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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겨울” (딤후 4:9-18)
오늘 같이 읽으신 본문의 말씀은 사도 바울이 말년에 로마 감옥에 갇혀있는 중, 사랑하는 제자이자 후계자인 디모데에게 두 번째로 보낸 편지중의 마지막 부분의 말씀입니다. 편지 내용의 정황으로 미루어 볼 때, “너는 속히 내게로 오라”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하는 말씀과, 특히 오늘 본문으로 같이 읽지는 않았습니다만 21절에 “너는 겨울 전에 어서 오라”고 하시는 말씀으로 보아서, 겨울이 임박해 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일 년 사계절 중 ‘겨울’은 좀 특별한 계절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습니까? 어떤 분은 추운 것 보다는 더운 것이 낫다고 하는 분이 있는가 하면, 나는 더운 것보다는 추운 게 오히려 낫다고 하는 분도 있습니다. 그런데, 추운 게 더 낫다고 하시는 분이나 더운 게 더 낫다고 하시는 분이거나 간에, 분명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겨울’이라고 하는 것은 ‘준비’를 갖추지 않고서는 지내지 못한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요즈음은 도시가스 보일러라든지 또 마켓이 발달되어서 예전 같지는 않습니다만, 그러나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또 지금도 시골에서는, 겨울이 오게 되면 미리들 김장을 담그고 연탄을 사 놓는 등 겨울을 날 준비를 하지 않습니까? 미리 서둘러 준비를 끝낸 다음에는 추위가 밀려와도, 첫눈이 내려도, 아무런 두려움이 없습니다. 푸근한 마음을 가지게 되지요. 그런데, 미쳐 김장도 못 담갔고 연탄도 장만해 두지 못하였는데, 갑자기 눈이 내리며 추위가 닥치면 참으로 난감하게 마련이지 않습니까?
역시 겨울은 일 년 사계절 중에서 준비를 하여야만 맞이할 수 있는 계절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보면 사도 바울이 디모데를 향해 “겨울 전에 어서 오라”고 말하며, 올 때에는 드로아에 있는 가보의 집에 맡겨 둔 겨울 겉옷을 가져와 달라고 하시며 겨울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겨울’이라고 하는 것은 비단 계절에만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 인생에도 이와 같은 사계절이 있습니다. 봄과 같이 꽃이 피고 희망에 부푼 때가 있는가 하면, 여름과 같이 더위와 싸우며 성장해야 하는 때가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가을과 같이 냉엄하게도 심은 대로 거두어들이는 심판을 받아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또한 겨울과 같이, 활동이 동결되며 손을 놓고 쉬어야만 하는 때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느 계절에 속해 있는 것 같습니까?
오늘 이 본문의 편지를 쓰고 있는 사도 바울은 지금 계절적으로도 겨울을 맞고 있지만, 그의 인생에 있어서도 겨울을 맞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 로마 감옥에 두 번째로 투옥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로마 감옥에 투옥되었을 때만 해도, 그는 이 감옥에서 풀려나서 스페인에까지 가서 복음을 전할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꿈을 가지지를 못합니다. 아마도 이 당시 사도 바울의 나이는 약 70세 정도로 추정이 됩니다. 인생의 나이에 있어서도 겨울이 되었습니다만, 그 뿐 아니라 6절에 보면, 이 감옥 속에서 바울은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하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 ‘전제’라고 하는 말은 피를 제단에 부어서 드리는 제사의 형식을 말합니다. 아마도 자신이 목 베임을 당하는 순교를 하게 될 것임을 미리 예측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 죽음의 시각을 바라보면서, 바울은 겨울을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 인생에 있어서 나이가 많이 들게 된 것만이 겨울은 아닙니다. 죽음을 눈앞에 둔 것만이 겨울이 되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오늘 본문 10절에 보면 디모데를 향하여 속히 오라고 말하며, 그 이유로서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하고 말씀하십니다. 주위에 있던 이들이 모두가 다 떠나가 버린 뒤, 혼자 겪게 되는 ‘이 외로움!―이 추위’를 아마도 여러분은 격어보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참으로 쓸쓸하지요. 혼자 있는 외로움! ― 우리 인생을 더욱 춥게 만드는 겨울인 것입니다!
