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에서 매이면 하늘에서 매일 것이요

본문 내용
마태복음 16장 19-20절
19.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20. 이에 제자들에게 경고하사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라

시편50편23절
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Content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마16:19-20,시50:23)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리가 어느 곳에 있든지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은 일컬어 ‘무소부재’하시다―계시지 않는 곳이 없다―이렇게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이라고 표현을 합니다.
   이 사실을 시편기자는 시편 139편에서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나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거기서도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께서는 내가 가는―그리고 내가 거하는 모든 곳에―바로 거기에 항상 함께 계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도 바로 이점에 대하여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은 저 하늘 멀리에, 저 먼 어느 곳에 계시는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바로 우리 가까이에 늘 함께 계십니다!!

   또 우리는 하나님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고백을 합니다.  모든 것을 다 아시며, 능치 못하심이 없는 절대적인 하나님이라고 말이지요.
   그래서 성경은 ‘우리의 머리털 하나까지라도 세신바 되었으며, 참새 한 마리가 떨어지는 것까지도 다 감찰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마 10:29)

   제가 이렇게 말씀을 드릴 때에 이렇게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분이 혹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와 같은 위대하신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다는데, 나는 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는 것인가?  나는 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지 못하는 것인가?” 하고 말이지요.
   여러분은 혹 그와 같은 의문을 스스로 가져보신 적은 없으십니까?   왜 그와 같은 의문을 가지게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 대답은 아주 간단합니다.  하나님의 임재와 역사하심을 만약 우리가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면, 그 책임이 어디에 있느냐 하면 다른 그 무엇 때문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 자신에게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오늘 같이 읽으신 본문 마태복음 16장 19절에서 여러분이 분명히 보시는 바와 같이, 예수님께서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을 쉽게 풀어서 말한다면 다음과 같은 말이 됩니다.  우리가 주님을 향해 “주님, 저희를 위해 악의 권세와 모든 절망들을 묶어 주옵소서”할 때에,  주님께서는 “너희가 먼저 묶으라.  그러면 내가 묶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면서 “아버지, 우리를 사망과 죄악에서 풀어주옵소서”하면, “너희가 먼저 땅에서 믿음으로 풀어라.  그러면 내가 풀어주겠다” 하신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당신의 임재하심’을 나타내시기 위하여서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으로 우리를 책임져 주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하면 이 하나님의 능력을 내게 임하게 하며, 풀기도 하고 또 묶을 수가 있는 것이겠습니까?
   여기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네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게 된다!!”

