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디옥교회 탄생

안디옥 교회 탄생(행11:19-30)


안디옥 교회는 최초로 탄생한 이방 교회인 동시에 이방 전도의 본부로서 선교 역사상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또한 크리스챤이란 명칭도 안디옥 교회에서 처음으로 불리워지게 되었습니다. 안디옥 교회가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으며, 또 어떤 점에서 하나님의 역사에 귀하게 쓰임 받을 수 있었습니까?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 모임이 안디옥 교회와 같이 하나님께서 쓰실만한 교회로 성장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 예루살렘교회에 일어난 환난으로 인해 사방으로 흩어졌던 신자들 가운데 사마리아 지역 을 지나 아주 멀리까지 여행하면서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들도 누 구에게만 복음을 전하였습니까? (19절)

유대인에게만

스데반의 순교는 세계선교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먼저 핍박자 사울의 회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뿐만 아니라 스데반의 순교로 인해 사방으로 흩으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함으로 복음의 불길이 사방에 퍼지게 되었습니다.
집사 빌립이 사마리아에 가서 복음을 전함으로 사마리아가 복음화 되었으며, 또 빌립이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복음을 전함으로 아프리카에까지 복음의 씨가 떨어졌습니다.
더 나아가 환란으로 인해 흩으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복음을 전함으로 안디옥 교회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스데반의 순교를 세계선교에 귀하게 쓰셨습니다.
그래서 [터툴리안]은 \"순교자의 피는 교회 성장의 씨앗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환난으로 흩어진 사람들 - 장래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 염려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부활신앙으로 충만했습니다. 그들은 부활신앙으로 모든 슬픔과 염려와 두려움을 극복하고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들은 살아있는 메신저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해안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며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에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는 위대한 복음의 전진이었습니다.
여기서 안디옥은 수리아 안디옥으로서 수리아 주의 수도였습니다. 요세푸스에 의하면 수리아 안디옥은 로마제국 내에서 로마와 알렉산드리아 다음으로 가는 도시로서 \'동방의 로마\', \'동방의 여왕\'이라고 불리웠다고 합니다. 바로 이곳에 이방 선교의 본부가 세워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복음의 불이 꺼지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확신시키는 축복이 되었다.
그러나 처음에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깊이 깨닫지 못하고 복음을 전하는데 유다이즘을 뛰어넘지 못하고 동족인 유대인에게만 전했습니다.


2. 그 중에 몇 사람이 헬라인에게도 복음을 전하였는데 어떤 역사가 일어났습니까? (20-21 절) 이것을 통하여 우리가 어떤 중요한 교훈을 배울 수 있습니까?
그 중에서 사고가 비교적 개방적인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용기를 내어 헬라인들에게도 주 예수를 전파했습니다.
이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들이 믿음으로 헬라인들에게 복음을 전했을 때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심으로 수많은 사람이 복음을 영접하고 주께 돌아오는 큰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몇 가지 중요한 진리를 배웁니다.

첫째로, 믿음의 용기입니다.
그들이 헬라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내적, 외적 장애물을 극복해야 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선민의 자부심으로 인해 종교적인 우월감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방인들을 개, 돼지와 같이 여기며 멸시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유다이즘이라고 부릅니다. 이 유다이즘은 무의식 세계에 깊이 박혀 있어서 좀처럼 깰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사도 베드로도 아무리 배가 고파도 부정한 음식은 결코 먹을 수 없다고 무의식적으로 반응했습니다. 유다이즘은 이방 선교를 하는데 보이지 않는 큰 장벽이었습니다.
또한 헬라인들은 지성을 최고의 덕성으로 삼고 이성을 중시하며 논리적이고 정확한 지식을 추구하는 합리적인 사고방법의 소유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당시 최고의 지성을 자랑하는 교만한 자들이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기가 힘든 자들이었습니다. 십자가의 복음은 그들에게 미련하게 여겨졌습니다(고전1:22,23). 그러나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은 복음의 능력을 믿었습니다. 그들은 헬라인들에게도 복음이 절실히 필요한 것을 깨닫고 파멸해 가는 그들의 영혼을 불쌍히 여기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들에게는 믿음의 용기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단순하게 믿음의 용기를 가진 자를 귀하게 쓰십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누구든지 믿음의 용기를 가진 자를 귀하게 쓰십니다.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들은 사도나 직분을 가진 지도자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이름조차 나오지 않는 무명의 평범한 평신도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믿음으로 헬라인들에게 복음을 전했을 때 하나님은 그들의 믿음의 용기를 크게 축복하사 안디옥 교회가 탄생케 하셨습니다. 이를 볼 때 하나님은 누구든지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를 귀하게 쓰시는 분이심을 배웁니다.

