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지금 보아야할 일 본문: 요한복음 9:25 말씀: 권 보라 목사
종말에 살고있는 성도들은 신앙이 오래됐던지 이제 막 믿기를 시작했던지를 막론하고 오직 한 가지를 꼭 알아야 하고 증거해야할 것 이있다
“대답하되 그가 죄인인지 내가 알지 못하나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소경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이니이다” (요 9:25)
과거에 우리들은 모두가 다 영적으로 소경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성령께서 도와주셔서 영안이 밝아졌다 예수께서 나면서 소경된 자의 눈을 보게 하신 뒤에 곧 바로 자신을 그에게 계시 하실때 영적인 죄의 흑암으로 부터 고침받는 치료를 해 주셨다
“예수께서 저희가 그 사람을 쫓아냈다 하는 말을 들으셨더니 그를 만나사 가라사대 네가 인자를 믿느냐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그가 누구시오니이까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그를 보았거니와 지금 너와 말하는 자가 그이니라 가로되 주여 내가 믿나이다 하고 절하는지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소경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요 9:35-39)
우리들은 이 사건에서 귀중한 영적 성장의 폐턴을 배우게 된다 새 성도는 예수님께서 그에게 베푸신 일에 크게 감사하고 예배하는 것으로 그의 신앙이 자라게 된다 즉 신앙 생활에서 감사는 예배를 낳게하고 그리고 주님 께서 자신을 더 깊은 영적인 차원에서 계시하심으로 주님을 더욱 사랑하고 교제하며 그의 오심을 사모하며 섬기게 해 주신다. 휴거의 신앙을 갖고 있는 성도들은 자신이 엄청난 주님의 계시를 체험 한 축복받은 성도들임을 절대로 잊어서는 않된다. 이미 체험하고 받은 은혜릏 늘 감사하고 주님을 예배하면 더 깊은 영적인 차원에서 주님은 우리들에게 자신을 계시하신다.
눈먼 소경이 고백 할때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소경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이니이다”라고 증거 했듯이 마지막 시대를 살고있는 우리들이 한 가지 아는 것은 주님께서 오고 계심을 확실히 보는 그것이다. 우리들 모두가 다 위로부터 높고 고상한 부르심을 받아 썩지 않는 기업을 누리게 되기 때문이다.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케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행 26:18) 영적으로 눈이 뜨인 성도들이 힘써야할 일이있다
첫째: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자
말세를 사는 우리들이 향해야 할 목표적인 면에서 좇아가야할 한 가지가 있다. 바울은 그의 생애 가운데 오직 “한 일”을 좇아간 것을 이렇게 권면하고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빌 3:13-14) 지금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도록 부르시고있다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이가 잠깐 고난을 받은 너희를 친히 온전케 하시며 굳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케 하시리라” (벧전 5:10)
이 한가지를 사모하는 자들은 이제 영광의 날에 그와같이 변화받게 될것이다.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요일 3:1-3)
둘째: 모든 선한 일이 하나도 틀리지 아니하고 다 응하게 됨을 믿자
“보라 나는 오늘날 온 세상이 가는 길로 가려니와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대하여 말씀하신 모든 선한 일이 하나도 틀리지 아니하고 다 너희에게 응하여 그 중에 하나도 어김이 없음을 너희 모든 사람의 마음과 뜻에 아는 바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신 모든 선한 일이 너희에게 임한 것 같이 여호와께서 모든 불길한 일도 너희에게 임하게 하사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이 아름다운 땅에서 너희를 멸절하기까지 하실 것이라” (수 23:14-15)
말세 오늘날 신앙의 써클에서 모든 것이 긍정적인 것만 택하고 부정적인 것은 피해야 된다는 가르침이 성행하고 있지만 성경의 예언은 선한 일, 불길한 일 모두가 다 예언되고 있다. 영계의 세계는 천국도 있지만 지옥도 있지 않는가? 먼저 선한 일인 휴거가 있고 난 뒤에는 이 땅에 불길한 일 즉 무서운 심판이 있음을 경고해야 할 필요성이 절실하게 요청되고 있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자요 신랑이시지만 동시에 심판자이시다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계 19:11)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데 없더라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계 20:11-15)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 (요 12:48)
셋째: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자
우리들의 최대 관심사는“주님이 과연 언제 오시나?”하는 절박한 질문에 있으며 “때”에 관한 것을 생각할 때만다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여왔다 그런데 이와같은 시간적인 관점에서 한가지 기억해야 할 말씀이 있다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벧후 3:8)
베드로는 모세가 선언한 말씀을 마음속에 두고 이것을 잊지 말라고 경고했다
“주의 목전에는 천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 같을 뿐임이니이다” (시 90:4)
우리는 지금 매우 중요하고도 확실한 하나님의 시간과 계획속에 살고있다. 영적 세계에서 때는 매우 중요하다. 주님의 오심의 때는 언제나 절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 역사의 시간 밖에 존재하고 계심을 알아야 한다 말세에 우리들이 주님의 재림을 앞두고 하나님을 잘 알고 그의 뜻을 깨닫는 일은 때를 아는 이상으로 치명적으로 중요하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 지혜를 자랑치 말라 용사는 그 용맹을 자랑치 말라 부자는 그 부함을 자랑치 말라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땅에 행하는 자인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렘 9:23-24)
시간적인 측면에서 하나님께는 어제나 오늘이나 미래가 다 같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의 구속의 은총으로 구원 받을때 우리들의 현재, 과거 그리고 미래의 죄가 다 용서함 받게 된다. 시간은 우주의 물체중 일부에 속하는(Time is part of the physical universe) 피조물이나 하나님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창조자 이시므로 시간적인 피조물의 일부가 아니시다.
