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나는 누구인가?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시 51:17)
모든 사람은 치유와 성장이 필요하다. 예수께서 의원으로 오신 것은 이 때문이다.
성장의 의미는 나이가 먹고 키가 크는 육체의 발육뿐 아니라, 내면의 자아(내재아, 어린아이와 같은 본성,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순수한 본성)가 잘 양육되고 성장되어 가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 성장되지 않고 육체만 발육되면 성인아이가 된다. 그는 겉으로 볼 때에는 어른이지만, 어릴 때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것 때문에 계속 고통을 받고 그 문제에 얽매여 있다.
치유의 의미는 진정한 내 자신의 성장을 방해하는 요인들을 찾아내서 그것을 회복시켜 가는 것으로, 어른다운 어른이 되어 가는 것을 말한다.
치유를 위해 중요한 것은 진단이다. 그 진단은 두 가지 관점에서 이루어진다. 먼저 객관적인 관점으로 심리학적인 관점에서 문제를 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주관적 관점으로 영적인 차원에서 보는 것이다. 즉, 하나님과의 관계, 신앙적인 관계에서 해답을 추구한다.
한편으로 객관적인 진단은 과학적인 것으로 주로 분석하는 것이다. 문제의 성질, 원인, 발생동기를 밝혀준다. 또한 주관적인 진단은 의미와 목적에 관한 것이다. 치유의 핵심은 객관적 차원이 아니라, 영적인 차원에 있다.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했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자신으로 살아가기를 원한다. 자기자신이 되어가기 위해서는 상실된 자기자신을 찾아내는 노력이 필요하다. 본 과의 목적은 상실한 자기자신을 찾아가는 것이다.\"
[칼 융]은 60년대 초반 스위스에 [융 연구소](심리치료연구소)를 세우면서 이렇게 말했다. \"여기 오는 사람들이 나와 같은 사람들이 되라고 연구소를 세운 것이 아니다. 여기 온 사람들이 자기 자신이 되어 가는 길을 배우기 위해서 이 연구소를 세웠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자신이 되어가지 못하고 살아간다. 그 결과 상실한 삶을 살아간다. 하나님은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자신이 되어가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이 보시는 자기자신은 외형적인 것으로 \"꾸며진 내\"가 아니다. 사람들은 흔히 자신을 말할 때 자신의 직업, 경제적 자원, 사회적 위치, 가문, 외모, 학식, 종교적 신앙, 직분등을 가지고 말한다. 이러한 외형적인 것들을 일종의 \"마스크(가면)을 쓴 나\"이다. 하나님이 보시는 \"진정한 나\"는 마스크를 벗은 나, \"가면 뒤의 나\"를 말한다.
<가면을 쓴 나>
치유가 필요한 사람은 \"가면을 쓴 나\"와 \"가면 뒤의 나\"사이에 격차가 크다. 그에게는 비밀, 감추는 것, 꾸미는 것이 많고, 대중 앞에 섰을 때와 떠났을 때의 차이가 많다. 기독교인도 그럴 수 있다. 예수님은 그들을 가리켜 외식하는 자요(외식: 무대 위의 연기자), 회칠한 무덤이라고 하셨다. 율법주의의 약점이 여기에 있다. 치유의 대상이 되는 \"진정한 나\"는 \"가면 뒤에 숨겨진 나\"이다. 내가 소외시키고, 내 삶 속에 참여시키지 않고, 억압했던 나를 말하는 것이다(\"내가 말하지 않은 것들을 들어주세요\" - 찰스 핀 -).
\"찰스 핀의 시\"에는 \"두 개의 나\"가 나타나 있다. 하나는 \"가면을 쓰고 있는 나\", 다른 하나는 \"가면 뒤에 숨겨진 나\"이다. 치유의 대상은 \"가면 뒤에 숨겨진 나\"이다. 치유는 가면 뒤의 나를 적나라하게 대면하고, 바라보는 데에서 시작된다. 내가 누구인지 평생 만나보지 못했을 나를 만나보는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진정한 내가 얼마나 외로웠는가?, 진정한 나를 뒷전에 팽개치고 살아왔는가?를 발견하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찰스 핀]의 시속에 있는 \"가면을 쓰고 있는 나\"를 자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가면을 쓰고 있는 나\"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겉으로 나타내 보이기 위해 \"꾸민 나\"이다. 이 가면을 벗는 것은 자신을 용기 있게 드러내는 것을 말한다.
