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치유를 위한 핵심문제들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랜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병자다 대답하되 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가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요5:6-8)
우리는 생의 과정에서 갈등을 주는 문제들을 정리해 가야 합니다. 거기에는 나의 결단과 순종이 요구됩니다(네가 낫고자 하느냐...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무엇보다 우리가 다룰 수 있는 문제들, 해결이 가능한 문제들은 추려내서 다루고 넘어가야 합니다. 여기에는 늘 의식하고 있는 문제들, 꿈에 나타나서 괴롭히는 무의식의 문제들, 우리에게 있는 불완전함과 관련된 문제들, 변화나 행동의 욕구들(반드시 이런 문제는 변해야겠다)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생 이런 문제들을 짊어지고 갑니다. 이런 문제들은 도외시하고 행복을 원하고 기쁨을 원하고, 그러면서 외적인 성공, 물질에 관심을 가집니다. 예수님은 이런 문제들, 인간의 구체적인 문제들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이런 문제들 중에 치유를 위해 필요한 핵심문제들 8가지를 진단해봅니다.
1.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생각과 행동
이것은 중용적이 못되고 지나치게 선악을 첨예하게 대립시키는 사고와 행동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면 극단적으로 사랑했다가 증오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행동은 자기 방어의 수단으로 내면의 상처가 깊은 사람일수록 이런 유형으로 극과 극을 왔다 갔다 합니다. 특별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합리적 사고의 훈련이 잘 안되어 있어서, 이런 극단의 사고의 유형을 많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감정에 의존해 있기 때문에 극히 부분적인 문제를 가지고도 전체를 다 부인해 버립니다. 이러한 것들은 중용적인 자세를 유지해 가는 훈련을 통해서 극복이 가능합니다.
이런 유형의 사람들을 보면 처음에는 간까지 빼줄 것처럼 좋다가 나중에는 적대적으로 증오합니다. 그가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다른 사람이 볼 때에 여유가 있어야 하는데(즉 상대에게 다 주지 않고 인격의 경계선을 가지고 상대방을 주고받고 해야 하는데), 인격의 경계선이 없이 자기 속에 있는 것을 모두 내주었다가 그것이 잘 맞지 않을 때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 부인하고 증오하는 것입니다. 정상적인 사람들에게도 이러한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병리적인 경우에는 심각하게 나타납니다.
2. 통제, 집착
인생이란 통제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생을 통제하려는 이들은 인생을 자연스런 흐름 속에 놔두면서 선택하고 참여도 하는 자연스러움이 아니고, 전체를 통제해가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인간은 생명이기 때문에 생명 전체를 통제하는 것은 상당히 어렵습니다. 이것을 다른 표현으로 집착이라고 합니다(Attachment). 현자들은 통제하려고 하는 집착, 혹은 욕구가 고통의 원인이라고 말합니다. 고통은 인생의 한 부분이요, 그것이 통제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될 때까지 계속 고통을 받아야 합니다. 통제에 대한 욕구는 몇 가지 중요한 문제를 포함합니다. 의지력, 통제력, 상실에 대한 두려움, 의존, 독립, 신뢰, 감정, 특별한 분노, 자존감과 수치감, 자신과 다른 사람에 대한 극단적인 생각과 기대 등입니다.
예컨대 가정에서 아이들과 갈등이 많은 어머니일수록 아이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에게 문제가 있습니다. 어머니들이 아이들을 통제하려고 하기 때문으로, 아이들은 가만히 놔두고 생명이 약동하며 자라도록 인도해주면 되는데, 하나에서 열까지 아이들을 통제하려고 하니까 아이들이 어머니 손에 들어오지 않고, 반항하고 거부합니다. 통제하려고 하니까 갈등이 심화되면서 자꾸 곁길로 가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 우리가 자꾸 모든 것을 통제하려고 하는 집착에 사로잡힐 수 있습니다. 배고픔, 성적본능등 자연스러운 욕구들을 건전하게 발산시켜 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생리적인 현상을 자꾸 통제해서 억압하려고 하면 위험스럽게 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관계에서 다른 사람이 화낼 수 있고, 욕할 수 있고,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는 자유와 권한을 부여해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상처를 받지 않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꼭 내 생각대로 이야기 해주길 바라고, 내 생각대로 행동해주기를 바라고 자기는 마음대로 화를 내면서 남이 화를 내면 화를 못내게 하고 다른 사람에게 사고하고 생각하는 자유를 부여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치유가 되어가고 성장해 가면 그것을 풀어놓아 줄 수 있습니다. 상대가 자유롭게 이야기 할 수 있게 됩니다.
