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나자신과의 만남 /내적치유

11. 나 자신과의 만남

\"중심에 진실함을 주께서 원하시오니 내 속에 지혜를 알게 하시리이다... 하나님이여 내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시편51:6,10)


지난 시간까지는 상처의 진단이었다면 이번 시간부터는 치유를 본격적으로 다룹니다. 우리는 한번 복음을 듣고 모든 내면의 문제가 치유되었다고 믿곤 합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었다고 해서 단번에 내면의 문제가 다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물론 성경적인 선언은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받아들일 때 법적으로 모든 죄는 용서받았고, 상처는 다 치유되었습니다. 그러나 상태적으로는 점진적으로 해결됩니다. 그래서 치유는 성화의 한 영역입니다.

뜨거운 부흥회에 가서 감동을 받고 어떤 계기를 통해서 예수를 믿었다고 해서, 그 순간 100% 새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고, 계속적인 경건훈련과 치유과정을 통해서 변화되어 갑니다. 어떤 사람이 문제 가정(역기능 가정)에서 자라나서 부모님, 형제들, 친구들과의 문제가 있었다면 그것들이 하나 하나 정리가 되어가고 풀려지면서 거기로부터 해방되어 갑니다.

내면의 문제, 상처의 치유에 있어서 제일 먼저 필요한 것은 상처 입은 자기 자신과의 만남입니다. 이것이 치유의 첫 조건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상처입은 우리의 모습들을 다루어왔습니다. 이 공부 이전까지는 자신이 굉장히 강한 것 같았고, 의인인 것 같았고, 나는 하나도 잘못이 없고 전부 다른 사람만 잘못해서 내가 불행했고, 그래서 어떤 문제나 갈등이 생기면 다른 사람에 대해 분개하고 비판하는 것이 습관화되었습니다. 그것이 제 2의 본성으로 자리잡게 되어 굳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공부를 통해서 \"이런 모습들은 나의 참 모습이 아니었다\" \"나는 강한 사람도 아니고, 의로운 사람도 아니다\" \"생의 불행한 사건은 다른 사람 때문이 아니고 바로 나 때문이다\". 이러한 것들을 깨닫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나 자신과의 만남이 시작된 것입니다.

모든 문제는 나로부터 해결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문제속에서, 갈등속에서 나의 문제를 보는 것입니다. 그 때부터 비로소 은혜의 실체가 느껴집니다. 기독교에서 은혜란 자기 자신과 정직한 대면이 이루어지는 때에 경험됩니다(시51:6,10). 진실한 자신의 내면세계, 죄악앞에서 \"아하, 나의 나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구나\" 이런 고백을 진지하게 하게 됩니다. \"이런 비참한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충성되이 여기시고 직분을 주셨구나\"(딤전1:13)라고 감사하게 됩니다.

치유받기 전에는 자신의 삶의 기반, 신앙의 기반은 자기 지식, 자기 의, 거짓된 정의감에 두었는데, 치유의 과정을 통해서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살고 있다\"고 깨닫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한 순간도 하나님의 은혜와 용서가 아니면 살수 없습니다. 실존의 기반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근거합니다. 그에게는 평강이 찾아오기 시작하고 마음의 복잡한 문제들이 해결되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진정한 나, 자신과의 만남을 통해서 \"나는 치유가 필요하다\". \"의원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만일 누군가 나를 완전한 사람이다, 좋은 사람이다, 실수가 없는 사람이다라는 전제를 두고 본다면, 그 사람은 그때부터 실수에 대해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실수에 대해 두려워 하고 좌절하고 아파합니다. 이것은 사실 실수 자체에 대한 스트레스라기 보다 이미 다른 사람이 나를 보는 이미지가 깨어졌다는 사실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입니다. 그래서 변명하고 합리화시키고 둘러댑니다. 내 잘못이라고 솔직히 인정하기 보다 \"이렇게 저렇게 해서 부득히 해서 그랬다\"라고 하면서 교묘하고 치밀한 궁리를 짜내서 자기의 이그러진 면을 감추려고 합니다. 이것은 자신과의 만남이 전혀 없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실수를 대하면서 다른 사람이 나를 보는 이미지가 파괴되었다는 스트레스가 아니라, 내 실수 때문에 상대방이 얼마나 아팠을까, 또 그 실수 속에서 나의 어두운 면을 보고, 내면의 상처를 발견하였다면 나 자신과의 만남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런 깨달음이 있을 때 실수를 차단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질병이나, 마음의 상처를 갖고 사는 사람들은 실수에 실수가 꼬리를 물고, 실수에 대해 거짓된 합리화를 꾸며댑니다. 이 연결고리를 끊어야 하는데, 계속 이어져 가기 때문에 치유가 어렵습니다.

