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흥회

부흥회

부흥회

초대교회에서 오순절(五旬節)에 성령이 강림한 것에서 이러한 집회가 시작되었다. 당시에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하루에 3천 명이 중생(重生:거듭남)을 체험하였고 사도 바울로는 성령의 인도로 여러 나라에 전도를 하고 수많은 교회를 세웠다고 한다. 16세기에는 종교개혁으로 복음을 기초로 하여 교회들이 세워졌고 제후들과 고위성직자들이 순수한 신앙으로 개종하여 세계적인 부흥을 일으켰다. 1740년에는 미국의 J.에드워즈를 중심으로 ‘위대한 깨우침’을 통한 신앙부흥운동이 전개되었다.

초기 한국개신교 교회에서는 1903년부터 신앙부흥운동이 시작되었고 1904년 장로교와 감리교의 연합사경회, 평양 장대헌교회에서 길선주(吉善宙) 목사가 시작한 새벽기도회, 1907년 평양에서 열린 W.N.블레어목사의 부흥회 등으로 계속되었다. 1940년대에는 교회가 쇠퇴하여 부흥운동이 침체되었다. 광복 이후 교회가 남북으로 나뉘자 이성봉, 박재봉 목사 등이 교회의 화합을 위하여 부흥운동을 벌였다. 그 뒤로 이어진 빌리 그레이엄목사의 부흥집회, 김활란의 교파를 초월한 한국복음화운동, 순복음교회의 부흥회 등은 한국 부흥운동의 큰 힘이 되었다. 1971년에는 부흥사들이 중심이 된 한국기독교부흥회가 결성되었고 1974년에는 대학생선교회김준곤 목사가 주관한 ‘엑스폴로 74’대회가, 1980년에는 세계복음화대성회가 성황리에 열렸다. 지금도 많은 개신교교회에서는 부흥회를 열어 교회의 성장을 이루려 하나, 사이비 종파의 부흥사들과 소수 부흥사들이 물의를 빚어 여론화되기도 하였다.

신앙부흥운동

1726년경 네덜란드개혁파 목사 T.J.프렐링호이센이 뉴저지에서 전도를 시작하면서 일어난 운동으로 대각성운동이라고도 한다. 이 무렵 회중파목사인 W.테넌트는 로그칼리지(지금의 프린스턴대학교)를 세우고 목사양성 교육을 실시하였으며 졸업생들은 아들인 G.테넌트를 중심으로 전도활동에 주력하였다. 매사추세츠에서는 회중파교회목사였던 J.에드워즈가 오직 믿음으로만 의로움을 얻는다고 설교하며 많은 신자를 모았다.

이 운동은 유럽과 영국에도 많은 영향을 끼쳐 독일과 스칸디나비아에서는 루터교가 되살아났고, J.웨슬리가 주도한 영국의 부흥운동으로 결국 감리교가 생겨났다. 그 설교자인 G.화이트필드는 1739년 미국으로 건너가 G.테넌트, J.에드워즈를 도와 각지에서 전도설교를 함으로써 교파를 초월하여 아메리카전역에 신앙의 활기를 새롭게 불어넣었다. 이로 인해 각 교파의 연대감이 깊어져 식민주 각 지역의 이해를 촉진시켰고 이는 미국독립혁명에서 식민주가 단결하여 승리를 얻는 한 요인이 되었다.

신앙부흥운동을 통하여 교회가 발전하였고 영혼 구원을 목회의 가장 으뜸으로 삼게 되었으며 절제, 여성해방, 해외선교 등 여러 분야에서 도덕적이고 박애적인 개혁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또 많은 대학과 신학교가 세워졌으며 선교협회가 조직되었다. 이 운동은 18세기 후반에 들면서 사그라들었으나 뉴잉글랜드신학이 형성되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