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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를 바꾸면 인생도 바뀐다 잠18:20-21
주성령교회 / 설교자:권 다니엘 목사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말미암아 배부르게 되나니 곧 그의 입술에서 나온 것으로 말미암아 만족하게 되느니라.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
언어는 씨앗입니다.
우리가 평소에 하는 말은 씨앗과 같습니다. 우리 입에서 나오는 말이 씨앗이 되어 그 열매를 먹고 사는 것이 우리 인간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 사실을 반복적으로 여러 번이나 확인시켜 줍니다. (잠 18:20,21)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말미암아 배부르게 되나니 곧 그의 입술에서 나온 것으로 말미암아 만족하게 되느니라.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여기서 강조된 것이 바로 입술의 열매입니다. 씨앗이 나무를 결정하고 열매를 결정하듯이 말의 결과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평소에 하는 말에 대하여 조금 더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씨앗 속에 미래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좋은 미래를 원한다면 좋은 언어를 사용해야 합니다. 만족스럽고 복된 삶의 열매를 원한다면 좋은 언어의 씨앗을 심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풍성한 삶을 원한다면 그 말의 습관도 그에 적합해야 합니다.
그리고 씨앗 속에 성향도 담겨 있습니다. 씨앗은 그 종류대로 열매를 맺습니다. 도토리 씨앗은 도토리를, 사과 씨앗은 사과를, 수박 씨앗은 수박 열매를 맺습니다. 씨앗은 자기 속에 있는 본래적인 성향을 따라 움직입니다.
그래서 선한 말을 하면 선한 열매를 맺고 악한 말을 하면 악한 열매를 맺습니다. 축복을 해 주면 축복의 열매가 맺히고 감사하면 감사의 열매가 맺힙니다.
◘심은 종류대로 거두는 것이 씨앗의 법칙입니다. 심은 양대로 거두는 것이 씨앗의 법칙입니다. 또한 심은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거두는 것이 씨앗의 법칙입니다. 예를 들어 벼 한 알을 심으면 140알에서 180알을 거둘 수 있다고 합니다. 감자 한 쪽이면 60개의 감자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의 능력을 절실하게 깨달아야 합니다.
언어는 능력입니다.
말이 곧 능력인 것은 원래 말의 뿌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왔기 때문입니다. (요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그래서 말은 곧 능력이며 권세입니다.
말과 혀의 권세가 얼마나 큰지 생명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고 했습니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
◘그래서 우리 인생은 표현하는 대로 됩니다. 마치 씨앗이 땅에 떨어지는 순간부터 성장을 시작하는 것처럼 말은 표현되는 순간부터 그 말에 따른 창조의 일을 시작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과 만나는 순간에 새 역사가 창조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순간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었습니다. 제자들도 예수님의 말씀을 만났을 때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었습니다. 우리도 로고스, 케리그마 중 레마를 만날 때 치료와 변화가 일어납니다.
◘인간은 말씀에 의하여 만들어지는 존재입니다. 달리 말씀을 드리면 말, 즉 언어를 통해서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언어를 존재의 집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책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책을 읽는 순간 언어를 만나게 되고 그리고 그 언어는 우리의 존재 자체를 변화사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람은 책을 만들지만 책이 만든 사람이 더 많다”고 합니다. 특히 성경이 우리에게 끼치는 영향은 매우 큽니다. 여러 세기동안 베스트 셀러가 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특히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말을 잘하는 사람보다 더욱 지혜로운 사람은 말을 경청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경청은 보이지 않는 언어요, 표현되지 않는 언어입니다. 그러면서도 가장 강력한 언어이기도 합니다.
올리버 헨델 홈즈는 “말하는 것은 지식의 영역이고 듣는 것은 지혜의 특권이다”라고 했습니다. 특히 예수님은 말씀을 경청하는 마리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눅 10:42)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이 좋은 편이란 말씀을 듣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말하는 자 보다 말을 듣는 자가 더 지혜롭습니다.
언어는 치유력이 있습니다.
(시 107:20) 『그가 그의 말씀을 보내어 그들을 고치시고 위험한 지경에서 건지시는도다』말씀 속에 치유력이 있었던 것은 마태복음 8장의 백부장 이야기에 나옵니다. 그의 하인이 병들었을 때 예수님은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고 하셨는데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낫겠삽나이다”(8:8) 그리고 예수님은 그의 믿음대로 말씀으로 하인의 병을 고쳐줍니다.
◘그리고 이러한 말씀을 해 주시기도 했습니다. (마 8:16)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치시니』
@.메시아를 작곡한 헨델은 한 때 유명한 작곡가였으나 매우 심각한 침체기가 있었습니다. 그는 사람들로부터 퇴물이라는 소리까지 들을 때 심각한 우울증에 걸려 스트레스 때문에 손가락 몇 개가 마비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 고통의 나날을 지내던 어느 날 성경을 읽다가 이사야 40장1절을 읽고 온 몸이 전율로 느끼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그는 드디어 이사야 40장1절 말씀을 위한 음악을 작곡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곡이 바로 <메시야>라는 대작이었습니다. 1743년 3월23일 런던의 한 극장에서 직접 지휘를 하는 첫 연주회를 가졌는데 수많은 관중들이 모였고 그 자리에는 영국의 국왕 킹 조지 2세도 참석하였습니다.
