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실망 하게 될까요?

왜 실망하게 될까요? (시 73:16-17)

[요약] 우리의 실망의 문제점은 사람에게만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해서 실망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망의 원인은 자신의 잘못 때문이다. 어떤 때에 하나님께 대해 실망할까? 내 뜻대로 하거나 내 뜻대로 구할 때 실망한다. 내 뜻대로 하면 들어주시지 않기 때문이다. 육신의 눈으로 볼 때 실망한다. 육신의 눈으로는 악인들이 더 복 받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하나님의 손에서 연단 받는 성도만큼 복된 것은 없다. 내게 주신 복을 알지 못할 때 실망한다. 예수 안에서 온갖 복을 주셨다는 것을 믿어 내 것 삼도록 하자.

 

 

이 시간에 “왜 실망하게 될까요?”라는 제목으로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는 종종 나 자신에게나 혹은 사람에게 실망할 때가 있습니다. 믿고 크게 기대를 했는데 그 기대를 깰 때 실망하게 됩니다. 기대가 크면 클수록 실망도 커집니다. 그래서 사람은 사랑할 대상이지 믿을 대상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런데 더욱 큰 문제는 하나님께 대해 실망할 때도 있다는 말입니다. 가령 어떻게 하나님께서 이러실 수가 있을까 하는 실망입니다. 이것을 시험이라고 부릅니다. 과연 하나님의 잘못일까요? 그러나 알고 보면 자신의 잘못 때문입니다.

그럼 어떤 때에 하나님께 대해 실망할까요?

1. 내 뜻대로 하거나 내 뜻대로 구할 때 실망합니다.

약4:3에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했습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전지전능하십니다. 없는 것이 없이 다 소유하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의 이름으로 하는 기도는 다 들으시고 응답해 주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요16:24에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하셨습니다.

응답에는 즉시 응답, 노우 안 된다, 기다려라 이 세 가지 응답이 있다고 합니다. 안 된다는 것도 응답입니다. 그런데 안 되는 정도가 아니라 기도하면 기도할수록 반대의 일만 터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형통을 구했는데 더 어렵습니다. 건강을 구했는데 더 아픕니다. 능력을 구했는데 능력은 더 사라집니다. 크고 아름다운 것을 소망했는데 더 작아져만 갑니다.

바벨론에서 돌아온 이스라엘이 그랬습니다. 학1:5-6에 \"너희는 자기의 소위를 살펴볼지니라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입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 2:16에도 \'그 때에는 이십 석 곡식 더미에 이른즉 십 석뿐이었고 포도즙 틀에 오십 그릇을 길으려 이른즉 이십 그릇뿐이었었느니라\" 그 이유는 하나님의 성전 건축에 힘스지 않고 자기 일에 바빴기 때문입니다. 자기 뜻을 먼저 구했습니다. 그랬기에 실망할 일이 생겼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잘못이 아닙니다. 이때는 기도를 점검해 봐야합니다. 야고보이 말대로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한 것입니다. 기도 제목이 훌륭해서 스스로 하나님의 뜻으로 속을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내 뜻이요, 내 욕심일 때가 많아요. 그러나 과연 그것이 나를 통해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뜻이냐 했을 때는 아닐 수도 있습니다. 사명이 다릅니다. 주시는 은사가 다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만 구하면 기도에 실망할 이유가 없습니다. 다 들어주시기 때문입니다. 요일5:14에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면 다 들으시고 응답해 주십니다. 거기에 대한 응답의 확신도 옵니다. 하나님의 뜻을 모른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대로 되기를 갈망하는 기도를 드린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에 가장 아름답게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2. 육신의 눈으로 볼 때 실망합니다.

육신의 눈 이것이 문제입니다. 오늘 본문에 아삽도 하나님에게 실망할 때가 있었습니다. 아삽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악인이 형통하는 것을 보고 도저히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2-3절에 “나는 거의 실족할 뻔하였고 내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시하였음이로다”(2-3절)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악인을 이렇게 두신다면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느냐고 시험들 뻔했습니다.

