 후회하시며 세상의 모든 것을 쓸어버리기로 결심하셨지만(창6:7),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습니다(창6:8). 홍수(洪水)가 나서 온 세상이 다 물에 다 잠겨버리고 노아는 방주에 들어가 칠흙 같은 방주 속에서 1년 넘게 짐승들과 함께 생활해야 했습니다(시107:26-27). 그런데 성경은 이러한 노아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더라고 말합니다. 이래서는 감이 잡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요1장을 열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은혜와 진리의 충만’함으로 시작하여 ‘은혜 위에 은혜’로 끝납니다. ‘은혜 위에 은혜’, 이 표현을 직역하면 ‘은혜를 대신하는 은혜’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만, 좀 더 바른 이해를 위해 ‘은혜 때문에 받는 은혜’로 보는 것이 좋습니다.

은혜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첫째는 앞에 언급되는 은혜로, 죄인이 예수를 알고 믿는 은혜입니다(엡2:5, 8-9; 롬3:23-24). 그러나 예수 믿은 이후, 삶은 여전히 만만치 않습니다. 오히려 갈등이 증폭되고, 문제는 더 복잡해지며, 온갖 시련 때문에 우리는 풍랑 위의 조각배처럼 위태롭게 흔들립니다. 그래서 ‘길을 잘못 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게 됩니다.

욥, 그는 하나님을 경외(敬畏)했습니다. 이것은 은혜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한 순간 재물과 열 자녀를 모두 잃고, 욥 자신도 갑자기 중병에 걸려 재 가운데 앉아 기왓장으로 온 몸을 긁는 신세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 모든 일들이 숨 쉴 틈도 없이 연속적으로 일어났습니다(욥1:16, 17, 18). 비단 이런 경험은 욥뿐만 아니라 오늘 우리들도 겪게 됩니다. 이때 성령께서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음성이 있습니다. ‘때문에’ 은혜가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두 번째 은혜, 은혜 때문에 받는 은혜, 은혜가 아닌 것을 은혜 되게 하시는 은혜입니다. 이 ‘때문에’ 은혜는 예수를 믿는 자들에게 나타납니다. 그러면 ‘때문에’ 은혜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요?

갈릴리 가나, 한 혼인잔칫집, 예수님을 모신 그 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지는 난처한 사건이 벌어집니다(요2:3). 그러나 결과적으로 포도주가 떨어진 그 사건 덕에 신랑은 칭찬을 받고 최상급의 포도주를 마음껏 맛보게 됩니다. 바로 이것이 ‘때문에’ 은혜입니다. 이렇듯 예수를 모셨다고 해서 언제나 좋은 일만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도리어 그로 인해 ‘때문에’ 은혜가 부어지고, 그 어려움이 축복의 통로가 됩니다.

바울은 육체의 가시를 제거하기 위해 세 번씩이나 간절하게 기도했지만 하나님은 “네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라고만 말씀하셨습니다(고전12:9). ... 가시가 곧 은혜라니? ... 세월이 흘러 그 가시를 안고 수없이 괴로운 나날을 지내던 어느 날, 바울은 고백합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고전15:10)” 이 고백 속에는 그를 그렇게 괴롭혔던 육체의 가시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 가시를 안고 힘들어하며, 눈물을 흘렸던 그것이 곧 하나님이 주신 은혜, ‘때문에’ 은혜란 말입니다. 그래서인지 야고보는 이 은혜를 ‘더욱 큰 은혜’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약4:6).

... 제가 주님의영성교회 담임으로 부임(赴任)한지, 오늘로 만 2년이 되었습니다. 2007년 6월 첫째 주일 이 강단에 선 이후로 ‘ 여기까지 달려왔습니다. 지난 세월을 돌아보니 기쁘고 보람된 일들도 많았지만 절망의 깊은 수렁에서 허우적댈 때가 더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제까지 걸어온 발자국을 되돌아보니, 내가 힘들고 어려울 때는 언제나 주님이 나를 업고 걸으신 발자국 한 개 뿐이었습니다. ... 그런 어려운 환경이 있었기에 일산으로 교회를 옮기는데 뜻을 함께할 수 있었고, 오늘의 충정교회가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제20년 사역의 중간 결산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문에’ 은혜(恩惠)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은혜를 받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은혜가 나타나게 됩니다(롬8:28). ‘때문에’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입는 은혜가 있습니다(롬8:28; 요1:16).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을 결코 실망시키지 않으십니다. 우리를 위해 옥토(沃土)를 예비해 놓으시고 그곳에서 30, 60, 100배의 결실을 거두게 하십니다. 지금까지의 고통과 아픔과 상처를 일거에 상쇄(相殺)하고도 남는 축복의 주인공이 되게 하십니다. 이 하나님이 내가 믿는 하나님이십니다. ‘때문에’ 은혜... 그래서 지금 내가 받는 고통, 아픔, 괴로움, 시련, 배고픔이 곧 은혜입니다. 이것들 때문에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이 나타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기독교가 가지고 있는 가장 심오한 진리(眞理)입니다.

유명한 신학자 ‘칼 바르트(Karl Barth)’가 언젠가 학생들로부터 일생을 통해 발견한 가장 심오한 진리가 무엇이었느냐는 질문에 그는 어린아이처럼 율동을 섞어가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예수 사랑하심을 성경에서 배웠네. 우리들은 약하나 예수 권세 많도다(찬송563장)”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너무 성급하게 예단(豫斷)하지 마십시오.

기독교 작가 ‘필립 얀시(Philip Yancey)’는 ‘때문에’ 은혜를 “기독교가 세상에 줄 수 있는 최상의 선물이요, 복수보다 강하고 인종차별보다 강하고, 증오보다 강한 힘을 발하는 영적 신성(新星)이다”라고 말합니다. 이 ‘때문에’ 은혜를 깊이 받아들이는 귀한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노아를 노아 되게 하심’, ‘바울을 바울 되게 하심’, ‘나를 나 되게 하심’을 가슴깊이 체득(體得)하고 감격(感激)해하는 시간이 될 수 있기 바랍니다.

- 권 다니엘 목사(주님의영성교회 담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