   그런데 우리가 이 말씀에서 주의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내가 무조건 무엇이든지 이 땅에서 매면 자동적으로 하늘에서도 매이게 되며, 이 땅에서 풀면 자동적으로 하늘에서도 풀리게 된다는 그런 말씀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고쳐주시거나 이적을 행하실 때마다, 그 병자들의 소원을 들어주실 때 하시는 말씀이 있지 않습니까?  바로 ‘네 믿음대로 되리라!’ 하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땅에서 맨다고 하는 그것은, 우리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그러한 ‘믿음이 수반된 행동’인 것임을 우리는 깨달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땅에서 맨다고 하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과 그 구원의 역사를 체험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여야 하는 것입니까?
   바로 그 방법을 성경은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제시하여 주십니다.  오늘 같이 읽으신 시편 50편에 그 대답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을 체험하고 구원의 은혜를 입는 열쇠는 바로 우리가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감사로 드리는 제사!” ― 이것이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을 체험하며 구원의 은혜를 입는 유일한 열쇠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를 원하며, 하나님의 축복을 원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땅에서 매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라고 우리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땅에서 매어야 하는 그것은 바로 ‘감사로 드리는 제사’라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는 구체적인 방법인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신 후에, 곧 이어서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고 경고를 하십니다.  이 경고의 의미가 무엇이라고 여러분은 생각하십니까?
   우리 주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분이시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이 그리스도임을 만방에 알리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고 하십니다.  말하자면 그것은 비밀이라는 뜻이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그것은 비밀입니다.  그것은 아무도 모르게 한다는 그런 의미의 비밀이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것은 공개된, 또한 모든 사람이 다 알기를 원하는 그런 비밀입니다.  그만큼 중요한 의미가 담겨져 있다는 그런 의미에서의 비밀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요한복음 1장 12절에서 말씀하시는 바와 같이, 우리 주님께서는 빛으로 이 땅에 오셨지만 사람들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러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시는 것입니다.
   영접하는 자에게는 이 같은 권세가 주어지지만, 그러나 영접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주어지지 않습니다!  결국 그들에게는 이것이 비밀이 되어, 영원히 감추어져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것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감사로 제사를 이 땅에서 아름답게 드리는 자에게는 ‘하늘에서도 매이고 또한 열리는’ 축복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감사로 제사를 진실 되게 드림으로, 그래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으로써 그 축복을 받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진실 되게 감사의 제사를 드리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아무것도 하늘에서 매이는 것이 없게 됩니다.  그러니 자연히 축복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니 축복받기를 원하기는 하지만 받지는 못하게 되니, 자연히 그런 사람에게는 ‘감사함으로 축복을 받는다는 이것’은 하나의 비밀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감사가 하나님의 구원과 얼마나 밀접한 관계가 있는지 성경이 말해주는 구체적 사례를 우리는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구약성경 역대하 20장에 보면 여호사밧 왕의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사밧은 왕위에 오르자 모든 우상들을 철폐하고, 하나님만을 섬기며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셔서 국력이 날로 강하여지고, 백성들은 잘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를 본 이웃나라들이 이를 시기하여서 연합군을 편성하여 유대나라로 침공하여 들어옵니다.  아무런 전쟁준비가 없었던 유대나라는 이제 국운이 위태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되면 대게들 어떻게 합니까?  다른 강대국에 원병을 청하는게 보통이 아닙니까?  그러나 여호사밧은 다른 나라에 원병을 청하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께 매달립니다.  백성들에게 금식을 선포하고, 성전에 나가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기도가 역대하 20장 6절 이하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하늘에서 하나님이 아니시니이까?  이방 사람들의 모든 나라를 다스리지 아니하시나이까?  주의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능히 주와 맞설 사람이 없나이다.
   주께서 이르시기를 만일 재앙이나 난리나 견책이나 전염병이나 기근이 우리에게 임하면, 주의 이름이 이 성전에 있으니 우리가 이 성전 앞과 주 앞에 서서 이 환난 가운데에서 주께 부르짖은즉 들으시고 구원하시리라 하였나이다.
   이제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그러자 하나님의 성령이 그들 중의 한 사람에게 임하여 예언합니다.  “너희는 이 큰 무리로 말미암아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이 전쟁에는 너희가 싸울 것이 없나니, 대열을 이루고 서서 너희와 함께 한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
   이튿날 여호사밧은 백성들에게 외쳤습니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의 선지자들을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이렇게 말한 후, 군대 대신에 성가대를 조직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게 하고는, 이들 성가대를 앞세우고 백성들이 뒤따르며 전쟁터로 나갔습니다.
   적군이 가까이 다가오자 여호사밧이 성가대에 지시를 내리고, 그들은 전력을 다하여 찬양을 부르기 시작합니다.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세상에 이런 전쟁은 없지요.  창과 칼과 전차로 달려드는 적군 앞에 가운을 입은 성가대가 감사의 찬송을 부르며 맞서는 그런 전쟁 말입니다.  여러분, 이런 전쟁을 어디 상상이나 해볼 수 있겠습니까?  희극영화라고 생각하시겠지요!
   그런데, 성가대들이 감사의 찬송을 부르기 시작하자 하나님이 친히 전쟁에 개입하십니다!  여호와께서 복병을 두어 연합군을 치므로, 저희들끼리 먼지 속에서 서로가 싸우며 날뛰다가 산 사람이 없이 다 죽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증거해 주시는 결과입니다.

   보세요, 여러분!  여호사밧이 이들에게 힘으로 대항하여 싸우려 했다면, 10대 1도 안 되는 숫자이니 패망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손에 맡기고, 오히려 먼저 하나님께 감사의 찬미를 드리자 하나님의 성령이 역사하셔서 그들을 구원하셨고, 적들은 모두 패하고 말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여러분에게 어떤 위기가 다가올 때 어떻게 하십니까?  지난 IMF라든지, 또한 지난해에 우리가 겪었던 금융위기 같은 이런 불경기라든지, 또는 여러분이 개인적으로 겪게 되는 모든 위기나 곤경이나 어려움 앞에, 여러분에게도 이와 같은 감사의 찬송이 있습니까?!!

