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본문 내용
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27.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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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롬 8:26-30)


   우리 크리스찬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뭐니 뭐니 해도 바로 믿음의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구원’을 받게 되는 것도 바로 ‘믿음’으로 받게 되는 것이고, 또 한편 ‘믿음’으로 우리는 무한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면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복음서에 보면, 제자들이 예수님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하고 구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바로 이와 같은 이유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 크리스찬은 이렇게 ‘믿음’을 많이 말하며, ‘믿음’을 열심히 구하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믿음!――믿음이란 무엇입니까?  무엇을 믿는 것입니까?
   물론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하고 간단히 대답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되, 구체적으로 어떤 하나님으로 믿는 것입니까?  바로 이점이 중요한 것입니다.

   야고보서 2장 19절에 보면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사실 ‘하나님이란 분이 계시다는 것’은 지독한 무신론자가 아니라고 한다면 대부분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도 다 인정하는 사실이지 않습니까?  또 사실 마태복음 8장 2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 그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제일 먼저 알아본 자는 다른 그 어떤 누가 아니라, 바로 귀신들린 자들이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귀신들이 먼저 알아봅니다!―하나님의 존재를 믿고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렇다고 귀신이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따라서 ‘하나님이 계시다’ 하는 것을 인정한다고 해서 그것을 믿음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이 구체적으로 나와―나의 매일의 이 삶과―어떻게 연관되며, 나에게 있어서 어떤 분이심을 믿느냐 하는 이것이 중요한 것이며, 그것이 바로 믿음인 것입니다!

   신약 성경가운데서 로마서는 바로 이 ‘믿음’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말씀하여 주시는 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로마서 1장 17절에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시는 말씀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로마서 전체의 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이렇게 로마서를 통하여 ‘우리가 하나님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믿어야 하는 바’ 바로 그 믿음에 대하여 말씀하여 주시는데, 간단히 말해서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모든 것은 하나님께 속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경륜,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지혜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는 것을 믿는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셨고, 하나님께서 경륜하시고, 하나님께서 끝내시고, 모든 것은 하나님 안에 있다, 하나님의 능력 안에 있다, 하나님께서 친히 인도하시는 것이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 속했다’ 하는 믿음입니다.――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신앙인 것입니다.  여기서 조금도 흔들려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다음 둘째는, ‘모든 것이 구원론적으로 역사된다’고 생각하는 믿음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사실 생각해 보세요.  이것도 그렇고 저것도 그렇습니다.  심지어는 전쟁이 일어나도 그렇습니다.  물론 그것은 비참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은 단순히 그것을 그냥 심판이라고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교만한 인간을 꺾어서 구원하시고자 하여 있게 하신 것임을 거기서 깨달으며, 또한 그렇게 믿는 것입니다.

