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누구신가?

눅9:10-27 예수님은 누구신가?

어느 마을에 일곱 개의 황금 단지를 얻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보니까 여섯 개는 그 단지 안에 황금으로 가득 가득 채워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일곱 번째 단지에는 절반만 차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일곱 번째 그 단지에다 금을 가득 채우려고
자기에 있는 모든 것들을 다 팔아서 그 속에다 채우려고 자꾸 집어넣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넣어도 그것이 채워지지 않는 겁니다.
채우려고 아무리 해도 채워지지 않아서 욕심은 더 나서 더 채우려고 하다가
나중에 그것이 안 채우 지니까 그것 때문에 힘들어서 불평하고 궁색하며 살았다고 합니다.
우리는 거기서 가만히 한번 생각해 보세요.
여섯 개의 황금 단지가 너무나 귀한 것이잖아요.
여섯 개나 얻은 것우로 감사하면 궁색하게 살지 않을 것입니다.
너무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 갈 것입니다.
받은 여섯 개의 황금 단지는 다 잊어버리고 반만 채워져 있는 것을 채우려고
다 안 채워진다고 궁색하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것은 지금 우리들에게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우리에게 하나님이 많은 것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많은 것을 주었는데도 많은 것을 준 것에 대해서 감사는 못하고
자꾸 나에게 없는 것만 생각하며 부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 주님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항상 내 안에는 허전하고
내 안에는 늘 부족한 마음이 들어 궁색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으로 자족하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지금 현재 처해 있는 현실은 지난 과거의 결실인지를 우리는 알고
그대로 내가 그것을 받아들이면 됩니다.
받아들이면서 하나님 내가 어떤데서 또 무엇을 또 어떻게 주님과의 관계 안에서
내가 부족했고 또 어떤 것을 내가 따르지 못했고
또 어떤 것들을 다하지 못했고 또 어떤 면이 주님에게 내가 잘못 보였는 가를
생각하면서 지금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정말로 귀한 사랑으로 받아 들려야 됩니다.
그것이 내 마음에 안 맞는다고 그것을 자꾸 좋게 해볼려고 하고
그것을 해결할려고 하면 아까 반통만 들어 있는 그 황금 단지를 채우려고
애써봤자 거기에 채워지지 않은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지금 주신 그 환경에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며 받아드릴 때 우리는 그때 만족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우리를 가장 사랑하시고
또 지금도 나만 생각하며 나 밖에 모르시는 주님인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런데 내 문제가 해결이 안되고 내가 어떤 면에 힘들고 어려우면
황금 단지를 채우려고 하듯이 계속 그것만 채우려고만 해도 채워지지 않으니까
항상 곤고하고 항상 무엇인가 허전한 그런 삶속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우리는 이 발상을 바꿔야 됩니다.
반 단지가 황금으로 안 채워진 것만 보면 안됩니다.
여섯 단지나 주신 우리 주님을 볼 수 있는 눈이 떠야 됩니다.
그래서 제일 먼저 우리가 말씀을 듣고 관점이 바꿔질 때 우리 주님이 보입니다.
우리는 우리 주님이 누구신가를 삶 속에서 늘 만나고 삶 속에서 늘 고백하고
삶 속에서 늘 감사하며 사는 사람이 정말로 귀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겁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벳세다로 가셨는데 소문을 듣고 많은 무리들이 따라왔는데
저녁 무렵이 되자 제자들이 무리들이 저녁 먹을 것을 걱정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동네로 가서 무엇인가 먹을 것을 다 준비해서 먹고 와서 다시 말을 들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기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주님은 그러지 말라는 겁니다.
\"먹을 것을 주어라.\" 그러시는 겁니다. 그러시는 것이 제자들에게는 이해가 안 되는 거예요.
제자들은 이렇게 많은데 먹을 것을 어떻게 다 줍니까?
그러니까 주님이 오십 명 정도씩을 무리를 지어 앉히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앉히었습니다. 그랬더니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먹을 것이 없는쟈고 묻자
오병이어 밖에 없다고 대답하자 그것을 축사하시고
 \'때어 주라\" 그래서 때어 주니까 계속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오천 명이 먹고 남았습니다.
사람들은 그 떡을 먹으려고 자꾸 예수님을 쫑아 다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푼 것은
그들의 배 속에 떡을 채워 줄려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푼 것이 아닙니다.
내가 누구냐를 가르쳐 줄려고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 다음에 예수님이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더냐?\" 묻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사람은 세리 요한이라 그래요.
어떤 사람은 엘리야라 그래요. 어떤 사람은 선지자중에 한명이라고 그래요.
그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면 제자들에게 \"너희들은 나를 누구라고 하더냐?\" 그렇게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베드로가 하나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면서 아무에게도 그 말을 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예수님이 스스로가 인자라고 그럽니다. 즉 연약한 자라는 그 말입니다.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가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날 것이다.
그렇게 이야기 하시고 너희들이 나를 따라오려고 하면은 먼저 자기를 부인해라.
그리고 날마다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으라. 라고
예수님이 자신이 누구인가를 가르쳐 주고 그리고 어떻게 쫓아야 되느냐를 말씀하셨다
지금 오늘 본문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9장에 오기까지 예수님이 누구인가를 가르쳐 주는데
초점을 맞추어서 지금 여기까지 끌고 온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은 삶을 통해서 자꾸 주님이 누구인가를 가르쳐 줍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안 배우고 내가 원하는 것으로 만족하려고
황금단지 여섯 단지가 있는데도 일곱 개가 안 채워진다고 늘 힘들어 합니다.
지금 현재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큰 은혜를 베풀고 있는 줄을 알아야 됩니다.
저는 밥을 먹을 때마다 커피를 마실 때마다 시디쉰 김치를 먹을 때마다 생각을 합니다.
그러면 반찬이 있다 없다 말합니까? 안합니까? 안 합니다.
저는 사모님에게 지금까지 반찬이 있다 없다 말해 본 적이 없습니다.
짜거나 시다고 말해 본적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시디시어서 도저히 못 먹을 김치를 먹어 보았기 때문에
아무리 맛이 없어도 그 보다는 더 좋은 것입니다.
커피를 마실 때마다 저는 늘 감사합니다.
커피 한잔 못 마실 처지가 되어 본 지라 커피를 마실 때마다 하나님께 고마워 합니다.
우리의 삶 속에다가 주님을 가르쳐 주시려고 이렇게 이야기를 많이 하고 계세요.
그 때 우리는 얼른 알아들어야 돼요.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는 어떤 예수님인지를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먼저 16절 17절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무리 앞에 놓게 하시니 먹고 다 배불렀더라 그 남은 조각 열두 바구니를 거두니라\"

