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사- 영적 전투

축사론-영적 전투

9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1)영적전투

 

사도행전은 능력 행전으로서, 초대 교회와 같이 능력이 수반되지 않는 것은 교회가 아니다(행1:8;고전4:19-20;살전1:4-5). 오늘날 무능한 영적지도자들이 자기의 무능함을 감추기 위하여 주님을 능력 없는 주님으로 오해케 하고, 성령의 역사를 초대 교회에만 일어났었던 역사적 사실로만 간주하여, 성경을 왜곡하여 예수 이름을 소유한 하나님의 자녀들을 관념적인 신앙을 갖게 하고, 죽기를 무서워하여 마귀의 종노릇하는 자들로 만들고 있다(벧후2:18-22;갈5:1-10;딤전1:4-7). 하나님의 말씀에는 성령의 역사가 따라야 하고, 또 신유의 이적이 나타나야 하는데, 오늘날 교회에 그런 이적은 찾아볼 수 없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복음을 전할 때 가만히 있지 않으시며 표적으로 말씀을 확증해 주셨다. 그러므로 전파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그 말씀에는 반드시 병자가 낫고, 귀신이 떠나가고, 성령이 역사하시는 능력이 따라야 한다. 이것은 당연히 따르는 그림자와 같은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오순절 성령의 역사를 망각하고 있다. 마가의 다락방에서 있었던 놀라운 성령의 역사를 다 과거의 일로 접어버리고, 신유의 능력을 제거해 버린 것이다. 교리가 표준이 되고 신학이 거기에다 이론적인 치장을 하니 이적 없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되어버린 것이다. 이렇게 신학과 교리에 의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부인되고 이에 따라, 성령의 역사하심과 능력을 찾아볼 수 없게 됨으로,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의 도덕적 교훈으로 전락해 버렸다. 아무 영적 권위를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오늘날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영적으로, 권능 있는 말씀으로 사용하지 않고, 도덕 교과서로 사용하려 한다. 도덕적인 말씀으로 대면시킴으로써, 기독교를 도덕 종교로 타락시켜 놓았다. 도덕 종교는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지 못한다.

진정 사도행전의 초대 교회의 역사가 과연 그 시대로서 끝난 것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성령께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믿는 자들 가운데 역사하고 계신 것을, 우리는 직접 뵐 수가 있는 것이다(요14:16;히13:8). 복음은 영적인 특성이 있기 때문에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늘 이적이 수반되었다. 교회의 의무는 영적 사역이고 또 영적 양육이다. 성경 자체가 영적이므로 영적인 요소를 떠나서는 이해가 불가능하고 적용할 수가 없다. 영적인 것은 시대를 초월하고 장소를 초월한다. 어디에서나 경험할 수 있는 현실보다 더 확실한 세계이고 하나님의 눈으로 보는 세계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하나님의 눈동자와 같은 존재이며, 성경이 보는 세계는 영적인 것이다. 성경은 예수께서 친히 실천하신 일들을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사람들은 그 일에 대해서 매우 무관심하다.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닦으신 일은 잘 기억하면서 그가 마귀의 시험을 받으신 후 그를 대적하시고, 귀신을 쫓아내시며 또 제자들에게도 귀신을 쫓으라 명하신 교훈은 무시한다. 이것이 현대 교회의 타락이다. 교회에 진리가 없고 악령의 세력을 제어할 능력이 없어서 그것들에게 유린당하고 있는 것이다. 마귀가 키위에 얹어놓고 까부르는 그런 일에 함께 출썩거린다. 21세기는 날로날로 인간의 마음이 완악해져, 절대로 기사와 이적과 표적이 따르지 않는 전도란 있을 수가 없다(고후12:12;고전2:1-5). 현상이 없는 교회가 주님의 교회를 도덕 교회로 묶어 놓으려고 할 때, 과연 과학 문화에 젖은 사람들이 거기 가서 고개 숙이겠는가? 오순절 교회가 왕성해진 것은 현상 때문이다. 이제는 과학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을 예수 이름으로 그 원인을 잡아서 추방하고 이적을 나타내야 한다. 현상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다. 성령이 있는 곳마다 은사도 있고, 주님의 이름이 있는 곳마다 이적이 따라야 한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으면, 그것을 듣는 자들에게서는 죄에서 자유함을 얻는 이적이 나타나야 하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의 병을 짊어지셨다는 공로가 증거 돼야 한다. 그러면 이때 병에서 자유해지는 이적이 당연히 나와야 한다.

