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이란 가정 환경이나 사회적 상황으로 인해 마땅히 누렸어야 할 생애를 잃어버린 경우를 말합니다. 즉 자신의 의지에 상관없이 다른 사람에 의해 강요된 인생에서 비롯된 상실입니다. 예를 들면 역기능적인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은 유아시절을 상실한 경우, 엄격한 종교적 율례 때문에 자기 인생을 표현하지 못하고 상실한 경우, 오랫동안 질병가운데 누워있어서 인생의 상당부분을 상실한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분은 결혼을 잘못해서 남편 때문에 자기 인생을 상당부분 상실한 경우도 있습니다. 또 어떤 분은 성장과정에 있어서 사회적 상황으로 인해 생각, 표현을 빼앗기고, 마음껏 사고도 못하고 느끼지도 못하고 상당부분 상실한 경우가 있습니다.
그 상실한 것에 대해 아파하고 슬퍼하면 상실에서 회복되지만, 상실 자체가 아주 미묘한 것은 상실에 대해서 아파할 수도 없고 울지도 못했다는 것이 문제를 던져주는 것입니다. 상실의 경험에 대해 깊이 아파하고 애통하고 마음껏 표현도 해야 하는데, 당시에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상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파할 수 없었다는 과거가 성장할수록 문제를 던져주는데, 무감각하고 무표정한 성격이 형성되게 됩니다.
모든 상실은 고통과 불행을 가지고 오는데, 우리는 그러한 상실의 감정을 통칭하여 슬픔이라고 부르며 그 과정을 슬퍼함, 즉 애통의 과정이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자신에게 그러한 고통스런 감정을 경험하도록 허용할 때, 또는 그러한 슬픔들을 안전하고 지지해주는 사람들과 나눌 때 우리는 슬픔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며 그것으로부터 자유하게 됩니다.
특별히 예수 믿는 사람들이 아주 사랑하는 사람과 사는데, 사별했다고 할 때에 \"천당갔는데 뭐 우느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천당 가는 문제와 우는 문제는 전혀 다릅니다. 천당이고 지옥의 문제가 아니라, 헤어졌기 때문에 슬픈 것입니다. 이것은 엄격하게 분리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슬픔이 있을 때에는 충분히 슬퍼할 수 있도록 그러한 상황을 허용해주어야 그 분이 속히 그러한 슬픔에서 빠져나오게 됩니다. 만약 계속해서 슬픔을 억제하게 되면 슬픔에 얽매이게 되어 꿈을 꾸게 되고, 우울증에 걸리게 되며, 삶의 의욕을 서서히 상실하게 됩니다. 그렇게 계속 진행되다 보면 그 이유를 자기가 찾지 못하게 되고, 모든 삶의 영역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 때 그것이 병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깊은 슬픔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때에는 깊이 신뢰하고 지지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가서 그 문제를 의논해보는 시간도 필요합니다. 그 때에 슬픔에서 자유해 가고 그 슬픔이 정신적인 문제를 제기하지 않게 됩니다. 문제는 슬픔은 누구에게나 다 있는데, 그 슬픔이 제대로 처리가 안되었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문제를 주고, 삶의 문제를 제기합니다. 기독교 신앙은 모든 것을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움을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연스러움에다가 어떤 색깔을 붙이게 됩니다. 즉 그것을 \"죄\"다. \"믿음이 없다\" 그렇게 해서 인간을 아주 변질시켜 놓는데 이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기독교신앙은 인간으로 하여금 진정으로 인간이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나사로의 죽음앞에서 우신 주님). 우리가 어릴 때에 상실의 고통을 슬퍼할 기회를 갖지 못하고 자란다면 어른이 된 이후까지 만성적 염려, 긴장, 공포, 과민, 분노, 원망, 슬픔, 공허함, 미진함, 혼란, 죄책감, 수치심과 같은 증세들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애통함을 통해서 우리를 치유하십니다. 하나님은 상실한 것에 대한 아픔으로 병들어 있는 사람들을 어떤 동기로 하든지, 그 상실에 대해 느끼게 하고 눈물이 나게 하고, 슬퍼하게 해서 우리를 치유하십니다. 치유는 이렇게 상당히 정상적인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정상적인 과정을 무시하고 기적을 추구하는 것은 언제나 공허하고 피상적인 결과만 낳게 됩니다.
상실에 대한 애통함도 있지만 죄에 대한 애통함도 있습니다. 그래서 죄를 자꾸 숨기고 감추고 하면 진정한 애통함이 없습니다. 진정한 회개에는 반드시 애통함이 따릅니다. 죄를 회개하지 않으면 벌을 받고 복을 받지 못한다는 공포와 두려움에서 오는 회개는 애통함이 없을 뿐 아니라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고후7:10). 때로는 잠못자면서 죄의 문제와 맞붙어서 고민하면서 해답을 얻고 그래야 변화가 옵니다. \"회개하시오!!!\" 일방적으로 외쳐지는 공포와 두려움에서 나오는 회개는 강요된 회개입니다. 이러한 회개는 아주 피상적이다. 진정한 회개는 두려움에서가아니라 상실한 것, 자기가 실수한 것을 아파하게 만들고, 인식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회개는 우선 깨닫고 느끼게 만들어야 합니다. 단지 입술의 회개는 무용합니다. 자발적으로 아파하고 느끼고 후회하게 해야 합니다. 그것을 하나님 앞에 내놓게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회개는 하는데 똑같은 일을 반복합니다.