그런데 막바지에 이르러 할렐루야 합창이 나올 때 킹 조지 2세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니까 관객들이 하나 둘 모두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후에 이것이 계기가 되어 “할렐루야! 영원히 주 다스리시네”라는 음악이 울려 퍼질 때 마다 청중들은 그의 음악에 대한 경의와 주님에 대한 경외감의 표시로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말씀에는 치유력이 있습니다. 말씀은 그를 다시 회복시켰고 불후의 명작을 만들어 내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약 중의 약은 말씀입니다. (잠 12:18) 『칼로 찌름 같이 함부로 말하는 자가 있거니와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과 같으니라』
그래서 상처를 치유하는 것은 바로 좋은 말에 있습니다. 사랑의 언어, 격려의 언어, 위로하고 축복하는 언어입니다. 이 때 좋은 언어는 다리와 같습니다. 나쁜 언어는 이미 세워 놓은 다리를 무너트리는 것과 같지만 좋은 언어는 무너진 다리를 다시 세우고 연결시켜 줍니다. 그래서 언어를 잘 구사하면 인생이 바뀝니다.
그러나 언어가 병이 들면 사람이 병이 들고 인생도 핍절해 집니다. 우리는 자신이 한 말 때문에 얽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잠 6:2)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인생의 많은 문제가 언어 때문에 발생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부정한 입술도 치유를 받아야 합니다. (사 6:6,7) 『때에 그 스랍 중의 하나가 부젓가락으로 제단에서 집은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그것을 내 입술에 대며 이르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이사야는 사역 이전에 입술의 치료를 먼저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입이 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 했습니다.
언어에 능력을 불어 넣는 원리를 배워야 합니다.
언어에 능력을 불어 넣으려면 혼자 있는 것 보다 어떤 것과 함께 관련짓는 것이 더 낳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관련을 맺으라, 그리하면 기적이 나타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말도 어떤 적합한 것과 만나 배합이 될 때 능력이 나타납니다.
1.말과 믿음이 연합하면 능력이 나타납니다. : (히 4:2)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그러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도 믿음이 없으면 그 언어는 힘이 없습니다. 확신이 있는 말과 확신이 없는 말은 받아들이는 느낌이 다릅니다. (막 11:2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2.말과 사랑의 감정이 연합하면 능력이 나타납니다. : 감정이 없는 말은 듣는 이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습니다. 노래를 하거나 연주를 할 때에도 그 노래 가사에 담긴, 곡조에 담긴 감정을 드러낼 때 노래가 힘이 있고 감동을 줍니다. 그래서 언어에도 사랑의 감동이 들어가야 생명과 능력이 넘치게 됩니다.
@.완전하신 나의 주, 얼마나 좋은 찬양입니까?
3.말과 진실이 연합하면 능력이 나타납니다. : 인간은 영물이기 때문에 거짓과 진실을 감지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거짓보다는 진실이 담긴 말이 더 힘이 있고 그 결과가 있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4.말과 기도가 연합하면 능력이 나타납니다. : (요 15: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우리의 언어는 기도를 통해서 더 강해집니다. 그야말로 불을 토하는 것과 같은 말이 어디에서 나옵니까? 바로 기도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말에 잘 반응을 해야 풍성한 삶을 살게 됩니다.
요즘 인터넷에 올라 온 악성 댓글 때문에 속이 상해 자살을 하는 연예인들이 생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독한 말을 악한 자의 화전이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억울하고 고통스런 말을 들었을 때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탄원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승리하였습니다.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경험했습니다. 우리는 상처받는 말을 듣기 쉬운 세상에서 실족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잘 반응을 해야 살고, 또한 성공합니다.
언어를 바꾸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인생을 바꾸려면 먼저 언어습관을 바꿔야 합니다. 결과를 바꾸려고 하지 말고 원인을 바꿔야 합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믿음의 척도를 그 사람의 말을 통하여 파악하셨습니다. 막9장에 귀신들린 아들을 데리고 온 아버지가 예수님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내 아들을 좀 고쳐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때 예수님은 (막 9:23)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잘못된 언어습관을 바꿔주신 교훈입니다. 그래서 인생을 바꾸려면 말의 습관을 바꿔야 합니다.
◘우리의 언어에는 “가나안의 언어”가 있고 “광야의 언어”가 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의 언어를 사용하여 가나안에 들어갔지만 나머지 백성들은 광야의 언어인 불평과 불만 때문에 광야에서 살다가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우리도 세상적인 말만 하면 세상과 함께 망하지만 하나님 나라의 말을 많이 하면 실제적 하나님 나라는 물론 이 땅에서도 하나님 나라 같은 삶을 살게 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부터 하늘의 언어를 많이 구사해야 하나님 나라에 가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의 창고에 좋은 언어를 많이 담아두어야만 합니다. 이것이 우리 인생을 풍성하게 사는 지혜입니다. 지혜롭게 사십시오. 지혜는 올바른 선택에 있습니다. 언어를 바꾸면 인생이 달라집니다. 새해는 여러분의 인생이 달라지는 역전의 해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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