   “네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고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이같이 감사의 제사가 오히려 더더욱 드려지고 감사의 찬송이 떠나지 아니하면,  여러분의 가정에 찾아온 악마의 세력이 서로 싸워 떠나가게 됩니다!
   여러분의 가슴 속에 감사의 찬송이 그치지 아니하면, 여러분의 영혼을 해하려던 원수가 쫓겨 달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 여러분은 이 사실을 믿으십니까?

   이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약속입니다.  여러분, 분명히 기억하세요.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항상 함께 계시지만, 이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을 우리의 생애 속에 나타나게 하는 열쇠는 바로 ‘감사로 드리는 제사’인 것입니다!!
   넘치는 감사와 찬미로서 제단을 쌓으세요.  하나님의 크신 능력이 여러분에게 분명히 나타나게 됩니다.  이것은 제 말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여러분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네가 땅에서 풀면 내가 하늘에서도 풀리라!!”


   우리의 감사가 하나님의 구원역사와 직결된다는 것! ― 신약성경에서도 무수히 나타나는 사실입니다.  사도행전 16장에 그 한 예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마케도니아에서 복음을 증거하던 중, 한번은 귀신들린 소녀 점쟁이에게서 귀신을 쫓아내는 일을 하여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귀신들린 소녀를 점치게 하던 주인이 이제 돈을 못 벌게 되자, 바울과 실라를 모함하여서 감옥에 갇히도록 하였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옷을 벗긴 채 매를 몹시 맞고, 피투성이가 되어 지하 감방에 갇히었고, 발에는 차꼬가 채워졌습니다.

   이 당시는 인권이 보장되는 시대가 아니었기 때문에, 한번 감옥에 들어가면 언제 풀려날지를 모릅니다.  이러한 때 감옥에서 매를 맞고, 살이 터져 쓰리고 피가 흐르는데, 발에는 차꼬가 채워져 제대로 움직일 수도 없습니다.
   배는 고파오고, 지하 감방의 습기와 썩는 냄새가 코를 찌릅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가장 처절한 상태에 빠지게 된 것이지요.  이러할 때 여러분이었다면 어떠하였겠습니까?

   유신당시에 긴급조치 1호로 잡혀 들어갔던 한 목사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밤중에 갑자기 사복한 중앙정보부 요원들에게 연행되어가서, 어딘지도 알지 못하는 곳에서 외부와의 일체의 소식이 두절된 가운데 지하 감방에 깜깜한 가운데 갇혀 있는데,  어디선가 외딴 비명소리만 들려오고, 절망과 공포로 인해 정말 그대로 죽어 버리고 싶을 정도였다고 말입니다.  자신이 목사였지만, 하나님이 나를 이대로 버리시는 것은 아닌가 하는 그와 같은 생각도 들더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보세요.  바울과 실라가 하나님을 원망한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그런 처지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행16:25)”―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한밤중’이란 말은 단지 시간적으로 해가 진 다음의 어두움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절망과 슬픔이 꽉 차게 되는 때를 상징적으로 나타내 주는 말이기도 한 것입니다.
   이때야말로 마귀들이 우리를 유혹하며 넘어뜨리려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가 아닙니까?
   “네가 믿는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나님이 계신다면 하나님을 위해 복음을 전하는 너희들이 붙잡혀 이렇게 억울하게 매를 맞으며 지하 감옥에 갇히게 하겠느냐?”

   웬만한 사람 같으면 마귀의 충동에 넘어가 하나님을 원망했을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바울과 실라는 이 한밤중에, 오히려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미를 불렀다는 것입니다!
   한밤중에 찬송을 부르지만, 시끄럽다고 고함치는 죄수가 한사람도 없었습니다.  모두가 조용히 들었다는 것입니다.  왜입니까?
   그것은 바울과 실라가 마음속에서 진정으로 우러나는 감사의 찬송을 불렀음으로, 죄수들의 심금까지 울려서, 그들 모두가 조용하게 찬송을 듣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에게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주십니다!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나고 옥터가 움직이니 옥문이 다 열리고, 바울과 실라뿐만 아니라 다른 죄수들도 묶인 것이 다 풀어지고, 모두가 다 자유롭게 되는 기적이 나타났던 것입니다!!


   우리들 가운데도 경제적 밤중에 처한 사람, 질병의 밤중에 처한 사람, 영혼이 밤중에 처한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밤중에 ‘밝은 새벽’이 찾아오게 하는 방법이 무엇이겠습니까?

