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상호의 존엄성과 영적인병

10. 상호의존성과 영적인 병

\"여러분은 머리를 치장하거나 금붙이를 달거나 옷을 차려입거나 하는 겉치장을 하지 말고 썩지 않는 온유하고 정숙한 마음으로 속사람을 단장하도록 하십시오. 이것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값진 것입니다\"(벧전 3:3-4, 새번역성경)

상호의존적인 삶은 역기능적인 성장환경에서 자라나, 어린 시절 자연스럽게 충족되어야 할 욕구들이 억압되거나 좌절된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삶의 특성들입니다. 상호의존적인 삶은 심리적인 질병과 영적인 질병을 가져옵니다. 지난 시간에 살펴보았듯이 심리적 질병은 다른 사람과의 생각, 의지, 감정의 교류가 되지 않는 상태를 말합니다. 심리적 질병을 안고 있으면 생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부정적인 문제들을 해결해가지 못하고 오히려 충동적이고 파괴적으로 확대해갑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상한 마음이 치유되면 생의 문제들을 바르게 소화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치유의 증거는 삶의 문제들을 긍정적이고 창조적으로 바꾸어 가는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능력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지속될 때 나타납니다.

그래서 치유는 결국 영적인 회복, 즉 하나님과 관계회복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바로 되어 있으면 생의 위기나 좌절이 왔을 때 하나님과 깊은 교류를 통해서 그 문제의 해답을 얻게 됩니다. 그런데 심리적 질병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과의 교류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교류가운데 오는 에너지, 그 힘은 우리에게 삶의 의미, 희망을 주고, 부정적인 문제들을 긍정적으로 해소해 나가도록 하고, 생의 목표를 새롭게 설정해 나가도록 만들어줍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교류가 되지 않으면 분노, 고립감(소외감), 원한, 오해등 여러 가지 문제들을 감당할 수 없고 그것이 쌓여지고 심리적 질병을 뛰어넘어 육체적인 질병까지 가지고 옵니다. 불치의 병인 암은 \"경직되다\"라는 의미가 있다는데, 실제로 암에 걸리기 쉬운 사람은 부정적인 감정을 발산을 하지 못하고 내향적으로 삼키기만 하는 사람입니다. 이들은 어릴 때부터 역기능적인 가정에서 부모의 사랑을 깊이 받지 못하고, 충분히 양육되지 못한 가운데 성장하여, 지나치게 내향적으로 굳어져 있는데, 이들은 사건을 왜곡해서 분노, 서러움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쌓여서 결국 파국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과 교류가 단절된 사람은 문제의 대부분이 다른 사람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되면 결국 문제는 풀리지 않고, 화해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교류가 회복되어 가는 증거(건강한 자아)는 문제의 원인을 자기 자신에게 돌립니다. 거기서 해답을 얻습니다(코비; 모든 자기개선의 출발점은 나 자신의 개선에서 이루어진다).

인생은 문제없이 살수 없습니다. \"폴 트루니에\" 박사는 인생을 장애물 경기인 뜀틀에 비유했습니다. 경기중에 장애물, 모래주머니, 사다리등이 놓여 있는데, 건강한 자아를 가진 사람은 뜀틀을 넘을 때 떨어지면 툭툭 털고 일어납니다. 그리고 계속 뜁니다. 그러나 병든 자아를 가진 사람은 뜀틀에서 떨어지면 그 자리에서 \"이것은 누구 때문이다\"라고 원망하며 주저앉습니다. 문제의 원인을 지나치게 확대하고 다시 뛰어넘을 생각은 안하고 좌절하고 방치합니다. 이 상태에서 생의 에너지를 소모하기 때문에 다시 뛰는 일에 무기력해집니다.

신앙생활을 해도 문제는 여전히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 안에서는 문제를 쉽게 풀어갈 수는 있습니다. 왜냐하면 신앙 안에서는 문제를 생각하고 보는 관점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두 사람이 똑같이 10억원의 손해를 봤는데, 자아가 건강하지 못한 사람은 그것 때문에 완전히 폐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아가 건강한 사람은 그 10억 때문에 100억 이상의 보화를 얻게 됩니다. 이것이 예수 믿기 전과 예수 믿은 후의 차이점입니다.

이렇게 삶을 긍정할 수 있는 참된 힘은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참된 힘이란 희망, 기쁨, 의미, 용서, 목적등을 말합니다. 이런 것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생명력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삶을 생동감 있게 만듭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생명의 기운이 없다면 그것은 죽은 삶입니다. 모든 살아있는 것은 생명의 기운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생명의 기운을 소진시키고 방해하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질투, 미움, 증오, 좌절, 시기, 낙심, 무의미성들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생명을 소진시키고 생명의 활동을 둔화시킵니다. 그래서 생명의 흐름이 자꾸 차단됩니다. 생명의 흐름이 차단될 때 거기에서 문제들이 생깁니다. 특히 미워하는 것은 유리에다 굵은 모래를 갖다 대고 비벼대면 상처가 생기는 것과 같습니다. 이렇게 미움은 생명의 손상을 가져옵니다. 생명을 고갈시킵니다. 하나님과의 교류가 있을 때 이런 것들을 극복하고 생명을 원활하게 맑게 흐르게 만듭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에너지입니다.