   근대 교회사를 보면, 일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직전에 서구의 신학은 온통 자유주의로 기울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신학자, 교역자, 교인들 모두가 인본주의로 기울며 타락해 버렸어요.  그래서 당시에 어떤 사람은 이렇게 예언하였습니다.  ‘이대로 나가면 앞으로 50년 내에 성경은 휴지가 되어버릴 것이다’ 하고 말이지요.
   그런데, 그런 때에 전쟁이 터집니다.  전쟁이 터지고 나니, 인간의 이성을 신앙보다 앞세웠던 자유주의자들이 여기서 무릎을 꿇습니다.  그래서 칼․바르트나 에밀․부르너 같은 새로운 정통주의 신학이 등장하며 ‘인간이 하는 일이란 이같이 형편없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외치며 오직 하나님, 오직 말씀, 오직 믿음!――종교개혁 당시처럼 다시 신앙의 세계로, 복음으로 돌아가는 운동을 하게 됩니다.  여러분, 보세요. 전쟁이 이같이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또 다른 한 예로, 미국 뉴욕의 월드 트레이딩 센터 건물이 무너져 내린 9․11 사태를 보세요.  물론 참으로 끔찍하고 참혹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타락하고 인간향락으로 기울든 미국사람들에게 경각심을 고취시키고, 그래서 교회에 모이는 사람이 그로 인해 증가하게 되었고, 세계를 보는 시각이 크게 변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보지 않습니까?
   보세요.  비단 전쟁뿐만 아니라 큰 사건―작은 사건 할 것 없이, 혹은 개인적이건 세계적이건 국가적이건 모든 일이 다 구원론적 사용의 일환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을―당신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하여, 구체적으로 말하면 나 하나 구원하기 위하여――나 하나 하나님의 사람 되게 하기 위하여――모든 사건이 있어지는 것입니다.
   모름지기 이런 구속사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볼 수 있어야 됩니다.  그래야 예수 바로 믿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리고 셋째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일환이다, 전부가 사랑이다’ 하고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이 볼 때에는 이것도 사랑이요 저것도 사랑입니다.  사랑 아닌 것이 없어요.  그렇지 않습니까?
   처음에 연애하느라 한창 사이좋을 때에는 모든 것이 사랑으로 보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거기다가 운명을 걸었지요.  거기다가 일생을 바치겠다고 결심했지요.  심지어는 이대로 죽어도 좋다고까지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 순간에는 모든 것을 사랑으로 보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들이 생각하는 어느 분야에 속합니다만, 그리스도인의 신앙고백이 그렇습니다.  바른 신앙, 구원받은 사람의 신앙으로 볼 때에는 ― 모든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지금 잠깐 좀 어렵고 어떻다 하더라도, 기다려보세요. 다 사랑이에요. 순간순간 사랑을 간증하게 됩니다.  순간순간 감사하게 되는 거예요.  병들어도, 입원해 있어도, 감사하며 찬송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 하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믿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제 여기서,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문제가 등장하게 됩니다.  믿음이란 이런 것이며, 이 같은 믿음을 우리가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어떻게 우리가 이 같은 믿음을 가질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 인간은 연약하고 죄 많고 쓰러지기 잘하는 존재이지 않습니까?  사도 바울이 친히 탄식하며 고백하는 것과 같이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 이렇게 탄식할 수밖에 없는 우리들이지 않습니까?
   사도 바울 같은 이도 이렇게 탄식하였거늘, 하물며 우리 같은 사람이겠습니까?!!

