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신에 감동한 사람
제목 : 하나님의 신에 감동한 사람 !
< Whom the Spirit of God is ? >
성경 : 창세기 41장 37절 - 46절
< 찬송 = 502태산을넘어, 492나의영원하신, 주께두손모아비나니 >
(창 41:37-46) 『[37] 바로와 그 모든 신하가 이 일을 좋게 여긴지라
[38] 바로가 그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신에 감동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얻을 수 있으리요 하고 [39] 요셉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却?같이 명철하고 지혜있는
자가 없도다 고 [45] 그가 요셉의 이름을 사브낫바네아라 하고 또 온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을 그에게 주어 아내를 삼게 하니라
요셉이 나가 애굽 온 땅을 순찰하니라 [46] 요셉이 애굽왕 바로 앞에
설 때에 삼십 세라 그가 바로 앞을 떠나 애굽 온 땅을 순찰하니』
워낭소리 영화에 보면 할아버지가 쇠전에서 \'부리는 소\'를
찾는 장면이 나옵니다.
\"부리는 소 있나?\"
\"부리는 소? 요즘 없어요\"
다른 사람에게 물어 보아도 \'없어\' 하는 대답만 돌아올 뿐입니다.
\'부리는 소.\'는 쟁기질을 할 수 있는 일소입니다.
옛날에는 농사일을 일소가 다 했는데 지금은 기계가 하기
때문에 일소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거의 잡아먹으려고 키우는 \'먹이는 소\' 뿐입니다.
소는 사람들의 편리에 따라 \'부리는 소\'가 되기도 하고
\'먹이는 소\'가 되지만,
그러나 사람은 스스로 부리는 소가 될 수도 있고
먹이는 소가 될 수도 있습니다.
돼지처럼 살만 피둥피둥 쪄서 잡아먹히는 날만 기다리는
\'먹이는 소\'가 되시렵니까?
아니면 힘차게 일을 하는 \'부리는 소\'가 되시렵니까?
저는 요즘 \'왜 교인들이 이렇게 힘이 없을까?\' 생각을 많이 해보는데,
교회가 교인들에게 온갖 좋은 것들만 먹여서
\'먹이는 소\'로 만들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여러 가지 고된 훈련을 시켜서 \'부리는 소\'로 강하게 키워야
끙끙 일도 잘하고 순종도 잘 할텐데
너무 과보호를 하는 것 같다는 말입니다.
저도 \'부리는 소\'가 되고 싶습니다. ⓒ최용우
우리 성도들은 먹이는 소가 아닌, 부리는 소가 됩시다.
오늘 아침에는 “하나님의 신에 감동한 사람 !” 라는
제목으로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성경에 요셉은 참으로 인간 승리자의 삶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는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 형들로부터 노에 상인에게 팔렸습니다.
애굽으로 내려가서 남의 집에서 평생을 종살이를 했습니다.
나이 17세에,,,
그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애굽의 총리가 되었는데 30세 였습니다.
요셉이 어떻게 그토록 놀라운 인간 승리자의 삶을 살 수 있었을까요?
성경은 몇 가지로 우리에게 놀라운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신에 감동한 사람 ”
요셉은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창 39:2)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요셉은 주님이 함께 계심으로 형통한 자가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주님이 함께 게시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우리는 모든 일에 형통하지 못하는 것입니까?
문제는 우리가 주님과 함께 하는가?입니다.
로마의 시스틴 성당은 천정화로 유명하다.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가 바로 그것이다.
가장 유명한 장면은 하나님이 아담을 찾아오시는 장면이다.
하나님이 매우 기운차게 인간쪽으로 돌진하는 모습이다.
얼마나 속도감이 있는지 머리카락이 뒤로 날리는 듯 하다.
아담을 향해 쭉 내민 팔에는 모든 근육이 팽팽하게 긴장된 모습이다.
하나님의 모습에서 힘과 빠른 속도감이 느껴진다.
반면에 아담은 느긋한 자세로 뒤로 기대고 있다.
무게중심이 완전히 뒤쪽에 있다. 손을 내밀기는 했지만,
뭔가 관심이 없는 듯한 모습이다.
그리고 하나님과 아담 사이에는 손가락 끝에 미세한 간격이 있다.
하나님의 마음과 인간의 마음을 묘사하는
미켈란젤로의 천재성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오신다. 왜? 사랑 때문이다.
사랑하면 움직인다. 사랑하면 속도가 붙는다.
탕자가 돌아올 때, 먼저 본 것이 아버지였다.
나이가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달려간 것이 아버지였다.
사랑은 달려가게 만든다. 발걸음은 그 사람의 마음을 보여준다.
주일 아침에 이마에 땀이 나도록 교회로 달려오는 성도와,
천천히 어슬렁 거리며 오는 사람의 발걸음은 다르다.