하나님과의 교류는 거짓된 자아, 상호의존적인 관계의 삶에서는 불가능합니다. 허세, 과장, 남의 비위를 맞추는 것, 가면을 쓰는 것으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보통 두 가지 유형의 인간이 있습니다. 먼저 표면적인 것(외적행위, 제물등으로 하나님을 만나려는 사람입니다(바리새인). 이것은 거짓된 자아로써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죄인을 부르러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의인인척 하는 \"나\"를 만나시는 것이 아니라, 의로움, 가면 뒤에 숨어있는 상처와 문제를 안고 있는 나를 만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화가와 청소부). 생의 순간을 돌이켜보면 내가 죄인이고 약하고 아파할 때 하나님의 큰 위로를 경험합니다(시51;17). 이것이 바로 참 자아가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거짓된 자아에 길들여진 사람은 하나님을 만나지 못합니다. 거짓된 자아를 가진 사람은 자꾸 겉사람만 단장합니다.

인간은 세 차원의 관계에서 살고 있는 존재입니다. 1)나와 나 자신, 2)나와 다른 사람, 3)나와 하나님과의 관계속에서 살아갑니다. 나자신이란 내재아를 말합니다. 나 자신과 관계를 회복해가는 것은 자신에게 정직해져 가는 것입니다. 나와 다른 사람 관계는 진실한 인간의 교류를 맺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란 복받고 출세하고 하는 관계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진정한 교류를 말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하나님과 교류가 없이 살아갑니다. 거기서 오는 만족이 무엇인지 모르고 무엇인가 내게 필요로 하는 것을 받아내는
것을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늘 목마릅니다. 무의미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불행한 것은 돈이나 큰 집, 좋은 차등 외형적인 것이 없어서 그렇다고 생각하는데 이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우리는 문제해결의 관점을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합니다. 자신, 다른 사람, 하나님, 세 관계가 바르게 될 때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아갑니다.

상호의존적 자아는 자기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과 바른 교제를 갖는 것이 어려울 뿐 아니라, 하나님과의 교제도 어렵습니다. 피상적이고, 거짓된 자기로 다가가고, 가면을 쓰는 자기로서 만나려고 합니다. 참 자아의 욕구는 단지 육적인 욕구만뿐만 아니라 영적인 욕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영적인 단절은 인간이 존재해 가는데 필요한 근원적인 에너지를 공급받지 못하도록 합니다. 영적 에너지를 공급받지 못하게 될 때 사람은 정신적으로 좌절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좌절은 삶 전체를 포기하도록 만듭니다. 또는 좌절을 해결하기 위해 자꾸 외부적인 것에 심취하려고 하고 거기서 뭔가 맛보려고 합니다.

하나님과 영적으로 단절된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습니다.
(1)하나님으로부터 도움이나 관계를 맺는 필요를 부인한다.
악인은 하나님이 없다고 말한다.
(2)수치심이나 죄책감으로 인해 자기학대의 실존에 기반을 둔다.
실존의 기반이 희망, 의미, 평안이 되지 못하고 수치심, 죄책감에 둠으로써 자기를 의식하고 자기가 살아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없으면 자기가 이상하게 느끼고, 거기에 빨려 들어가고 빠져나오면 다시 빨려 들어가고 이렇게 반복하면서 존재의식을 갖는다.
(3)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을 가장하여 수치심, 죄책감을 숨긴다.
(4)자신의 수치심, 죄책감에 대한 해답을 자기 자신 밖에서 찾는다.
(5)우리가 행복해지는데 필요한 것이 우리 안에 어떤 것(외부적인 것)이 결핍된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불행한 원인은 외부적인 것들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생각하면서 학위, 집, 차, 보이는 영적 은사들을 열렬히 추구한다.
(6)인간이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는 것을 부인하고 언제나 사람에게 어떤 특별한 행위에 기대를 건다.
피조물은 하나님께 복종해 가는 삶을 기대하지 않고, 언제나 수평적인 관계에서 기대를 걸면서 살아간다.
(7)모든 이에게 돌아갈 만큼의 사랑에는 한계가 있다고 확신하는 결핍의 원리에 근거를 둔다.
하나님의 사랑은 무한대의 사랑인 것을 부인한다. 이는 사랑을 느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8)언제나 분노와 원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9)불행의 원인이 다른 사람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10)상호의존적 자아가 수치심과 죄책감을 투영함으로써 다른 사람을 공격하는 특별한 관계를 사용한다. 더불어 구원, 행복과 자기 실현을 스스로에게 약속한다.
스스로에게 이중 삼중의 수치감을 부여하고, 굉장히 이상적인 것을 이야기 한다(현실도피, 유토피아적인 환상). 다른 사람을 신랄하게 공격하면서 \"나는 저렇게 되지 않을 것이다\"라고 다짐한다. 성자 추구 의식을 지향하면서 이상적인 자기를 말하고 진정한 자기를 감춘다.