<가면 뒤에 있는 나>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은 \"가면 뒤에 있는 나\"를 가지고 나아간다. 가면 뒤에 숨어있는 나는 진정 \"내가 되고 싶어하는 나\"이다. 그러한 나는 무엇인가 창조하고 싶고, 모험하고 싶고, 피상적이 아닌 진실한 관계를 맺으며 살고 싶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표현해 가고 싶어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자신과 관계를 맺고 살기 보다, 다른 사람보기에 칭찬, 호감, 겉보기, 명성에 의존하며 살아간다.
사람들은 자신의 약점, 부족한 점들을 드러내지 않고 그러한 것들을 감추려고 한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강하게, 훌륭하게, 아름답게 비쳐지기를 원하기 때문에 가능한 한 자신을 꾸미게 된다. 특히 어린 시절 문제가 많은 사람일수록 외면 지향적인 삶을 살아간다. 그들은 어릴 때부터 부모의 비위를 맞추어야 했고, 부모로부터 성장에 필요한 충분한 양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자기자신의 표현을 두려워하게 된다. 부모가, 특히 어머니가 늘 자식에게 위로를 요구하는 표정을 짓고 있으면 이 아이는 자기자신이 되려는 표현을 감추고 그 대신 아버지의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런데 이는 거짓말이고, 꾸미는 것이다. 어머니는 조숙하다면서 대견스럽게 생각하지만 아이는 크면 클수록 문제의 사람이 되어간다(성인아이는 아이답지 못하고 성인역할을 한 아이를 의미한다). 이들은 성장후에도 자신의 내면의 문제를 직시하거나 해결하지 못하고, 이로인해 오는 공허와 무의미성을 외부로부터 채우려고 한다. 그래서 술이나, 도박, 일시적 쾌감을 주는 성적인 일에 탐닉하게 되고, 그러한 경험이 반복되면 중독증(술, 노름, 돈, 섹스)에 시달린다. 이것은 내면을 방치한 결과 오는 당연한 현상들이다.
\"가면 뒤에 숨어있는 나\"는 매우 슬프고 고독하고 소외된 나이다. \"가면 뒤의 나\"는 때때로 분노하고 반항한다. 그 고통이 꿈을 통해 나타나거나 불쑥불쑥 충동적으로 나타난다. 사실 \"충동적인 행위\"(욱하는 성질)는 내면 깊숙이 자리잡은 진정한 자기 자신의 표출이다. 억압되고 소외되어온 \"가면 뒤의 나\" \"진정한 나\"가 분출되는 것이다. 즉, 진정한 자기자신이 되어보고 싶은 욕구이다. 그래서 충동의 순간은 자기자신을 만나는 순간이다. 충동을 윤리적으로만 보면 안된다. 충동이 주는 사인, 이면의 언어를 읽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을 용기 있게 드러내고 대면해 나갈 때 치유가 이루어진다.
충동을 가져오는 상실과 비밀은 대부분 상처로 남아있게 된다. 그러한 상처는 때때로 기대하지 않던 때에 불쑥 불쑥 나타나 그를 괴롭힌다. 상처가 되살아날 때 주로 수치감, 복수심, 원한, 후회, 열등감과 같은 감정을 느끼게 된다. 상처로 인해 생겨난 부정적인 느낌들은 억압, 일의 몰두, 도박, 마취적 집착활동(종교활동까지도 포함)으로는 결코 해결되지 못한다. 오히려 문제를 더욱 악화시켜간다. 어떤 이념이나 종교적 교리, 도덕적 훈계로도 해결되지 못한다. 드러내는 아픔, 직면하는 고통속에서 임재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으로만 치유된다.
많은 사람들이 지난날의 상처로 고통을 받고 있다. 그들이 부모가 되었을 때 이 상처는 자녀들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게 된다. 부모로부터 영향받은 자녀들이 치유되지 않고,
성인이 되고, 가정을 이룰 때에 상처는 대물림을 하게 된다.