예수님은 누구이십니까?
첫 번째로 생명의 말씀으로 영적 필요를 채워 주시는 분이 십니다.
예수님이 떡을 나누어 주니까 사람들이 막 쫓아다닙니다.
이 사람들은 떡을 먹으려고 쫓아다닙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내가 누구냐고 예수님 자신을 가르쳐 주려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신 것입니다.
떡으로 말하면 예수님 자신이 생명의 떡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따라 다니는 사람들은 전부 자기 배만 부르게 하고
예수님을 이용해서 자기 배만 채우려고 따라 다니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복 받고 예수 믿으면 문제 해결되고 예수 믿으면 무엇인가 잘되고
예수 믿으면 무엇인가 떴다 봤다 하고 예수를 믿으면 무엇인가 잘 되고
예수를 믿으면 직장에서 잘 되고 예수를 믿으면 행복하게 살게 된다는 속에
빠져 있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아닙니다. 예수님은 직장에 잘 붙어있게 해주시는 분도 아니고
우리에게 잘 먹고 잘 살아라. 좋은 집에 살아라. 그러시는 분도 아니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의 떡으로 나에게 영적인 필요를 채워주시는 분이십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신 것은 예수님 자신이 내가 누구냐를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생명의 떡이다.
그러니 네가 육신적으로 아무리 배부르게 먹어도 그것은 금방 배고프게 되어 있어
그러나 나를 먹고 나를 깨닫고 나를 만나고 나를 위하면 너희는 배부를거야.
영적인 필요를 채워야지 육적인 필요를 채우느냐고 주님은 그렇게 말씀을 합니다.