치유는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지는 구원의 사건입니다. 치유는 먼저 우리의 내재아를 발견하고 나의 것으로 받아들임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래서 치유의 시작은 자신의 실수를 솔직하게 받아들이고 체면이나 이미지 손상 때문에 아파하지 않으며, 그 실수 때문에 자기 내면의 진정한 것을 바라보아, 빨리 그 문제에서 헤어 나와 연결고리에서 끊는 것입니다.

우리는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거울을 봅니다. 거울 앞에서 우리의 모습을 봅니다. 거울에 비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고 어떤 때에는 자신감을 갖기도 하고 실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거울에 비친 우리의 모습은 실상이 아니라, 우리가 꾸민 허상입니다. 거울에 비쳐지지 않은 우리의 참 모습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인격 속에 깊이 은폐되어 있는 내재아입니다.

상처입은 내재아, 허상 뒤, 거짓된 자아 뒤에 숨어있는 내재아는 억눌려 있기 때문에 가끔 충동, 꿈, 공격적 태도, 부정, 비판, 우울증, 과장, 과음등으로 자신을 나타내 보입니다. 이러한 꿈, 공격적인 태도, 충동들은 진정한 나의 모습이 왜곡된 형태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어두운 면을 우리 자신이 아니라고 부정합니다. 종교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은 이러한 것들을 사탄의 장난이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면밀하게 살펴보면 이러한 어두운 면들은 우리 안에 깊숙이 숨어 있는 내재아가 자신을 드러내는 부분적인 면들입니다. 우리가 밖으로 내보이는 면들은 무대에서 연기하고 있는 가면을 쓴 나입니다. 이런 면들이 삶의 공간을 할애하고 있으니까, 어두운 내면은 무대를 상실하고 있다가, 무대에서 내려온 밤이 되면 꿈으로, 무대에서 내려온 가정에 돌아오면 충동으로 나타납니다. 특별히 꿈은 가면의 삶이 정지된 상태에서 내면의 상태가 드러나는 것으로 가장 정직한 자신, 숨겨놓은 진실을 반영합니다(\"프로이드\" : 인간의 억압된 욕구가 나타나는 것, \"융\": 한 상황속의 마음의 표시).

생의 과정에서 상실을 많이 당한 사람들은 자기 실현이 많이 안되어서 불만스러운 욕구가 많습니다. 이들은 보통 모자란 꿈을 꿉니다(예컨대 운전을 하는데 브레이크에 발이 안닿는 꿈). 그것을 통해 자신의 삶에서 상실한
면들을 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주변 환경이나 사람들에 대해 공격, 비판, 비웃음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들은 성공한 사람들이나, 잘된 사람들을 부정적으로 보고, 허세와 과장이 많습니다. 자기실현이 안되었기 때문에 과장, 비판, 열등감이 많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인정을 구하고, 학벌에 집착하고, 명예를 추구하는데 자신의 에너지를 쏟아버립니다. 종교도 과시의 형태를 띠게 됩니다. 우리는 과거의 상실한 삶으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상실한 삶은 오직 내면에서 해결됩니다. 상호의존적이나 외적인 조건을 바꾸어 해결하는 시도는 모두 거짓된 것입니다. 무위로 돌아갑니다.

그래서 내가 내 자신과 만나지 못했다면 나는 정직하게 살지 못하는 것입니다. 말로는 하나님을 얘기하지만 실제로 하나님의 경험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은 진정한 나 자신, 상실이 많아서 자꾸 꿈에 나타나고 불만스러워하는 나를 만나주시려고 하는데, 나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과장된 모습으로 접근하려고 하니 하나님과 만남이 불가능한 것입니다. 내가 내 자신을 발견해서 \"아하, 나는 이런 사람이구나\" 이렇게 깨닫고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은총의 손길을 펴십니다. 거기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를 보여주십니다. 진실한 하나님, 정직한 하나님은 가면쓴 나를 만나주시지 않습니다. \"아하, 이게 나구나\", \"많이 상실되어 있구나\". \"많은 콤플렉스를 갖고 있구나\". 바로 그 때에 나 자신과 대면이 이루어지고, 빛이 비추어지고, 치유가 시작됩니다.

신앙생활이 내면을 보지 못하고 가면을 쓰고, 허세속으로 빠져들면 하나님께 달라는 것이 많습니다. 이것은 상실이 채워지지 않았기 때문에 계속 외적인 추구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이전에 진정한 나, 내면에 숨겨진 나를 만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진정한 나와 만나는 곳에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나의 삶을 깡그리 부숴버리고 새로 시작하는 개념이 아니라, \"내 삶을 어떻게 진실하게 살아갈 수 있겠는가\"에 대한 통찰입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도 함께 하셨고, 또 지금까지 함께 하신 하나님이 \"지금 이 자리에 나를 인도하셨다\"라고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하나님은 \"---인체\" 하는 나를 만나주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깊숙이 은폐되어 있는 참 나를 만나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만나시기 원하시는 참 나는 \"---인체 하는\" 허세의 인격, 계획하고 끊임없이 일하며(근면한 사람으로 비칠수 있다), 위축되고 두려워하는 나(겸손으로 비칠수 있다), 질투와 비판, 완벽주의(의협심이 많은 것으로 보일수 있다), 분노, 원한의 감정을 숨기고 수동적이고 공격적인, 언제나 강한 척하는 다른 사람을 불신하며 소외가운데 있는 \"이면에 있는 나\"를 만나주시기 원하십니다. 이러한 성품들은 꾸며진 것으로 제2의 생활방식입니다.