먼저 오늘 본문에 보면 ‘데마’라는 이름이 나오는데, 이 사람은 성경에 세 번 그 이름이 나타납니다. 먼저 빌레몬서 1장 24절에 보면, 바울은 “나의 동역자”라고 그를 부르고 있습니다. 그 다음 골로세서 4장 14절에는 아무런 설명이 없이 그저 ‘데마’라는 이름만이 나옵니다. 그리고 오늘의 본문에서는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데마란 사람은 본래 바울의 동역자였으나, 무엇인가 못마땅했던 모양입니다. 아마도 바울이 능력이 있고, 권세도 있고, 지혜도 있는 분이니, 그를 통해서 입신출세를 하려고 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제 보니까 바울은 로마 감옥에서 그냥 죽어갈 모양입니다. 그리고 나면 나는 무엇이 됩니까? 그래서 바울을 배신하고 세상으로 달려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배신을 당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이런 배신을 당할 때, 우리의 마음에 부는 찬바람은 너무나도 모진 것입니다. 이럴 때 우리는 겨울을 느끼게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 다음에 보면,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그레스게와 디도는 딴 곳으로 보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어떤 사람을 꼭 내 곁에 붙잡아 두고 싶지만, 그러나 그가 해야 할 일이 또한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별의 슬픔을 감수하면서 멀리 떠나보내어야만 할 때가 너무나도 많습니다. 어릴 적 단짝 친구들이 결혼을 하여 내 곁을 떠나며, 애지중지 길러온 자식들이 이제 장성하여서는 내 곁은 떠납니다. 붙잡을 수 없는 일이고, 붙잡으려야 잡아지지도 않지요. 우리 가운데도 연세 좀 드신 분들은 아마도 이와 같은 떠나보내는 아픔을 다 겪어보셨을 것입니다. 그 마음이 어떠하였습니까?
이뿐만이 아니지요. 세월이 유수라는데, 어느 새 내가 알던 사람들이 하나 둘 이 세상을 떠나는 부고의 소식을 듣게 됩니다. 그것도 내 가까이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세상을 떠나는 아픔을 겪으며 우리는 살아갑니다. 늘 같이 있고 싶고, 결코 헤어지고 싶지 않지만, 우리는 이 죽음이란 이별 앞에 어쩔 수 없이 떠나보내어야만 합니다.
참으로 많은 이별이 우리 인생에 있습니다. 본인 스스로가 배반하고 떠난 사람도 있지만, 하나님의 거룩한 일을 이룩하기 위해서 떠나보내야만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죽음으로 인해 불가항력적으로 떠나보내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는 이번 겨울이 더할 수 없이 쓸쓸한 겨울로 맞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생각해보면, 이 세상의 어떤 고난도 동행자가 있으면 그런대로 견딜 수가 있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6.25의 그 피난길도, 나 혼자 가라면 아마 아무도 못 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두가 가며 모두가 하는 고생이니, 그 혹독한 피난길도 우리는 견딜 수가 있었지 않습니까? 아주 옛날의 왕들은 자기가 죽을 때에, 자기와 함께 하였던 부인과 신하들과 가축들을 함께 순장시켜서 죽음의 동행자로 삼았었는데, 아마도 이런 이유 때문에 그랬을 것이라고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혼자라는 고통! 외로움이라는 고통! ― 이것은 참으로 견디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여기서 우리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우리 인생에 몰려오는 이 겨울!――이것은 어디 사도 바울과 같은 어떤 특정한 사람에게만 오게 되는 그런 것이겠습니까? 그렇지가 않지요! 활동하기에 불편한 겨울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원하거나 원하지 않거나에 상관이 없이, 우리 모두에게 다가오는 것이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인물들 가운데서 가장 위대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사도 바울 같은 사람에게도 예외 없이 다가온 인생의 겨울입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에게도, 누구에게나 다가오게 되는 그러한 것입니다. 바로 이점을 우리는 깊이 인식하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겨울이 오지 말 것을 기도하는 그런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인생 누구에게나 다 오는 것입니다. 아무도 여기서는 예외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이 겨울을 그러면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이 겨울에 대한 대비를 ‘하고 있는가, 하지 못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추위를 앞두고, 겨울에 대해 단단히 대비를 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걱정이 없을 것입니다. 또한 “나는 추운 것이 오히려 좋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인생의 겨울에 대해서는 어떻게 준비를 하고 계십니까?
