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적 자존감과 십자가
자존감의 필요성과 중요성에 대해서 많은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자존감을 비성경적인 개념으로 정죄하고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자존감의 성경적인 이해를 통해서 성경적 상담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 수 있다.
필자는 후자의 노선을 선택하였다.
이 글에서는 세속적인 자존감의 개념을 성경적으로 통찰하는 데에 그 의미가 있다.
기독교인의 자존감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온다.
만일 우리의 믿음이 우리 자존감의 근거가 되지 못한다면 그 믿음은 헛된 것이다.
성경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음으로 인하여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고 선언한다(고후 5:17).
즉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하여 새로워진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자존감을 소유하게 된 것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대속의 죽음을 의미한다.
예수님이 오신 이유는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었다(막 10:45).
예수님은 우리들이 죄의 저주와 굴레에서 벗어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셨다.
그분은 자기 목숨으로 우리 죄 값을 지불하셨다.
자존감 형성의 네 가지 영역
맥그래스는 우리의 자존감을 형성하는 네 가지 주요 영역을 혈통, 역할 수행, 타인의 사랑 그리고 영원한 의미로 보았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이 네 가지가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에 의해서 모두 채워졌다고 하였다.
첫째로 십자가의 대속으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는 내가 누구인지를 분명하게 선언한다.
즉 하나님 가족의 일원이 되었다는 사실은 우리의 혈통을 증명하는 것이다.
예수로 말미암아 우리 신분이 변화되었다.
우리는 이제 새로운 혈통을 가진 사람이 되었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신분 변화가 나의 진정한 자존감의 근거가 된다.
둘째로 성취를 통한 자존감의 근거도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완벽하게 성취되었다.
성취를 통해서 다른 사람으로부터 가치를 인정받으려고 하는 시도는 우리를 매우 불안하게 한다.
능력이나 성취는 매우 주관적인 판단에 근거한다.
따라서 다른 사람과의 비교를 통해서 자신의 능력이나 성취를 인정받을 수밖에 없다.
또는 자신의 능력이나 성취가 인정을 받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성취하신 것이 우리의 성취가 되었으며 그리스도의 능력이 우리의 능력이 되었다고 주님은 선언하신다.
따라서 이제는 비교할 필요도 없으며 인정을 받지 못할 것에 대한 두려움을 느낄 필요도 없다.
셋째로 우리의 가치는 우리를 위하여 자기의 생명을 내어주신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근거한다.
우리를 향한 그리스도의 태도가 우리의 자존감을 세우는 기초가 된다. 타인의 우리를 향한 태도가 아니라 나를 향하신 주님의 태도에 기인한다.
예수님의 구속 사역은 주님의 나를 향한 사랑과 긍휼의 태도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이며, 이 태도가 우리의 자존감을 세우는 근거가 된다.
넷째로 영원한 의미는 그리스도의 궁극적인 표상이다.
우리는 단지 이 땅의 것을 위하여 사는 자가 아니라 이제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사는 자가 되었다.
우리 삶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영원성을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균형 잡힌 기독교 복음의 핵심인 이신칭의 사상이 분명하게 증거 될 때 우리의 자존감을 견고히 할 수 있다.
이신칭의 사상의 핵심은 우리가 죄에서 사함을 얻고 의롭다고 칭함을 받은 것은 오직 예수님의 보혈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신칭의는 자신의 행위 중심에서 믿음에 기준을 두는 관점인 하나님이 하신 일 중심으로 바뀌는 것이다.
개인의 학력이나 능력, 성공은 의롭다 함을 얻는 데 전혀 쓸모가 없다.
만일 자신의 의나 노력이 단 한부분이라도 자신이 의롭다는 인정을 받는 데 소용이 된다면 그 신앙은 더 이상 기독교가 아니다.
사도 바울도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겼다”고 고백했다(빌 3:7).
사람의 평가와 판단은 결코 우리를 의롭게 할 수 없다.
예수를 위하여 사람의 평가와 판단을 배설물로 여길 때, 우리는 예수 안에서 새롭게 발견되며 우리의 의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비롯된다는 것을 확신하게 된다(빌 3:8,9).
이 신앙을 회복했을 때, 사람은 더 이상 자신의 필요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임을 깨닫게 된다.
사람이 자신의 필요 대상이 되면 그 사람의 평가를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상대방이 자신의 사랑의 대상이 되면 자유함을 얻고 상대방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