우리도 예수님께서 우리의 육신적인 것을 채워주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에게 생명의 말씀으로 영적인 필요를 채워주시는 분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4장 4절에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우리는 영적인 존재라 영은 말씀을 먹어야 배가 부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육적인 것을 아무리 취해도 영적인 것을 채우지 못하면 우리는 곤고합니다.
우리 주님이 바로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 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도 이 말씀으로 영적 필요를 채워 주시는 분이 예수님이신 줄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요한복음 4장에 수가성 여인이 나옵니다.
수가성 여인에게 예수님이 물을 좀 달라고 하시며
\"남편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수가성 여인이 남편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전에 다섯이 있었는데 지금 사는 남편이 여섯 번째인데
그 사람도 남편이 아니라고 하며 예수님 자신이 \"일곱 번째 남편이다.\"고 합니다.
일곱 번째 남편이라는 것은 완전한 남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가성 여인이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았습니다.
내가 영생하는 물이다. 즉 메시야인 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에게 와 보라라고 합니다.
수가성 여인이 예수님이 누구냐 하는 것을 알았어요.
영적 필요를 채워 주시는 분이신줄 알고 와보라 그러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영적인 필요를 채워주시는 분이예요.
말씀으로 즉 생명의 떡으로 우리를 영적 필요를 채워 주시는 분이세요.

우리도 예수님을 누구신가를 알아야 합니다
영적 필요를 채워 주시는 분이신 것을 우리는 이해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18절 19절 20절을 보세요.
\"예수께서 따로 기도하실 때에 제자들이 주와 함께 있더니 물어 가라사대
무리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대답하여 가로되 세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라,
더러는 옛 선지자 중의 하나가 살아났다 하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니\"

예수님은 누구이십니까?
두 번째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구원을 이루게 하시는 분이 십니다.
예수님이 9장 17절까지 하신 모든 언행 심사는 전부 예수님이 누구인가를 가르쳐 주시는 입니다.
\"내가 구세주다.\"계속해서 이야기를 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이 세상의 구세주로 왔다.
구원을 이루려고 오신 분이시다 라고 하는 것을 계속해서 이야기를 했는데
사람들은 무어라고 하느냐면 어떤 사람은 세례 요한이요 어떤 사람은 엘리야요
어떤 사람은 선지자 중에 한 명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이 말은 다른 사람들보다 좀 뛰어나신 분인데 존경할 만한 분이라고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예수를 믿으면서도 그 분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우리의 구세주
즉 메시야라는 그런 개념이 없으니까 그 분은 참 괠찮은 분이라고 하게 된다.
학교에서 배울 때에 4대 성인 중에 한 명이라고 그렇게 배우잖아요.
지금도 예수님을 영적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예수님은 나에게 무엇인가 도움을 주시는 분이나
내가 행복하게 사는데 좀 필요하신 분이나 그 분이 나에게 좀 주면 좋아하고
그러니까 주일날 일찍 예배를 드리고 그 날 놀려 가요.
왜 예배 드렸죠? 그 날? 왜 예배드려요?
보험 넣고 들어가느라고. 왜요? 오늘 차 운전하는데 운전대를 잘 잡아 주시라고요.