행10장38절에 예수께서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다고 한 것처럼, 마귀가 모든 인류를 지배하고 있다. 사람이 사는 곳에 눈에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영적 존재들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인간의 육안에는 보이지 아니하는 거대한 세력이 있어서 얼마나 잔인하게 인류와 가정과 개인을 괴롭히며 파괴하는지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잘 알아야 한다. 신약성경의 저자들은 마귀가 인격적인 영이며 우주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배후 세력이라고 증언한다. 마귀는 시험을 통해서 어떤 생각과 의식을 집어넣고 있는 것이다. 마귀는 시험하는 자지 결코 유익을 주는 자가 아니다. 그는 우리를 넘어뜨리려는 자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세상의 질서가 단순히 가시적인 상황의 연속으로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와 사단의 나라와의 끊임없는 갈등 속에서 전개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세상의 역사는 피상적으로 보면 인간들이 이루어가는 역사인 것처럼 보일지 모르나 좀 더 근본적으로 말하면 하나님과 사단의 대결장인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으로부터 마귀의 정체를 배웠다. 아버지 품속에서 독생하신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마귀에게만 예수의 존재를 나타내셔서 마귀를 멸하는 일을 하시고(요16:11), 이 땅에서 우리에게 싸워 이기라고 명령하셨다. 따라서 우리는 마귀의 능력은 부정해야 하지만 마귀의 존재는 부정하면 안된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하늘에서 쫓겨난 마귀가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와 싸우려고 섰더라고 했는데(요계12:17), 이미 불신자들은 자기들의 종이므로 이제 마귀의 관심은 불신자 아닌 신자에게 있는 것이다. 사실상 세상과 죄와 짝하며 살아가는 자에게는 그 어떤 영적전투도 필요 없다. 그 이유는 그러한 자들은 이미 사단의 권세 아래 있는 자이기에 사단이 그냥 두어도 되기 때문이다. 사실상 악령들의 세계에는 관심도 없이 그저 교회를 왔다 갔다 하면서 신앙 생활하는 사람들보다 귀신을 발견하면 쫓아내야 되고, 또 그 일을 위해 힘쓰고 애쓰는 사람들의 신앙생활은 몇 갑절로 힘이 든다. 그러나 그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우리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과 명령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항상 이러한 대적자 들과 싸워서 승리해야 하는 것이다. 교회의 일은 사회에 도전하는 것이 아니고 세상임금인 마귀의 일을 진압하고 소탕하는 것이다. 교회 내에도 마귀가 광명한 천사로 가장하여 우리의 영을 더럽히고 미혹시켜 그분의 뜻에 벗어나는 신앙생활로 가도록 유혹하며, 자기의 일을 기독교 가운데서 행하고 있다(고후11:12-15;벧후2:9-22;유4,8-10,17-21). 그래서 교회는 언제나 전투적 속성을 지녀야하고, 우리는 참 평안과 부흥을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항상 전투적 자세를 취하고 있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주관자들이 활동하고 있으며, 죄가 물결치고 있고 어두움이 존재하며 순결한 성도들을 미혹하려는 거짓 선생들이 존재하고 있는데, 오늘날 교회가 이 세상 속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은 매우 위험하니 결코 한순간이라도 방심할 수 없는 형편이다. 마귀는 피한다고 피해지지 않는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사방에서 위협을 받는 끊임없이 위태로운 생활이다. 이런 시험과 유혹에 면제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구원함을 받은 성도는 천국 시민권을 갖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이지만, 그리스도의 재림 때까지는 잠정적으로 이 땅에 거할 수 밖에 없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영적전투란,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니요, 영과 영의 싸움이다(엡6:10-19). 우리의 신앙생활은 명상하는 것이 아니고, 아무 탈 없이 가만있으면 되는 것이 아니며, 실제로 우리를 훼방하는 자와 싸워 이기는 생활이 영적 생활이다. 마귀를 이기는 이김이 영적 생활이다. 오늘날 교회를 공격하는 무리들은 공중의 권세 잡은 자들로서,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영적실체 들로서,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삼킬 자를 찾는다(벧전5:8-9;엡6:10-17). 우리의 신앙생활을 그리스도 위에 굳건히 세우려면 먼저 신앙생활의 방해요소부터 모조리 제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항상 그것들이 훼방거리가 되기 때문이다. 사단은 인간을 하나님과 정반대의 방향으로 가도록 역사하고 있는데, 전략은 직접적으로 그리스도인들에게 와서 ‘하나님은 계시지 않는다’ ‘신앙을 버려라’ ‘예배를 드리지 말아라!’고 공격하지는 않는다. 교묘하게 그리스도인들이 부정한 것들을 접촉하게 하여 서서히 그들의 영적 생명을 잃어버리게 한다. 그래서 구약 시대의 가견적인 대적보다 더욱 무서운 것이다. 신체적인 위험은 우리의 영적인 위험과 비교할 때 아무것도 아니다. 마귀의 궤계를 인간의 지혜로 이길 수 있다는 것은 일종의 환상이다. 마귀는 잠든 영혼 속에 침입하여 세상의 화려함과 안일을 추구하게 만들며 심령을 공허하게 조장한다. 성경은 이런 영적 존재들을 능히 박멸할 수 있는 진리와 능력을 주지만, 사람들은 성경 말씀을 등한시 할 뿐 아니라, 신앙을 관념적 신앙화 하고 있다. 이는 각각 자신들이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 자기 스스로 하나님을 제한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마귀를 대적하려면 진리만이 가능하다. 성경 기록의 첫째 목적은 마귀를 대적하기 위한 것으로서, 마귀의 시험과 도전을 물리치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마귀는 이 기록된 말씀을 대항하거나 부정하지 못했다.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케 하는 능력이다. 인간 속에 들어 있는 잡념과 관념을 다 파괴시켜 버리는 힘이다. 모든 이론! 그것은 하나님과 나 사이를 가로막는 견고한 진과 같은 방해물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의 감각이나 이성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과 나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견고한 진을 파해 버리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지식을 다 파하는 것이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어떠한 지식도 다 초월해 버려야 한다. 마귀의 유혹을 유산시킬 능력이 없으면 실패하고 만다. 마귀를 이기는 이김이 영적 생활로써, 주님은 우리에게 그 방법을 가르쳐 주시고 역사하도록 하셨다. 예수님은 말씀으로 물리치심으로써 우리에게 승리의 노하우를 전수하셨다. 그가 한 명령은 대부분 성경을 인용했으며 절대적 권위로 말씀하셨다.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진리의 말씀을 주사 이 말씀의 검으로 마귀를 대적해서 승리하라고 하신다(마4:1-11). 그러나 하나님이 인간들에게 주시고자 하는 권능을,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제한하고 있기 때문에 받지 못하고 있다. 우리에게 능력이 없는 것을 원통히 생각하고 하나님 앞에 죄송스럽게 생각하여, 오히려 능력이 충만하도록 하려 하지 않고, 억지로 자신의 무능함을 변호하기 위해, 성경을 왜곡할 필요는 없다. 오늘날 거짓선지자들도 나름대로 성경을 인용하고 듣기에 그럴싸한 말들을 진지한 모습으로 전파하기 때문에, 성경 전체에 대한 통시적 안목을 결여한 자들은 그들의 가르침에 미혹되기 십상이다. 그러므로 마귀를 대적하는 일을 대충 넘어가거나 자기 지혜로 다른 수단을 쓰는 것은 백전백패의 길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을 의지하여 대적하는 길만이 승리의 길이다. 영적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영에 힘이 있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내 마음을 지배해야 한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선한 군사로서 악한 세력들을 능히 이기고 최후 승리의 개가를 부르기 위해서는 자신의 능력을 의지하지 말고 겸손하고 변론 않는 태도와 함께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새로 덧입어야 한다. 영적 대결에서는 두려움이 최대의 적이다. 악의 세력이 아무리 강할지라도, 악한 세력이 아무리 지상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공격할지라도, 역사는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 우리가 주님 안에 있으면 사단과 모든 악의 권세를 넉넉히 이길 수 있는 것이다(눅10:17-20). 순간순간의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려면 주님께 절대 의존적 존재가 되어야 하고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완전 무장하고 성령의 검으로 공격력을 강화시키는 것만이 최고의 영성을 유지하는 비결이다(엡6:10-18). 그분이 지배하지 않는 한 범죄하지 않을 능력이 없다. 그러니 살아 있는 기도 없이, 성령의 능력과 인도하심이 없이, 예수그리스도의 권세 없이,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유치원 수준일 뿐이다. 마귀는 성도에 의해 쫓겨나야 할 존재이고, 예수의 제자는 이런 영적인 일에 부름 받은 자이다. 따라서 영적 분별력을 달라고 기도해야 하고 성경적 지성으로 무장해야 한다.

