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일그러진 자화상 / 내적치유

6. 일그러진 자화상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마 16:26)


모든 사람에게는 \"이면의 세계\"가 있습니다. [찰스 핀]의 시에 의하면 \"내가 말하지 않는 나\"입니다. 이를 \"내재아\"(inner child)라고 합니다. 이는 우리 자신도 잘 모르기 때문에 영혼, 자아, 무의식 세계로도 표현하며, 감정의 세계, 정신적인 세계, 영적인 세계로 볼 수 있습니다. 내재아는 실제 여인의 태속에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내면의 세계입니다. 이를테면 내가 원치 않는데도 아파하고 우울해지고, 나는 그렇게 안 하려고 하는데 자꾸 미워지고, 거짓말이 나가고 하는 세계를 말합니다. 내재아는 막연하고, 모호한 개념이기 때문에 이를 구체화 시켜야 합니다. 그때에 비로소 구체적인 치유가 이루어집니다. 내면의 세계, 이면의 세계를 구체화한 것을 \"내재아\"로 부릅니다.

내면의 세계에 들어있는 내재아는 순수하고 자발적이고 남과 관계를 맺고 싶어하고, 거짓없이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하는 순수한 모습을 말합니다. 내재아는 양육이 필요합니다. 내재아의 양육은 우유나 젖만 가지고 안되며, 감정적이고 정신적이고 영적 차원의 양식이 필요합니다. 부모나 주변 관계인들로부터 사랑과 격려, 인정과 칭찬, 용납과 지지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대부분 사람들의 내재아는 잘 양육되지 않고, 영양실조에 걸린 것과 같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자라서 어머니가 되고, 아버지가 되고, 부정적인 사람들이 생겨나고 대물림이 되고 단절이 되지 않습니다.

내재아가 바르게 양육되고 건강할 때 그 증거는 평강입니다. 내재아가 웃고 자발적이 되고 자기의 본래모습을 찾아갈 때 평강이 깃듭니다. 내재아가 고통스러워하고 아파하고 우울해하는데, 세상의 어떤 것이 주어져도 진정한 평강이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문제를 보다 근원적인 차원에서 보고 찾아가야 합니다. 예를들어 아무리 노력해도 사람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문제는 안 되는구나 하는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합니다. 그 원인에 대해 좀 더 깊은 차원에서 원인을 분석할 때 문제의 본질을 찾게 됩니다. 이렇게 우리가 우리 자신을 바르게 이해해갈 때 하나님도 바르게 이해해 갑니다.

\"성인아이\"란 상처 입은 내재아를 말합니다. 내재아가 너무 일찍 너무 많은 상처를 입어 성장이 중단된 상태에서 성인이 된 사람은, 내면의 세계에서 어린아이 시절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고통받고 그것과 관련되어서 스트레스를 받고 합니다.

또한 \"조숙한 아이\"는 4살 - 6살 사이의 아이로서, 이들은 역기능 가정에서 부모의 비위를 맞추고 부모를 즐겁게 하려고 하고, 어른과 같이 행세하는 아이를 말합니다.

성인아이, 조숙한 아이가 치유되어 내재아가 환하게 웃고 있을 때 마음의 평강이 옵니다. 내재아의 회복을 위해서는 먼저 일그러진 내재아의 상태를 인식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앞에서 화해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일그러진 내재아, 일그러진 자화상을 파악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내재아는 어린시절에 신체적으로, 성적으로, 정신적으로, 정서적으로, 영적으로 학대를 받았을 경우에 일그러질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에 손찌검, 구타, 고문등 육체적 학대를 받고 자란 아이는 성인아이가 됩니다. 이들은 나이가 들어도 사고하거나 행동하는 것, 느끼는 것이 어른답지 못합니다. 또한 성적학대를 받으면 심한 수치감과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만나기도 참 어렵습니다. 심하면 술이나 마약으로 중독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이웃들 중에는 돈이나 물질로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운데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주님은 너희가 목마를 때 그들에게 마실 것을 주었느냐? 배고플 때 먹을 것을 주었느냐? 헐벗었을 때 입을 것을 주었느냐고 물으십니다. 이는 단지 물, 음식, 옷이 아니라, 내면 깊은 곳의 목마름, 주림, 헐벗음을 말합니다. 현대인의 정신, 정서, 영적 세계는 더욱 황폐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들의 근본문제를 이해하고 도와줄 하나님의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또한 영적 학대가 있습니다. 어린시절에 역기능 가정에서 자라나 성인아이가 된 이들의 부모들을 보면, 두 유형으로 나누어집니다. 먼저 아주 무신론자가 되어서 나타나서 자녀들이 교회나 다른 종교를 갖는 것을 극구 막아버리는 유형입니다. 또 하나의 유형은 부모가 광신자가 되어서 아이들을 광신도로 만드는데 끌어들입니다. 두 유형이 다 잘못된 것입니다. 역기능적인 가정에서 자라나고, 성장과정에서 내면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사람들은 대개 광적인 신앙패턴이 나타납니다. 또한 그것을 자녀들에게 강요하게 되는데, 그러한 부모들이 이해하고 있는 하나님은 \"진노의 하나님\", \"형벌의 하나님\"의 개념을 갖고 있습니다.