예배를 땜방하고 간다 그 말이예요
예배 안 드리고 가면은 찜찜하니까, 몇 시 예배드리고 가요?
아침 일찍 예배드리고 예배를 땜방하고 놀려가요.
그 분 그날 예배 드렸어요? 안 드렸어요? 중심에서 안 드렸어요.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우리의 구세주가 되시는 분이예요.
어때요? 우리가 많은 것을 받았으니 우리도 그 만큼 많은 것을 드려야 돼요.
주일날 예배는 어때요?
육일 동안은 나한테 주었어요. 그리고 하루는 하나님께 드리라는 것입니다.
나에게 준 시간을 주님 것이라고 인정하지 않는 것이 주일날 예배 안 드리는 것이예요.
그 시간을 우리 주님이 주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께서 누구신가를 우리는 잘 알아야 돼요.
하나님의 아들로서 구원을 이루게 하시는 분이 심을 알아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장 30절을 보겠습니다.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무지한 우리에게 지혜가 되시고 불의한 우리에게 의로움이 되시고
죄 많고 허물 많은 우리에게 거룩함이 되시고 우리에게 구속함이 되셨어요.
멸망받을 우리에게 그 분이 구속함이 되어 주신 분이예요.
하나님의 아들로 구세주가 되신 우리 주님.
우리는 정말로 잘 섬겨야 될 줄 믿습니다.

죽었던 나사로를 마리아 마르다가 살려 볼려고 죽기 전에 병들었다고
예수님에게 와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마리아 마르다에게 많은 대접을 했으니
마리아 마르다 생각에는 예수님이 금방 뛰어 가서 나사로의 병을 낫게 해 줘지만
마르다 마리아는 직성이 풀릴 것이 아니예요.
그런데 예수님이 안 가시는 거예요.
그러니 마리아 마르다는 속에서 어떠하겠어요? 서운해요.
예수님은 다 이유가 있어서 안 가신 것이거든요.
그런데 서운하게 생각한 마리아 마르다가 잘 못되고 있는 거예요.
죽은지 나흘이 되도록 예수님이 안 오시는 거예요.
그러면 마르다 마리야는 어떻겠어요?\"
세상에 우리가 지금까지 예수님 섬긴 것은 뭐야~~\"
그렇게 했겠어요? 안 했겠어요?
서운해 가지고 세상에 이렇수가 어디에 있어?
우리 오라비가 돌아갔으면 제일 먼저 문상와야지 말이여~~ 왜 빨리 안오시는거야
그렇게 했겠어요? 안 했겠어요? 그렇게 했겠잖아요.
그런데요. 예수님이 나사로가 죽어 냄새가 날 때까지 예수님이 안 오시는 거예요.
그리고는 나흘이 지난 다음에 오셨어요
이렇게 동네 어귀에 들어 오시자  
마리아 마르다는 빨리 오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우리 오라비 안 돌아 가셨을 것아니예요라고 하자 예수님이 우셨어요
왜 우셨을까요? 마르다 마리아가 믿음이 없어서 우신 거예요.
예수님이 누구신줄 모르고 있는 거예요.
예수님이 누구라고 가르쳐 주려고 나사로가 죽을 때까지 기다리시며
\"내가 부활이요. 생명이다.\" 라고 가르쳐 주려고.
그것을 가르쳐 주려고 안 오셨던 거예요.
그리고 예수님께서 나사로의 무덤 앞에 갔어요.
\"돌을 치워라.\" 그래요.
\"돌을 치워라.\" 그 돌이 누구예요.
우리가 돌이예요. 우리를 치워 놓아야 돼요.
\"돌을 비겨라.\" 그러더만 \"나사로야 나오너라\" 그래요.
그러더니 나사로가 다 묶혀 있는 채로 나와요.
거기서 예수님이 누구라고 가르쳐 주는 거예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신 구세주다.\"
그것을 가르쳐 주려고 나사로가 죽어서 냄새가 날 때까지
예수님이 마리아 마르다 한테 서운하지만 서운함을 안 따라 가고
일을 그대로 놓아 두었던 것이예요.

우리도 마찬 가지예요.
우리의 구속주가 되시는 우리 주님.
나사로가 죽었던 것은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가르쳐 주려고 그랬던 거예요.
우리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나의 구세주가 되신 분으로 알고
우리는 늘 기억을 하며 사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길 바랍니다.

