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자신의 중요성과 가치를 발견하라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습3:17)
상처 입은 마음의 치유(상실에 대한 보상)는 외향적인 삶, 즉 물질이나 다른 사람을 통해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회복하는 데에서 옵니다. 이는 하나님의 마음을 품은 사람의 사랑을 통해서 실현됩니다. 그래서 어린 시절 많은 것을 상실한 남성이나 여성이 있다면, 사랑하는 남성이나 여성을 만나서 사랑을 받는 것은 좋은 치유의 방법입니다. 그러나 그런 사랑을 경험하지 못하게 되면 본인이 사랑을 하는 삶으로 바꾸어갈 수 있습니다. 즉 자기보다 더 어려운 사람을 돕거나, 봉사하는 일에 참여하는 것도 치유의 방법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무제한적인 사랑을 깨닫게 될 때, 거기서부터 새로운 삶이 시작됩니다. 그것은 거듭남, 깨어남, 각성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찾아왔을 때 예수님은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공부해오고 있는 내용과 결부시킨다면 거듭남은 깨어남에서 시작됩니다. 자기 자신을 보고 새로운 세계를 보고, 거듭남의 세계로 나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거듭남은 새로운 삶, 하나님 나라의 삶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자기 자신의 상실, 관계성의 상실, 희망의 상실에서 회복으로 전이되는 것을 말합니다.
상처 입은 사람들, 치유가 필요한 사람들의 특징은 자기 자신의 가치를 인정하지 못하고, 자신의 욕구를 등한히 하고, 부당한 행동(모욕)에 대해 지나치게 관용하고, 정당한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자기 희생적이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경향들은 자신의 중요성과 가치를 인정하지 못하는 데에서 오는 현상입니다.
자신이 쓸모 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곁길로 나가는 청소년들의 경우 대부분 은 자신이 쓸모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좌절하는 데에 이유가 있습니다. 이는 인간의 가치기준을 잘못된 기준에서 정해놓은 것으로, 공부 잘하고(영어, 수학), 일류대학에 가야 쓸모 있다는 기준 때문에 그렇습니다. 발명왕 에디슨의 경우, 이런 기준으로는(학교) 쓸모 없는 학생이었지만, 어머니에게는 쓸모 있는 가치 있는 아이였습니다.
우리자신이 \"쓸모 있다\" \"중요한 사람이다\"라는 생각이 들어갈 때 치유가 일어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중요성을 미모, 재산, 사회적 지위에 두곤 합니다. 그렇게 되면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에 대한 파장이 매우 높습니다. 즉 자신에 대해 깊이 절망했다가 또 올라갔다가 이것이 반복되니까 정서가 늘 불안하고 행복이 없습니다. 또 이런 기준들은 언제든지 없어지기 때문에 없어짐과 동시에 가치도 소멸되어 버립니다. 그리스도인은 보다 영구한데에 가치를 두어야 합니다. 그래야 언제나 안정성이 있고, 자긍심이 있습니다(히11;26).
진정한 자긍심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소중성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이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기독교 신앙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깨달음과 아울러서, 그 죄인을 사랑하시되 아들까지 보내주셔서 구원하실 정도로 자신이 소중하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올바른 신앙입니다.
성경에서는 인간의 가치를 매우 소중히 여깁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보면 한 마리 양의 비유, 동전을 찾는 비유, 탕자를 기다리는 아버지의 모습이 이를 말해줍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당시 사회적, 종교적 기준으로 보아 전혀 쓸모 없다고 내침 받은 이들을 끌어안으셨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예수님은 한 인간의 중요성과 가치를 일깨우셨습니다. 그래서 기독교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자기 자신에 대한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면서 깨어나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 하나님께 자신을 드릴 수 있고, 헌신할 수 있습니다.
우리 자신의 가치는 우리의 재능, 미모, 재산, 지식, 건강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우리 자신이 스스로 쓸모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상호의존성에서는 자신의 참 자아, 내재아를 쓸모 없다고 소외시키고 지나치게 외향적인 삶으로 치우칩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자기가 소외시킨 참 자아가 매우 고귀하고 필요한 존재임을 인식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여기서 받아들인다는 것은 자신의 욕구를 등한히 하지 않고, 너무 자기 자신을 희생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돌볼 줄 아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자녀들 가운데 공부를 잘하지 못하고, 재능이 없고, 인물이 못났다고 하여, 늘 소외시키고 구박을 주어 그 아이가 자기 자신을 경멸하고 수줍어하고 포악해졌다면 이제부터는 그 부모는 그 아이의 가치를 그러한 것에 두지 말고 하나님의 선물, 하나님의 형상, 유일하고 고귀한 생명이라는 데에서 그 아이의 가치를 인정해주고 대해준다면 그 아이의 참된 가치를 인정해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그 아이는 비로소 웃게될 것이고, 자신의 가치를 인정하게 됩니다(칭찬, 포옹등). 과장된 칭찬이 아닌 진정한 칭찬을 받고 자란 아이와 구박을 받고 부정적인 메시지를 듣고 자란 아이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예를 들면 부모로부터 칭찬과 지지, 인정을 받고 자란 아이들은 과장이 없습니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인정을 받지 못한 아이들은
거짓말과 과장이 많습니다. 부모가 자녀들과 얘기할 때 진지하게 들어주면 과장과 거짓말이 없는 아이로 성장합니다. 그러나 건성으로 듣고 무시하면 아이는 주의를 끌기 위해 형용사를 많이 쓰고, 과장을 합니다.
