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사는 묻어두지 말고 사용해야 합니다.
은사를 묻어두지 말고 잘 사용해야 더 예민하게 더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저에게 예언의 은사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1985년 대였습니다. 그러한 은사를 받고 부흥회를 인도하는 가운데 끊임없이 주님께서 저에게 말씀하시는 예언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책마다 그 말씀을 기록하였고 이러한 예언의 현상에 대하여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위에서 “예수 무당”이 되려고 하느냐? 라는 말을 하는 것을 듣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예언의 대하여 저만 알고 지나가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그러나 저는 예언의 사역이 얼마나 필요한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가장 귀한 사역이며 이러한 사역을 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점쟁이한테 몰려간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왜 사람들은 점쟁이한테 몰려갈까요? 그것은 무당과 점쟁이가 “개인”에게 관심을 가지고 개인에 관한 점괘를 말하여 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설교보다도 점은 매우 개인적이고 친밀하게 느껴지게 됩니다. 설교에서는 “우리들이”라는 말을 많이 쓰지만 점은 “너는, 당신은,...곧 이렇게 될 것이다”라고 개인에 대한 미래를 말해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개인적으로 말씀해 주시고 친밀하게 대화를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이러한 친교나 사귐에 대하여 무지하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21세기에 대언 사역, 예언 사역을 하지 않으면 불투명한 시대에 사는 사람들은 더 많이 점을 치고 무당을 불러 굿을 할 것입니다.
또한 무당이나 점쟁이가 말하여 주는 점괘는 우리를 얽매이게 하지만 예언과 대언은 우리를 풀어놓아 다니게 한다는 사실에 있어서 철저하게 다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만일 “너는 결혼해도 아기가 없을 것이다”라는 점괘를 받았다고 하면 그 사람은 스스로 아기를 못 낳는다는 암시에 걸려 아기를 낳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점이 우리의 삶을 노예로 만든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예언과 대언은 우리들이 얽매어 있던 것을 풀어주고 자유와 안식을 누리도록 도와주시고 있습니다.
저는 대언의 기도를 하면서 많은 유익을 발견하였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성품에 대하여 더욱 깊이 알게 되었던 유익입니다. 주님은 주로 성도들을 위로하고 세워주시고 칭찬하시고 소망을 갖게 하는 말씀을 주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책망을 듣기를 원합니다.”하고 부탁하지만 정작 기도를 하면 하나님은 말할 수 없는 자상함으로 성도를 세우고 위로하시고 격려하십니다. 우리가 개인적으로 싫어하고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집사나 권사들도 하나님은 여전히 칭찬하시고 세워주십니다. 그래서 어느 때는 속상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칭찬을 좋아하시는 것일까?
그러나 저는 이것이 자녀들을 대하는 하나님의 성품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의 부족한 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장점에 더 관심이 많으실 뿐만 아니라 세워주고 격려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가끔 부족한 점을 말씀해 줄 때가 있는데 이러한 대언의 말씀을 들은 성도들은 가끔 항의도 합니다. “왜 제가 그렇다는 것이지요? 다 잘하고 있는데요.” 하지만 하나님께서 자비하고 선하신 말씀을 주셨을 때에는 모든 이들이 회개를 합니다. 그것은 “이 부족한 죄인을” 그토록 세워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해서 오히려 회개하고 진실하게 살아가려고 결단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하나님은 가장 좋은 것을 주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P 집사에게 가장 좋은 선물을 주셨다고 하여 L 집사에게 더 이상 줄 선물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모두에게 가장 좋은 선물을 주실 수 있는 분이시며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시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저는 이러한 하나님이 주시는 대언의 말씀, 예언의 말씀이 성도들을 얼마나 세워줄 수 있으며, 힘을 주고 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보다 적극적으로 대언의 영을 구하고 대언의 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성도들은 “우리들에게” 전해지는 설교에서도 은혜를 받지만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말씀에도 더욱 큰 은혜를 받습니다. 이 대언의 말씀은 “지금 이 자리에서 자신에게 주시는 친밀한 말씀”으로 듣게 되는 은혜가 있습니다.
이러한 대언 기도도 하면 할수록 더욱 깊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분별할 수가 있습니다. 저는 대언(예언)기도를 하면서 갈수록 주님의 말씀을 읽는 감각이 성장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대언 기도를 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림을 보여주시던가 아니면 성경의 말씀을 주시던가 아니면 자연물을 통하여 상징적으로 보여주시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그림, 자연물, 성경말씀, 음성들을 잘 듣고 “통역”을 해 주어야 합니다. 그 의미를 분별하여 우리들의 말로 전해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처음에 이 사역을 시작할 때에는 보여주는 그림에 대하여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하였지만 지금은 주님께서 사용하시는 그림에 대한 이해가 더 넓어지고 깊어졌습니다. 제가 누군가를 위하여 기도할 때에 정원에 꽃 위를 날라 다니는 나비를 계속 보여 주셨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분은 “율동 찬양가”였습니다. 저는 나비는 기쁨, 율동, 움직임을 의미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계속 은사를 감사하며 사용하여야 합니다.
어느 때는 물을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물의 영성에 대하여 가르쳐 주시기도 합니다. 어느 분에게는 “용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오직 물이다”라는 말씀을 주시면서 물의 영성에 대하여 가르쳐 주셨습니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겸손을 의미합니다. 또한 물이라는 것은 하나로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물을 가르지도 나누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용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오직 물의 영성 뿐이 없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물은 “생명, 풍성함, 성령님”으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은사를 사용할 때마다 더욱 풍성하게 가르쳐 주시고 예민하게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어느 교회를 위하여 기도할 때에 하나님은 교회의 친교시간에 밥상 위에 계속 숟가락과 젓가락을 놓아주시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저는 곧 이 교회의 식구가 늘어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대언 기도를 하였고 그 교회는 요사이 새로운 식구가 늘어가고 있던 교회였습니다.
어떤 이에게는 나귀를 보여주시면서 “종의 영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씀하셨고 예수님을 태우고 다니는 나귀가 되라고 권면하셨습니다. 섬기는 자로서의 영성을 주님께서 부탁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언의 기도이든지 예언의 기도이든지 은사를 묻어두지 않고 사용할 때 더욱 풍성해지고 더욱 깊어지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은사는 사용하지 않으면 소멸되어지거나, 오히려 그것을 빼앗아서 풍성하게 사용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보너스로 주시게 됩니다.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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