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에 우리 교회에서 열린 특정 대표자 집회 중에, 순복음 교회 계통의 교구 감독이 오전 예배 설교를 하면서 그 상황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그 목사의 이름을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았어도 모두 그가 말하는 목사가 누군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교구 감독은 그 목사를 맹렬하게 비난했습니다.
그 날 오전 예배에 참석치 못한 많은 사람들이 그 오전 예배에 관해 제게 물었습니다.
“해긴 목사님,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목사가 다른 목사에 관해 그렇게 얘기할 권하이 있는 건가요?”
“저의 의견은 교구 감독님의 견해와 같습니다.”
그 일이 있고 2주가 지났을 즈음, 저는 잠자리에 들려고 불을 끄고 침대에 무릎을 꿇고 앉아 기도를 막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방에 불빛이 환하게 들어왔습니다! 성경에는 바울이 정오의 해보다도 밝은 빛을 본 것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사도행전 9:3, 22:6) 이 빛은 정말 그것과 같이 밝았을 것입니다. 방 전체가 전깃불을 켰을 때보다도 환했고, 이로 인해 방에 있는 모든 가구들이 하나하나 자세히 보였습니다.
그 밝은 빛 속에 저는 이 같은 소리를 들었습니다.
“네가 무엇이길래 나의 종을 비난하느냐?”
주님이셨습니다.
“주님, 저는 주의 종을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주님께서 누구의 일에 대해 말씀하고 계시는지 그 즉시 알 수가 있었습니다. 주님은 문제를 일으킨 그 목사에 대해 말씀하시고 계시는 것이었습니다. 주님께서 내게 다시 질문하셨습니다.
“네가 무엇이길래 나의 종을 비난하느냐?”
저 역시 반복하여 대답했습니다.
“주님, 저는 절대 주님의 종을 비난한 적이 없습니다.”
그랬더니 주님께서는 세 번째 제게 물으셨습니다.
“네가 무엇이길래 나의 종을 비난하느냐?”
저 역시 세 번째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님, 저는 주님의 종을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이렇게 말하지 않았느냐,” 그리고는 제가 이 목회자에 대해 했던 말을 정확히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육적인 면이 고개를 들고 자리를 차지하려 듭니다. 아담이 문제를 일으켰을 때, 그는 자기의 여자에게 잘못을 전가했습니다. 그리고 그게 뜻대로 되지 않자 이렇게 말합니다.
“이 여자가 내게 선악과를 주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죄를 책임지지 않을 수만 있다면, 그 누구에게라도 잘못을 전가했을 것입니다. 우리의 육신은 언제나 다른 사람에게 잘못을 전가하려 합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주님, 저는 단지 교구 감독이 이야기 했던 것에 동조했을 뿐인데요.”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교구 감독이 이야기 한 것을 다른 사람에게 그대로 전했을 때 너는 이미 네가 네 입으로 그 말을 한 것과 똑같은 일을 한 것이다. 네가 무엇이길래 나의 종을 비난하느냐?”
주님께서 이 같이 말씀하셨을 때, 저는 저를 지탱하고 있던 무언가가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그 목회자가 옳지 못한 일을 한 건 사실인 것 같은데요. 제 말은, 그의 잘못이 아니라는 말씀이신가요?”
주님께서는 그의 잘못 여부에 대해서는 내게 아무 답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그가 누구의 종이냐? 나의 종이냐, 너의 종이냐?”
“그는 주님께 속한 종입니다. 제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그가 나의 종이라면, 나는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울 것이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말씀대로 이루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를 일으켜 세우셨고, 후에 그는 그 지역에서 가장 뛰어난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매우 존경을 받는 목사가 되었습니다. 단 한 번 넘어졌던 그 과거의 죄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도대체 우리가 무엇이길래 주님의 종들을 비난할 수 있단 말입니까! 많은 경우 우리가 다른 이들에 대해 말하는 나쁜 것들이 우리의 건강을 해치고 있는 요인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