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과 부흥
제목 : 부활과 부흥
< Blessed are they that have not seen >
성경 : 요한복음 20장 26절- 28절
< 찬송= 159 할렐루야 우리예수. 150 무덤에 머물러, 살아계신주 >
(요 20:26-29) 『[26]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27]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28] 도마가 대답하?가로되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29]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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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의 노벨상 작가 라게르크비스트가 쓴 \'바라바\'를 보면,
민란을 꾸민 도적 바라바(막 15:7)가 자신을 위해 대신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멀리서 근심스럽게 바라보는
장면이 극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러면서 \'저 사나이는 도대체 누구인가?\'라는 강한 의문을
품고 고뇌하던 바라바는 자신을 위해 죽으신 그분이 인류의
메시야임을 마침내 깨닫게 되고, 당시 로마방화사건에
스스로 연루되어 그도 예수님처럼 십자가 처형을 받게 된다.
그 무엇으로도 갚을 수 없는 영적 부채감에 기꺼이
주님 가신 길을 자초한 바라바는 십자가 고난 너머에 있는
부활의 영광을 보았던 것이다. 탁월한 작가의 상상력은
복음서에 극히 제한적으로 기록된 한 죄인의 전말을
극화함으로써 우리가 곧 \'바라바\'임을 고백하게 한다.
오늘 부활의 날 아침 예배를 드리면서
“부활과 부흥 ” 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부활 없이는 부흥은 없습니다.
우리 교회와 우리 신앙이 부흥 하려면 반드시
부활 신앙이 있어야 합니다.
(요 11:25-2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1, 부활의 신앙으로 믿음을 확고히 하는 것이 부흥입니다.
염전을 하시던 성도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일을 하다 실수로 소금 가마니를 바다에 빠뜨렸다
금세 건졌는데, 커다란 가마니 속 소금이 모두 녹았습니다.
소금이 물에 잘 녹는 건 알았지만, 김장때 배추를 절이기
위해 소금을 물에 녹일 때면 힘껏 휘젓고도 한참을
기다려야만 했었기에 매우 의아해졌습니다.
그러나 의아함도 잠시, 소금은 애초에 바다로부터 취한
것이기 때문에 담수에서와 달리 금세 녹아버린 다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다로부터 취한 소금은 순전하게
구별되었다가도 바다를 만나면 금세 옛 모습으로 돌아가고
맙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서 취한 존재입니다.
따라서 세상과 섞이기 시작하면 금세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맙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주의 깊음이
필요합니다. 항상 세상의 유혹들을 경계하며 조심스럽게
자신을 살피지 않으면 자신의 구별됨을 순전하게
유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도마는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하였습니다.
그 손에 못자국. 그 옆구리에 창자국을 보지 않고는 못 믿겠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자, 그 의심은 사라졌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우리는 잠시라도 방심하면 믿음이 사라지고
의심이 가득하게 됩니다.
한 순간이라도 방심하면,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라고 기도하는데
이 양식이 우리 육신을 위한 양식이기도 하지만,
사람이 떡으로만 살것이 아니요 ,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생각하면,
우리가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 양식을 먹음으로
우리 믿음이 떨어지기 않기를 기도드립니다.
(눅 22:32)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2, 부활의 신앙으로 주님 사랑을 회복하는 것이 부흥입니다.
행복한 부부
결혼 후 10년 = 뜨거운 애정으로,
10년 - 20년 = 다정한 우정으로,
20년 - 30년 = 끈끈한 인정으로,
30년 - 죽기까지 = 눈물겨운 동정으로,
사는 것이랍니다.
부부의 잠자리 =
20대에는 서로 껄어 안고 자고,
30대에는 마주보고 자고
40대에는 반듯하게 누워 천장보고 자고
50대에는 등 돌리어 자고
60대에는 이불 따로 깔고 자고
70대에는 각방 사용한답니다.
갈수록 사랑이 식어진다는 의미이겠지요.
베드로는 주님을 죽는데가지 따르겠다고 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고,
다시 옛날 일인 고기 잡으러 갔습니다.
$# 주님의 십자가를 그림으로 그려서 시장 길에서
전도하는 사람이있었습니다.
그는 주님이 자기를 위하여 죽으신 그 사랑을 갚을 길 없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 가난한 화가가 그림을 그려
주님 사랑을 전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 십자가 그림 밑에 이런 글이 쓰여저 있습니다.
‘나는 너를 이하여 이러했건만 너는 나를 위하여 무엇을 하느냐?’
그 그림 앞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짖는 한 신사가 있었으니,
그가 진센돌프 백작이였습니다.
그가 바로 모라비안 교도의 주창한 사람이며
이들이 유럽의 종교개혁의 밑그럼이 된
신앙의 운동가였던 것입니다.
주님을 버린 제자 베드로,
주님께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셨습니다.
주님은 그 사랑을 회복하시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오늘 부활의 날 아침에 ,
우리들도 주님을 향한 나의 사랑을 다시 회복하기를 바랍니다.
(갈 5:6)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찬송 = 주를 사랑하는가?
3, 부활의 신앙으로 나에게 주신 사명을 순종하는 것이 부흥입니다.
16세기 영국의 순교자 가운데 존 후퍼라는 이가 있다.
그는 성직자의 결혼을 주장한 것과 사제가 떡과 포도주를 놓고
축사하면 그것이 그리스도의 몸으로 변한다는 화체설을
부인하였다는 죄목으로 1553년 런던탑에 투옥되었다.
1년반 이상 감옥에 갇혀 있던 그에게 한 친구가
찾아와서 이렇게 권하였다.
\"인생은 달콤한 것이지만 죽음은 쓰디쓴 것이네.
이 점을 생각하고 고집을 버리게나.\"
적당하게 타협하여 죽음을 피할 것을 종용하였던 것이다.
후퍼는 깊이 생각한 후 친구에게 \"내세에서의 생은 이생보다
더 달콤하다네. 그리고 지옥의 고통은 죽음보다 더 쓰다네
\"라고 대답하였다. 결국 그는 얼마 후 화형에 처해졌다.
죽음의 순간을 맞게 된 후퍼는 사형 집행관들을 위해
복을 빌어준 후,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아주소서\"라고 외친 다음
순교의 제물이 됐다. 그의 순교는 영국교회가 개혁의 틀을
마련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신앙은 세상과의 타협이 아니다.
진리를 위해 목숨까지도 버릴 수 있는 것이다.
부활하신 주님 제자들에게 찾아오셔서 하신 말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
이것이 그들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십자가는 주님이 지셔야 할 사명이십니다.
복음 전도는 우리 성도들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부활의 소망이 있기에, 우리는 이 사명을 잘
감당하여야 할 것입니다.
## 엠마오 제자 - 실망하여 내려가다가 부활하신 주님 만남.
말씀과 기도로 힘을 얻고 마음이 뜨거워짐.
(눅 24:32) 『저희가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 불타는 예배당 = 온 성도들이 나와서 울며 부르짖고 기도함.
동네사람들 이 광경을 보고 하는말 - 이 교회 불타는 것 처음 본다.
헌신과 심판의 차이는 무엇인가?
헌신은 내가 주님을 향해 불태우는 것이요.
심판은 주님이 쓸모없는 나를 불태우시는 것입니다.
부흥은 내가 주님을 향하여 불타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명을, 우리 교회의 사명을, 회복하는 부활의
신앙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
찬양 = 내가 지금 사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