예컨대 자기 속을 전혀 드러내지 않는 완고한 남편이 있다고 하자. 그에게는 이면에 숨겨진 것이 많다. 그것은 성장과정에서 치유되지 못한 것이 많다는 증거이다. 그것을 외적인 것으로, 일에 몰두하고, 술로 해결하고, 성공에 집착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집착하는 것으로 보상받으려고 한다. 그에게 있어, 인간관계는 정치적이며, 피상적 관계로 얽히고 섥히고, 그렇게 살다가 사업가, 정치가로 성공할 수 있지만,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성공은 아니다.
내면의 문제는 전혀 다루어지지 않은 채 피상성 속에서 평생을 살게 된다. 그에게 최후의 고통이 다가오는데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 때까지 해결되지 않고 방치되어온 \"진정한 자기자신\"이 보상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외적인 성취만을 추구하면서, 일생동안 방치하고 소외시키고 억압시킨 내재아가 보상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것은 영혼의 시간에서 신음하는 것으로, 다름 아닌 지옥의 시작이다.
치유는 소외시킨 진정한 자아, 가면 뒤의 나를 발견하고, 하나님의 은총으로 해결해 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총의 자리는 지금까지 부인하고 소외시키고 억압했던 상처 입은 자기 자신(가면 뒤의 나)을 대면하는 데에서 자리이다. 그것들을 드러내면서 아파하면서 눈물 흘리게 된다. 또한 은총의 자리는 지난 날, 자기가 보지 못했던 자기자신을 보는 순간이기 때문에 슬픔의 자리이기도 하다. 거기서 하나님의 치유의 손길을 경험하며, 그 경험을 통해 새롭고 자유로운 삶의 자리로 나아간다. 이것이 진정한 자기자신을 회복하는 길이다.
(토의문제)
1. 당신이 지금 벗고 싶은 가면은 어떤 것입니까?
2. [찰스 핀]의 시를 읽고 난 소감을 얘기 해보십시오.
3. 당신이 진정 되어가고 싶은 당신은 어떤 것입니까?
내가 말하지 않는 것을 들어주세요
나에게 속지 말아주세요. 내 표정에 속지 말아주세요.
나는 가면을, 수천개의 가면을 쓴답니다.
나는 가면 벗기를 두려워하지만,
그 어느 가면도 참된 나는 아니랍니다.
그런 척 하는 것은 제 2의 본성이 되어버린 나의 기술,
그것에 속지 말아주세요. 제발 속지 말아주세요.
내가 안전한 상태에 있는 듯한 인상을 주면서
나의 안팎으로 햇살이 따사롭게 비치고 평온으로 가득하다 말할 때
나의 이름은 자신감, 나의 방침은 냉철함이라고 자랑할 때
수면은 잔잔하고 내가 모든 상황을 주관하고 있다고 말하며
내게는 아무런 도움도 필요하지 않다고 말할 때에라도
나를 믿지 말아주세요.
나의 표면이 잔잔해 보여도 그것은 나의 가면
시시각각 변하고 시시각각 숨긴답니다.
내 내면에는 만족함이 없답니다.
내면에는 혼란과 두려움과 외로움이 늘 있답니다.
나는 그것을 숨기고 누구도 알기를 원치 않는답니다.
나는 나의 연약함과 두려움이 드러날까 봐 고통스러워하지요.
그것이 바로 내가 미친 듯이 가면 뒤로 무표정한 궤변적 얼굴 뒤로 숨어
아닌 척 가장하면서 꿰뚫어보는 시선을 피하려는 이유랍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러한 시선이 나의 구원, 나의 유일한 희망임을 안답니다.
그러한 시선 뒤에 용납이 있고, 용납 뒤에는 사랑이 있기 때문이지요.
그것이 나를 나 자신으로부터, 나 자신이 만든 감옥으로부터,
내가 그렇게도 고통스럽게 마주 서있는 장벽으로부터 나를 해방시키는 유일한 처방이지요.
그것이야말로 나 스스로는 확신할 수 없는 나 자신의 참된 가치를 확신시켜주는 유일한
해방이지요.
그러나 나는 그것을 감히 두려움 때문에 이야기하지 못합니다.
나는 당신의 시선 뒤에 용납이 따르지 않고, 그 뒤에 사랑이 따라오지 않을까 봐 두렵습니다.