대개 예수 믿는 사람에게도 \"꼭 이러 이러 해야 한다\"는 도그마(교리)가 있습니다. 주초(술 담배)의 문제에 관해 잘못된 관념중의 하나는 주초를 하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 그가 가지고 있는 영적 은혜들을 전부 무시하는 태도입니다. 이것들은 자기의 전체의 삶속에서 부분적으로 다루어야 할 문제로 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그것 하나 때문에 전부 아니면 전무 전체를 부인해 버리면 신경과 초점이 거기 맞추어져 있기 때문에 늘 불안하고 초조하고 그것 때문에 해결이 안됩니다. 일상의 삶 자체를 가지고 악과 선으로 다루면 안되고 그것이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주느냐에 따라 평가를 해야 합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그런 협소한 사고에 사로잡혀서 그런 문제들 때문에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에를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전체를 보고 마음을 열어놓고 은혜의 햇빛을 받아들이면서 변화되어 간다.
교회의 위선이 바로 이런 것들입니다. 주초의 문제보다 더 심각한 죄의 문제들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도 다루지 않고 그것과 비교되지 않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게 다루려고 하는 위선이 교회에서 나타나기 쉽습니다. 이런 공부를 통해서 이런 데로부터 사고가 바뀌어야 합니다. 그래야 건강한 기독교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야 다른 사람을 정죄하지 않고 하나를 가지고 전부를 부인해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습니다. 비록 하나의 문제가 있지만 그에게는 10가지 100가지 좋은 점이 있는데, 그 한 가지 때문에 전부를 다 부인하는 단세포적인 사고가 기독교인들을 지배하기 쉽습니다.
주초등 부분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전체적으로 하나님이 주신 것들에 대한 감사가 앞서야 합니다. 은혜로 구원받았고 나쁜 성품이 변화되고. 자꾸 좋아지는 면을 생각하고 감사가 더 많아져야 합니다. 그런 후에 \"하나님, 이제는 제가 담배를 좀 끊고 싶습니다. 도와주세요. 제 의지로는 부족합니다\"라고 하면서 자기의 전체의 삶속에서 부분적으로 다루어야 할 문제를 대면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그것 하나 때문에 전부 아니면 전무 전체를 부인해 버리면 결코 문제해결이 안됩니다.
3. 지나치게 많은 책임을 떠맡으려고 하는 습관들
이것은 자신의 분노, 두려움, 상처 등과 같은 고통의 감정을 잊기 위해 지나치게 많은 책임을 떠맡는 것을 말합니다. 한편 지나치게 책임을 떠맡지 않으려는 유형도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이 마치 세상의 순교자인양 느끼고 보이려는 사람들입니다. 건강한 신앙인으로 성장해가면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책임을 다하려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고 책임의식이 병리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문제입니다. 즉 분노, 두려움을 잊기 위해서 많은 책임을 떠맡아 거기에 몰두해가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한 문제들은 치유와 변화에 있어 장애물입니다. 이것들을 덮어두고 변화를 추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4. 자신의 욕구를 등한시하는 것
이것은 지나치게 많은 책임을 떠맡으려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자신이 희생양이 되는 것은 기독교적으로 볼 때는 속기가 쉽습니다. 겉으로 볼 때 상당히 희생적이고 예수님처럼 사는 것으로 보이지만 이런 유형의 사람들에게는 기쁨이 없고, 불평이 많고, 서운함, 섭섭함이 많습니다. 교회에서도 봉사를 열심히 하면서도 늘 증오와 서운함을 많이 갖고 있는 교인들을 봅니다. 그들은 조그만 문제에도 용납을 잘 못합니다. \"저 사람은 저렇게 희생적으로 저렇게 사는데 저 사람에게는 이런 것들이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라고 생각할 때 이는 속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 사람의 인격을 무시해서가 아니고, 그 사람을 보아 온 것들이 너무 크고 아름답기 때문에 이런 것들이 그 분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의외로 섭섭하게 생각하고 굉장히 상처를 입었다고 말하는 그런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 복종의 훈련이 되어가지 않고 자아중심과 명예와 병리적인 내면성 속에서 희생적으로 하는 봉사는 늘 상처를 받습니다. 이것은 다른 사람보다 자기 자신이 불행해지는 것입니다. 그러한 문제는 우리 스스로가 시험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 빨리 극복해가야 합니다.
