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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신앙을 회복할 때\"
성경을 영적으로 본다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우리가 단순히 성경을 문자적으로나 역사적으로 풀어버리면 혹은 어떤 성경속의
상징적 의미를 모르고 그 나라의 언어로만 번역하면 중요한 성경의 의미를
놓치게 됩니다. 예컨대, 창 6:15절 말씀인 방주의 규격이 우리나라 성경과 킹 제임스 번역에는 [15] 이것이 네가 만들 방주의 규격이니, 방주의 길이가 삼백 큐빗이요 너비가
오십 큐빗이며, 높이가 삼십 큐빗이니라.』 라고 이스라엘 단위로 그대로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영어성경인 NIV에는 [The ark is to be 450 feet long, 75 feet wide and 45 feet high.]라고 규빗이 피트로 환산되어 있는데 이렇게 번역하면 히브리인들이
숫자 속에 담아놓은 중요한 의미를 우리가 놓치게 되는 것입니다. ‘300’이라는 숫자는 기드온의 삼백용사와, 삼손이 잡은 여우 숫자가 300이요,
마리아의 옥합이 300데나리온으로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선택과 축복과 승리의 의미를 가진 숫자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 숫자를 자기들이 이해하기 쉽게 피트나 미터로 바꾸어서
그 ‘300’이라는 수를 파괴해버리면 그 의미의 전달에 큰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에는 족보가 14대씩 3번으로 나누어져 있음을 볼 수 있는데
여기에도 구속사적인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마태복음과 족보의 시작에서 (마 1: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고 말씀함으로서 아브라함과 함께 구속사에서 다윗의 위치가 얼마나
중요한것인가를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마태복음의 족보가 나오는 예수님의 조상들 가운데는 많은 왕들이 있었겠지만
오직 1:6절에 다윗에게만 ‘왕’의 칭호를 붙여 기록하였습니다.
바로 메시야는 다윗의 후손으로 오셔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한 것입니다. 바로 이렇게 볼 때 14대씩 세 번 나누어 족보를 기록한 의미를 알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3은 다윗의 히브리어 단어의 세 글자로 되어있는 것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14는 바로 ‘다윗’의 게마트리아 즉 글자에 담긴 숫자의 의미인것입니다. 그러니까 저자인 마태는 마태복음을 기록하며 유대인들을 위해 기록하였는데
유대인들이 알고 있었던 모든 지식을 적용하여 바로 예수님이 다윗의 후손으로
오시는 메시야라는 것을 증명하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요즈음 어떤 사람들이 이런 성경의 비밀을 모르고 성경이 틀렸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인 것입니다.
제가 부족하지만 바로 성경의 이러한 영적인 혹은 상징적인 의미들을 가르치는
세미나를 열기도 합니다.
이제 우리가 성지순례도 영적으로 하고, 성경공부도 영적으로 해야 하는
시대가 왔다고 봅니다.
너무나 이성적이고 과학적인 접근을 하면 성경의 중요한 의미를 파괴하거나
놓치게 되는 것입니다. 요함복음 1장의 (요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의 ‘말씀’도 ‘로고스’라고 번역되었다고
그것이 헬라어의 \'이성\'이라는 뜻을가진 ‘로고스’ 사상이라고 보면 큰일 납니다.
요한복음의 저자가 요한이든 아니든 요한복음을 보면 유대인에 의해 기록된것은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헬라어로 번역하기 위해 ‘로고스’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이지
헬라의 철학적인 개념을 적용한 것은 아닙니다.
창세기 1장에서 창조는 바로 하나님의 입에서나오는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 유대인들에 있어 말씀은 하나님과 같은 존재로 인식되어 있습니다.
말은 그 사람의 입에서 나오지만 마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은 그 사람의 속입니다.
또 말을 통해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누며 자신을 표시합니다.
그래서 말은 다른 사람 을 이끌어 오거나 연결되는 통로요 도구입니다.
바로 예수님이 그러한 역할을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아버지 안에 계셨고 인간의 육신을 입으시고 인간에게 오신
것입니다.
단순히 우주적인 이성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창조자 하나님 자신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라고 요한은 기록한 것입니다. 그 외에도 요한복음은 전부 구약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구약을 모르면 요한복음은 풀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감히 구약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까? 성도 여러분 영적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부족한 제가 부흥회를 인도할 때 영적으로 설교하면 성도들이 그렇게 좋아하시고
은혜를 많이 받는 것을 봅니다.
오늘날 교회가 이제 제발 성경으로 돌아가고 기독교의 영성을 회복해야 할 때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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