예수께서는 먼저 마귀의 권세를 십자가에서 꺾어 놓으시고 인간들로 하여금 그 안에서 벗어나도록 하셨다. 이제는 자기가 스스로 마귀의 권세로부터 걸어 나와야 한다. 그의 권세로부터 벗어나는 그 길만이 우리가 사는 길이다. 복음은 믿는 자에게는 구원을 주는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이지만, 그것을 거부하는 자에게는 영원한 형벌의 선고가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능력을 통하여 모든 갈등을 극복해 나아가야 할 것이다. 예수의 직접적인 상대는 바로 마귀이다. 우리가 확인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승리는 마귀가 최종적으로 완전히 제거되고 멸망됨으로써 완성된다는 사실이다. 교회와 그 성도는 세상의 어느 악한 세력과도 타협하지 아니하며 어떤 유혹에도 굴하지 아니하는 외로운 투쟁을 계속해야 하고, 가정과 사회 속에서 끊임없이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성취될 때까지 영적 투쟁을 계속해야 한다. 그것은 물리적이고 무력적인 싸움이 아니라, 세상의 공중 권세 잡은 자들이요,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로서, 하나님의 우주적 경륜을 방해하는 사단과의 투쟁이니, 성도들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이 성취될 그날까지 이 전쟁에서 승리를 쟁취해 나가야 한다. 그럼으로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머리가 되시고 교회의 온전한 기초가 될 때, 세상 끝 날까지 교회를 위협할 이 사단과의 투쟁에서 교회는 성령에 의해 양육되어지고, 힘을 얻으며, 끝내는 승리할 것이다. 사단은 교회와 하나님의 백성들을 핍박하기 위해서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지만 언약의 백성은 멸망으로부터 온전하게 보전될 것이며, 마침내는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영광스러운 승리를 맛보게 될 것이다. 전쟁의 기간은 복음을 영접하고 그리스도의 자녀가 된 이후부터,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때까지의 모든 기간이다.

