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조건(요 14:1-13, 권다니엘목사)

인간은 누구나 다 행복해지기를 원합니다. 행복을 찾기 위해서 동분서주 노력하지만 웬일인지 행복은 인간을 점점 더 멀리 떠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과학문명, 물질문명이 인간을 편리하게 해주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더 육체적이고 쾌락적으로 빠져들게 하면서 형이상학적인 영적이요 정신적인 문제를 소홀히 하게 하고 인간으로 하여금 동물처럼 타락하게 만들고 병들게 만들었습니다. 여러분, 인간에게 참 행복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우리 예수님께서 행복의 조건을 말씀하셨습니다. 행복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이 만들어내는 인간의 생산물이 아니라 바로 우리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행복의 조건을 세 가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1.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1절)
여러분, 우리가 불행한 삶을 살아가는 이유는 마음에 근심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마치 근심을 하기 위해서 태어난 것처럼 우리는 대화 속에서 근심하는 말이 멀어질 때가 별로 없습니다. 그저 근심으로 우리의 대화가 계속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여러분, 근심을 가진 한 그는 결코 행복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근심하지 말라고 말씁하십니다.

사도바울은 (고후7:10)에서 두 가지 근심을 말합니다.

1)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몇 가지 특징이 있는데, 첫째는 후회하게 된다 그랬습니다. 후회하게 됩니다. 다음은 후회하다 보면 회개하게 된다 그랬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내가 하나님 뜻대로 바로 살고 복종해야 되겠는데 이래서야 되겠나 마음에 근심이 들어갑니다. 후회가 들어갑니다. \'내가 예수를 오래 믿었으면 내 말도 고쳐야 하고 행동도 고쳐야 하는데 내가 부정적인 말, 남을 공격하는 말, 또 업신 여기는 말 많이 했는데 이것 좀 고쳐야 되지 않겠나? 내가 원망, 불평 많이 했는데 좀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되지 않겠나? 내가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도 예배에 소홀히 해서 걸핏하면 예배 결석하고 주일 대예배 한 번으로 만족했는데 이제 좀 주일 저녁 예배도 드리고 주일성수도 철저히 하고 십일조도 좀 온전하게 드리는 그런 참 신자가 되어야 되지 않겠나?\' 그런 마음에 근심이 있어야 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결론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근심하는 그 삶은 결국 구원을 받게 되어집니다.

2)세상근심입니다.
사도바울은 잘라 말합니다. 세상 근심은 사망을 부른다고 그랬습니다.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 근심의 뿌리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불안입니다. 사람들 마음 속에는 불안이 있기 때문에 늘 거기서부터 근심이 솟아오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딪히는 이 세상에 여러 가지 문제들 때문에 마음에 불안이 생기게 되고 그것이 근심이라고 하는 형태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파스칼은 말하기를 \"근심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 자체가 바로 불안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라고 그랬습니다. 인간 자체가 불안한 존재라 사르트르는 말하기를 \"자유와 선택에서 인간에게 불안이 온다.\" 라고 또 키에르케고르는 말하기를 \"모든 인간의 불안은 죄에서 비롯된다.\" 그랬습니다. 여러분, 어쨌든 이런 불안이 있을 때에 근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안을 우리가 먼저 추방하면 자연히 근심도 추방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근심하지 말라 그랬습니다. 근심하면 어떻게 되어집니까?