마음에 뜨거운 열정이 있는 사람의 발걸음과
타성에 젖은 식은 가슴의 사람의 발걸음은 다르다.
사랑하면, 밝고, 즐거워하고 활동적인 모습의 발걸음으로 달려간다.
종종 아들 사진이라고 파일을 전송하는 성도들이 있다.
심지어 뱃속 초음파 사진이라고 검은 점밖에 없는 사진을 보여주는
성도 도 있다.
이들이 무의미해 보이는 사진에도 흥분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부모의 마음, 부모의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사랑은 발걸음과 태도와 마음을 온통 뒤바꾸어 놓는다.
하나님은 사랑 때문에 인간에게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달려오신다.
하나님의 사랑을 배운 사람은 발걸음이 달라진다.
삶의 속도가 달라진다.
삶의 속도는 훈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사랑에 온다.
주님과 함께,,,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손가락 끝에 미세한 간격이 있다.
왜 입니까 ?
하나님은 아담이 선택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것이다.
하나님의 달려오는 속도는 능히 덮칠 수 있는 속도이다.
그러나 사랑은 결코 덮치지 않는다.
마지막 순간에 그 옆에서 기다린다.
상대의 능동적인 반응을 기다리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함께 인 것입니다.
## 춘향전은 문학적인 수준이 높은 작품이다.
등장인물의 심리묘사와 행동묘사가 탁월하기 때문이다.
변사또는 춘향이를 진정으로 사랑했다. 어떻게 아는가?
억지로 춘향이를 자기 옆에 까지는 오게 만들었다.
말을 안들으니 감옥 속에 집어 넣는다.
그러나 억지로 수청들도록 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기다린다. 왜?
사랑하기 때문이다.
미세한 간격을 상대가 메우기를 원하는 것이다.
진짜 사랑할 때를 아는가? 진짜 사랑하면 덮치듯이 안지 않는다.
가볍게 안고 기다린다.
마지막 힘을 주고 꽉 안는 것은 상대가 해주기를 원하는 것이다.
덮치듯이 안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
무서운 속도로 돌진해 올 정도로 사랑하신다.
그러나 내 앞에서 미세한 간격을 가지고 기다리신다.
왜? 진정으로 사랑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할 일은 무엇인가?
작은 행동, 작은 몸짓을 통해 미세한 간격을 메우는 일이다.
‘하나님 도와주세요, 하나님 불쌍히 여겨주세요’라는
작은 몸짓을 원하는 것이다.
탕자가 송아지를 먹고, 금가락지를 끼고
풍성함을 누린 비결이 무엇인가?
그가 처음부터 모든 것을 철저하게 회복했기 때문이 아니다.
면목없지만, 아버지를 생각하고,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모든 것을 다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탕자는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미세한 간격을 메우는
작은 행동만 했을 뿐이다. 회복의 길이 있다.
미세한 간격을 메우는 작은 몸짓이다.
작은 몸짓이 큰 은혜를 가능케 한다.
요셉은 바로 이와 같이 하나님과 함께 함으로
형통한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약 4:8-10) 『[8]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 [9]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10]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2, “하나님의 신에 감동한 사람 !”
요셉은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에 충성을 다 하였습니다.
(창 39:4) 『요셉이 그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으로 가정 총무를 삼고 자기 소유를 다 그 손에 위임하니』
#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1508-1512)
미켈란젤로, 그가 그린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 프레스코화는
모두 합치면 그 길이가 40 M이고, 폭이 14 M 천장내
600평방미터 약 180평이 됩니다.
씨스티나 성당은 교황 씩스투스 4세의 계획에 의해 1475년에
건축을 시작하여 1483년에 완성 된 소성당입니다.
길이 40.23m, 폭 13.41m의 내부벽에는 다음과 같이 르네상스 시대
최대의 걸작이라 할 수 있는 벽화와 천장화가 장식되어 있습니다.
▷ 천장 : 천지창조(미켈란젤로 작품)
▷ 제단 오른쪽 벽 : 모세의 일생(페루치노, 보티첼리, 코시모 등의 작품)
▷ 제단 왼쪽 벽 : 예수의 일생
(페루치노, 보티첼리, 기를란디오, 코시모 등의 작품)
▷ 정면 벽 : 최후의 심판(미켈란젤로 작품)
그는 이 넓은 공간에 삼백 여명의 인물을 그려 넣는 기념적인
작업을 혼자서 완수 해냈습니다. 미켈란제로가 받침대 위에서
누어 하루 종일 구석에 그림을 그리는 것을 보고 친구가
“누가 본다고 그렇게 열심히 그리나 누가 안단 말인가 대충 그리지”
했더니 미켈란젤로는 “내가 알지” 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가 받침대위에 4년 동안 누운 자세로 홀로 이 대작
천지 창조를 완성했습니다.
