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들이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주셨다고 바울이 말한 섬기는 은사들이다. 오직 12제자들만 사도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사도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신약에 23명이 있다. \'사도\' 라는 그리스어인 아포스톨로스(apostolos)는 \'보냄 받은 자\' 라는 뜻이다.
바울 당사자조차도 내가 땅에서 사역을 시작할 때부터 함께 있지 않았기 때문에, 원래 12사도에 속하지는 않는다. 유다는 원래 12사도 중의 하나였지만, 배신 후에 나가 목매달아 자살했고, 맛디아가 그를 대신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맛디야가 13번째 사도가 된 것이다.
“두 사도 바나바와 바울이...”(행 14:14). 이 구절에 따르면, 바나바는 바울과 마찬가지로 사도였고, 그들은 14번째와 15번째 사도가 되었다는 것을 주목하거라.
갈라디아서에서 우리는 바울이 “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 그 후 삼 년 만에 내가 게바를 방문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그와 함께 십오 일을 머무는 동안 주의 형제 야고보 외에 다른 사도들을 보지 못하였노라.”(갈 1:17-19)라고 한 것을 볼 수 있다.
여기서 바울은 야고보가 12사도 중의 하나가 아니었는데도, 그를 사도라고 부르고 있다. 야고보는 예루살렘 교회의 우두머리로 보내심을 받았다. 그는 \'보냄 받은 자\'였기 때문에 바울은 그를 사도라고 불렀다. 이것으로 야고보가 성경에서 언급된 16번째 사도이다.
로마서에서 바울은 “내 친척이요 나와 함께 갇혔던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에게 문안하라. 그들은 사도에게 존중히 여겨지고 또한 나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롬 16:7)라고 했다. 그러므로 안드로니고와 유니아는 17번째와 18번째 사도이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에 쓴 첫 번째 편지 서두에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라고 시작했다. 그리고 2장에서는 그들 세 사람을 그리스도의 사도라고 했다(6절). 그러므로 바울을 제외한 뒤의 두 사람이 19번째와 20번째 사도가 된다.
고린도후서 8장 23절에서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두 명의 형제들이 사도라고 불리고 있으니, 이제 그 수가 22명이다.
빌립보서에서 바울이 이르기를 “그러나 에바브로디도를 너희에게 보내는 것이 필요한 줄로 생각하노니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나의 쓸 것을 돕는 자라.”(빌립보서 2:25)라고 했다. 여기서 사용된 \'사자(messenger)\'라는 그리스어는 다른 곳에서는 \'사도’라고 번역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것으로 23명의 사도들이 신약에 언급되어 있는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한 개인이 교회의 \'보냄 받은 자\'가 되거나 사자가 될 수 있고 정당하게 교회의 사도로 불릴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스미스 위글스워스는 믿음의 사도라 불립니다. 그리스도께서 누군가를 부르셔서 보내신다면, 그는 그리스도의 사도입니다.
에베소서 4장 11절의 섬기는 은사 목록 중에 선교사에 대한 언급은 없습니다.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사실, \'선교사\' 라는 단어는 신약 성경에 있지도 않습니다. 선교사의 사역은 사도의 부르심에 포함됩니다. 예를 들어, 만일 어떤 사람이 성령님의 부르심으로 아프리카의 선교사가 되었다면, 선교 협회에서 그를 보낼 수도 있지만, 만약 보내신 분이 정말 성령님이시라면, 그는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사도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환상 가운데 내게 지적하셨듯이, 바울이나 바나바도 처음부터 사도로 시작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도행전 13:1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이 다섯 사람 모두 선지자나 교사였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여기서 사울과 바나바는 사도가 아닌 선지자나 교사로 언급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바울이 선지자요 교사였던 것을 알고 있으며, 바나바는 교사였다고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나중에 사도가 된 것입니다.
사도행전 13:2-4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다른 말로 하자면, 바울과 바나바는 \'보냄 받은 자\'들 또는 사도들이었습니다. 사도행전의 그 다음 장에는 \"두 사도 바나바와 바울이...\"(행 14:14)라고 되어 있습니다. 바나바는 바울이 그러했던 것처럼, 이방사람들에게 \'보냄 받은 자\' 또는 사도였기 때문에 사도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러한 것들을 환상 가운데 내게 가르치신 후에, 사도와 선지자의 사역은 여전히 오늘날도 해당되는 것이라고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어떤 이들은 사도로, 어떤 이들은 선지자로, 어떤 이들은 전도자로, 어떤 이들은 목사로, 어떤 이들은 교사로 주셨다고 하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말할 것입니다. \"그래요, 하지만 이런 사역들은 지금은 없어져버렸어요. 오늘날 남아있는 사역들은 교사와 목사와 전도자뿐이에요. 오늘날 사도나 선지자는 없어요.\" 그러나 바울은 그런 구별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주목하기 바랍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어떤 이들은 사도로, 어떤 이들은 선지자로, 어떤 이들은 전도자로, 어떤 이들은 목사로, 어떤 이들은 교사로, 그리스도의 몸을 섬기는 일과 세우는 일에 부르셨다고 했습니다(엡 4:11-12). 모든 성도가 이미 온전케 되었습니까? 오늘날도 계속되고 있는 사역이 있긴 있습니까?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이 아직도 필요합니까? 그렇다면, 이 모든 사역들과 섬기는 은사들은 지금도 역사해야 합니다. 그것들은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케네스 해긴의 “나는 환상을 믿습니다.” 중에서 발췌)
<어떤 사람들은 오늘날에도 사도가 있는지 궁금히 여깁니다. 어느 누구도, 심지어 바울까지도 최초의 열두 사도와 같은 의미에서의 사도가 될 수는 없습니다. “어린 양의 열두 사도”(계 21:14)만 있을 뿐입니다.
사도의 자격에 대해서는 사도행전 1장에 열거되어 있는데, 열두 제자가 유다를 대신하기 위해 한 명의 사도를 뽑았을 때입니다. 21-22절에서 보듯이 어린 양의 열두 사도 중의 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공생애 3년 반 동안 예수님과 사도들을 동행했어야 했습니다. (바울은 그들과 동행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원래의 열두 사도는 “보내심을 받은 자들”로서 그리스도의 사역과 역사와 삶과 죽음, 매장과 부활, 그리고 승천을 목격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다른 어떤 사도들이나 사역자들이 설 수 없는 위치에 서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나바, 바울 그리고 다른 여러 사람들이 사도라 칭함을 받았다는 의미에서는 오늘날에도 사도는 존재합니다.
에베소서 4장 11절에 열거된 것을 보면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이렇게 열거된 직분 중에서 어느 한두 직분을 빼버리셨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잠시 동안만 그 직분을 주셨던 것이라고 성경에 기록되었어야만 합니다.
모든 사역의 은사들은 성도들을 온전하게 하고 사역을 수행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해서 주어진 것입니다. 사도들도 이러한 은사를 받은 자들입니다. 감사하게도 사도의 직책은 오늘날에도 존재합니다!>
(케네스 해긴의 “기름부음의 이해” 중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