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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2)이르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르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 (3)바울이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니라 (4)바울이 이르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5)그들이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6)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7)모두 열두사람쯤 되니라
죽음의 권세를 깨치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성령을 받으라(행1:3~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자신을 향해 \'내가 과연 성령의 사람인가? 나는 과연 성령을 받았는가?\' 하고 끊임없이 되물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약30년 후의 일입니다.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된 복음의 역사는 점점 퍼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안디옥에 교회가 세워지고, 안디옥에서 바울과 바나바를 파송하여 소아시아 지방에 여러 교회들을 세웠는데, 그 중 하나가 에베소 교회입니다.(행18:19).
시간이 흐른 후 바울은 자신이 세운 교회들의 영적 상태가 무척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선교지를 방문하는데 이것이 바울의 \'제3차 전도여행\'입니다.(행19~21). 이 선교여행에서 에베소에 도착한 바울이 그곳 성도들을 만나자마자 질문합니다.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행19:2)?\" 이 질문은 오늘 우리가 대답해야 할 질문이기도 합니다.
먼저, 이 질문을 받은 저들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인 것과 그의 죽음과 부활을 믿고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나아가 저들은 \'제자(행19:1)\'들이었습니다.
누가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서 예수님의 12제자 외에도 아주 신실한 믿음의 사람들에게 \'제자\'라는 호칭을 사용합니다. 그러니까 이 질문을 받은 사람이 평범한 초신자가 아님을 은연중에 강조하는 것입니다.(행19:7).
두 번째, 우리는 한 가지 의문을 품게 됩니다. 믿는 사람은 예외 없이 성령을 이미 받은 사람들입니다.(고전12:3, 롬8:9). 성령이 아니고는 그 누구도 예수를 주님이라고 고백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에베소 교회 사람들은 이미 성령의 사람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어찌하여 이들에게 성령 받았느냐는 질문을 한단 말입니까? 나아가 그들의 대화에서 \'성령\'이란 단어는 \'세례\'로 바뀝니다.
그리고 저들이 주 예수의 이름으로 받는 세례를 받는 순간 성령이 저들에게 임하셨습니다(행19:3~6). 즉 바울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는 질문에서 성령은 우리를 거듭나게 하는 성령의 사역이 아니라, 또 다른 성령의 사역, 즉 \'성령세례(聖靈洗禮)\'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저들에게 던진 질문은 \'성령세례\'를 받았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질문에 저들은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했노라고 말하고 있습니다.(행19:2).
저들의 대답을 통해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확인 할 수 있는데, 첫째, 믿기는 하지만 성령을 받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성령을 받지 못했어도 얼마든지 그럴듯한 신앙인으로 자신을 위장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둘째, 교회, 예수를 구주로 고백하는 믿음의 공동체라고 하지만 성령의 역사가 전혀 없는 공동체가 있을 수 있습니다.(계3:1).
셋째, 예배를 드리지만 그 예배를 받으시는 분에 대해서 알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성령은 분명 우리의 찬양과 경배를 받으실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그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했다는 것은 예배의 대상을 모른 체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이는 마치 행17장에서 알지 못하는 신에게까지 경배하는 아덴 사람들의 모습과 다를 바 없습니다(행17:23). 우리는 예배의 대상이신 성령님을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성령을 혹시 어떤 능력 정도로 생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래서 어떻게 하면 그 성령을 내게로 끌어들여서 유익을 얻으려고 하지는 않습니까?
성령님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고, 그 권위앞에 굴복하지 않고, 무시하고 소홀히 대한 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 아십니까? 그분이 얼마나 위대한 분이신지,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시는지 아십니까? 무엇보다도 그분이 우리의 찬양과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심을 아십니까?
성령세례는 내가 받아도 되고 받지 않아도 되는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성령세례는 주님의 마지막 명령이요, 간절한 소원이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말세지말(末世之末)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약속하신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세례를 통해서 세상을 능히 이길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기 때문입니다.(행1:8). 돌이켜보면 예수님은 십자가, 부활, 승천이 이어지는 사역의 절정에서 오직 한가지에 관심을 가지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이었습니다.(요16:7, 13, 행1:4,5,8). 여기에 성령은 물론 성령세례를 뜻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세례를 받는 것은 믿는 사람이면 예외없이 받아야 할 중요한 선물이요, 축복인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고 있고, \'제자\'라는 호칭을 들었던 에베소교회 교인들은 성령세례가 있음을 알지도 못했고, 관심조차 없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에베소교회 성도들의 문제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문제는 오늘 우리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신자로서 나무랄 데 없는 믿음생활하며 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그런데 내 삶의 현장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성령에 대해 관심조차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가 성령세례를 받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믿는다고 하는 나는 성령을 받았는가?\'하는 질문에 진솔하게 답해야 합니다. 여기에는 중간지대가 없습니다. 우리는 선명하게 자신의 신앙고백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예배를 받으실 그분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혹시 에베소교회 제자들과 같이 겉으로는 그럴듯하게 자신을 위장하고 있지만 성령에 대한 체험도 없고, 성령의 역사도 모르고, 나아가 성령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해 알지도 못한 상태로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저희가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행19:5)\" 고넬료가 가족들과 친지들을 모아 베드로의 발 앞에서 말씀을 들을 때에 성령이 저들 위에 임하셨습니다(행10:44).
믿고는 있었지만 성령에 대해 전혀 모르던 저들 위에 성령께서 임하셨습니다. 놀라운 능력의 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성령체험의 신비스런 영적 은혜의 바다를 경험했습니다. 이번 기간 동안 집중적으로 성령에 대해 말씀을 듣기를 바랍니다. 듣는 중에 성령이 임하실것입니다. 그래서 오랜 기간 동안 신앙생활해오면서도 전혀 이런 영적 부분에 체험이 없는 자들이 경이로운 체험의 시간이 있게 될 것입니다.
- 권 다니엘 목사(주님의영성교회 담임)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