(2)축사

우리가 마귀와 귀신을 모르면 그들에게 당한다. 모든 세상일에서도 아는 자가 성공하듯이, 영의 일도 아는 것이 힘이다. 기독교회가 이런 영적 존재를 알지 못하면 그에게서 오는 여러 가지 시험과 어려움을 이길 수 없고, 마귀를 알지 못하면 그런 것에 대해 인내하기만 한다. 자신의 수양이 부족하여 그런 것이라며 윤리적인 태도를 취하게 된다. 우리는 영적 생활을 하는 자들이다. 기독교는 자신을 훈련하는 도덕 종교가 아니라 구원하는 종교요, 영적 종교이다. 만약 우리의 믿음이 도덕적인 것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위해 목숨을 바치지 않는다. 마귀와 귀신이 있다는 것을 드러내신 이는 예수이다. 그분만이 마귀의 실체를 드러내 주셨고 귀신의 정체를 밝히셨다. 그 지식은 과거의 어느 선지자에 의해서도 알려지지 않았던 지식이다. 지금 많은 이들이 성경을 읽었다 하면서도 정작 예수께서 귀신 쫓으신 사건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다. 구약의 선지자들에게 가리워졌던 것과 같은 현상이다. 인간은 이전에 귀신에 대해서 알지 못했다. 이것은 예수님에 의해서 드러난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강단에서 선포하는 설교를 들어보면 예수님이 말씀하시고 가르치신 일에 대해서는, 그다지 적극적으로 말하지 않고 있음을 보게 된다. 예수를 따라가는 제자라면 예수님이 무슨 일을 하셨는가를 알아야 할 것인데, 하나님의 아들이 마귀에게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요, 오늘 우리에게 그 이름을 믿음으로 주신 것은 우리를 구원하려 하심이다(요일3:8). 마귀에게는 형상으로 나타나셨으나, 인류에게는 믿음으로 예수 이름을 주셨다.