나는 당신이 나를 배려해 주지 않고 사람을 죽게 만드는 비웃음으로 나를 죽일까봐 두렵답니다.
나는 마음속 깊이 내가 아무 것도 아니며 좋은 점도 별로 없음을 두려워하며
또 당신이 그것을 알고 나를 거부할까봐 두려워한답니다.
그래서 나는 게임을, 절망적인 겉치레 게임을 하는데,
밖으로는 확신 있는 듯한 표정을 짓고,
안으로는 떨고 있는 어린아이로 산답니다.
겉은 화려하나 속은 공허한 가장행렬이 그렇게 시작되고 나는 인생의 선두로 나서지요.
나는 당신에게 피상적 대화에 공허한 음조로 어리석게 말하지요.
나는 당신에게 사실은 아무 것도 아닌 모든 것을 말하고, 나의 모든 것
곧 내 안에서 절규하는 것들은 아무 것도 말하지 않지요.
그러므로 내가 일상적인 것들을 말할 때 나의 언어에 속지 말아주세요.
주의해 들어주세요. 내가 말하지 않은 것들을...
내가 말할 수 있기를 원하는 것들, 생존을 위해 말할 필요가 있는 것들,
그러나 내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을 나는 숨기기를 원치 않아요.
나는 피상적인 속임수 놀이를 즐거워하지 않습니다. 나는 그 놀이를 그치고 싶어요.
나는 순수해지고 싶고, 자발적이고 싶고, 자신을 찾고 싶은데
그러기 위해서는 당신이 도와주셔야 합니다.
당신은 당신의 손을, 비록 당신 눈에 내가 그것을 원치 않는 것으로 보일지라도
뻗어주셔야 됩니다.
오직 당신만이 나의 눈에서 숨쉬는 시체의 멍한 응시를 제하여 주실 수 있습니다.
오직 당신만이 나를 생명으로 불러주실 수 있습니다.
당신이 친절하고 부드럽게 대해 주고 격려해주실 때마다,
당신이 진정한 관심으로 이해해 주실 때마다
나의 마음은 날개를 키웁니다.
아주 작은 날개지만, 아주 연약한 날개이지만 그것은 참으로 날개입니다.
나를 만져주심을 통해 나를 감각케 만드는 당신의 능력으로 당신의 생명을
내게 불어넣으실 수 있습니다.
저는 당신께서 이러한 사실을 아시기를 바라고 있답니다.
당신이 그렇게 하시기로 선택만 하신다면 당신이 내게 얼마나 중요한 분이 되실 수 있는지,
당신이 어떻게 내게 창조자가, 하나님께 성실한 창조자가 되실 수 있는 지,
나라는 존재의 창조자가 되실 수 있는지를 아시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그렇게 하기로 선택만 하신다면,
당신이 홀로 내가 갇혀 떨고 서있는 담을 허물 수 있고,
당신만이 홀로 나의 가면을 벗겨줄 수 있고,
당신만이 홀로 나를 고통과 불확실성의 흑암으로부터,
나의 고독한 감옥으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습니다.
제발 그렇게 하기를 선택해주세요.
나를 그냥 지나쳐 가지 말아주세요.
내가 당신에게 쉬운 존재는 아니겠지만 자신이 무가치하다고 확신하면서 지나온
오랜 시간이 튼튼한 담을 쌓게 했습니다.
당신이 가까이 올수록 나는 더욱 눈이 멀어져 당신을 역습하게 됩니다.
그리고 분노, 인간에 대해 책에 무엇이라고 미화해 써있건 나는 종종 분노에 사로잡힙니다.
나는 어리석게도 내가 간청해서라도 얻어야 할 바로 그것을 대항하여 싸웁니다.
그러나 나는 사랑은 튼튼한 담보다 더 강하다는 말을 들으며
그것에 나의 희망을 둡니다.
어린아이는 아주 예민하오니
당신의 강하면서도 부드러운 손으로 제발 저 담들을 허물어 주소서.
내가 누구인지 당신은 궁금하시죠.
나는 당신이 이미 잘 알고 있는 사람,
당신이 만나는 모든 남자,
당신이 만나는 모든 여자랍니다.
- 찰스 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