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개의 강

네개의 강

\"네개의 강 \"  

 

창세기 에덴동산에는 네 개의 강이 있습니다.

여기서 네 개의 강은 동,서,남,북으로 흐르는 강을 의미합니다.

마치 복음서가 네 권으로 기록되어 땅 끝까지 전파되라고 한것같이

강물이 땅끝까지 흘러가 모든 생물들이 그 물을 마시고 살라고

4개의 강이 에덴동산에 설치 된것입니다.
강물이 흘러서 땅을 적시면 나무나 고기나 모든 동물들이 먹고 마시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 강물은 그저 마시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바로 중심으로 연결되는 통로 즉 길입니다.

모든 생물들이 그 강물을 마시며 바로 에덴 동산으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과 연결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이야기에 의하면 아담은 에덴동산에서 쫒겨난 후 강물만 보면

강가에 앉아 옛 추방된 에덴을 생각하며 울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저 물만 따라 거슬러 올라가면 에덴에 돌아 갈 수 있다고 생각하였답니다.
성도여러분 바로 여기서 바로 예수님의 몇 말씀이 우리에게 떠오릅니다.

[요 4장][10]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이 본문에 보면 예수님이 물을 마셨다는 말씀이 없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이 생수의 근원인것을 나타낸것입니다.

(요 7:37-38) 『[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여기서도 생수를 줄 수 있는 분 즉 예수님이 하나님 자신임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시 이 말씀은 초막절 절기 끝에 하신 말씀인데 당시 유대인들은 초막절에는 실로암 연못에서 물을 떠다 성전에 붓는 의식이 있었습니다.

바로 성령의 강림을 기원하는 의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전통을 알고 계시는 예수님이 역시 알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바로 생수 즉 성령이 당신에게서 나온다는 것을 말입니다.

또 성경에는 우물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장면이 있습니다.

수가성 여인도 그랬고, 아브라함의 첩 하갈도 브엘세바

즉 일곱우물이라는 우물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 외에도 에스겔 47장에는 성전 문지방에서 생수가 나오고,

요계시록 22장에서는 성전의 보좌에서 생수가 흘러나옵니다.

바로 에덴동산의 강물과 영적으로 상통하는 말씀들입니다.

그런데 창세기에는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셨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여기서 동방이라고 하는 히브리어는 두가지가 있습니다.

‘미즈라하’와 ‘캐딤’이라는 단어입니다.

미즈라하는 해뜨는 쪽 즉 동방을 의미하고, ‘케딤’은 제일 앞 쪽 근원 ‘하나’를

의미합니다.

창세기 본문에서는 바로 케딤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였습니다.

그래서 에덴 동산을 단순히 동방이 아닌 우주의 근원이신 한 분 하나님안에

창조했다는 뜻이 되는 것입니다.

에덴이라는 단어도 ‘환희’를 의미하는 뜻으로 우리 인간의 삶이 기쁨과

즐거움이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아뭏튼 문제는 에덴 동산이 과연 우리의 삶속에 회복이 되었느냐는 것입니다.

네 개의 강물이 나의 가정이나, 교회나  삶속에 흘러 오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에덴의 강물을 마시고 계십니까?

그 강물은 바로 성령을 의미합니다.
요한복음 7장에서 생수는 바로 성령을 가리켜 말한다고 하였습니다.

오늘날 교회에 진정으로 필요한것이 바로 성령충만입니다.

에스겔 47장에 보면 생수가 성전의 문지방에서 흘러 나와 강으로 바다로 흘러가자

그 강물이 흐르는 곳에는 나무들이 자라 열매를 맺고, 바닷물이 소성하게 되어

물고기가 살게되고, 바닷가에는 어부들이 설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또 그 나무들의 열매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재료가 되리라고 말씀합니다.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이웃들에게 달콤한 과일과 같은 존재가 되고 치료하는

약 재료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요즈음 우리 한국 기독교인들의 신앙의 현주소는 어디입니까?

크리스찬이라고 알려진 몇몇의 연예인들이 자살했습니다.

이 사실을 말하며 뜻있는 기독교인들이 한탄하고 있습니다.

정녕 무엇이 문제입니까?

저는 한국 교회의 영성의 빈곤과 부재 때문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 옛날의  사막교부들은 사막과 동굴 속에서 오직 주님과 교재하며 평생을

보냈습니다.

바로 영적인 만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영적으로 만족하면 육을 초월하게 됩니다.

세상을 초월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날 한국교회내의 총회장 쟁탈전이나 세속화는 사람들로 하여금

기독교의 근본적인 신앙에 회의를 느끼게 합니다.
과연 저들은 무엇을 믿는 사람들이냐는 것입니다.

영적인 하늘의 맛을 못보니 세상것만 추구할수밖에 없는것입니다.
영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생수를 마셔야 하는 것입니다.  

강가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성령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