구약에서는 많은 이적들이 있었지만 귀신을 쫓은 사람은 없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천국의 권세자이시기에 하늘의 임금의 권위를 힘입고, 그 권위로 귀신을 쫓으셨다. 그가 공생애를 가지시면서 그때부터 그 일을 시작했다는 것은 귀신 쫓는 것이 그의 공생애 중의 일부가 아니라 절대 부분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주님의 공생애 3년 동안에 3분의2를 축사하는 일을 하시고 3분의1은 죽는 일을 하셨다(눅13:32). 축사를 주님께서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셨는지, 돌아가시기 바로 전까지도 주님은 축사를 하셨고, 제자들에게와(막6:7), 칠십명에게와(눅10:17), 모든 믿는자들에게(막16:17), 축사를 명령하셨다. 따라서 주님의 이름이 있고 진리가 있고 권세 있는 교훈이 있는 곳마다, 반드시 축사 현상은 나타나야 한다(8:32;고후3:16-18;갈5;1-14;롬6:16-23). 그러나 오늘날 축사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다. 주님께서 중요하게 생각하셨던 축사를 인간이 무시하고 무관심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성경을 읽어도 묘하게, 도덕적으로 유리한 성경 구절만 취한다. 주님이 직접 명하신 이런 권세 있는 교훈은 살짝 살짝 넘어간다. 오늘날 교회 내에, 주님이 하셨고, 제자들에게 명령하시고, 모든 믿는 자 들에게 명령하신 축사를 비웃고, 훼방하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가를 보면 알 수 있다(갈4:29). 그러나 성경은 예수님께서 축사하시는 모습을, 비웃고 훼방하는 자들에게 바로 성령 훼방 죄를 적용하시고, 그 죄는 사함이 없다고 분명히 말씀하시고 계신 것이다(마12:22-32;요일5:16). 성령을 체험한 사람과 체험하지 않은 사람은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다. 체험하지 못한 사람들이 체험한 사람에게 하지 말라 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성령은 우리가 도전할 수 없는 분이심을 주님은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오늘날 사람들은 십계명은 두려운 줄 알지만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두려운 줄을 모른다. 오히려 성령을 욕하고도 기분 나쁘지 않을 정도이다. 율법을 범한 자는 그가 일평생 죄를 지었어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용서받을 수 있지만, 성령을 훼방하는 자는 사함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예수님의 피도 성령을 훼방하는 자들에게는 효력이 없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의 피는 모든 죄가 다 사함 받도록 제공된 것이지만, 성령을 훼방하는 죄는 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금세와 내세에도 사함을 받지 못한다 했다. 살인자일지라도, 패륜아일지라도 용서받을 수 있는 길이 있지만, 말로라고 성령을 훼방하는 죄는 금세에도, 오는 세상에도 용서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마12:31-32). 대부분이 주의 종들이 능력이 없는 이유도 성령을 훼방한 때문이다. 능력 달라고 몸부림쳐도 받지 못하는 이유는 성령을 훼방한 사실이 있기 때문이다. 성령을 훼방했다면 그 죄에 대한 책임은 남아 있는 것이다. 성령에 감동받아 일하는 자들을 모욕하는 일들은 곧 성령을 훼방하는 일이기에 죄가 사해질 수 없다는 것이다. 주님은 귀신을 쫓으라 하셨는데 그들은 귀신 쫓으면 이단이라고 비난한다. 만일 예수 편에 선 자라면 그는 귀신을 저주하고 쫓아낼 것이다. 귀신은 묵인하거나 용서해 줘야 할 존재가 아니다.