오늘 분문에 보면, 사도 바울은 “내가 두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라”고 겨울에 대한 준비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단지 추운 날씨에 대해서만 준비를 하고 있지를 않습니다. 그의 앞에 다가오는 인생의 겨울에 대해서도 준비를 하고 있는 모습을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보여 주십니다. 사도 바울의 이 모습을 통하여, 우리도 ‘우리의 인생의 겨울에 대하여 어떻게 준비를 하여야 할 것인가?’하는 것을 깊이 우리 마음속에 새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먼저 바울은 ‘마가를 데려오라’고 말합니다. 이 마가에 대해서는 여러분이 잘 알고 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오순절 다락방에서 성령이 임하였는데, 바로 그 집의 아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다락방을 ‘마가의 다락방’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마가와 사도 바울의 관계는 색다른 사연을 가지고 있는 것을 우리는 성경에서 볼 수 있습니다. 어떤 관계냐 하면, 사도행전 12장과 13장을 보면, 먼저 마가는 아주 어릴 때부터 예수를 믿었고, 사도 바울이 1차 전도여행을 떠날 때에 따라가기까지 한 열심 있는 청년임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전도여행 도중 이들이 밤빌리아에 갔을 때, 마가는 어떤 병에 결려서 보름 동안이나 꼼짝하지 못하고 누어있게 되었습니다. 전도여행의 일정이란 무척 바쁜 것입니다. 지금 관광여행을 다니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여행경비가 충분한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 때 아무 말도 없이 마가를 간호하느라고 애를 썼을 뿐만 아니라, 그를 위하여 주야를 가리지 않고 기도하여 주었습니다. 그 결과 마가는 쾌유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모두들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이제야 다시 전도여행을 떠날 수 있게 되었구나 하고 있는데,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마가는 더 이상 못가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고향으로 되돌아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때 바울은 얼마나 섭섭하였겠습니까?!
그 후 제1차 전도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사도 바울은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보고를 하게 됩니다. 어느 곳에서는 어떻게 전도를 했으며, 어떤 핍박이 있었고, 어떠한 기적이 나타났고, 어디에 교회를 세웠고…… 쭉 이야기를 하는데, 마가가 가만히 들어보니 흥미진진하거든요. 그래서 마가는 매우 후회하며 크게 반성을 합니다. 그래서 바울이 2차 전도여행을 준비하고 나설 때에 다시 따라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를 허락하지 않고 거절을 하였습니다. 간청을 하였지만 완강히 거절을 하였습니다. 이로 인하여 1차 전도여행 때 바울의 동역자로서 함께 전도여행을 다녔던 바나바는 이 마가를 데리고 바울과는 헤어져서 전도여행을 따로 떠나게 되었고, 바울은 그 대신 실라를 데리고 다른 길로 전도여행을 떠났습니다.