상실한 것, 죄에 대해 아파하는 것, 슬퍼하는 것은 거듭남의 문제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벌주는 문제, 형벌의 문제, 복받는 문제와 관련한 회개는 치유가 일어날 수 없습니다. 아파하고 애통하는 회개를 통해서 치유가 옵니다. 이 회개에는 아파할 것, 진정 후회해야 할 것, 수치감을 느껴야 할 것, 정당한 수치감을 그대로 느껴야 합니다.
슬퍼하지 못했던 상실, 죄, 상처를 슬퍼함으로써 내재아를 치유할 수 있는 몇 가지 방법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1. 안전하고 지지해줄 수 있는 사람들과 용기를 내어서 감정을 나누거나 고백하는 일이다. 이는 신뢰할만한 상담자(카운슬러)를 찾아가야 한다. 과거 합리적 사고가 발달되지 않고 직관만 발달된 시기에 하나님은 천사들을 보내서 사람들을 인도하셨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 와서는 천사의 개념을 합리적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카운슬러를 만나서 인생의 새로운 길을 안내 받고 있으면 그 사람이 바로 천사입니다. 또 질병에 걸려서 깊이 고민을 하다가 그 질병에서 해방을 받고 있다면 그 의사는 천사와 같습니다. 하나님은 여러 면으로 다양한 면에서 천사를 보내서 우리를 인도해주십니다. 우리는 누군가 천사의 도움을 받고 있거나 누군가에 대해 천사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하루하루 삶 속에서 도움을 받거나 도움의 손길이 되는 것입니다.
2. 기록이나 일기 쓰기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해갈수 있다. 마음의 문제, 갈등, 다른 사람과의 마찰, 상실에 대한 통찰, 또는 관련된 문제에 대한 기록을 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내재아에 대한 새로운 안목을 갖게 됩니다.
3. 명상과 기도 조용히 명상하고 기도하는 과정에서 문득문득 생각나고 정리되는 부분들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다음은 상실의 예로써 역기능 가정의 자녀들이 경험하는 상실과 그 영향들입니다.
1. 사람과 관련된 상실 - 인생의 여정에서 밀접하거나 의미 있는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과 이별. 이혼 - 신뢰의 관계에 있다가 한 편을 통해서 거부당한 경우 - 가정, 신앙생활, 사회적 관계에서 버림받은 경우 - 포기 : 밀접한 관계에 있다가 포기를 해야 하는 관계(삼각관계). - 죽음, 낙태, 사산, 질병, 이산, 자녀의 가출등.
2. 자기 자신의 일부를 상실 용모, 질병, 사고, 기능상실, 통제력 상실, 자존감 상실, 독립심 상실, 자아상실, 기대하는 것들의 상실, 생활양식의 상실, 필요의 상실, 문화적 충격, 직업의 상실, 기타 변화등.
예를 들어 용모에 대해서 자신감을 갖고 있는 사람이 화상을 입었다면 이 분에게는 상당히 치명적입니다. 그런 상실로 인해서 자살까지 할 수 있습니다. 이때에 그를 도와줄 수 있는 천사가 필요합니다. 그런 상실에도 불구하고 그가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부여해주는 용기와 희망을 제시해줄 수 사람이 필요합니다(헬렌켈러와 셜리반)
3. 어린 시절의 상실 - 양육을 제대로 받지 못해서 상실한 경우 (알코올 중독, 약물중독, 성인아이로 양육되면 희망과 믿음의 상실, 낮은 자존감이 형성) - 욕구충족이 안되어서 상실 - 건전한 발전이 되어지지 않은 것, - 성장기에 갖고 싶은 물건들을 강요에 의해 빼앗겼을 때 - 형제자매나 다른 가족이 상실(6.25전쟁등) - 신체의 변화(사춘기, 중년기, 노년기)
성장기의 상실은 성장 후에도 주어진 삶을 누리지 못하고 행복이 주어져도 향유하지 못하고 오히려 행복을 느낄 때 공포감을 느끼게 됩니다.
4. 성인으로서 성장하면서 변화(중년기의 위기) 20대에 삶의 의미로 추구했던 목표들이 현실로 이루어졌을 때 나이가 들게되면 그것들이 무의미해지는데, 여기서 상실감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상실을 치유해주시고 보상해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보상은 물건이 아니라 그의 사랑, 자비, 용서입니다. 이는 상실의 뿌리가 사랑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사랑했는데, 내가 애착을 가졌는데 상실된 것입니다. 거기에서 오는 허무, 상실감을 하나님의 사랑이 채워주며 치유하는 것입니다.
<토의문제> 1. 당신의 생애에서 상실한 것이 있습니까? 있다면 어떤 것입니까?
2. 당신은 당신이 겪은 상실의 아픔을 슬퍼한 적이 있습니까?
3. 당신은 앞으로 당신의 상실을 보상하기 위해 어떤 실천계획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까? 그렇다면 어떤 실천계획을 세우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