①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오실 수도 없고 우리가 갈 수도 없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상달되지도 않고 응답되기도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우리들이 근심에서 벗어날 때에 행복할 수가 있습니다. 근심을 하고 있는 한 하나님께서 역사하지 않습니다.
②환경을 사람보다 더 두려워하게 됩니다.
근심은 하나님보다 나를 더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당하는 여러가지 어려운 문제들은 사실 아무 것도 아닙니다. 왜 그런가 하면 당장은 어려워보여도 그것이 다 우리 아버지 손에 있기 때문에 그것은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근심보다도 우리가 난관을 더 두려워하게 됩니다. 그 사람은 불행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누가 근심에서 벗어나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가 하면 하나님만 두려워하는 그 사람, 사람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어려운 환경도 시련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하나님만 두려워하는 그 사람, 그 사람이 행복한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③신앙성장에 방해가 됩니다.
염려, 근심이라고 하는 것은 어디서부터 오는가 하면 바로 불안에서부터 오는 것입니다. 불안을 추방해야 되는데 이것은 어떻게 추방하는가. 하나님의 은혜로만이 추방할 수 있습니다. 근심이 많으면 많을수록 하나님과 점점점점 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근심이 없으면 없을수록 하나님과 점점 가까이 가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 이 자리에 여러분의 근심 걱정 다 쏟아놓으시고 하나님 안에서 행복한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하나님을 빋어라.(1절)
오늘 본문 1절을 보니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그랬습니다. 하나님을 굳게 의지하고 믿는 그 사람,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믿는다고 하지만 여러가지 염려, 불안, 좌절, 포기, 낙심 이것은 어디서부터 오는가 하면 이유를 불문하고 거두절미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의 부족입니다. 정말 우리가 하나님만 전적으로 의지한다면 그는 어떠한 경우에도 낙심 절망하지 않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 성도는 주님과 어떤 관계입니까?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 믿음은 어디서부터 오는가 하면 관계에서부터 오는 것입니다. 자, 봅시다. 부부간에 서로 사랑하고 믿는 믿음에 있어서는 어떤 관계보다 가장 돈독한 관계요, 가까운 관계입니다. 그 다음에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입니다. 부모와 자식이 서로 사랑하고 특별히 자녀를 부모가 사랑하기 때문에 그 자녀들을 더 믿고 의지하고 신뢰합니다. 또 그다음에 형제간의 사랑, 친구간의 사랑, 그런 방식으로 나가게 되겠지요. 관계가 끊어지면 서로 믿지 못합니다. 부부간에 그렇게 좋다가도 서로 문제가 생겨서 이혼을 할 때에는 원수 중에 원수가 됩니다. 믿지 못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우리가 믿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하면 하나님과 우리와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1)스승과 제자의 관계입니다.
여기 제자라는 헬라원어는 \'학자\'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오늘 우리가 선생되신 예수님께 배우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게 될 때에 그는 행복한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왜요? 말씀 속에 좋은 것이 있습니다. 말씀 속에 외로운 자에게 위로가 있습니다. 약한 자를 강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넘어진 자를 일으켜 줍니다. 문제가 있을 때에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입니다. 시련 가운데에서도 넉넉히 시련과 장애물을 헤쳐나갈 수 있는 지혜가 있습니다. 말씀 속에 온갖 좋은 것이 다 있기 때문에 선생님 되신 우리 예수님께 우리가 배우게 되면 우리는 행복할 수밖에는 없습니다.

2)목자와 양의 관계입니다.
목자는 요한복음을 보니 특별히 \"선한 목자\"라 그랬습니다. 양을 위해서 생명을 버리는 목자라 그랬습니다. 요한복음 10장을 보면 목자는 우리를 보호하는 목자요, 우리를 양육하는 목자입니다. 시편 23편을 보면 목자는 우리를 푸른 초장, 잔잔한 시냇가로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는 목자입니다.

3)신랑과 신부의 관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살아을 베푸시는 주체요, 우리는 사랑을 받는 자들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기록해 놓았는가 하면 바로 남편과 아내, 신랑과 신부의 관계로 표시해놓았습니다. 여러분, 이것은 좀더 가까운 단계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남편이 되셨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신부가 됩니다. 이것은 가장 가까운 관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부는 신랑에 의해서 그의 일생이 좌우되는 것입니다. 신랑이 올라가면 신부도 올라갑니다. 신랑이 과장이면 과장 신부, 국장이면 국장 신부, 사장이면 사장 신부, 그러니까 남편이 받는 대우를 똑같이 받습니다. 신랑 잘 만난 사람들 얼마나 자랑 많이 하는지 모릅니다. 여러분의 남편 예수님은 인간과 비교되지 않습니다. 우리 신부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언제라도 순결을 지켜야 됩니다. 그리고 신랑만을 바라보고 살아야 됩니다. 정결을 지켜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에 행복이 있습니다.