그 덕분에 다리는 관절이 생기고 눈에는 물감이 튀어 시력이
약해 졌습니다. 미켈란젤로는 이 천지창조의 천장화를
그리기 위해 무려 4년 5개월 동안 목을 치켜들어야 했기 때문에
그만 목이 굳어버려서 한동안 목을 들고 살아야만 했다고 합니다.
이 천지창조의 그림이 세계적인 명작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미켈란젤로 자신의 마음이 였습니다.
누가 알아주던 아니던 간에 자기 자신에게 충실했던 것입니다.
요즘 몇몇 공직자들이 부정하여 메스콤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일 년에 수십억을 한사람이 만진다고 합니다.
부정을 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공직자들은 자기 자신에게 충실하기에
그러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양심을 속이지 못함으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우리가 이 어려운 시기에 어떻게 승리자의 삶을 살 수가 있습니까?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삶에 충실하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이 축복하셔서 형통한 삶을 살게 되리라 믿습니다.
(눅 16:10)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3, “하나님의 신에 감동한 사람 !”
요셉은 고난 중에도 자세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창 39:23) 『전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돌아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셨더라』
“고난 중에 웃는 자가 진실로 웃는 자이다 !”
요셉은 억울하게 감옥에 갔습니다.
요셉은 억울한 일이 한 두번이 아닙니다.
그러나 아무에게도 탓하지 않았습니다.
자기를 죽이려 했던 형제들을 용서하고 사랑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최후의 승리자가 되려면 고난주에도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조금 좋으면 웃고, 조금 힘들면 울고,,,
이렇게 살아서는 큰일을 못합니다.
2009년 1월 14일 뉴욕 허드슨 강에 비행기가 불시착했다.
승객과 승무원 156명 전원이 생존했다.
US 에어웨이 소속의 에어버스 A320 기종의 비행기가
라구아디아 공항을 이륙했다.
이륙 후 1분만에 새 떼에 부딪혔다.
비행기의 엔진 두 개가 다 멈추었다.
무중력 상태로 한동안 비행했다.
다시 공항으로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허드슨 강에 착륙하는 길 외에는 다른 길이 없었다.
비행기가 강물에 불시착하는 것은 지난 50년 동안 한 차례도 없었다.
강물에 불시착하려면 동시에 두 날개가 닿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비행기가 뒤집히거나, 중간이 부러져 버린다.
기장의 멋진 착륙으로 두 날개가 동시에 강물 위에 닿았다.
결국 불시착에 성공해서 모든 사람들이 구조되었다.
사람들은 이것을 “허드슨 강의 기적”이라고 불렀다.
기장 체슬리 슐렌버거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단지 훈련 받은 대로 했을 뿐입니다.”
기적의 비결은 훈련에 있었다.
기적의 비결은 성실함에 있었다.
평범함의 통달이 특별함을 낳는 것이다.
우리가 날마다 행하는 평범한 이 삶이,
때로는 무의미하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언젠가 주님 함께 하심으로 놀라운 기적을 이루실 것입니다.
## 다윗은 어린 시절 =
양 때를 지킬 때에 곰이나 이리가 다가오면 도망가지 않았습니다.
(어느 동화책의 양치는 소년 처럼 - 동네에 뛰어 들어와서 이리가
나타났다. 고 소리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의 양을 자기가 지켰습니다.
그리고 사나운 짐승들을 상대로 싸웠습니다.
물매돌로,,,
이런 일이 다윗에게는 일상생활이 된 것입니다.
이를 지켜본 사람들과, 다른 양치기 소년들은 도망을 가면서,
다윗에게 “너 죽으려고 환장했나, 이리가 오면 피해야지 싸우다가
다치거나 물리면 어쩌려고 하나? ”
그러나 다윗은 내 양은 내가 지켜야지 누가 지켜주나,
하면서 끝까지 싸웠습니다. 목숨을 걸고,,,
자꾸만 하다 보니 돌 던지는 것이 익숙해 졌습니다.
아주 명사수가 된 것이지요.
어느 날 다윗은 전쟁터에서 골리앗을 보았습니다.
이스라엘 군사들은 골리앗을 보고 겁에 질려 다 죽은 상이였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골리앗을 보고 용기백배하여
내가 나가서 싸우겠습니다. 하고 자원을 한 것입니다.
다윗은 물매돌을 주어 가지고 나가서 골리앗을 향해 던졌습니다.
이마에 명중하여 그 큰 골리앗도 그 자리에 폭삭 주저앉고 말았던 것입니다.
다윗은 특별한 기술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평상시 하던 그대로 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평범한 것을 기적으로 만드시는 분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삶에 기적을 원하십니까?
지금 하던 그 일에 충실하십시오.
그리하면 하나님이 그 평범한 삶속에서 기적을 베푸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실 줄 믿습니다.
요셉처럼 어떤 상황에서나 굳굳하게 주님이 주신 꿈을 믿고
당당히 나아가는 신앙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
(고전 15:10)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찬송 = 기적의하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