아삽이 보니 악인들은 죽을 때까지 건강하게 잘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면 악인들은 급살 맞아 죽어야 하는 데 더 건강하게 잘 사는 것이었습니다. 무고한 사람을 학살한 사람들, 전쟁을 일으킨 사람들, 천문학적인 돈을 횡령한 사람들이나 이단의 괴수들 벌 받아 죽어야 하는데 잘 먹고 잘 살고 건강하기만 하다는 말입니다.

악인은 악하게 살면서 교만하고 강포하기 짝이 없습니다. 거드름을 피우며 잘 난 척하고, 교만이 목걸이가 되고, 강포의 옷을 입고, 악인이 돈을 더 잘 벌어들입니다. 그렇다면 심판 받아 마땅하지요. 주님의 심판대에서는 반드시 이루어지겟지만 세상에서는 상선벌악의 진리가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할순 없습니다. 공의로운 심판운 세상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하나님께서 악인도 잠시 목적에 따라 사용하시기도 하시니까요. 그래서 악인인데도 고난도 재앙도 없이 하는 일마다 순탄합니다. 그래서 전쟁을 일으킨 김일성이가 오래 살았고 예수를 대적하는 문교주도 오래 살고 있습니다. 요즘은 정당을 만들어 나라까지 장악하려는 음모를 꾸미지만 미혹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도리어 정통신앙을 가진 좋은 믿는 분들을 밀고 이단의 정당을 견제하려는 기독교인들을 위해 기도하고 지지해야 합니다.

이 세상 보면 악인이 돈이 많습니다. 악인은 돈이 많아서 수억 짜리 차량에 수천만 원짜리 코트를 걸치고 다닙니다. 선한 사람은 돈이 없어서 쩔쩔 매고, 좋은 일하는 단체는 돈이 없어서 곤란을 겪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의로운 사람은 날마다 징계를 받지만 악인들은 상선 벌악의 진리가 통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삽은 시험 들기 일보직전에 있었습니다. 그 때 아삽은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가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고 합니다. 성소에 들어갔다는 것은 기도했다는 말입니다. 기도하면서 영으로 보니 악인의 결말은 비참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육신의 눈으로 볼 때 형통이었지 그들의 영적 상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신령한 눈으로 보면 그들처럼 불쌍한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잠시 놔 두실 뿐이었습니다.

요즘 대기업 총수가 특검을 받는 것을 보고 그 인생이 얼마나 불쌍한지, 육신의 눈으로 보면 얼마나 복 받은 사람입니까? 그러나 영의 눈으로 보면 불쌍하기 그지없습니다. 그 영혼이 회개하고 예수 믿어야 하는데 지옥에 떨어질 일을 생각하니 불쌍합니다. 그들의 육신의 형통 결국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솔로몬은 전2:26에서 “하나님이 그 기뻐하시는 자에게는 지혜와 지식과 희락을 주시나 죄인에게는 노고를 주시고 저로 모아 쌓게 하사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에게 주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들이 주야로 자지 못하면서 노력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들만을 위한 것은 아니란 말씀입니다. 

우리나라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몇 차례 거치면서 대부분 불신자들이 대기업을 이룹니다. 정부가 천문학적인 외자를 유치해서 이자도 받지 않음은 물론 무상보조하니 성공하지 못할 기업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 혜택을 대부분 불신자들이 보았습니다. 그렇지만 그 모든 축복을 결국 누가 씁니까? 다 우리가 쓰고 있지 않습니까? 삼성 현대 기타 대기업 무너져 봐요. 당장 우리의 삶이 문제가 될 것입니다. 불신자들의 형통을 맘 아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들의 형통은 곧 우리의 형통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령한 눈으로 보면 불신자들과 악인의 형통을 보고 낙심할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보다 더 하나님의 사랑 받는 백성들입니다. 그러기에 더 크고 영원한 것을 주시기 위해서 분초마다 시련하시고, 연단시키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사를 전파하리이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영위 눈으로 보지 못한 우리의 우매한 눈이 문제인 것입니다.