또한 주부들이 가정에서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서 자기 욕구를 전혀 돌보지 못하고 너무 많은 시간들을 거기 보내고 하면, 자꾸 병들어가고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기고, 불면증이 생기게 됩니다. 이들은 자꾸 남편에 대해 증오하고 섭섭함이 많아지고 아이들에 대해서 자꾸 보상을 요구하는 마음이 많아집니다. 그가 주부라면 주부로서 가장이라면 가장으로서 적절하게 자기 욕구를 채워갈 수 있어야 합니다. 일년이나 하루하루 삶에서 자기 삶의 몫을 떼어놓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전체 속에서 부분들을 이해하도록 합니다.
예수님은 그만큼 성숙된 자로서 영적 욕구에 대해서 적절하게 충족시켜 갔습니다. 하루 일을 마치고 빈들에 가셔서 기도하시고 쉬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방식과 다른 유형의 욕구들이 다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처럼 하루 일을 하고 빈들에 나가서 밤을 새워 하면 우리 욕구가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자꾸 병들어갑니다(엘리야의 침체와 회복). 그런 자리에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자신의 진실된 욕구를 충족시켜 가는 데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거짓된 모방속 에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밤을 새워 기도했으니까, 나도 밤을 새우면서 기도해야겠다\" 이같은 거짓된 모방 속에서는 희열도 기쁨도 없고 지옥같이 고통스러울 뿐입니다. 그에게는 내적 욕구가 그만큼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밤을 세우고 기도하면서도 생각은 욕구에 사로잡혀 있고, 그것을 마귀의 생각이라고 자꾸 억압을 하고 스스로 속입니다.
참된 신앙은 자기 자신에게 정직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을 할 때에 감사가 있고, 기쁨이 있고, 그것이 충족되면 그 다음 단계, 그 다음 단계로 올라갑니다. 신앙의 가정에서 어린아이에게 너무 고차원적이고 너무 경건을 강요하면 그 아이는 평생 하나님 믿기가 어렵습니다. 어릴 때부터 어린아이답게 살아가게 만들면서 적절하게(과도하게 말고) 스스로 욕구를 채워가면서 살아가는 아이라야 하나님과 쉽게 교제가 가능합니다. 우리가 이런 면에서 등한시했다면 생활방식을 고쳐야 합니다. 이런 유형들은 절대로 신앙이 아니고, 남을 위한 희생도 아닙니다. 자연스러운 욕구를 적절하게 채워갈 때 인격과 인격 속에서 남편과 아내와의 관계가 가능하고 자녀와의 관계도 적대심 없이 증오심 없이 자녀를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자기의 욕구를 전부 인위적으로 희생한 사람에게는 언제나 적대감이 남습니다. 의무감으로 그 일을 해갑니다.
5. 부당한 행동에 대한 과도한 반응
여기서 과도한 반응이란 지나치게 너그러운 것, 지나친 관용을 말합니다. 그에게는 무엇이 옳고 그름인지 분별할 수 없고 객관적 기준이 없습니다. 자기의 현실과 비교해볼 때 객관적 기준을 보지 못합니다. 자기 가정의 모순과 고통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다 그렇게 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의 정당한 권리를 찾는 것과 희생과 사랑을 혼동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왜곡된 사람들이 자기의 욕구를 채우기 위한 거짓말이요, 거짓된 신념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죄에서, 악에서 떠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스스로가 혹 이런 방식으로 다른 사람에게 희생과 관용을 요구하는 습관이 있다면, 자기도 모르는 무의식적인 것이 있다면 예민하게 관찰해서 처리해 가야 합니다. 하나님께 내어놓고 상담을 통해서 토의도 하고 해서 바꾸어야 합니다.