다음에 21절 22절을 보겠습니다.
\"경계하사 이 말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명하시고 \"가라사대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 삼 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하시고\"

세 번째 어떤 예수님인가  
세 번째는 고난받으시고 죽으심으로 해방을 시켜 주시는 분이 십니다
그때 사람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보느냐 하면 세상의 통치자로 보고
로마 군병이나 총독에게 가서 그냥 사람들을 꽉 눌러 이겨서 고통받고
험난한 세상을 이겨 가지고 주님이 대통령이 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냥 누구든지 오기만 하면 로마 군인이고 총독이고 오기만 하면은 다 눌러 이겨 버리고
나라의 대통령이 되어서 로마 군병들을 다 쫓아내 버릴줄 알았거든요.」
아니 그런데 지금 하시는 말씀이 뭐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 주님은 지금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 대제사장,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된다고 그래요
장로 대제사장 서기관들이 누구입니까? 지도자들입니다.
그런데 버린바 되고 죽음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안 죽고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승리해서 자기들이 해방될 줄을 알았어요.
그런데 우리 주님은 전혀 반대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고난을 받고 버린바 되어 죽고 부활한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사람들이 우리 주님을 보는 눈과 주님이 세상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는 것은
전혀 반대로 지금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주님이 나에 대해서 육적으로 무엇인가를 이루어서 나를 편하게 해 주고
내가 좋아지게 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그 분은 살려고 오신 분이 아니라 죽으로 오신 분이 셨어요.
누구를 위해 오셨어요? 나를 위해 죽으려 오셨어요.
왜 그 분은 죽어야 돼요?
내가 죽어야 할 자리에 그 분이 대신 죽으려 오신 거예요.
그러므로 우리는 울어야 돼요.
그리고 그 분이 우리를 살려 주시는 분인 것을 알아야 해요.
그래서 우리는 고난받고 죽으심으로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나의 욕심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마귀와 세상에서 해방시켜 주시는 분이 그 분이예요.
그 분이 죽으심으로 우리가 해방 된 거예요.
그 분이 죽으심으로 우리가 산 거예요.
그러니 그 분이 우리를 위해서 죽으셔야 돼요.
그런데 사람들은 그 분이 죽으면 안 된다고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요 항상 우리 주님이 죽으심으로
나를 해방시켜 주신 분인 것을 우리는 늘 기억을 해야 됩니다.

베드로전서 3장 18절에
\"그리스도께서도 한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실려고 그 분이 죽으셨다는 겁니다.
바울이 다메섹에 가는 동안에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습니다.
바로 그 주님이 바울에게 하는 말씀이
왜 네가 나를 핍박하느냐는 말을 듣고 바울은 깜짝 놀란 것입니다.
바울은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 주님에 대해서 잘 몰랐습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며 예수를 잘 믿는 사람들을 잡아 죽인 사람이 바로 바울이었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아직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부활한 주님이라고 하니까 깜짝 놀래고

그 때 이 바울이 아나니아의 안수를 통해서 눈꺼풀이 벗겨져서 영적으로 눈이 띄인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그 분이 누구신가를 바울이 알게 됩니다.
그 분이 죽으셔어 우리를 해방시켜 주시는 분이시구나 그걸 알았어요.
그래서 바울은 편지를 쓸 때 마다 은혜와 평강이 있을 찌어다 그렇게 이야기를 했던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 주님이 고난받아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죄에서 마귀에게서 세상에서 나의 욕심에서 해방됐다는 사실을
우리는 꼭 기억을 하고
늘 그 분에게 감사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잘 알아야 합니다.
첫 번째는 생명의 떡으로 영적인 필요를 채워 주시는 분이십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구원을 이루게 하시는 분이 십니다.
세 번째는 고난받으시고 죽으심으로 해방시켜 주시는 분이신 것을 알고
그 분에게 늘 고마워하고 감사해야 하고 그 분을 잘 섬겨
그 분의 것이 되어서 그분의 기쁨이 되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