셋째로, 주의 손이 함께 할 때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의 손은 하나님의 능력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복음 역사를 섬기기 위해 비상한 노력을 기울이지만 잘 안될 때가 많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역사는 우리의 노력으로 안 되고 근본적으로 주의 손이 함께 하셔야만 됨을 말해 줍니다. 주의 손이 함께 할 때 따지기 좋아하고 인본주의적인 교만한 헬라인들이 눈물로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주의 능력의 손이 함께 할 때 불가능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역사를 섬기고자 할 때 주의 능력의 손이 함께 하시도록 간절히 기도해야 됨을 배웁니다.


3. 예루살렘교회가 안디옥에서 일어난 이 놀라운 일들을 듣고 어떻게 하였습니까?(22절)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냈다. / 그들은 권위주의에 빠지지 않고 유다이즘을 뛰어 넘어 성령의 역사에 있는 곳에 성경선생을 파송함으로써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지원했습니다.



4. 바나바가 안디옥의 지도자가 되면서 교회에 어떤 역사가 있었습니까?(23-24절) 바나바 는 어떤 지도자였습니까?
그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도행전4:37절에 보면 그는 또 헌신적인 사람 이였음을 알 수 있다.
그는 그곳에 일어난 하나님의 역사로 인해 심히 기뻐하고 모든 사람에게 굳은 마음으로 주께 붙어 있으라고 권면했습니다.

교회지도자에게 필요한 리더십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영적인 리더십 - 성령과 믿음이 충만
둘째, 인격적인 리더십 - 착한 사람
셋째, 기능적 리더십 - 어떤 일을 잘 해낼 수 있는 능력

바나바는 현재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성을 맺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예수님께 뿌리를 내림으로 개인 신앙을 갖도록 도왔습니다.
바나바는 사업적인 욕심을 가지고 그들을 푸시하지 않았습니다.
또 그들을 자기 사람들로 만들기 위해 애쓰지 않았습니다.
바나바는 그들이 참 포도나무 되신 예수님과 깊은 관계성을 맺음으로써 개인신앙을 갖도록 도왔습니다. 바나바는 실로 영적인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한 사람의 영향력은 큽니다. 영적 지도자 한 사람으로 인해 안디옥 교회는 영적 기초를 든든히 놓게 되고 크게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5. 교회가 기하급수적으로 부흥하였을 때 바나바는 무엇을 하였습니까?(25-26절)

대개 수적으로 불어나게 되면 이에 말려들어 붕붕 뜨기 쉽습니다. 그러나 바나바는 바로 이때 무엇을 했습니까? 25,26a절을 보십시오.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여기서 우리는 바나바로부터 몇 가지 배울 점이 있습니다.