아마도 이때 마가는 무척이나 속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자신이 1차 전도여행 때 행했던 과오를 반성하면서 더욱 더 열심히 전도를 하였고, 전설에 의하면 베드로의 통역관으로서 나중에 로마에까지 갔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사도 바울은 로마 감옥에 갇혀있을 그 당시에, 마가가 열심히 전도하고 있다는 소식을 모두 듣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제 겨울이 다가오고 최후의 날이 가까워 오자, 바울은 마가와의 일을 아름답게 매듭짓고자 하는 것입니다. 사실 사도 바울에게는 잘못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좀 더 바르게, 또 곧게 하기 위해서 거절했던 것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서 전도활동이, 서로가 나누어 하는 가운데 더 좋은 열매를 맺게 되어진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결과야 어쨌든, 마가의 그 마음을 아프게 했던 것을 바울은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마가를 부릅니다. “그 때 얼마나 섭섭했겠느냐? 무척 마음이 아팠지? 미안하다.”―아마도 이렇게 마가를 위로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를 만나서 화해도 하고, 격려도 해주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마가를 데리고 오라고 부탁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도 인생의 겨울이 다가올 때,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없으십니까? 찾아가서 화해하고 용서해 주어야 할 사람이 누구입니까? 서로의 잘잘못을 가리기 이전에, 그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은 사실입니다. 아무리 결과가 좋았다고 하더라도, 마지막으로 꼭 만나서 화해하고 용서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것이 자신에게 유익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인생의 겨울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바울이 했던 것과 같이 그런 준비를 하여야만 합니다. 여러분은 이와 같은 준비를 하고 계십니까?
다음으로, 바울은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고 말합니다. 이 가죽 종이란 헬라어로 ‘비블리아’, 그러니까 바이블―곧 성경이라는 뜻입니다. 이 당시에 성경은 양의 가죽을 얇게 저며서 종이처럼 만든 두루마리에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에, 부피가 크고 무거웠습니다. 성경만으로도 한 짐이나 됩니다. 따라서 늘 가지고 다니기에는 벅차므로, 바울은 전도여행을 다닐 때에는 잘 아는 사람의 집에 맡겨두고 다녔습니다. 이제 인생의 겨울을 앞두고 그것을 다시 가져다 달라고 부탁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직 성경을 가까이 하고, 그것을 다시 보아야겠다는 것이지요.
겨울이 가까워졌을 때, 여러분은 과연 무엇을 생각하십니까?
지금은 작고하였습니다만, 제가 잘 아는 어떤 교수님이 계십니다. 평소에 많은 책을 보시며, 그분의 서재에는 수천 권의 책이 꽂혀져 있었습니다. 제가 방문할 때마다 늘 그 책들을 자랑하곤 하셨습니다. 제가 미국에서 귀국한 직후 인사차 그 교수님 댁에 들렸었는데, 당시는 은퇴하신 후 80에 가까운 연세셨습니다. 그런데 그 많던 책들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다 도서관에 기증해 버리시고는, 책상 위에는 오직 성경만이 놓여있었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그 많던 책! 다 필요가 없게 되었네, 나는 지금 신문도 볼 필요가 없어. 어떤 책도 이제 나와는 상관이 없네. 오직 이 성경책!―그리스도의 말씀만이 나를 위로할 뿐이네, 이 성경만이 내가 보고 또 보아야 할 유일한 책이라네!”
여러분, 겨울이 가까웠습니까? 이제 우리가 보아야 할 책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 가까이에 늘 지녀야 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잡동사니 책이나 자질구레한 세상사에 공연히 근심을 쌓지 마십시오. 오직 성경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나이가 들었거든 더 많이 읽으십시오. 열중해서 읽으십시오. 아무리 바빠도 사도 바울처럼 성경을 찾으며, 좀 더 진실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셔야 합니다. 이 준비를 여러분은 매일같이 하고 계십니까?