성경의 말씀과 더불어 신령한 경험이 없으면 올바르게 귀신에 대해 말할 수 없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를 잘못 알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귀신들의 활동을 얼마나 도와주고 있는지 모른다. 무당의 일은 귀신을 쫓는 것이 아니라 달래는 것일 뿐이다. 뿐만 아니라 성령을 잘 아는 것같이 하면서도 귀신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기에, 어떤 영적현상이 일어나기만 하면 다 성령의 은사로 잘못 생각하고 있다. 오늘날엔 공부를 많이 한 목회자 일수록 악마의 활동에 관한 어떤 이야기도 믿으려 하질 않는 경향이 강하며, 반면에 신학 수업을 거의 받지 못한 무인가 축사자 들은 모든 것을 귀신의 존재 탓으로 돌려 뭐가 뭔지 모를 상황으로 끌고 가는 경향을 띤다. 또한 모든 것을 흑백 논리로 보려고 하는 단순사고 주의자들은 종종 성급하게 축사를 시행하려고 한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해를 입히게 되고 단지 몇몇 사람만을 도울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이런 일이 축사에 대한 나쁜 이미지를 심어주게 되어 귀신축출 사역을 잘 분별해 낼 수 있는 사람들마저도 겁을 주어 쫓아버리는 것이다. 오늘날 축사의식, 혹은 귀신축출 사역을 마땅히 감당해야 할 사람들이, 거의 자격이 없다고 볼 수 있는 사람들에게 이 축사분야를 내맡겨 버리고는 뒤에 가서 이렇게 하여 생긴 결과만을 탓하는 실정이다. 세계에서 축사에 대한 가장 많은 경험과, 또한 완벽한 성서에 입각한 성령의 가르침이 이 한국 땅에 나타나고 있다. 성령께서는 그분의 일을 최근 인류 역사 가운데에 진행시키신 것이다. 세계는 아직 많은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고 있지만, 현상으로 나타나는 성령의 권능에 관하여 이렇게 완벽한 현상적, 신학적, 성서적인 성령의 가르침을 받지 못하고 있다(요14:26). 반드시, 우리가 말씀 전함에 그 말씀이 살아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증거 함에는, 현상이 따라야 하고(아들), 그 현상을 증거 하는 성경의 근거가 있어야 하며(아버지), 이 현상과 성경을 설명해주는 신학이 있어야 한다(성령). 축사는 영적 전투의 현장이다. 내가 적을 이기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 폭포수와 같이 흐르는 마귀의 거대한 세상조직 가운데 내가 가만있다는 것은, 그 떨어지는 물과 함께 떨어져 내려가 멸망하는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마귀가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엡2:2;요일5:19). 내가 여기서 떠내려가지 않으려고 용을 쓴다 한들 폭포수와 같이 흐르는 물을 어찌 역류해서 올라갈 수 있겠는가? 그 떨어져 흐르는 물 가운데 나는 가만있으면 편하나, 그것이 내 영혼이 망하는 길임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히12:1-14). 내가 흐르는 물을 역류해서 올라가는 것이 영적 승리인데, 우리는 마귀의 거대한 세상 조직을 역류해서 올라갈 수가 없다. 하나님의 힘이 아니면 그 흐르는 물을 역류해서 올라갈 수가 없는 것이다(롬8:1-4;요일4:4;고후4:7). 당면한 환난이 혈과 육에 대한 공격이 아니라 영적실제에 대한 공격임을 바로 인식해야 한다. 그런데, 전 세계 사람들은 현상이 일어나는 데도 그 현상을 성서적으로, 신학적으로 설명해서 가르쳐 주지 못하고, 그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방황하고 있다. 이 축사의 이론은 반드시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어야 하는 일이고, 아직 무지 가운데 잠자고 있는 이 세계 사람들에게 이것을 가르쳐야 하는 사명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다. 축사를 현상적, 신학적, 성서적으로 설명해 주어서 내 안에서 어둠의 실체가 드러나는, 축사의 이론을 내 안에 있는 세 인격 존재 가운데, 어둠의 인격, 즉 귀신이, 빛의 인격 즉, 성령에 의해서, 내 의지의 움직임에 따라 드러나는 현상을 설명하여, 우리의 신앙이 관념이 아닌 실제임을 경험케 해주어, 하나님의 이름에 영광 돌리는 일이 바로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인 것이다(고후4장).

우리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만을 쫓아서 영계의 일을 알아 나가야 하는 것인데, 신앙생활은 경험만을 쫓는 것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 그 분을 쫓는 것이다. 그 분은 영이시므로 육체의 감각이나 눈으로, 보고 느끼려고 하는것 자체가 잘못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영의 세계를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는데, 축사는 우리의 육체와 혼으로 보여지지 않고, 감각으로 느껴지지 않는 그 영의 실체를 우리의 육안으로 보는 것으로서, 내 육체 가운데에 나타나는 어두움의 실체를 보고 하나님의 현실성을 경험하게 됨으로, 축사는 우리가 영적 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무척 중요한 일이다. 어두움의 세력과의 싸움에서 문제의 핵심은 그의 정체를 드러나게 하라는 것인데, 귀신은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실존이나, 반드시 사람이 육체 안에 들어 있을 때만 자기의 정체를 드러낸다. 귀신은 자기 정체를 부정하는 것을 무기로 삼고, 모든 인간의 육체에 파고들면서 공격한다. 그러므로 모든 육체를 가진 자들은 귀신의 공격 대상이 된다. 귀신의 활동은 휴식이 없다. 밤과 낮의 구분이 없다. 육체가 있는 곳이면 막 침투해 들어온다. 이처럼 우리가 이런 악한 자들로부터 어느 순간에 피해를 받을는지 모른다. 오늘날 처음 귀신을 경험하게 된 자는 자기 안에서 일어난 영적 현상에 대해서 연구하고 분석하는 일을 하려고 하나, 귀신은 연구하는 대상이 아니고 쫓는 대상이다. 믿지 않는 자와 믿는 자의 육체에 귀신이 침투하는 것은 동일하나, 그것을 박멸하고 저주하고 추방할 수 있는 권리가 믿는 자에게는 있으나 믿지 않는 자에게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영적 생활은 우리의 육체의 경험 이전에 우리의 믿음이 우선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보이는 것을 쫓아가다가는 신비주의로 빠지게 되고, 결국 마귀와 귀신에 의해 우리의 영혼이 망하게 된다.

