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의 용서--- 사랑의용서

요셉의 용서… 신애의 용서…/창세기 50장 19∼21절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은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용서를 생각하게끔 합니다.

내게 범한 죄를 당사자가 아닌 하나님이 용서하고, 피해자인 내가 용서하지도 않았는데 살인자가 하나님으로부터 용서 받을 수 있는가를 묻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용서, 그래서 구원에 이르는 용서는 무엇일까요?

첫째, 오직 하나님만이 죄를 용서합니다.

모든 죄는 하나님께 자행한 것입니다.

따라서 죄를 지으면 하나님이 벌하시고, 용서도 하나님이 하십니다.

이 때문에 다윗은 우리야에게 죄를 범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에게만 죄를 지었다고 고백합니다(시 51:4).

이러한 인식은 인간을 존중하지 않아서도 아니고, 권리를 앗아가려는 것도 아닙니다.

보복의 악순환을 막고, 죄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이며, 약자에 대한 하나님의 연민입니다.

밀양의 여 주인공인 신애는 그런 하나님을 규탄합니다.

“내가 그를 용서하지 않았는데, 어느 누가 나보다 먼저 그를 용서하느냔 말이에요! 그럴 권한은 주님에게도 없어요.”

하나님에 대한 오해입니다. 반면, 요셉은 형들에게 말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기라도 하겠습니까?”(19절)

살인자는 하나님을 죽인 것이고, 형들은 하나님을 노예로 팔아넘긴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한 요셉은 자유를 얻습니다.

둘째, 용서한 자는 계속 용서해야 합니다.

한 번 용서했으면 또다시 용서해야 합니다.

하나님?우리의 죄를 지금도 용서하십니다.

우리가 반복적으로 죄를 짓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용서는 단번에 종결되지 않고 언제나 새롭게 결단해야 하는 지난한 과정입니다.

신애가 용서하고자 마음먹고 찾아간 것이 구원의 용어로 표현하여 칭의라면, 또 용서하는 성화의 단계를 거쳐야 합니다.

요셉은 신애와 달리 두 번이나 용서합니다.

처음은 형들을 만났을 때이고, 다음은 이삭이 죽은 후에 그들이 두려워할 때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변함없이 죄를 반복하는 우리를 하염없이 용서합니다.

용서는 하나님의 본성이고 성품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자녀로, 용서 받은 자인 우리는 계속해서 용서해야 합니다.

여전히 악하고 약한 나를 또 용서하는 하나님처럼 말입니다.

셋째, 용서 받은 자는 용서를 청해야 합니다.

살인자는 신애에게 용서를 구해야 마땅합니다.

정녕 어린아이를 유괴하고 살인하고는 오직 신만이 허락하시는 특별한 은혜로 모든 죄를 사함 받았다고 아이의 어미 앞에서 너무나 행복에 겨운 미소 띤 얼굴로 기도한다고 말하는 것이 참으로 용서 받은 자의 모습일까요? 형들은 두 번이나 사죄합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회개합니다.

그는 아직 용서를 받지 않았습니다.

신애의 용서가 있기 전, 용서 받은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 예물을 드리기 전에 원망하는 이와 먼저 화해해야 합니다(마 5:24).

땅에서 매면 하늘은 용서하지 않고, 땅에서 풀면 하늘도 용서합니다(마 18:18).

우리가 남의 잘못을 용서해 주기 전에 하나님도 용서하지 않습니다(마 6:14∼15).

마땅히 머리를 조아리고, 무릎을 꿇고 잘못을 빌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용서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용서 받은 자입니다.

그리고 용서 받았기에 찾아가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오늘 하루 용서 받은 자가 되고, 용서하는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