세 번째로, 14절을 보면 “구리 세공업자 알렉산더가 내게 해를 많이 입혔으매 주께서 그 행한 대로 그에게 갚으시리니”하는 구절이 나옵니다. 여기 구리 세공업자란 옛날에 구리로 무늬를 새겨 우상을 만드는 것을 말합니다. 이 우상을 만들어 장사하는 사람들이 사도 바울의 전도로 인하여 장사에 막대한 손해를 본다고 하여, 바울을 많이 괴롭혔습니다. 바울에게는 아주 원수와 같은 사람들이지요. 그런데 바울은 자기를 괴롭히던 사람들에 대하여도 “주께서 그 행한 대로 그에게 갚으시리니”하고 하나님께 맡겨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더 이상 미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께서 심판하시기 때문입니다. 다만 바울은 “너도 그를 주의하라”고 얘기할 뿐입니다.
옛날 우리 조상들의 고담이나 역사 속에서, 우리는 자기 자식들에게 자기의 원수를 갚아달라고 유언하고 죽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식들은 그 유언을 지키기 위해서, 원수를 갚느라고 일생을 모두 허비해 버리고 마는 이야기…… 그런데 원수를 막상 갚았더니, 이제는 상대방의 자녀들이 다시 내게 원수를 갚는다고 그들의 일생을 허비하며 야단이고…… 생각해 보세요. 이 얼마나 허망한 인생들입니까?!
사도 바울은 “전에 나를 괴롭히던 사람들이 있으니 너도 그들을 주의하라. 그러나 주께서 그들이 행한 대로 갚아 주실 것이다. 그러니 너는 모든 것을 주께 맡겨버려라” 하고 우리들에게 당부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서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그들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하고 말씀하십니다. 처음 복음을 전할 때 열심히 동행하며 따라 다녔던 무리들이 비록 지금은 모두 떠나버렸고, 또 그들의 떠나버린 행위에 대해 매우 섭섭하기는 하였지만, 그러나 “허물을 그들에게 돌리지 말라.” 하십니다. 이 말은 곧 ‘허물이 저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허물은 내게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제 우리에게도 겨울이 가까이 오고 있는데, 아직도 남을 비판하고, 내 모든 운명의 잘못이 남에게 있다고 원망을 해야 하겠습니까? 모든 허물은 내게 있지, 다른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식이 잘못되어도 자식을 나무라지 마십시오. 내게 잘못이 있습니다. 남편이 잘못 된 것도 그 탓이 아내인 내게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십시오. 아내가 잘못된 것도 그 탓이 남편인 내게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십시오. 비록 들어난 잘못은 당신이 했지만, 그러나 그 원인은 내가 제공했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겨울을 준비하는 사람의 마땅한 자세인 것입니다!!
어느 누구에게나 겨울은 오는 것입니다. 겨울을 맞이하면서 김장을 담근다든지, 외투를 장만한다든지 하는 물량적인 준비만이 아닌, 우리 인생의 겨울이 오기 전에도 이를 위한 준비를 우리는 하여야만 합니다. 이 시간 우리의 믿음을 한번 저울질 해 보십시오. 나 자신을 겸허하게 성찰해야 합니다. 내가 혹 잘못한 일은 없는가? 혹시라도 내가 누구를 섭섭하게 만들지는 않았는가? ― 겸허히 돌아보셔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내 눈이 흐려지기 전에, 내 기억이 쇠하기 전에, 더욱 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또한 용서할 자는 용서하고, 사과해야 할 사람에게는 사과하고, 그리고 하나님께만 의지하는 믿음의 준비를 하여야 하겠습니다.
이와 같은 준비를 다 갖춘 바울은 18절에서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하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준비를 갖춘 자에게는 겨울이 두렵지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로 이 순간에 나를 부르신다고 하더라도, 아무런 거리낌이 없이 순종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인생의 겨울에 대해 준비를 하며 살아가는 바울이었기 때문에, 이제 마지막 순교의 순간을 앞에 두고 바울은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하고 외치고 있습니다. 오늘 같이 읽으신 본문 바로 앞에 나오는 7절과 8절의 말씀입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이 고백이 또한 여러분의 고백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직 그리스도께 초점을 맞추고, 주님이 주시는 생명의 면류관을 기다리는 자세로, 매일 매일을 믿음가운데서 더욱 힘차게 달려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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