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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작하는 말
또 며칠이 지나면 성탄절을 맞게 됩니다. 멸망에 이르는 길인 죄가 죄인 줄도 모른 채, 살아가는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주 예수님이 강림하신 것을 축하하는 명절 중 명절입니다. 이 명절 중 명절을 수천만 번 맞는다고 해도, 예수님을 심령에 모셔들이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성탄절은 주인공이 없는 연락, 주인공이 없는 환락, 주인공이 없는 죄악의 낙을 만끽하는 명절 아닌 명절로 전락되어 왔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교인들 중에는 예수님을 존경하고 본받을 만한 성인으로 여기는 이들이 있고, 수많은 구주 중 한 분으로 믿는 이들이 있고, 유일무이한 구주로 믿는 이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유일무이한 구주로 믿는다고 해서 충분한 것은 아닙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천국에 들어갈 때까지 매일매일 구주 예수님과 동행해야만 합니다.
2. 예수님과 동행하는 줄 착각한 부모
성령으로 잉태된 예수님을 낳은 마리아와 남편 요셉은 해마다 유월절을 당하면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
유월절이란 니산월 곧 4월 14일부터 15일 이른 시간까지 지킨 구원의 축제입니다. 14일 오전 중에 집 안에서 누룩을 찾아 없애고, 오후에는 양을 잡았습니다. 이 명절은 그 달 15일부터 21일까지 계속되는 무교절로 이어졌습니다. 민간의 관습으로는 두 축제가 같은 명절로 취급되어 통상 유월절로 일컬어졌습니다. 출애굽을 기념하는 유월절은 오순절과 초막절과 함께, 예루살렘에서 24㎞ 이내에 있는 유대의 성인 남자가 의무적으로 예루살렘에 참가해야 하는 삼대 명절 중 하나입니다.
예수님의 부모가 해마다 유월절에 예루살렘으로 갔다는 것은, 마리아와 요셉이 유월절을 충실히 지킨 경건한 유대인들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열두 살 될 때에도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올라갔습니다. 열두 살이란 유대 소년이 ‘율법의 아들’이 되는 해로, 금식이나 절기 등의 율법의 계명을 지켜야만 했습니다. 열세 살이라는 견해도 있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이 유월절 기간이 끝나서 돌아갈 때, 열두 살인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머무셨습니다. 그런데 부모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하고, 동행 중에 있는 줄로 생각했습니다. “동행”의 헬라어 쉬노디아(συνοδίᾳ)는 ‘대상’(隊商), ‘여행자 집단’을 의미합니다.
순례자들은 적대적인 사마리아 땅을 지나가는 위험을 대비하고, 강도들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서, 또 먼 여행길에 도움을 주고받고, 지루하지 않도록 단체로 여행했습니다. 순례단은 친척이나 친지, 또는 마을 주민들이나 이웃 마을들로 구성되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이 요셉과 같이 가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요셉은 예수님이 마리아와 같이 가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혹은, 친척들이나 친지들과 같이 가고 있다고 생각했거나, 같은 또래와 같이 가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 생각 때문에 부모는 예수님에 대해 염려하지 않고 하룻길을 여행했습니다.
오늘날에도 주 예수님의 일행과 함께 가고 있는 인생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은 주님 예수를 잃어버리고 가는 인생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주 예수님의 뜻이 아니라 자기의 뜻을 고집하고, 주 예수님의 영광이 아니라 자기의 영광을 구하고, 주 예수님 본위가 아니라 자기 본위의 삶을 사는 교인들과 교역자들은 실은 주님 예수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며칠 전에, 택시를 잡았습니다. 타자마자 택시가 떠나갈 정도로 크고 시원스런 목소리로 인사를 했습니다. 인사를 하면서 뒷자리에 앉자 “건강하셔야 합니다.”로 시작해서 건강의 중요성과 자신의 당뇨병과 기타 병들이 낫고, 건강해진 것이 16가지의 곡물을 계속 먹었기 때문이라고 역설했습니다. 채식과 건강에 관한 책 한 권의 제목까지 일러주면서 꼭 사 보시라고 거듭거듭 강조했습니다. 그러더니 지나가는 말처럼 “제 건강은 16가지 곡물과 예수를 믿어서 된 겁니다.”라고 했습니다. “아, 예.”라고 맞장구쳤더니, 신이 났는지 다시 특유의 목소리로 간증을 했습니다. “제가 65세(?)에 이렇게 건강하게 운전하는 일을 하는데, 젊었을 때에는 죽을병에 걸려 죽을 뻔했습니다. 척추에 바이러스가 침투해서 허리가 아프더니 급기야 하반신을 못 쓰게 되어 휠체어를 타는 신세가 됐습니다. 서울에 있는 유명한 병원이란 병원은 다 다녔고, 한방 치료를 받았는데도 전혀 차도가 없고, 점점 더 심해져서 죽을 날만 기다렸습니다. 그 당시에 예수를 믿고 교회에 다니시던 어머니와 ‘000 기도원’에 가서 울부짖으며 기도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기도 ! 중에 갑자기 몸이 뜨거워지기 시작하더니 온몸이 불에 데는 것처럼 뜨거워져서 저도 모르게 몸부림치면서 데굴데굴 굴렀습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일어나 걷게 됐습니다.”