거짓된 자아로 꾸며진 나는 하나님을 필요로 하지도 않거니와 하나님을 만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과 만남을 위해 먼저 우리는 은폐된 내재아와의 만남을 가져야 합니다. 내재아와의 만남은 경험적으로 만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만나는 내재아에는 부정적, 긍정적인 경험들이 있습니다. 아래에 열거된 경험들은 상처입은 내재아의 진실된 모습입니다.

<부정적인 경험으로서 나를 만나는 것> :
①특별한 이유없이 수치감을 늘 느낀다.
②다른 사람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데 어려움을 느낀다.
③칭찬을 듣는데 상당히 어려움을 느낀다. 칭찬을 들으면 편안하지 않다.
④사건과 사람을 자꾸 통제하려고 한다.
⑤너무 지나치게 노력한다.
⑥높은 목표는 설정하지만 그것을 실천하지 못한다. 자꾸 미룬다.
⑦권위에 대해 부정적이다. 자기는 의롭다고 생각하고 의협심이 강하다고 생각한다.
⑧어린시절의 전부 또는 일부를 빼앗겼다는 느낌을 갖는다. 피해의식을 감추기 위해 가면을 쓴다.
⑨다른 사람이 원치 않을 때에도 다른 사람의 문제에 대해 순교자적 책임을 지고 희생한다.

<긍정적인 경험으로써 나를 만나는 것>
①무엇인가 모르게 자기 성취에 대한 욕구에 대해 자꾸 시달린다.
②어린아이와 같은 몸동작, 언어의 표현이 나타난다.
③미래에 대한 염려가 지나치게 많다.

이러한 경험들을 통해 우리는 \"내가 누구라는 사실\"을 다시 보게 됩니다. 그러한 나를 나로 받아들이고 그러한 내가 머무를 수 있는 내면의 공간을 마련해주어야 합니다. 전에는 지나친 상호의존성에 의해 내재아가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이 없었습니다. 상처입은 내재아에 대해 우리는 \"내가 책임져야 할 나의 일부\"라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상처입은 내재아를 긍정적으로 보기 시작할 때 내재아가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이 생겨납니다.

상처입은 나, 상실한 나, 크지 못한 나를 그대로 내보이고 싶은데, 자꾸 꾸며서, 만들어 살려고 하니까 가면을 쓴 내가 생활무대에서 연기를 합니다. 그러니까 무대에서 내려온 밤이 되면 뒤숭숭하고 평강이 없고 합니다. 이제는 그것들을 버리고 삶의 공간에 우리의 부족하고 모자라는 모습을 다 내보이고, 무대에 나와 설 수 있도록 만드는 치유로 들어가야 합니다.

내재아가 머물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면 그곳에 하나님을 모셔들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내재아가 자유롭게 머물 수 있는 공간에 찾아오셔서 내재아와 대화를 하십니다. 하나님과 내재아와의 대화는 구체적이며 단순한 대화입니다. 그전까지의 기도는 피상적인 대화입니다. 가슴이 울리지 않은 성령충만, \"오직 강하게 해주십시오\", \"사랑하게 해주십시오\". 이러한 기도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내면의 세계는 언제나 공허합니다.

내재아를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면 하나님과 대화가 많고 깊어집니다. \"하나님 아버지, 나는 어릴 때 이런 이런 문제 때문에 많이 고통했어요. 그 때 울고 싶었는데, 울지 못하고 살았어요\" 이렇게 되면 눈물이 펑펑 쏟아질 수 있습니다.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근육이 풀려나가는 느낌을 가질 수도 있고, 뭔가 속에서부터 자유케 되는(릴렉스)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우리 자신으로 돌아올 때에 하나님과 진정한 대화가 이루어집니다. 그렇지 않으면 피상적인 대화, 남을 의식하고, 초조감과 불안 속에서 시간을 채우기 위해서 기도합니다. 내재아를 받아들일 때 불안에서 해방되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담담함, 평강, 안식이 내면에 이루어집니다.



<토의 문제>
1. 당신의 일상생활에서 경험할 수 있는 내재아의 면들은 어떤 것입니까?(긍정적, 부정적)

2. 현재 당신이 성취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그것은 어떤 것입니까?

3. 당신의 삶에 하나님이 계실 공간이 계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