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배의 축복

제목 ; 빈 배의 축복                     
  <   And he entered into one of the ships >
성경 ; 누가복음 5장 1절 - 11절

<찬송= 408내주하나님넓고, 503고요한바다로, 물이바다덮음같이 >

(눅 5:1-11) 『[1] 무리가 옹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새 예수는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 [2] 호숫가에 두 배가 있는 것을 보시니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는지라 [3]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떼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4]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5]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6] 그리한즉
고기를 에운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7]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를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저희가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8]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가로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9] 이는 자기와
및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이 고기 잡힌 것을 인하여 놀라고 [10] 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예수께서
시몬에게 일러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11] 저희가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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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미국 LA 하계올림픽에서 중국의 여자 선수가 다이빙에서 우승을 했다.
그때 그녀에게 기자가 질문을 했다. \"당신은 동양 여자로 몸집도 왜소한데
어떻게 그렇게 부드러운 동작으로 고공에서 아름답게 다이빙을 할 수 있습니까?\"
\"저는 어렸을 때 100m 달리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자주 경주에서 엎어지고 넘어졌죠.
그래서 꼴찌로 들어왔습니다.
그때마다 좌절하는 제게 어머니는 격려해주셨습니다.
\'사랑하는 딸아, 나는 네가 1등하는 것보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모습이 더 아름답구나.
나는 다시 일어나는 네가 너무 아름다워 견딜 수가 없단다.
너는 너무 아름다운 내 딸이다.\'
저는 그런 어머니를 생각하면 다이빙 스탠드에서도 마음이 평안해집니다.\"
그녀는 수없이 넘어졌다. 좌절했다. 그러나 다시 일어났다.

무엇이 우리를 넘어지게 했든지 우리는 다시 일어나야 한다.
다시 일어나 올해의 남은 하반기를 힘차게 시작하자.
넘어지는 것은 처참하고 아프다.
그러나 일어나는 모습은 더 찬란하다. 아름답다 못해 숭고하다.

하나님은 지금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지느니라\"(잠 24:16)


올해도 이제 8월 달로 접어들었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휴가철입니다. 후반기 사역을 위한 휴가입니다.
휴가는 그냥 즐기고 놀고 하며 피곤한 시간이 아닙니다.
휴가는 재충전의 시간입니다.
쉰다 REST  는 R 자를 따서 3가지로 말했습니다.
‘되돌아 봄’(Reflection)‘새롭게함(Refreshment) 
그리고 ‘다시 창조함’(Recreation)이다.

휴가철에 사람들은 바다나 산으로 갑니다.
오늘 우리는 성경에서 예수님이 가신 호수가로 가보기를 바랍니다.
게네사렛 호수 - 고기가 없는 빈 배가 있었습니다.
이 호수가에  주님이 오심으로 어떤 변화가 일어났습니까?

1, 그 빈 배를 주님이 말씀을 전하는 곳으로 사용하셨습니다.

[3]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떼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 \"어떤 사람이 등산하다가 길을 잃고 헤매던 중 불빛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불빛을 따라 올라갔더니 오두막집이 있었다.
오두막집 주인이 \'이 산에서 길을 잃은 사람들은 거의 길을 찾지 못하고
죽었는데 어떻게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까\'라며 놀라워했다.
\'예, 저는 위로 올라오다 보니 불빛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길 찾은 사람의 대답이었다.
사람이 산에서 길을 잃으면 대다수 산 아래로 내려간다. 그러다가 죽는다.
산에서 길을 잃으면 위로 올라가야 한다.\"

우리 인생에 고난이 다가올 때,
우리는 자꾸 밑으로 내려가려는 습성이 있습니다.
그럴때,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요나는 다시스로 내려가고, 배를 타고, 배 밑으로 내려가고, 잠을 잣습니다.
그는 주님의 말씀을 떠나는 순간 내려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고기를 잡지 못한 빈 배에 주님이 오셔서 말씀을 전하시는
도구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빈 배라고 실망하십니까?
밤새 고기를 한 마리도 못 잡았다고 낙심되십니까?
주님께서 그 빈 배를 사용하시리라 믿습니다.
우리의 빈  배를 주님 말씀의 도구로 사용하실 줄 믿습니다.

(막 11:3) 『만일 누가 너희에게 왜 이리 하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이리로 보내리라 하시니』


2, 그 빈 배를 고기를 잡는데 사용하십니다.