영적, 정신적, 육체적 학대로 인해 참 자아를 상실한 사람은 세상의 어떤 것을 성취했어도 무익합니다. 오히려 탕진하고 사회적인 해를 끼칩니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얼굴 생김새나 외형에 자신감이 없을 때 자신을 드러내기를 꺼려합니다. 마찬가지로 진정한 의미에서 우리 자신이라 할 수 있는 참 자아(내면의 세계: 내재아, 영혼, 마음)가 상처를 입게 될 때 우리 속에 깊숙이 숨어버립니다. 그 대신 더욱 더 상호의존성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내재아의 부재는 우선 내적인 공허를 가져옵니다. 그 때 우리는 그러한 내적 공허를 외부의 것으로 채워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가 우리의 공허한 감정을 충족시켜주지
못합니다. 오히려 순간적으로 되풀이되는 감각적인 경험들은 우리 자신을 중독으로 빠뜨려갑니다.

이러한 삶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은 통제력이 없어지면서 인격의 경계선이 무너집니다. 절제능력을 상실하게 되어 일이나 인간관계를 맺는데 있어서 어디에서 시작하고 어디에서 끝나야 할지 모르게 됩니다. 또한 우리의 감정이 포함되어 있는 내적 생명(내재아)과 관련을 맺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 자신의 감정과 멀어지게 됩니다. 진정한 참 자아의 감정을 숨겨놓았기 때문에 자꾸 꾸밈의 감정, 꾸밈의 미소가 나타납니다.

그러나 이러한 꾸밈의 감정들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공허, 낮은 자존감, 수치심, 혼란, 무감각으로 바뀌게 됩니다. 이러한 부정적인 감정을 감추기 위해서 다시 자신을 위장하게 됩니다. 육체적인 증상들로 피부색깔도 거칠어지고, 눈매가 이상하게 되고, 화장을 짙게 하게 되고, 위장하려고 하고, 이야기하면서 얼굴을 들지 못하고, 모션을 써서 시선을 끌려고 하는데, 한편 그의 삶은 상당히 피곤을 느끼고, 사람들 만나기가 싫고 외부출입을 싫어합니다.
이미 전과에서 언급한 바 있지만 이들에게 가장 어려운 것은 관계성의 어려움입니다. 진실한 인간관계를 맺는 능력은 내재아에서 시작되는데, 내재아가 상처를 입으니까 진정한 관계를 맺는 것이 어렵고, 피상적이 됩니다. 그러한 사람은 다른 사람과는 물론 전능하신 하나님과도 올바른 관계를 맺어갈 수 없습니다.

일그러진 자화상은 상호의존성을 추구하게 됩니다.
그 발전단계는 첫째 자신의 관찰, 감정, 자연스러운 신호들을 무시하고 억제합니다. 이러한 신호들은 자동차의 경고등(warning lamp)과 같이, 꿈이나 불면증, 우울증으로 찾아오기도 합니다. 신호가 켜지는데 무시하고 억제해 버리고, 오히려 그것을 믿음이라고 생각하며, 지나친 야망을 추구하는 것으로 대체합니다. 그러나 지나친 야망은 내재아가 어릴 때 성장하지 못했을 때 보상하기 위한 것이며, 야망이 커지면서 야망의 노예가 되어가고, 나아가 2인, 3인, 5인의 역할을 하다가 쓰러지기도 합니다. 이러한 신호는 육체적으로도 나타납니다. 육체는 영혼의 옷과 같아서 영혼이 고통스러울 때 메시지로 나타납니다.