   그러나 오늘 본문 말씀은 우리에게 아주 희망을 주시는 말씀을 하십니다.  우리는 더 이상 탄식만 하고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다 그런 믿음의 소유자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느냐? ― 오늘 본문이 바로 이점을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하여 주시는 구절입니다.  26절의 말씀에서 여러분이 분명히 보시는 바와 같이 ‘성령이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심으로,  성령이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심으로’ 우리는 그런 믿음을 가진 자들이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구약성경 스가랴 4장 6절이 말씀해 주시는 바와 같이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의 역사는 어떻게 이루어지느냐? ― 성령의 역사는 인격적으로 역사하고 개인적으로 역사합니다.
   오늘 본문 26절을 보세요.  성령이 나의 이런 연약함을 아시기에 바로 나를 위하여 탄식하십니다.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이 말씀은 구체적으로 우리 개인 하나하나를 위해 인격적으로 역사하심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이 바로 나를 위해서 탄식을 하십니다.  성령이 감동해주는데도 불구하고 내가 성령을 거스르고, 거역하고, 마지막에는 성령을 부인하고, 그리고 다른 길로 갑니다.  그런 때에 성령은 탄식합니다.  그렇게 하면 안되는데, 이렇게 해야 되는데―이렇게 성령이 내 안에서 탄식합니다.  그러니 무엇보다도 바로 이 성령의 탄식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나를 위해서 탄식하시는 성령은 구체적으로 나를 위해서 어떤 역사를 하시는 것입니까?
   먼저, 특별히 성령은 우리와 함께 하면서 우리의 기도를 도와주십니다.  26절 말씀을 다시 보세요.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성령이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 성령께서 우리의 기도의 방향을, 기도의 목적을, 기도의 운명을, 그리고 기도의 응답을 계속 도와줍니다.  내 기도를 바른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여러분 보세요.  사실 여러분이 처음으로 믿음을 가지며 교회에 나와서 기도하기 시작할 때의 그 기도제목이 있습니다.  그런데 깊이 기도하는 가운데, 오랫동안 기도하는 가운데에도, 그 기도제목이 그대로 있습니까―아니면 달라집니까?
   단적으로 말하면 이렇습니다.  처음에는 달라고 하는 마음으로 출발을 해요.  그러나 성령이 나를 감동하게 되면, 이제는 드리겠다는 마음이 됩니다.  처음에는 ‘왜 나만 이렇게 불행합니까?’ 했다가, 기도하는 중에 성령이 감동하면 ‘아, 어쩌면 나만 이렇게 행복합니까?’ 하게 됩니다.  이게 바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받겠다고 기도하다가, 이제는 사랑을 베풀겠다고 기도하게 됩니다.  베풀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거예요.  기도란 이런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십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기도의 응답에 대하여 야고보서 4장 2절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정욕에 꽉 붙들려 있는 한, 기도는 안됩니다.  여러분도 다 겪어보지 않으셨어요?  이 정욕에 매여 있는 동안은 밤새 기도해도 몸부림만 치고 있는 것이지, 하나님과 나 사이에 교제가 이루어지지를 않아요.  아무 것도 들리는 것도 없어요.  소리만 지르고 있는 것이지요.  완전히 공치는 기도예요!

   자, 이렇게 보니 성령이 나를 돕지 아니하면 바른 기도를 할 수가 없습니다.
   성령이 밝은 미래를 보여주어야지요.  무엇이 옳은 길인지를 보여주어야지요.  어디에 하나님의 뜻이 계신지를 보여주어야지요.  내가 무자격한 자인데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에는 소중한 존재임을 성령이 바로 깨닫게 해 주어야지요!
   그리고 이 무서운 정욕으로부터 내가 벗어날 수 있도록 성령이 도와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바른 기도를 하나님께 드릴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모름지기 성령의 도움으로 우리는 바른 기도를 할 수 있게 됩니다.

   오늘 본문 27절은 말씀합니다.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라!”――성령이 우리 안에서, 우리 마음을 움직여서 친히 간구하게 됩니다.
   그런고로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어쩌면 내 인간적인 소원과는 다른 기도가 나와야 됩니다.  본래 가졌던 인간적인 생각과는 다른,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기도제목이 쑥 나와야 됩니다.  그것이 바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기도인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이 우리의 소원을 하나님의 뜻에로 인도하시고, 하나님의 뜻에 맞도록 교정하시고, 하나님의 뜻 속에 내 뜻을 흡수시키는 것입니다.  그런 역사를 이루게 하는 것입니다. 
   모름지기 성령 안에서, 성령이 도와서, 바른 기도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성령이 하시는 역사!  여기에 대해 바울은 28절에서 말씀하시는데, 이 말씀은 너무나 중요한 요절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여기에 보면, 두 전제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보시는 바와 같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와, 그 다음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가 동의어로 나타나 있습니다.
   무슨 말씀인 것입니까?  부르심을 입은 자라야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가 되고,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라야 부르심을 입었다는 것을 안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부르심을 입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부르심’을 입었다는 것은 내 자격과는 상관이 없는 ‘소명’을 뜻합니다.  ‘부르심’이에요. 하나님께서 친히 나를 부르신 거예요.  나는 응답한 것뿐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부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먼저 부르신 거예요!!
   그 ‘부르심’이란 단순한 ‘음성’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음성이 발해질 때 나는 ‘공기를 진동하는 그런 소리’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구체적으로 부르시는 행동!――이것은 하나님의 능력이요 자의입니다.  섭리하심입니다.  바로 그 속에 내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나를 부르시고 계십니다!  부르심을 입은 자만이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되어요!  사랑의 communication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가 되었을 때에,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되었으니 사랑 안에서 모든 것을 생각합니다!  부르심을 입었으니 부르심 안에서만 모든 것을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셨다 하는 엄청난 감격 속에서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그 부르심과 사랑의 관계를 바르게 아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은 “우리가 알거니와…”하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제 성령의 도우심으로 우리를 향한 부르심과 그 사랑에 대한 믿음을 가지게 된 사람에게는 새로운 깨달음이 있게 됩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28절이 말씀하시는 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입니다.  이것을 확실히 깨달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것에요.  내가 이루는 게 아닙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이 말씀을 성경원문대로 보면 ‘선을 이루도록 합력하신다’ 하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주장하셔서 나로 하여금 선을 이루도록, 모든 것이 다 합해서 선을이루도록, 하나님께서 친히 역사하신다!――그 사실을 내가 알게 된다 하는 말씀입니다!