첫째로, 바나바는 영웅주의를 극복했습니다.
대개 하나님의 역사를 섬길 때 함께 동역하기보다 혼자서 함으로써 영광 받고자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양을 칠 때도 내 혼자서 돌봄으로써 영광 받고자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영웅주의라고 합니다. 이 영웅주의 때문에 우리는 동역을 잘 못합니다. 또한 자기보다 훌륭한 사람을 역사에 끌어들이지 못합니다. 자기보다 훌륭한 사람이 있으면 자신이 그 그늘에 가리기 때문에 하나님의 역사에 도움이 되는 줄 알지만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바나바는 믿음으로 이런 영웅주의를 극복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역사를 위해서 또 양들에게 유익이 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는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기보다 훌륭한 바울을 역사의 무대에 끌어들임으로써 빛을 보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에 있어서 영웅주의는 큰 원수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쓰실만한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면 반드시 영웅주의를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둘째로, 바나바는 역사가 부흥할 때 성경공부를 열심히 했습니다.
부흥하면 들뜨기 쉽습니다. 그러나 바나바는 바로 이때 성경공부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유능한 성경선생인 사울을 데리고 와서 일 년간 열심히 가르쳤습니다. 이로써 그들의 신앙이 말씀에 깊이 뿌리를 내리게 되고 무리 중심에서 제자 중심으로 바뀌었습니다. 더 나아가 13:1절에 보면 유능한 성경 선생들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성경공부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개인이나 모임의 성장은 성경공부와 비례합니다. 영적으로 성장하기를 원한다면 성경공부를 열심히 해야 합니다. 말씀을 열심히 공부할 때 우리의 믿음은 건전하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았다.
그리스도인이란 \'예수께 속한 사람이다. 예수 닮은 사람이다.
작은 예수다.\' 하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일 년 동안의 집중적인 훈련이 이 사람들을 변하게 만들고, 그들의 삶 속에서 예수 닮은 모습이 나타나게 만들고 예수의 향기를 풍기는 교회가 되게 했습니다.

오늘 우리의 모습에서 세상 사람들은 무엇을 볼 수 있을까요?
오늘 우리 교회를 돌아보면서 세상 사람들이 우리 한분 한분을 볼 때 예수 닮은 사람이다. 라는 평가를 받기 바랍니다.


셋째는, 동역의 중요성입니다.
바나바는 사울과 함께 둘이서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이때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동역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혼자서 할 수 없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역사는 베드로와 요한의 동역의 역사였고, 안디옥 교회의 역사는 바나바와 바울의 동역의 역사였습니다. 마태복음 18:19절은 말합니다.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또한 전도서 4:12절은 말합니다.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동역의 역사를 이루려면 한쪽이 죽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자기가 죽고 싶지 않고 상대방이 죽고 동역을 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에 동역을 이루기가 쉽지 않습니다. 우리가 영웅주의를 극복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서로 동역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서 이루고자 하시는 크신 역사를 이룰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6. 안디옥 교회가 선지자들이 예언한 대로 흉년이 들었을 때 무엇을 하였습니까?(28-30절)

이 교회는 은혜를 베풀 줄 아는 교회입니다(27∼30절).
예루살렘 교회가 곤경에 처하게 되자 안디옥 교회는 받은 은혜를 갚기로 하였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로부터 지도자의 파송을 받고 그를 통해서 영적으로 훈련받는 은혜를 입고 이제는 받은 것을 돌려 주게 되었습니다.
먼저 마음으로 작정을 하고 이것을 실행을 하였습니다.
1년밖에 안된 교회였지만 받은 은혜를 진실로 감사하고 갚을 줄 아는 교회였습니다.
오늘날 세상 사람들은 참된 은혜를 갈구합니다. 정말 참된 은혜를 베풀 수 있는 사람은 그리스도인밖에 없습니다. 가장 은혜스러워야 할 교회에 은혜대신 율법만이 난무하지는 않는가?
가장 사랑스러워야할 곳에 사랑 대신에 비판만 난무하지 않는가?
우리는 주님께로부터 큰 은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제 베풀 줄 아는 교회가 되어야합니다.
그들은 주 예수께서 친히 하신 말씀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다.\"(행20:35)고 하신 말씀을 실천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복음정신과 선교정신이 충만한 안디옥 교회를 크게 축복하사 세계선교의 발전소로 귀하게 쓰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