반면에 영적으로 건강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집니다.
(1)실존의 근거가 하나님의 사랑, 참 자아, 높은 자아에 근거를 둔다
스스로에게 수치심과 죄책감을 부여하지 않고, \"하나님이 나를 극진히 사랑하고 있다\" \"나는 은혜로 살고 있다\"라고 고백하는 사람은 실존의 기반이 건강하다. 하나님께 대한 감사가 많을수록 속사람이 건강하다. 그러나 불평이 많을수록 건강하지 못하다.
(2)나는 모든 사람 안에서 사랑이 있다는 것을 본다(사랑에 제한이 없다)
(3)나는 나 자신의 내면을 보면서 내 고통에 대해 책임을 갖는다(남 때문이 아니다)
영적으로 건강한 사람일수록 책임을 전가하지 않기 때문에 진실된 회개가 있다. 이것은 두려움, 공포 가운데서 드려지는 피상적인 입술의 회개와 다르다. \"하나님, 우리 가정의 문제를 가만히 보니까, 내 아내, 내 아들, 내 어머니 때문인줄 알았는데 결국 나 때문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깊이 깨닫고 눈물을 흘릴 때 거기에서 하나님과의 만남이 있습니다. 변화의 기적이 일어납니다.
(4)나는 나의 수치심, 죄책감, 상처, 분노, 원한을 용서의 과정을 통해 처리하며 해소해 간다. 자신의 모든 문제를 용서와 사랑으로 해결해간다
(5)나는 오직 사랑의 충만함을 인정하고 그것의 결핍의 원리는 환상이라고 시인한다.
문제의 관점을 사랑의 결핍이라고 본다. \"사랑이 없어서 우리 가정이 문제구나\" \"사랑이 없어서 우리 교회가 문제구나\". 사랑의 무한성, 충만함, 사랑의 능력을 인정하고 살아간다. 믿음이 충만할수록 하나님의 사랑이 충만하다. 이것을 시인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공급받아가는 사람, 그런 사람일수록 윤리적으로 온전해진다.
(6)나는 내 안에 아무것도 결핍된 것이 없으며(존재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교류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하나님의 완전한 자녀요, 나의 본래의 상태는 평온함이라는 사실을 안다. 불안, 초조, 수치심 이런 것들은 나의 본래의 모습이 아니다.
(7)나는 나의 적극적인 자아를 존중한다. 그것을 나의 성장의 도움으로 사용한다.
(8)나는 매일 영적훈련을 한다.
영적으로 건강한 사람일수록 영적 훈련의 소중성을 안다. 하루라도 안하면 벌을 줄 것이라는 형벌의 두려움에서 아니라, 영적훈련을 안하면 하루 생활이 힘들어지는 것을 안다. 이것을 알기 때문에 말씀의 창을 통해서 하나님과 만나는 일을 중요한 일과로 알고 실천한다.
(9)나는 현재순간에, 거룩한 순간에, 현재에 살고 관계를 맺고 있다.
상호의존성의 가장 큰 문제는 현재를 누리지 못한다. 과거나 미래를 자꾸 생각한다. 과거에 대한 아쉬움, 후회가 많고, 원한이 많다. 미래에 대해서도 이루지 못할 일을 자꾸 이야기하고 현재에 충실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성장과정에서 \"현재를\" 향유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기의 삶이 없었다. 늘 어머니, 아버지의 비유를 맞추고 상사의 비위를 맞추고 억압된 기독교 교리에 의해서 5살짜리 아이가 40, 50대 기독교인의 삶을 강요받고, 어린아이, 개구장이의 모습을 억압한 사람은 몸은 현실에 있는데 정신은 자꾸 과거, 미래에 머문다
(10)관계성에서 나는 개방적이며 의사소통을 잘 하며 신뢰하며 부드러우며 평화로우며 기뻐하며 감사한다.


<토의문제>
1)당신은 지금까지 생의 행복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해왔습니까?

2)당신이 하나님을 신뢰하는데 제일 큰 장애물이 무엇입니까?

3)당신은 당신의 생애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느껴본 적이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