축사란, 영의 힘으로 육을 지배하고 있는 악의 세력을 물리치는 것인데, 축사는 내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서, 모든 영적인 일은 이 인격으로 이루어진다. 귀신이라는 존재는 인격이다. 오늘날 축사의 문제점을 해결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의 육체 가운데에서 역사하는 귀신의 존재만 보고, 우리의 인격 가운데 역사하는 귀신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내 안에서 마귀를 멸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영계 가운데에서 마귀와 귀신을 분리 시키셨던 것처럼, 내 안에서도 마귀와 귀신을 분리해서 볼 줄 알아야 한다. 성령께서는 내 안에서 귀신과 마귀의 두 존재도 분리해서 볼 수 있게 해주시는데, 즉 로마서1장28절부터 32절에는 내 안에 마귀와 귀신을 정확하게 분리하여 말씀해 주시고 계신다.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며 더러운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하는 줄 알면서도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고 하는 것은 바로 마귀가 하는 일이요, 그 마음 안에서 나오는 모든 더러움 즉, 불의, 추악, 탐욕, 등은 바로 귀신의 인격인 것이다. 우리의 인격 가운데에서 마귀가 넣어주는 생각을 우리의 의지로 붙들어서 그것을 인격화한 것이 마귀이고, 귀신은 우리의 감정 가운데에서 나오는 여러 가지 독을 말하는데, 즉 우리의 인격 가운데에 형성된 자아가 마귀라면, 귀신은 우리의 감정 안에서 역사하는 여러가지 더러움을 말한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모든 문제의 원인이 귀신임을 알고 나면, 문제 해결에 급급한 나머지 믿음 키울 생각은 하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지 귀신만 쫓으려고 안간힘을 쓰나, 그것은 마귀의 궤계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신 뜻은 마귀를 멸하러 오신 것이고, 성령은 내 안에서 마귀를 멸하신 주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오셨는데, 우리 안에서 귀신이 몇 번 나갔다고 해서 내 안에서 마귀의 일이 멸해진 줄 알면 큰 착각이다. 축사는 영의 실체를 육신의 눈으로 보고 경험하므로 관념적 믿음에서 현실적 믿음이 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지만, 귀신은 마귀가 부리는 종에 불과하고, 귀신은 내 안에서 마귀가 멸해짐으로 저절로 나가게 되는 것으로서, 꼭 현상으로 나타나야지만 귀신이 나가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상대 할 자는 귀신이 아닌 마귀이다. 현상으로 나타나는 것은 귀신만 드러남으로 우리 안에 귀신의 존재만 보고 그 귀신을 쫓는 데에만 급급하나, 우리는 그 뒤에서 조종하는 근본 세력인 마귀의 존재를 내 안에서 발견 해내지 않으면 안된다. 왜냐하면 내 안에서 마귀가 멸해질 때만이 귀신은 온전히 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마귀는 귀신의 집과 같고 그 집이 허물어 질 때만이 내 안에 있는 귀신은 온전히 나가게 되는 것이므로, 마귀가 멸해질 때만이 축사는 온전히 이루어질 수 있다. 귀신은 내 옛사람 가운데에 즉, 죄의 몸 가운데에 존재하는 것이므로, 내가 죽고 성령이 나를 지배하심으로 내 안에 마귀의 일이 멸해지고, 마귀의 일이 멸해짐에 따라 귀신은 저절로 나가게 된다(롬6:4-14;엡4:17-32;골3:1-10;고후5;1-5). 이 모든 일의 배후에는 성령과 마귀, 두 영적 존재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약4:4-10). 즉 우리가 우리의 의지로 불신앙을 택하여 가는 배후에는 마귀가 있고(요8:42-47;유17-19), 믿음을 택하여 나가는 배후에는 성령께서 역사하고 계신 것이다(요14:16-18;엡5:1-21;갈5:16-26). 따라서 내 안에서 귀신이 온전히 나가기 위해서는 마귀가 멸해져야 하고, 마귀가 멸해지기 위해서는 성령께서 우리의 인격을 지배하셔야 하는데, 이것은 오직 신념과 신앙의 두 믿음으로만 이루어진다.

