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의 영

양자의 영
로마서 8:12-17

정실(正室) 아내가 낳은 아들을 적자(嫡子)라고 하고, 소실이 낳은 아들을 서자라 합니다. 아들이 없는 집에서 대를 잇기 위하여 데려다 키우는 남자를 양자라고 합니다. 양자란 입양에 의해서 자식의 자격을 얻은 입양자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적자이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양자입니다.

신약성경은 구원받은 성도가 갖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양자의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12절) 여기서 말하는 빚진 자란 양자 된 권리를 말합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빚진 자들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양자로 삼아 주신 일을 빚으로 여깁니다. “평생 갚아도 빚진 자 되어 말씀 전하여 복음 전하여 주님의 빚을 갚으리...” 하고 부르는 찬양은 “빚진 자”의 노래입니다.




양자의 영은 살리는 영이다.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죽이면 살리니...”(13절) 여기서 말하는 “육신대로”란 양자 되기 전 옛사람의 “죄의 본성”을 말합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하나님의 양자가 되어 하나님의 아들의 권리를 누리며 살기 위해서는 양자가 되기 전의 영을 죽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즘 신종플루 바이러스가 창궐하여 불안해 합니다. 바이러스는 동물이나 식물의 살아 있는 세포에서만 기생이 가능한 병원체입니다. 이것을 물리치려면 신종플루 약을 먹거나 예방주사를 맞아야 합니다. 병원체를 죽이기 위해서입니다.

믿는 사람은 스스로 자기의 운명을 결정합니다.

몸의 행실을 죽이면 내가 살고 죽이지 못하면 그가 나를 죽입니다. 몸의 행실은 죄요 죄 값은 사망입니다.

몸의 행실은 악한 행실입니다. 죄와 수치, 파멸과 사망으로 인도하는 욕구와 충동입니다. 죽인다는 말은 처형시킨다는 뜻입니다. 몸의 행실을 죽이는 힘은 “성령” 입니다. 성령께서 악한 행실들의 힘을 죽이고 굴복시킬 힘을 주십니다. 그것이 양자의 영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죄의 힘을 파괴하려는 의지적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의지적으로 악한 행실을 부정하고자 할 때, 성령은 악한 행실의 힘과 충동을 죽이고자 하십니다. 만약 우리가 우리 몸의 행실을 죽이기를 원치 않고 계속해서 육신의 죄 가운데서 사는 것을 좋아하고, 성령과 더불어 교통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성령은 우리를 위해서 아무 일도 하지 않으십니다.

성공하는데 필요한 가치는 뛰어난 재능보다 결심입니다. 일을 추진해 가는 힘보다 그 일을 끈기 있게 밀고 나가는 의지가 더 중요합니다. 의지력은 인격의 힘 자체입니다. 양자의 영이 영적인 의지요 의지가 행동의 추진력이요 모든 노력을 가능케 하는 영혼의 힘입니다.

양자의 영을 받으면 마음이 하나님을 향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게 되고 사랑하게 됩니다. 몸의 행실을 죽이려는 의지가 생깁니다. 여기서 기억해야 하는 일은 몸의 행실을 죽이는 일이 단번에 되는 일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사는 날 동안 계속해서 이어지는 싸움입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영을 쫓으며 계속해서 몸의 행실을 죽여야 합니다.




양자의 영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한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14절)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롬8:14) 양자의 영이 있어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르게 됩니다.

받는 것을 보여 줄 때 하나님의 아들임이 증명됩니다. 17세 소년이 지붕에 올라가 투신 자살을 하려고 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알콜 중독, 어머니는 오래 전에 가출했습니다. 한 신사가 지붕으로 올라가 한 시간 반 동안이나 애원하듯 말했습니다. 똑같은 말입니다. “내거로 오너라, 내가 네 아버지가 되겠다.” 소년은 그의 품에 안겨 그의 아들이 되었습니다. 그는 양자가 되었습니다. 새 아버지로부터 그의 필요한 모든 것이 공급되었습니다.

나는 과거에 사탄의 가족 중 하나였습니다. 그 때 나의 아버지는 마귀였습니다. 나는 그때 사탄의 가족으로부터 분리되어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 딸들과 결합되었습니다. “양자 될 것 곧 몸의 속량”(롬8:23)을 받아 하나님의 가족과 관계를 맺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가족과 맺은 관계는 내가 믿음을 가지면서 시작되어 일평생 지속됩니다.

양자의 영을 받으면 하나님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백악관에서 자유롭게 뛰어다니며 노는 아이는 대통령의 아들입니다. 왜 그럴까요? 대통령이 자기아버지이니까요. 거기가 자기 집이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다시는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15절)

사도 바울은 양자의 영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누구의 영입니까? 하나님의 영인데 아들로부터나옵니다.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시라는 마음입니다. 그것이 바로 양자의 영입니다. 양자의 영은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우리는 양자됨(Adoption)에 대한 확신이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 로마의 양자법의 원리를 알아야 합니다.