두 번째 의존성 발전단계를 보면, 자기 자신의 자연스러운 욕구를 채우는 것을 등한시합니다. 여기서 자연스러운 욕구란 외적인 허세를 꾸미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성형수술을 하거나, 비싼 옷을 사 입거나, 좋은 차를 사려는 욕구는, 내면의 욕구는 강렬한데 그것을 알아듣지 못해 외적인 것으로 해결해 나가려는 것입니다. 자연스럽고 진정한 욕구는 하나님을 만나려고 하는 욕구, 사랑하는 욕구, 좋은 가정을 이루려고 하는 욕구, 사회와 공동체를 유익하게 하며, 자기를 실현하려는 욕구들입니다.

세번째 의존성의 발전단계는 자신의 참 자아를 억제합니다. 대신에 엉뚱한 것을 키워나가게 됩니다. 넷째로, 가정, 가족의 비밀을 자꾸 부정해 버립니다. 다섯째로 가중되는 정서적 고통들을 참아내려 하면서 결국 감정을 마비시킵니다. 분명히 정서적으로 미묘한 고통이 오는데도(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의 고통들), 이를 마비시켜 갑니다. 여섯째 상실을 아파하고 슬퍼하는 경험들을 통한 성장이 불가능해집니다. 아파할 때 아파하고 슬퍼할 때 슬퍼하고 이야기하고 싶을 때 이야기할 때 내재아는 성장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차단되고 억제되고 마비될 때 성장이 중단됩니다.

일곱 번째로 의존성의 발전단계는 충동적인 행동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숨겨진 참 자아가 충동적인 행동으로 나타났을 때, 그가 보수적인 종교인이라면 충동을 표현한 이후에 심한 가책을 느낄 수 있습니다. 표출하여 잠시라도 고통을 완화시키려는 행동이 겉으로는 충동적인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충동은 변칙적인 행동이나 죄악이 아니라, 억제된 참 자아가 진정으로 자기자신이 되어보고 싶은 욕망이 과격한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여덟 번 째 발전단계는 수치심을 점점 더 느끼고
여덟 번 째 발전단계는 수치심을 점점 더 느끼고, 자존감을 점점 상실해갑니다. 아홉 번째는 통제에서 벗어나고 싶은 감정의 단계에서, 자꾸 더 통제할 필요를 느끼게 됩니다. 자기자신은 물론이거니와 가정에서 가족이나 동료들에 대해서 통제의 시도를 합니다. 열 번째 발전단계는 고통을 다른 사람에게 투사합니다. 열 한번째는 스트레스성 질병이 나타납니다. 마지막으로 열 두번째 단계는 더욱 더 악화된 증세가 나타납니다(불쾌감, 알코올중독, 무기력증, 지나친 완벽주의).

이와같은 육체적, 정신적, 정서적, 영적 학대는 일그러진 자화상을 가져오고, 이러한 자화상은 12단계의 증상들로 구체적으로 나타납니다. 기독교의 치유는 이러한 일그러진 자화상들을 놀라거나 적대시하지 말고, 나의 것으로 인식하며, 너그러운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안에서 화해해 가는 것이며 곧 치유입니다.


< 토의문제 >
1. 당신의 생애에서 기억나는 것들을 아래 항목에서 분류해보십시오.
1)육체적 학대 혹은 혹사, 상처들이 있었는가?
2)정신적 학대, 혹은 혹사, 상처들이 있었는가?
3)정서적 학대 혹은 혹사, 상처들이 있었는가?
4)영적 학대 혹은 혹사, 상처들이 있었는가?

2. 아직도 당신에게 아픔을 주는 문제는 어떤 것들입니까?

3. 그러면 문제를 가지고 상담가를 찾아가서 의논해본 적이 있습니까? 없다면 왜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까?

4. 당신은 성장과정에서 입은 영적, 정신적, 육체적 상처에 대해서 하나님께 상세하 아뢰 어 본 적이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