[4]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5]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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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레드 테니슨의 \'이녹 아든(Enoch Arden)\'이라는 작품이 있다.
영국의 어느 작은 마을에 사는 이녹과 애니 그리고 필립은 어렸을 때
소꿉친구였다.
셋이 소꿉장난을 할 때는 힘이 세고 적극적인 이녹이 애니를
아내로 차지하였고 약한 필립은 그 아들 노릇을 하기 일쑤였다.
이녹과 필립은 똑같이 애니를 사랑했지만 내성적인 필립보다는 적극적인
이녹이 애니와 결혼하게 된다. 행복한 7년의 결혼생활 동안 이녹과 애니
사이에 딸과 아들이 태어난다. 이녹은 고아로 힘들게 생활했던 불우한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서 아이들에게만은 가난을 물려주지 않을 결심으로
돈과 성공을 위해 배를 타고 중국으로 간다.

그로부터 1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이녹의 생사가 묘연해지고
죽었다는 풍문도 돈다.
생활고와 병약해진 몸으로 힘들게 살아가는 애니에게 필립은 청혼하게 된다.
애니는 이녹의 소식을 기다리면서 1년도 넘게 답을 주지 못하다가
결국 필립의 청혼에 못 이겨 그와 결혼하게 된다.
그리고 애니는 필립의 아이도 낳았고 점차 정을 붙이며 행복한 가정생활을 한다.
필립은 이녹의 아이들까지 자기 친자식처럼 위하며 애니를 극진히 사랑한다.

한편 이녹은 돈을 벌어 돌아오는 길에 풍랑을 만나 파선하고 무인도에 정착한다.
그리고 아주 오랜 세월 동안 고향 땅을 밟지 못한다.
오랜 세월 뒤에 이녹은 무인도에서 극적으로 구제되어 타향살이를 끝내고
반백의 머리를 하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고향의 여관 주인 미리암으로부터 애니와 필립이 결혼한 사실을 알게 된다.
이녹은 밤에 아내가 있는 필립의 집을 찾아간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행복한 가정의 모습과 아내의 미소를 보면서
이녹은 자신의 생존을 알리지 않고 조용히 물러난다.
그는 여관에서 1년의 시간을 더 보낸 뒤 죽음을 맞는다.
죽기 전 여관 주인에게 자기가 애니의 남편 이녹임을 알리고
이 사실을 자기가 죽은 후에 애니에게 전해달라고 하며 혼자 죽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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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가 어찌 주님의 사랑에 비하겠습니까?

오늘 빈 배에 고기를 잡으라고 하십니다.
주님을 우리를 쓰십니다.
그냥 쓰시기만 하지지 않고 축복도 하십니다.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앞에 쓰임 받으면 축복도 따라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 쓰임 받으면 자신이 손해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기막힌 망상입니다. 불신앙입니다. 사단의 유혹입니다.
세상 사람도 일시키면 공짜가 없는데, 하물며,,,,하나님께서 쓰시는데,,,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놀라운 축복으로 체워 주실 줄 믿습니다.

(요삼 1:2)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3, 다른 빈 배에게 나누어 주는 배가 되었습니다.

(눅 5:6-7) 『[6] 그리한즉 고기를 에운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7]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를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저희가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  두 노인이 여러 해 동안 함께 살았지만 한 번도 다툰 적이 없었다.
한 노인이 다른 노인에게 제안을 했다.
\"우리도 다른 사람들처럼 한 번 싸워봅시다.\"

\"어떻게 싸워야 할지를 알아야 싸우지요.\"

\"이렇게 해봅시다. 벽돌 하나를 당신과 나 사이에다 두고,
서로 내 것이라고 주장해봅시다.
그러면 싸움이 시작될 것이오.\"

그리하여 두 사람은 벽돌을 사이에 놓고 서로 자기의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두 번째 노인이 자기 것이라고 고집을 피우자,
첫 번째 노인이 \"그래요. 그럼 당신이 가지고 가면 될 것 아니오\"라고
말해 싸움은 싱겁게 끝나고 말았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우리의 기도의 제목이 무엇입니까?
빈 배가 나누는 배가 되게 해달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나만 먹고 내 배만 채우는 그런 삶이 아니라,
나누는 배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립니다.