   사람들은 대부분 어려운 처지가 되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운명을 저주하지만,  이것은 신앙이 아직 자라지 못했음을 나타내는 증거입니다.
   신앙이 자란 사람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은 좋지 않은 것이 없다.’  좋은 것 있으면 좋은 것 주셔서 감사하고,  나쁜 것 있으면 하나님께서 이 나쁜 것을 좋은 것으로 만들어 주실 것임으로 “범사에 감사합니다!”―이렇게 말하게 됩니다.
   여러분,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능력과 권능이 우리에게 있는 이 칠흑 같은 밤을 물리치고, 희망의 새벽을 몰고 오는 역사를 이루어주시는 것은, 바로 우리가 감사의 제사를 드리는 것이라고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제2차 세계 대전의 일화 중에 Eddie Rickenbacker 대위의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특별한 임무를 맡은 40명의 군인을 태우고 날아가던 비행기가 남태평양의 바다 위에 불시착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바다를 표류하며 온갖 고통과 싸우며 21일간을 연명하고 있었습니다.  후에 이들은 모두 구조가 되었는데, 이 21일간의 있었던 일에 대해 지휘관이었던 Rickenbaker대위는 이런 회상을 수기에 쓰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무신론자이거나 적어도 신과는 멀리 떨어져 살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고통이 심해지고 최후의 시간이 다가올수록 그들은 하나님을 부르기 시작했다.  우리 크리스찬 몇 사람은 기억나는 대로 찬송을 불렀고, 모두가 따라하였다.  우리는 기도하였고, 그들에게도 기도를 가르쳤다.  거기서 우리들은 영원한 생명을 약속해 주신 주님께 감사하기에 이르렀다!”
   그들은 모두가 그 절망 가운데에서도 오히려 감사하는 기도를 드리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형편에서 무슨 감사할 것이 있었겠느냐 하고 생각하게 되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기도하며 찬송하는 중에 생각해보니, 너무나도 감사할 것이 많더라고 하는 것입니다!!

   영어로 ‘감사한다’는 ‘thank’라는 말과 ‘생각한다’는 ‘think’라는 말은 같은 어간을 가진 말입니다.  말 그대로 우리가 한 치만 더 깊이 생각해보면, 얼마나 감사한 일들이 많은지를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생각하는 방향이 감사하는 쪽으로 바뀌기만 하면, 어떤 처지에서도 감사하며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의 향방이 거꾸로 돌기 시작하여 불평하는 쪽으로 기울면, 넉넉한 가운데서도 불평거리를 찾고, 달밤에도 별빛이 없다며 불평하게 되는 것입니다.  불평을 중얼거리는 사람은 어떤 환경에서도 결코 행복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우리에게 “범사에, 모든 일에 감사하라”는 적극적 방향을 제시해 주시는 것입니다!

   아직도 여러분에게 어두운 밤중이 있습니까?
   여러분의 가정 어느 한 군데에 해결치 못하는 어두운 밤중이 있습니까?
   여러분의 사업하는데 있어서 어두운 밤중에 처한 분이 계십니까?

   감사로 찬송을 부르세요!  감사로 드리는 제사를 진실 되게 하나님께 드려보세요!
   어려움이 다가 온다고 해서 불평과 불만과 원망을 늘어놓으면 점점 더 깊이 수렁으로 빠지게 되지만, 어려움 속에서 진정으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분명히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사실을 확실하게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제 다음 주일은 우리의 일 년을 묶어서 하나님께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감사주일입니다.  이 감사주일! 여러분은 감사의 제단을 어떻게 준비되고 있습니까?
   초대교회 때부터 하나님께 일 년을 묶어 감사를 드릴 때, 구약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모범을 모두가 따랐습니다.  우리가 믿음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제사장 멜기세덱에게 감사의 제물을 드릴 때 십일조로서 드렸다고 성경은 말하여 주십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때부터, 또 우리 한국교회에서도, 추수감사주일에 감사의 제단을 쌓을 때 십일조 헌금을 기준으로 하여서 감사하여 왔습니다.  십일조란 나의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이 주신 것이며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이라고 하는 진실 된 고백의 표준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십일조 그것이 ‘진실 된 감사’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결단코 여러분에게 있어서 ‘비밀’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순전한 감사의 제사를 우리 모두 드리십시다.  하나님의 넘치는 축복과 구원의 역사가 우리에게 충만히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