믿기 어려운 체험 이야기를 듣고 의심할까 싶었던지 제 눈치를 살폈습니다. 여러분처럼, 간증 상대가 36년간 안수기도와 전화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신유와 축귀의 도구 노릇을 해 온 목사인 줄 알았더라면, 눈치보는 대신에 더욱 신바람이 났을 것입니다. 우리끼리 얘기지만, 이런 경우를 ‘번데기 앞에 주름잡는다’고 하죠.
주님을 믿어 구원 은혜는 물론, 신유를 체험한 후에 주님과 동행하는 모습에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주님의 은혜를 받은 교인이 주님과 동행하는 당연한 모습을 보고, 감사하며 칭찬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여러분도 잘 아는 바와 같이, 신유나 축귀의 은혜를 체험하고, 주님과 동행하기는커녕 인사차 우리 교회에 다니다가 떠난 이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주 예수님을 잃어버린 언행을 하면서도 여전히 주 예수님과 동행하는 줄 착각하는 교인들도 많고, 교역자들도 더러 있습니다.
요즘 전 정권 때 총리였던 한00 씨가 5만 달러 뇌물 수수 문제로 성경을 지참한 채, 연행되어 검찰의 심문에 묵비권을 행사했다는 뉴스를 대했습니다. 누명이라면 현 정권에 큰 타격이 될 것이고, 사실이라면 주님을 잃어버리고도 주님과 동행하는 줄 착각한 범죄입니다. 주님을 믿어 구원의 은혜를 받고, 또한 나랏일을 하는 자리에 앉은 교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당리당략을 따라 일한다면 주님과 동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직자가 최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목사가 아닌 주님의 종노릇입니다. 교인들의 종노릇이 아니라, 유한한 인간으로서 무한자 하나님의 종노릇을 하는 것만큼 어렵고 힘든 일은 결코 없습니다. 아무리 성령으로 충만한 종이라 해도, 주님의 종노릇이란 영원토록 충성을 바쳐도 충분할 수 없고, 영원토록 헌신해도 만족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행정 수반을 영적 수반이라고 하면서 노회장이나 감리사, 총회장이나 감독이 되기 위해서 돈 선거판을 만들고, 당쟁 선거판을 만들고, 불법 선거판을 만들고, 부정 선거판을 만드는 것은 주님과 동행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것들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종노릇에 비하면 별것 아닌 행정 수반을 못했다고 문제가 되는 것도 아니고, 했다고 더 존경받는 것도 아닙니다.
어그러지고 거스르며, 죄악이 만연되어 가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할 교회가 주님과 동행하지 못한 것에 대해, 저를 비롯해서 모든 교역자들과 교인들이 회개하고, 기를 쓰고 주님을 찾아 만나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과 동행하는 언행을 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이사야 55:6을 보면, 선민이라 자부하는 이스라엘에게,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라고 했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은 다행히 하룻길을 간 후에 예수님을 잃어버린 것을 깨닫고, 친족과 아는 사람들 속에서 찾다가 못 찾고, 계속 찾으면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갔고, 드디어 사흘 후에 성전에서 만났습니다. 살아가다 보면 동행해야 할 주님을 잃어버리고도 동행 중에 있는 줄 착각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 모두 주님을 잃어버린 것을 깨닫고, 기를 쓰고 주님을 찾아 만나시기 바랍니다.
부모가 찾은 예수님은 성전에서 선생들 사이에 앉아 말씀을 듣기도 하시고, 묻기도 하셨습니다. 듣는 사람들이 다 소년 예수님의 신령한 지혜와 대답에 감탄했습니다. 놀란 부모, 특히 마리아는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부모는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 부모는 기를 쓰고 예수님을 찾아 만났지만, 아직 내면의 영적 만남도 내면의 영적 교통도 이루지 못했습니다. 아무튼, 그 부모는 귀갓길에 예수님과 동행했고, 예수님의 효도를 받았습니다. 마리아는 심상치 않은 예수님의 모든 말씀을 마음에 두었습니다.
3. 맺음말
우리 모두는 물론, 현대 교회가 주님을 만나 동행하기 위해 초대교회가 아닌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보다 더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해야 합니다. 주님과의 만남의 자리인 복음을 비롯한 모든 말씀은 육의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영의 귀로 듣는 것입니다. 영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가장 잘 듣는 것은 머리와 가슴이 아닌 온 영으로 듣는 것입니다. 온 영을 기울여 들은 말씀이 우리의 속에서 역사하여 주님과 동행케 하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