## 병원에 있으면 참 좋은 모습을 보는데요,,,
그 병실에는 문병 오는 모든 사람들이 선물을 가져 옵니다.
(음식, 과일, 음료수,,,)
그런데 그 모든 음식들을 서로 나누어 먹는 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 마지막 만찬을 제자들과
나누시며 떡을 취하시사,
축복하신 다음, 떡을 떼어 나누어 주셨다. 영성 작가 헨리 나우웬은 이 대목,
예수님이 취하신 떡의 이미지에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의 자아상을
네 가지로 정리하였다.
우리는 예수님의 손에 있던 떡처럼 선택받은 자(취하다-took)이며,
축복받은 자(사례하시다-blessed)이고, 깨어져야 할 자(깨트리다-broke)이고,
나누어져야 할 존재(주다-gave)라고 하였다.

빈 배가 축복을 나누어 주는 배가 된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받은 축복을, 나누는 것입니다.

(눅 6:38)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4, 그 배는 베드로를 진정으로 회개케하엿습니다.

(눅 5:8)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가로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이 놀라운 사실을 보고는 베드로는 깨달았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죄인인가를,,,,

무식에도 몇 가지 특징이 있는 것 같다.
첫째 용감하다. 자기 판단을 말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데 주저함이 없다.
둘째 충격을 받지 않는다. 그러기에 어떤 일에도 재고의 여지를 두지 않는다.
자기주장대로,      끝내 자기 수준으로 산다.
셋째 거침없이 오해한다. 오해한 생각을 붙들고 이후 지속적으로 자기만의
이해대로 오해하며        산다. 오해는 자신을 속이는 일이다.
타인이 자신을 속이는 것도 불쾌한 일인데,
하물며 자기 스스로를 속이는 일은 어떠하겠는가?
잘 모르는 것을 안다고 믿는 오해는 결국 잘못된 판단과 행동을 만든다.

유식에도 특징이 있는 듯하다.
첫째, 겸손하다.
겸손은 실력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 품위 있고 교양 있는 삶의 행위다.
둘째, 충격을 받는다. 충격은 자기 생각을 깨는 것이다.
그래서 계속 생각을 발전시켜 나간다. 셋째, 오해하지 않고 이해한다.
그래서 다른 사람과 함께 갈 수 있고 순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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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놀라운 사실을 보고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영적으로 무식한 자들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잠 28:5) 『악인은 공의를 깨닫지 못하나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것을 깨닫느니라』


5, 그 배는 버려진 배입니다.

(눅 5:11) 『저희가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중국 노나라 시대에 한 목공이 왕의 부름을 받고 종각을 만들었다.
사람들은 이 종각을 귀신의 작품이라 칭찬하며 놀라니 왕이 그 비결을 묻는다.

\"저는 평범한 목공일 뿐, 비결은 없습니다. 있다면 단 하나,
처음 왕께서 맡긴 일을 생각하면서 제 혼을 삼가 적절치 않은 하찮은 일들에
허비하지 않겠다 생각하고, 제 마음을 추스르려고 단식을 시작했습니다.
3일을 굶은 후에 이득과 성공을 잊고, 5일 후에는 칭찬과 비난을 잊고,
7일 후에는 사지에 달린 제 몸을 잊었습니다.
그때에는 왕과 궁중에 대한 생각도 사라졌습니다.
일에 방해가 되는 것이 보이지 않았을 때 저는 오로지
종각에만 생각을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을 다 비울 때 비로서 우리는 놀라운 일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

베드로는 그 말씀을 듣고  배를 버렸습니다.
그 많은 고기 다 나누어주고, 주님을 따른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 배가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난 후,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후, 그 배를 버린 것입니다.

배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배를 사용하십니다.
그렇다고 배를 잡아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주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배는 다만 주님이 사영하시는 도구인 것입니다.

그 배는 다름 아닌 우리 자신입니다.
빈 배를 축복하시고 쓰신 주님,
그 주님게 우리 자신을 드리는 귀한 믿음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

(욥 22:24-26) 『[24] 네 보배를 진토에 버리고 오빌의 금을 강 가의 돌에 버리라
[25] 그리하면 전능자가 네 보배가 되시며 네게 귀한 은이 되시리니 [26
] 이에 네가 전능자를 기뻐하여 하나님께로 얼굴을 들 것이라』

찬송 = 나는 가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