영국의 대상관계 이론가인 \"도날드 위니컷\"은 인간에게 최초의 거울은 어머니의 얼굴이라고 했습니다. 아이들은 어머니를 통해 자기 자신을 만납니다. 즉 엄마의 반응하는 모습으로 자신의 가치를 결정해버립니다. 젖을 먹이는 엄마의 얼굴이 짜증난 모습이면 아기는 자신의 모습이 못나고 성가시며 환영받지 못한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엄마의 모습이 온화하고 평화스러우며 사랑이 가득 담긴 모습이면 자신을 사랑스럽고 귀한 존재로 여깁니다. 여기서 형성되는 자존감은 생애 전체에 영향을 끼칩니다(다니엘 스턴, 마크와 프레드의 실험).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자연스러운 생의 욕구마저 억압시키고 죄책감으로 받아들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인정과 칭찬, 과시의 욕구에 사로잡혀 생의 에너지를 헛된 곳에 낭비합니다. 또한 대인관계에 있어서도 다른 사람의 감정을 자연스럽게 수용하지 못하고 고착된 관계를 맺어갑니다.
오늘날 대다수 현대인들은 시대적으로 가난과 억압의 시대를 살아왔기 때문에 낮은 자존감이 내면의 뿌리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 결과 욕망의 포로가 되어 불행하게 살아갑니다. 어린 시절 가정적으로 사회적으로 많은 역기능적이 요소들이 있는 사람이라도 성장과정에서 자신을 인정해주고 용기를 준 어머니 역할을 해준 사람이 있었다면, 그래서 그 분을 대할 때마다 위로, 희망, 자신감이 생겼다면 그는 자신에 대한 가치를 상실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그리스도인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새로운 자존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잠잠히 사랑하시고 우리로 인해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즐거워하십니다(습3:17). 이같은 하나님의 반응을 받아들일 때 낮은 자존감은 치유되고 회복됩니다.
자신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 그래서 상한 내재아를 치유해 가는 데 있어서 중요한 치유방법중의 하나는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인자한 부모와 같은 역할을 해 가는 것입니다. 그전에는 내 자신에 대해서 무시하는 냉혹한 부모의 입장에 있었다면, 이제는 내가 내 자신에 대해 인자하고 자비로운 부모의 역할로 바꾸어야 합니다. 그전에는 자신의 내재아를 무시하고 소외시켰다면 이제부터는 그 내재아를 관용과 사랑으로 받아들이고 양육해 가는 인자한 부모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이는 소외된 내재아를 무시하지 말고 받아들이고 다독거리고 이해하려고 하는 태도로 바꾸어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외향을 보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내재아를 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내재아를 불러내시고 양육하시고 세우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다른 사람이 아닌, 진정 우리 자신으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진정 \"우리 자신이 되어\" 그의 창조사역에 참여해가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가면을 쓴 우리 자신을 만나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격 속에 깊이 숨어있는 나 자신, 주눅이 들고 아파하고, 때때로 꿈에 상징적으로 자신을 나타내 보이는 나, 억압된 나, 소외가운데 외로워하는 나를 만나 대화하기를 원하십니다. 이런 공부를 계속해 가면 서 발견하는 것이 있다면, 과거에 자기가 불안을 느끼고, 우울증, 질투, 시기에 시달리고, 분노에 사로잡히는 것이 인생의 전부로 알았다면, 이제는 그게 얼마나 거짓된 삶이었나, \'이런 삶이 있었구나\' 이것을 깨닫게 됩니다. 상처 입은 사람의 특징은 자신의 부정적인 삶이 \'인생의 전부다\' 라고 생각합니다. \'아, 내 인생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라고 비관합니다. 그러니까 신앙의 긍정적인 면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치유를 통해 자꾸 바뀌어 가면 \'아하, 이런 인생도 있었구나\'. \'지구상에 이런 세계가 있었구나\'. 치유는 바로 이런 세계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전에는 늘 분열, 증오, 열등감이 인생의 전부인줄 알았는데, \'하나님이 이런 세계로 나를 인도하셨구나\'하는 진정한 감사가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꾸미고 과장해서 나타내 보이는데 너무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러한 방식으로 살아가는데 익숙해져 있습니다. 또 그렇게 해야 인정받고 성공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와 다르십니다. 하나님은 \"내가 말하지 않는 것\"을 들어주시기를 원하십니다(찰스 핀의 시). \'내가 말하지 않는 나\'를 관심 갖고 \'그 나\'를 인정해주시고 \'그 나\'를 세우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경우 보통 자신의 가치를 외형적인 것에 둡니다. 이것은 집단적이고 병리적인 현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근본적으로 변화되기 위해서는 먼저 치유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치유를 통해 외향적인 가치보다 하나님 앞에서 나의 소중함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가치를 소중히 여길 때 삶의 근본적인 태도가 바뀌게 됩니다. 이렇게 각성하고 깨어나면서, 오고 있는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토의문제>
1. 당신은 당신 자신의 평가기준을 어디에 두고 계십니까?(외향적인 것, 내향적인 것)
2. 당신의 생애에서 당신에게 희망과 용기를 준 사람이나 사건이 있습니까?
3. 당신은 다른 사람과 사귈 때 어떤 기준에서 사귑니까?
4. 당신은 하나님과 진정 깊은 대화를 해본 경험이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