첫째, 양자가 되고 나면 그가 옛 가정에서 가졌던 권리를 다 잃게 됩니다. 과거의 자기 집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게 됩니다. 이전 집의 권리가 크든 작든 그 집을 떠나 이 집으로 양자로 온 이상 이전의 모든 권리를 포기한 것입니다.

둘째, 법률상으로 입양된 양자는 옛 가정의 권리 뿐 아니라 의무에서도 완전히 해방됩니다.

셋째, 양자는 이전에 종이었든 양반이었든 거지였든 부자였든 상관없이 새 아버지의 자녀가 된다는 것입니다. 네로 황제는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양자로 들어와 클라우디우스가 세상을 떠나자 그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되었습니다.

넷째, 양자는 새 아버지와 함께 살면서 새 권리를 누릴 뿐 아니라 새 의무를 지게 됩니다.

이것을 신학적으로 말하면 “관계의 연결”입니다. 하나님의 양자가 되어 부자 관계 가족 관계가 맺어진 것입니다. 양자의 영은 하나님의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게 합니다. 양자의 영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기도하실 때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막14:36)라고 하셨습니다.

양자의 영을 받으면 친자이신 예수님과 똑같이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갈4:6)




양자의 영은 보답하게 한다.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12절) “빚진 죄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빚지면 빚쟁이의 종이 된다.”(잠22:7고 했습니다.

황인숙씨가 쓴 아주 짧은 시 한편이 있습니다. “왜 사는가? 왜 사는가..... 외상 값” 이것이 전부입니다. “외상 값”을 갚으려고 산다는 것입니다. 그가 말하는 외상값이란 갚을 돈이 아니라 받은 사랑, 입은 은혜를 외상값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한 여인이 추운 겨울밤에 아기를 안고 산을 넘고 있었습니다. 집으로 가는 중이었습니다. 그날 따라 강풍과 폭설이 매섭게 휘몰아 쳤습니다. 하얀 눈이 그녀가 가는 길을 덮어 버렸습니다. 여인은 당황하여 길을 잃은 채 방황하다가 눈 속에 파묻히고 말았습니다. 이튿날 구조대가 그 여인을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여인은 자기 옷을 모두 벗어 아기에게 입혔습니다. 자기 옷을 모두 아기에게 입히고 자기는 얼어죽은 것입니다. 아기는 죽은 엄마 품안에서 살아 있었습니다.

이 아이가 자라서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축하를 받던 그 날 숙부로부터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그 위대한 어머니의 죽음과 어떻게 살아 있게 된 것을 말해 준 것입니다. 어머니가 아들을 살리려고 자기는 죽으신 것을 알았습니다.

청년은 혹한의 겨울에 어머니의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자신이 입고 있던 외투를 벗었습니다. 속옷까지 벗어 어머니 무덤을 덮었습니다. 청년은 벌거벗은 몸으로 무덤을 껴안으며 울부짖었습니다. “어머니!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더 추우셨지요? 어린 핏덩이를 살리기 위해 스스로 생명을 던지신 어머니의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하나요.”

그 위대한 어머니로 인해 세상에 살아 남은 사람은 데이비드 로드 죠지(David Lloyd George)입니다. 1차 세계대전 때 영국 군수장관으로 활약한 인물입니다. 강력한 리더십으로 영국 사회 보장 제도의 기초를 확립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가 절망에 처한 영국인들을 향해 외친 메시지는 지금까지 영국인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여러분! 큰 걸음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작은 두 걸음으로는 협곡을 건널 수 없습니다. 위기의 골짜기를 건너려면 반드시 큰 걸음이 필요합니다.” 그는 아들의 영이 있어 어머니의 은혜에 보답하려 힘쓴 결과 사회에 보답하고 국가에 기여했습니다.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17절)

데이비드에게 아들의 영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양자 된 자들입니다. 우리에게 양자의 영이 있어야 자녀의 성품이 길러져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고난을 이길 힘이 양자의 영에서 나옵니다. 사도 바울은 빚진 자였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13절)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내가 빚진 자라”(롬1:14) 헬라인에게 빚을 갚고 야만인에게 빚을 갚는 길은 복음을 전하는 일로 여겼습니다.

양자의 영이 있어야 몸의 행실을 죽일 수 있습니다. 양자의 영이 있어야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양자의 영이 있어야 아버지의 상속자가 됩니다. 양자의 영이 있어야 아들의 영광을 받게 됩니다. 양자의 영이 있어야 그 영광을 위해 고난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