   성경 구약 창세기에 보면, 아브라함이 100세에 아들을 얻습니다.  그런데 이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서 제물로 바치라고 하십니다.
   생각해 보세요.  아브라함에게 이것은 가장 어려운 시험이지 않습니까?  시험의 절정입니다.  얼마나 고민이 많았겠습니까?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  하나님께서 저 아들을 내게 주셨다’하고 하나님 쪽을 먼저 생각합니다.  그럴 때에 ‘그렇지, 내가 이걸 고집할 게 아니지’하며 그 아들을 바치게 됩니다.  바치는 순간에 하나남께서 말씀하시지요.  ‘이제야 네가 나를 사랑하는 줄 알았다.  이삭에게 조금도 손을 대지 말아라!’

   모리아 산에서 내려올 때에 아브라함이 얼마나 감격했겠습니까?  모르긴 하지만 아마도 아브라함은 산을 내려오면서 후회가 많았을 것입니다.  회개도 했을 것입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모리아 산에 올라갈 때부터 찬송하고 올라갈 것을, 나는 그 때에 별의별 생각을 다 하면서 올라갔지 않은가…  하나님께 너무나 죄송하구나’하는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렇거든요.  바로 이것이 믿는 자의 간증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사는 사회도 어떤 때에 보면 뭐가 잘 안되는 것 같아요.  그러나 그래도 조금만 기다려 보세요.  합동하여 선을 이루시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를 깊이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어떤 어촌의 어부들이 바다로 물고기를 잡으러 갔습니다.  그런데 돌아와야 될 시간이 되었는데도 못 돌아오는 거예요.  날씨가 아주 추워지고 바람이 많이 불었습니다.  온 동네 아낙네들과 어린 아이들이 바닷가에 몰려나와서 남편이, 아버지가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초조한 마음으로 발을 동동 구르며 온갖 걱정을 다 하고들 있었습니다.
   그런데 감자기 뒤에서 “불이야!” 하는 것예요.  어떤 집에서 불이 난 것입니다.  동네사람들은 불을 끄느라고 야단이었습니다.  그렇게들 정신없이 불을 끄고 있는데, 바다에 나갔던 배가 돌아왔어요.
   불도 끄고, 사람도 돌아왔고, 이제는 안도의 숨을 내쉬는 동네사람들에게 어부들이 자기들이 무사히 귀환하게 된 연유를 말하여 줍니다.  풍랑이 너무 심하고 어두워서 방향을 잃어버렸는데, 멀리서 불길이 솟는 것이 보이기에 ‘아, 저기가 동네로구나’하고 방향을 잡게 되고, 그래서 무사히 찾아올 수 있었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자, 우리가 이런 극적인 이야기만 할 것은 아닙니다.  사실 우리의 생활을 가만히 보면, 모든 일이 이렇게 진행되고 있는 것을 깨달을 수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합동하여 선을 이루는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그렇고, 그 깊이에서 그렇고, 그 최종 목표에서 그렇습니다.  이제까지의 여러분이 살아온 지난날들을 솔직하게 한번 살펴보세요. 바로 이 점에 있어서 우리 모두가 우리 나름대로 간증할 수 있지 않습니까?