6. 버림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
이것이 외적으로 드러날 때에는 양보심이 많은 것으로 둔갑할 수 있습니다. 미리 선수치는 것입니다. 이러한 두려움은 사람들과 깊이 사귀지 않고 불신하는 감정으로 자신을 방어하는 행위입니다. 예를 들어서 결혼관계에서 남편이나 아내 한 편이 상대에 비해 훨씬 더 실력도 있고, 능력도 더 있습니다. 버림받는 것에 두려움이 있는 사람이라면 열등감에 사로잡히고 먼저 선수를 치고, 꼬투리를 잡아서 이혼을 시도합니다. 직장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은 모든 인간관계에서 불신의 감정으로 자기를 방어해갑니다. 버림받기 전에 먼저 관계를 끊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건강한 자아상을 가지고 있을 때에는 진실하게 대처합니다. \"당신과 비교해보니까 모든 것이 부족하고 그래서 열등감이 생기고, 욕도 하고 싶고, 올라서고 싶기도 하고, 그런데 당신이 나를 도와달라\"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는 오히려 두려움으로부터 풀려나게 되고 극복이 됩니다. 그러지 못하고 감추고 숨기고 오히려 자기 방어로 살아가려고 할 때는, 어떤 것도 해결하지 못하고 그러면서 평생 갑니다.
7. 갈등처리와 해결에 어려움
이것은 갈등의 문제들이 많이 있는데, 그것을 처리해 가는 능력이 없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갈등을 정면으로 대면하지 않고 피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비판적 태도를 취하던가 때로는 갈등의 대상이 되는 사람을 힘으로 압도해보려 하든가, 그것이 통하지 않으면 우회적 방법을 취해보기도 하고, 상황을 교묘하게 조종하려고 합니다. 교회 직분을 맡으면 갈등을 해결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직분이 곧 시험거리입니다. 직분을 맡으면 교회 부정적인 것이 많이 보이는데 이는 그만큼 자기가 하나님의 일, 영역에 깊이 개입했다는 증거입니다. 그것 가지고 \"교회는 더럽다. 깊이 들어갈수록 신앙에 손상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갈등처리에 대한 회피입니다. 사실 자신에게 문제 해결 능력이 없는 것으로 거짓된 합리화입니다.
상처 안 받고 공동체 생활을 해낼 수 없습니다. 더구나 영적인 성숙은 상처를 받으면서 이루어집니다. 문제는 \"상처를 어떻게 처리해 가느냐\" 이것이 중요합니다. 결혼생활이든 교회생활이든 우리는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상처를 안받을수 없습니다. 상처를 주고받으며 서로를 이해하고 상처를 통해서 거짓된 합리화가 깨어집니다. 거짓된 진리, 합리화는 언제나 상처를 받도록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성장한다는 것은 진실해진다는 것입니다. 거짓된 진리, 거짓된 합리화에서 멀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봉사할 때에는 언제나 하나님 중심으로 해야 합니다. 그래서 문제가 생길 때마다 \"하나님 이 문제를 시험에 들거나 악에 빠지지 않고 창조적으로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지혜와 관용과 사랑과 용서를 주십시오\" 기도해야 합니다. 문제해결에 가장 필요한 것은 이해와 용서, 사랑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일꾼이 될 수 있다. 이런 훈련을 통해 갈등을 해결해 가면 그가 직분을 떠난 후 후에 상당히 좋은 인격으로 남아있게 됩니다. 이런 훈련을 포기한 사람은 그렇게 오랫동안 장로일, 권사 일을 보았지만 사랑도 없고, 관용도 없고, 이해도 없는 아주 초라한 인간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복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다른 각도에서 배워가야 합니다.
치유를 해가야 하는 이유는 인생을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입니다. 병들었다는 것은 매일 같이 닥쳐오는 삶의 문제들을 소화해나가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그는 먹으면 설사하고 먹으면 걸리고, 명치끝을 긁어내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치유를 통해서 어떤 것을 먹더라도 거뜬히 소화해낼 수 있습니다. 그는 어떤 문제 앞에서도 걸려 넘어지지 않습니다. \"나에게 소화가 안 되는 문제가 별로 없다\". 그것이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8. 자신의 문제들을 이야기하는 것.
치유의 첫 걸음은 자신의 내면의 문제들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상처가 많은 사람일수록 탓이 많습니다. 이는 자신의 문제를 직면할 수 있는 힘이 없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방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치유의 공부를 통해서 자신의 문제들을 이야기하게 된다면 그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자기의 내면에 담겨진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은 좋은 치유의 방법입니다. 그것은 이미 문제해결의 과정에 들어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토의사항>
1. 여기에 제시된 문제들 가운데 당신과 관계가 깊은 것부터 차례대로 기록해 보세요.
2. 당신은 그러한 문제들을 치료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려고 합니까?(성령의 도움을 받아서 주님과 함께 해 가십시오)
3. 당신은 그러한 문제들을 다루지 않고 당신이 원하는 새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