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를 비난하는 자2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한 번 더 있습니다.

 아내와 나는 텍사스 주의 동쪽에 있는 순복음 교회에서 집회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집회를 마치고 우리는 교단에서 주최하는 다른 집회에 참석해야 했습니다.

 그 지역에 있는 한 목사가 어떤 문제를 겪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교회를 떠나야만 하는 지경에 놓여 있는 것 같았습니다. 누군가에게 제가 물었습니다.

 “그가 무슨 잘못을 했습니까?”

 그에게서 이 목회자가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를 들었습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을 텐데요.”

 그 일에 대해 아무 생각 없이 한 말이었습니다. 나와 아내는 그 집회를 마치고 다른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떠났습니다.

 보통 저의 건강은 완벽합니다. 항상 기분이 좋습니다.

 그런데 다음 집회에 참석했을 때 저는 신체적으로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고, 밤에는 잠도 잘 수 없었습니다. 보통 저는 베개에 머리를 대자마자 잠이 듭니다.

 저는 해야만 하는 모든 올바른 믿음의 고백들을 했고, 치유를 받았다고 믿으려 했으나 몸이 계속 좋지 않았습니다. 셋째 날 밤이 되었는데도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님, 만약 내일도 제 몸 상태가 이렇다면 내일 집회는 참석할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몸의 상태가 한계에 다다랐어요.”

 저는 침대에서 일어나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닥터 릴리안 요만스가 했던 말을 떠올렸습니다. 그녀는 약물중독 경험이 있는 의사였습니다. 그것 때문에 굉장히 아팠었고, 죽음의 문턱 직전까지 갔던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를 구원하셨고, 죽음으로부터 지켜주셨습니다. 그 뒤 그녀는 평생 하나님의 치유하심에 대해 말씀을 전하는데 일생을 바쳤습니다.

 닥터 요만스가 말하기를, “기도를 했음에도 응답을 받지 못한다면, 나는 변화를 해야 합니다. 왜냐구요?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수 있도록 나의 무언가가 바뀌어야 함을 알기 때문이지요. 변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절대 불변하시니까요.”

 닥터 요만스의 글을 읽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저는 변화를 시작하려 했습니다. 분명 성경적으로 올바른 기도와 해야 할 모든 말들을 했음에도 아직 아무런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결국 저는 주님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님, 도대체 주님과 교감할 수가 없으니, 무엇이 잘못된 건가요?”

 주님께서는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형제 누구누구에 대해서 이런저런 말들을 하지 않았느냐?” 그러시더니 그 목회자의 이름을 말씀하셨습니다.

 “주님 제가 한 말은 이게 다입니다.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을 텐데요.’”

 주님께서는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그가 어떤 상황에 놓여 있었는지 네가 알고 있었느냐?”

 “아니요, 주님.”

 “네가 그와 같은 상황에 처해 있었다면, 너는 그 같이 잘 감당해 내지 못했을 것이다.”

 저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습니다.

 “오, 하나님, 저를 용서해 주세요. 나의 하나님, 저를 제발 용서해 주세요. 주님께 회개합니다.”

 용서를 구하자마자 저는 그 즉시 나음을 입었습니다. 치유되기를 기다릴 필요도 없이 그 즉시 완전한 나음을 입었습니다. 저는 침대에 누워 며칠 만에 처음으로 깊이 잠들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기에 성경적 원리가 있습니다. 다른 형제를 비난하거나 판단할 수 없음은 바로 그의 행동의 원인이 된 모든 상황과 압력을 우리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 상황에 처해 있었다면 그보다 더 잘 해내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판단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도 판단 받지 않을 것이라”(마태목음 7:1)

 이것이 바로 우리가 다른 사람들 판단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주님께서 우리를 판단하실 것입니다.


 어떤 성도는 늘 다른 사람을 비난하고, 소문을 퍼뜨립니다. 예를 들자면, 언젠가 제게 이 같은 말을 했었던 사람과 같이 말입니다.

 “목사님, 소문 들으셨어요? 그 목사가 여비서와 바람이 났었다고 하네요.”

 “그랬어요? 하지만 그 분과 그 분의 교회를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것 좀 보세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나요?”

 “음, 한 12년 쯤 됐어요.”

 “그렇다면, 왜 그 일을 지금 언급하시는 겁니까!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이는 그를 곡해하는 사탄의 거짓말이에요. 그분은 이미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바로 섰습니다. 그 죄는 예수님의 피로써 씻겨 나갔습니다. 그건 이미 망각의 바다에 던져진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 잊으셨으니, 사랑으로 행하시기 원한다면 형제님도 잊으셔야 합니다. 다니면서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서로 뜨겁게 사랑하라. 이는 사랑이 허다한 죄들을 덮기 때문이니라”(베드로전서 4:8). 또한 잠언 10:12을 보면, “미움은 다움을 일으키나 사랑은 모든 죄들을 덮어 주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죄를 폭로하며 다니지 않습니다. 사랑은 죄를 덮습니다. 저는 12년간 목회를 했습니다. 우리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에 대해 속속들이 잘 알고 있으나, 이것을 누구에게 말한 적이 없습니다. 제 아내에게조차 말입니다. 그 이유는 그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칠까 염려가 되어서입니다.

 만약 제가 입을 열어 잘못된 행동을 하는 이들에 대해 말해 버린다면, 이를 들은 사람은 볼 때마다 그 사람의 잘못을 떠올리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사탄은 이것을 그들의 뇌리에 오래도록 남겨두려 할 것입니다.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고 하지 않았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