   인간의 지식보다 하나님께서 먼저 계십니다!  인간의 의지보다 하나님께서 먼저 계십니다!  이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말씀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30절 말씀입니다.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보세요.  예정하셨어요.  하나님의 의지가 먼저예요.  하나님의 지식이 먼저예요.  부르심이 있고, 의롭다 하심이 있고, 결과적으로는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영화롭게 하셨느니라!”―영화롭게 하는 그것이 눈앞에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항상 이점에 대한 간증이 있는 생을 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바른 신앙!―구원받은 사람의 신앙으로 볼 때에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지금 잠깐 좀 어렵고 어떻다 하더라도 기다려보세요. 다 사랑이에요. 순간순간 사랑을 간증하게 됩니다.  순간순간 감사하게 되는 거예요.  병들어도, 입원해 있어도 감사하며 찬송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28절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이제는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자 된 의식을 가지게 됩니다.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이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 내가 있다! ― 이렇듯 순간순간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 된 자아의식을 가지게 된다 하는 말씀입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입은 사람은, 이제는 이같은 믿음에 따라 세상을 봅니다.  믿음으로 세상을 봅니다. 믿음으로 자신을 봅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믿음으로 듣습니다!  그래서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은 그 믿음으로 과거를 생각합니다.
   그러고 보면 과거의 지나온 그 길이 그렇게 오묘할 수가 없어요.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 하나님께서는 많이도 기다려주셨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건을 통해서 나를 일깨워주셨습니까?  얼마나 절실하게 내 마음을 두드리셨습니까?
   고집 세고, 못되고, 비뚤어진 인간을 이렇게 저렇게 붙들어 인도하시고 인도하셔서, 오늘 이 자리에 내가 있게 하셨어요.  지나간 일!―하나도 버릴 것이 없어요.  믿음으로 보니까 그렇습니다.
   구원받은 믿음으로 보면 지난 일에 대하여 그 때 그 시간에는 실패했다, 망했다, 끝났다 하고 절망했었지만, 오늘에 이르러 믿음으로 회고해보면 그 모든 지난날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릅니다.  그 속에 하나님의 손길이 있었어요!

   그 믿음으로 이제 현재를 봅니다.  그러면 현재야 말로 얼마나 소중합니까?  내 평생에 있어서 가장 소중한 시간들을 가고 있는 것이에요!
   그런가하면 그 믿음으로 또한 미래를 봅니다.  구원받은 사람의 미래!  그것은 약속받은 것입니다.  마치 무엇과 같은고 하니, 우리가 비행기나 기차를 탈 때, 미리 티켓을 사서둡니다.  그러면 옛날처럼 초조해 하거나 안달해 하지 않고, 여유 있게 가서 편안하게 지정된 자리에 않아서 가지 않습니까?
   우리 믿는 사람은 이와 같습니다.  오늘의 세계를 보는 동시에, 보이는 것을 초월하여 보이지 않는 세계를 바라봅니다.  소망의 세계를 바라봅니다.  소망의 세계를 바라보기에, 믿음으로 참고 기다리며 오늘을 굳건히 살아가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그러므로 합동하여 선을 이루시는 것을 믿습니다.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반드시 하나님께서 친히 선을 이루실 것을 믿고, 알고, 바로 그것을 간증하며 사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즐거이 헌신하시며, 열심을 다하여 충성하며 힘차게 살아가는 우리의 그런 믿음생활의 모습을 더욱 증거하며 나타내 보이시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