3. 내게 주신 복을 알지 못할 때 실망합니다.

바울은 엡1:3에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셨다고 말씀합니다. 하늘의 복만 아닙니다. 하늘과 땅의 복의 복을 다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수 안에서 주지 않으신 복이 없어요. 내게 복 주신 것을 알고 그 복을 믿음으로 붙잡을 때 다 내 것이 됩니다.

요즘 미국에서 김밥으로 백만장자가 된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김승호씨 이야기가 소개 되어 보았습니다. 그는 마음에 드는 사업체가 눈에 보였을 때, 그 사업체의 주차장에 출근 시간마다 들러 하루에 100번씩 저 사업체는 내 것이라고 속으로 말했다고 합니다. 지금도 내 수첩 안에 재정적인 목표와 꿈들을 20여 가지 적어 넣고 다닌다고 합니다. 그가 신자인지 불신자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신념도 놀라운데 믿음이 실망 줄 수 있겠습니까?

이처럼 우리는 대단한 복을 가졌고 대단한 권세와 능력을 가졌으니 믿고 순종하고 믿고 행하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내가 너에게 무엇을 주었다는 체험만 기다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 나가서 만나를 주워 걷어가지고만 오면 되었던 것처럼 우리가 성경을 보면서 내 것으로 받아 아멘으로 주워만 오면 다 내 것이 됩니다. 이것이 믿어질 때까지 날마다 외우시고 엎드리시기 바랍니다. 혹시 믿어지지 않으면 왜 믿어지지 않는지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남은 용서 않고 용서의 복만 받으려고 한다면 용서의 확신이 오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업의 주인으로 삼지 않고 십일조와 연보의 청지기 정신이 없어도 역시 그럴 것입니다. 진정 엎드려 회개하면서 말씀에 서보세요. 예수 안에서 받은 복이 다 실상으로 내 것 되어 다가오게 될 것입니다.

크리스천들이 꼭 알아야 할 비상연락망이 있습니다. “돈이 없을 땐 시편 37편으로 가세요. 그 말씀대로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의기소침 할 땐 시편 27편으로 가세요. 죄를 지었을 땐 시편 51편으로 가세요. 슬플 때에는 요한복음 14장으로 가세요. 위험에 처했을 땐 시편 91편으로 가세요. 사람이 실망시킬 땐 시편 27편으로 가세요. 외롭거나 두려울 땐 시편 23편으로 가세요. 낙심될 땐 시편 126편으로 가세요. 근심이 있을 때는 마태복음 6장으로 가세요. 하나님이 멀게 느껴질 때는 시편 139편으로 가세요. 평안과 휴식을 원하시면 마태복음 11장으로 가세요. 괴로움과 위기가 오면 고린도전서 13장으로 가세요.” 그 외에도 많지만 일부 소개했습니다.

이처럼 우리에게 주신 복을 믿음으로 거둬만 들이면 다 내 것이 됩니다. 그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남의 형통만 보고서 실망하게 됩니다. 믿으면 다 내 것이요, 믿고 행하면 다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함께 하심을 믿고 행하면 기적이 나타납니다. 능력 주셨음을 믿고 기도하면 능력이 나타납니다. 축복이 나에게 나타납니다. 형통이 나에게 나타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시면서도 실망하지 않으셨습니다. 다시 사흘만에 사셨습니다. 세상은 우리를 실망시켜도 하나님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으십니다. 실망했다면 내 뜻대로 하려 했거나, 육신의 눈으로 보고, 내게 주신 복을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사랑의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진실로 말씀에 서고 회개하여 하나님께서 예수 안에서 주신 복을 온전히 믿어 하늘과 땅에 속한 온갖 아름다운 은혜를 경험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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