또한 우주는 하나님의 연장도 아니요 한 부분도 아니다. 그러나 동방의 신비주의자들은 우주가 하나님의 일부인 것으로 믿고 가르치고있다 우리는 지금 영원한 영광을 기다리는 영적인 사람들이다 그런데 영원 세계속에서 시간의 뜻은 무의미하다 창세기1장 1절에서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라고 말씀하셨는데 과거 천지 창조 전에 시간이 존재하것도 아니고 미래에 새 하늘과 새 땅 후에 시간이 존재하지도 않을 것이다. 이같이 영원 세계에서는 시간이 의미가 별 가치가 없다
이같은 시간적인 관점하에 베드로가 “사랑하는 자 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고했다. 그리고 이 말씀의 뜻은 마지막 때에 살고있는 우리들이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가지”를 잊지말고 이해하는 것이 믿음의 기초가 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매일 저녁에 하루를 보내고 아침에 새 하루를 마지할 때마다 주님의 오심에 대하여 늘 깨어서 준비하는 길 밖에 없다.
넷째: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을 구하자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 곧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나로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 (시 27:4)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 인가! 다윗은 이 고백을 통해서 주님과의 긴밀한 관계를 밝히고 있다 그는 영적 아름다움이 육의 눈으로 보는 아름다움 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것을 말하고 있다
참으로 어렵고 답답한 환경 가운데서도 주님을 공중에서 만나보고 싶은 한 가지 일을 앙망하고 기다리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는 영적인 눈이 뜨이지 않고는 볼수가 없다
인생길에 평탄한 행로는 없다. 내가 가야 할 길을 타인이 대신 가 줄 수도 없다. 들판을 지나 강을 건너고 험한 산 준령을 넘어 캄캄한 터널을 통과하고 비바람치는 폭풍우에 몸이 흠뻑 젖는가 하면 또한 눈보라치는 산악을 지나면서 뼈속까지 추위에 떨고 또 햇볕 쨍쨍한 들판에 나오고. 이와같은 것이 우리 인생에 역사이다.
그러나 이 인생길에 하나님의 백성은 항상 다른 동반자가 있다. 그분이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님은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면서 우리에게 빛이 되시고 생명이 되시고 구원자가 되시고 보좌가 되셔서 인생여정을 감당케 해주신다.
우리들이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때 인생의 역경에서 낙심하지 않고 실망치 않는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고후 4:7-10)
다섯째: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지 말고 한가지만이라도 족하자
이 말씀은 예수께서 바쁜 마르다에게 주시는 말씀에서 발견된다
“저희가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촌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아래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가로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지 아니하시나이까 저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 주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그러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눅 10:38-42)
말세에 엄청난 계시를 은사로 받은 성도들과 종들은 “혹 한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하신 주님의 말씀을 기억해야한다. 우리들은 여러가지를 다 잘 할 수없는 나약한 존재들이다. 이것도 잘 하고 저것도 잘하여 교회를 크게 성장시키고 명성을 떨쳐가며 목회를 하고 싶지만 그런 은사가 없기에 “혹 한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의 말씀을 받들어 환난 전에 휴거 받게 되는 복스러운 소망의 “좋은 편을 택하여” 받은 것을 빼앗기지 말하야 되겠다는 믿음을 갖게된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말세를 살면서 영적으로 소경되지말고 예수님을 옳바로 보아서 믿음의 결단을 내리자
첫째: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자 둘째: 모든 선한 일이 하나도 틀리지 아니하고 다 응하게 됨을 믿자 셋째: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자 넷째: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을 구하자 다섯째: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지 말고 한가지 만이라도 족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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