신랑 되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네 가지 중요한 사명을 다하셨습니다.
①우리를 선택하신 주님의 사랑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우리를 불러주시고 선택해 주셨습니다.
②우리를 위해서 헌신해 주셨습니다.
어떻게 했습니까? 이 땅위에 오셔서 생명보로 십자가에서 피와 땀과 진핵을 다 쏟아 죽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③우리를 다스려 성화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를 통치해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신부답게 정조를 지키며 깨끗하게 살게 해주셨습니다. 이것 신학적으로 성화라 그럽니다. 점점 예수님을 닮아가는 거룩한 삶, 경건한 삶을 살게 해주셨습니다.
④주님께서 재림하셔서 우리를 영화롭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생각하면 전 가슴이 뛰게 되고 세상의 불안, 걱정 물러가고 행복해질 수밖에는 없습니다.

4)포도나무와 가지의 관계입니다.
우리 주님과 우리와의 관계는 요한복음 15장을 보니 포도나무와 포도나무가지의 관계라 그랬습니다. 여러분, 신랑과 신부관계도 때로는 이혼 할 수도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보면 목자와 양의 관계도 서로 헤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나무 원초와 가지는 어떻게 됩니까? 떨어질 수가 없습니다. 떨어지면 죽는 것입니다. 이것은 완전히 하나된 주님이 내 안에 내가 주님 안에 거하는 주님과 동고동락하는 신학적인 의미라는 신비한 연합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명이 하나 된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5) 기초와 건물의 관계입니다.
더 나아가서 예수님은 기초요, 우리는 그 위에 건축한 건축물이라고 그랬습니다. 예수님을 우리 생활에 기초로 삼고 중심으로 삼는 그 사람,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3. 영원한 천국을 소망하며 살아가라.(2절)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3절에 보니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그랬습니다. 우리를 위해서 하늘에 가셔서 천국에 우리를 위해서 거할 집을 준비해 놓으시고 다시 와서 너희를 나 있는 곳에 있게 하리라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래서 (계21:5)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계5:13) 보면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그랬습니다. 이제 우리가 주님과 더불어 영원한 천국에 가서 주님을 영원히 찬송할 때가 온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우리 주님은 반드시 재림합니다.

①하나님께서 예정하셨기 때문입니다.
어떤 인간이 항거하거나 반대한다고 예수님 재림 안하는 것 아닙니다.
②성경에 예언했기 때문에 예수님 그 예언대로 재림하십니다.
1518번 예언을 하셨습니다. 예수님 초림의 예언도 했는데 그대로 오셨습니다. (사9:6) 보면 예수님이 마리아의 몸에 성육신에서 오신다고 했는데 그 예언대로 오셨습니다. (미5:2) 보면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탄생한다고 했는데 그대로 탄생하셨습니다. (호11:1) 보면 예수님이 애굽으로 피난 간다고 했는데 예수님께서 헤롯을 피해서 피난가셨습니다. (슥11:12~13) 보면 예수님께서 은 30에 팔렸다고 했는데 그 예언대로 되었고 이사야 53장에 있는대로 예수님이 고난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초림의 예언도 그대로 이루어졌다면 1518번의 예언한 재림의 예언은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이 세상살이가 힘들고 어려워도 때로는 좌절과 절망에 빠질 때가 많아도 때로는 이 세상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우리 마음을 사로잡아도 그러나 우리는 낙담과 절망의 자리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불행한 자리에서 행복을 따라 나와야 됩니다. 왜 그런가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염려와 근심을 내쫓아야 됩니다. 그리고 의지하는 중 하나님만 전적으로 의지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정립하고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를 묵상하고 말씀 속에 살아가서 특별히 우리 주님이 예비하신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믿고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고 소망하면서 이제부터 불행한 삶이 아니라 행복한 삶으로 나아가는 행복의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