축사는 신념에 의한 축사와 신앙에 의한 축사로 나뉘어 지는데 반드시 신념에 의한 축사를 거친 다음에 신앙에 의한 축사가 이루어진다. 예수를 영접함으로 예수이름이 내 안에 들어와 이 영광이 나의 혼 가운데에 비춰짐으로 신념에 의한 축사가 이루어지고, 또한 이 영광이 내 혼을 뚫고 지배함에 따라(고후3:16-18) 내 안에 마귀가 멸해짐으로써 또한 신앙에 의한 축사가 이루어지게 되는 것으로서, 그것은 오직 성령에 의해서만이 가능하다. 신앙에 의해서만 마귀가 드러남으로 마귀의 집을 허무는 신앙에 의한 축사는 내가 죽고 성령이 나를 지배할 때 이루어지는 것이다.

내 그릇 안에 성령의 힘을 끌어들여 하는 것이 신념에 의한 축사로서, 신념이 강한 자는 축사도 처음에는 내 그릇 안에서, 내 안에 있는 믿음으로 잘한다. 세상 가운데에서도 신념이 강한 자는, 귀신의 힘을 이용하여 초능력을 발휘하기도 하듯이, 내 의지가 귀신에 의해 지배받지 않으므로 이성에 의하여 귀신이 잘 분리되지는 않으나, 자기 믿음으로 자기 그릇 안에서의 축사는 잘 이루어진다. 그러나 신념이 약한 자는 귀신의 인격 앞에 자신의 의지를 놓고 자포자기해 버리므로 내 의지를 귀신에게 빼앗기게 되어 귀신이 분리는 잘되나, 절제하지도 못하고 귀신의 인격이 내 인격을 지배하여 내 이성과는 판이하게 나를 끌고 다니게 되므로 축사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벧후2:12-22;갈5:16-26;롬1:28-32). 이와 같이 마귀로부터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신념이 필요하나(골3:1-10), 내 그릇 안에서의 믿음 이상으로는 축사가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신념이란 결국 자기 그릇 안에서 자기 영혼이 죽어가는 것인데(갈3:2-5), 오늘날까지의 축사의 한계가 모든 인간이 자기 그릇을 주장함으로, 마귀가 멸해지지 못하여, 아버지의 뜻이 내 안에서 이루어지지 못하고, 오늘날 완전한 축사가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임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갈4:8-11). 내 영이 자라므로 내 안에 있는 마귀의 일이 멸해지는 것이 신앙에 의한 축사인데, 이것은 결국 모든 것이 성령으로만 가능한 것이지, 인간으로서는 할 수 없는 것이므로(딛3:3-7), 여기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성령 앞에서 자기를 주장하지 않고 철저하게 가난한 심령으로 다가가야 하는 것이다(벧전5:5-10).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내 안에 예수 이름을 주시고 성령을 우리에게 주셨다(요14:16-18;17:12).

우리가 마귀의 세상 조직을 이기고 영적 승리를 할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 할 때만이 이루어지는 것임을 명심하여야만 하는데, 이를 위해서 우리는 기초가 튼튼해야 한다. 그 기초란, 예수 아니면 나는 아무것도 못한다는, 그 분만 붙드는 가난한 심령인 것이다(요15:5). 적을 이길 수 있는 힘은 우리의 믿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영에서 나온다. 내가 가진 믿음, 신념은 적을 이길 수가 없다(요일4:4;엡6:10-13). 왜냐하면 내가 마귀이고, 내가 적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세상을 압도할 만한 능력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우리를 능하게 하시고 힘 있게 하시는 그리스도를 온전히 신뢰해야 한다(신념). 만약 우리가 그리스도로부터 주어지는 능력을 힘입기만(신앙) 한다면, 세상은 감히 우리를 이기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