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권위는 성령에 의해 확증 된다

성경의 권위는 성령에 의해 확증된다

 


1. 성경의 권위는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지 교회에서 생긴 것은 아니다.
성경의 권위와 신성은 교회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성경 안에서 당신의 신성한 진리를 영원히 신성하게 복종 하시기를 원하신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요5:39).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마치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직접 말씀하시는 것처럼 들어야 말씀의 신성한 권위가 살게 된다.

중세 교회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교회에서 승인을 얻어야 그 권위가 선다고 생각하는 큰 잘못을 범했다.

만약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교회의 공인을 받아야 한다면 성경에 약속하
신 모든 말씀이 다 교회의 공인을 받아야 하는 가공할 일이 생길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교회는 성경을 잘못 해석하고 있는 카톨릭 교회의 주장을 말한다.

2. 교회의 기초는 성경이다.
그러나 이런 잘못된 생각들은 바울의 말 한 마디로 깨끗이 정리된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돌이 되셨느니라\"
(엡2:20). 이 말은 이 세상에 구체적으로 보이는 가시적인 교회가 있기 전에 사도들이 있었고 사도들은 주님의 말씀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판단하는 것은 잘못이다.

즉 말씀이 교회를 세운 것이지, 교회가 말씀을 만든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교회는 조금도 주저없이 성경을 진리로 인정해야 하며 성경을 하나님의 정확 무오하신 말씀으로 존경하고 순종해야 한다.

3. 성경의 증거는 모든 다른 증거보다 강하다.
성경의 최고의 증거는 일반적으로 하나님이 인격적으로 성경 안에서 말씀하신 사실에서 얻게 된다.

선지자들과 사도들은 자신의 예민함과 그들을 칭찬하는 사람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리고 이성적 증거를 고집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전 세계 사람들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복종시키려 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모든 인간을 위한 최고의 생명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인간의 이성이나 양심에서 보다 언제나 최고의 말씀인 하나님의 말씀에서 우리들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만일 우리가 순결한 마음과 건강한 정신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다면 하나님의 위엄은 즉시 우리 시야에 나타나서 우리들이 마땅히 할 일을 가르쳐 주실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들이 성경에 대한 논쟁을 해서 성경 말씀을 판단하려 한다면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그러나 사람들 보기에 좀 어리석게 보이는 사람도 성경 말씀으로 사람들을 다스린다면 권위 있는 지도자가 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일체의 이론을 훨씬 능가한다.

하나님 말씀의 능력은 이론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에 내적 증거를 가지게 하고, 사람이 말씀을 받아 들일 때 능력을 나타내신다.

4. 성경은 자증(自證)한다.
참 성도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내적으로 가르침을 받은 사람은 진심으로 성경을 신뢰한다\"는 것, 그리고 성경은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임을 증거한다는 것을 안다.

성경은 이성에 종속되지 않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 마음에 확증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판단력을 성경에 예속시켜야 한다.

그리고 인간적인 의지나 지식에 의해서가 아니라 보다 더 생생하게 효과적으로 절대 순종할 때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체험하게 된다.

이사야는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이는 너희로 나를 알고 믿으며 내가 그인줄 깨닫게 하려 함이라 나의 전에 지음을 받은 신이 없었느니라 나의 후에도 없으리라\"(사43:10)라고 말함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은 추호의 오류도 없는 진리임을 말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은 모두 백성들에게 그대로 전했던 것이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사람들은 \"네 모든 자녀는 여호와의 교훈을 받을 것이니 네 자녀는 크게 평강할 것이며\"(사54:13)라고 말했다.

하나님은 실로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놀라운 은혜를 주신 것이다.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올라가서 그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할꼬 할 것이 아니요 이것이 바다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바다를 건너가서 그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할꼬 할 것도 아니라 오직 그 말씀이 내게 심히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신30:12-14)고 되어 있다.

그러나 이사야는 하나님의 말씀이 일반 대중들 뿐 아니라 심지어 하나님의 자녀라는 유대인들도 믿을 수 없을 것이라 하면서 그 이유를 \"여호와의 팔이 나타난 사람들만 안다\"(사53:1)고 말하고, 예수님께서도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 되었나니\"(마13:11)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 듣도록 은혜를 주신 일에 대하여 감사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더 열심히 상고하여 은혜를 받자.

하나님을 알게 하는 성경

성경은 하나님을 알게 하는 안내자요 교사로서 필요하다.

1. 하나님이 실제적으로 자신을 알리신 것은 성경에서 뿐이다.

온 만물에 널리 알려진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인간이 하나님을 배은망덕한 죄에 대해 일체의 변명의 여지를 없앤다.

그것은 하나님 실존의 생생한 증거를 피조물의 자연 세계 속에서 너무 명백히 보여 주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특정한 사람들에게는 자연을 통해 얻은 것보다 훨씬 더 명백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그것은 그 자연이 아닌 또 다른 하나님을 알게 하는 지식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불안정한 상태인 것을 보시고, 유대인들을 선택하여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 후 다른 사람들처럼 하나님을 떠나지 않게 한 울타리 안에 둘러 싸셨다.

그리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계시하신 것이다.

성경은 눈이 나쁜 사람이 좋은 안경을 쓰는 것과 같다.

혼란스러운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명백히 보여 주시는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경배하며, 사랑하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할지를 보여 주신다.

2. 하나님 말씀으로서의 성경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을 통해 인간의 모든 지능과 지혜를 초월한 확실한 신앙, 곧 영원히 불변하는 믿음을 인간에게 주셨다.

하나님은 이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대로 이 세상에 남길 수 있도록 공적인 기록으로 남기시기를 원하셨다.

이러한 계획 아래 율법이 공포되고, 이 율법의 해석자로 선지자들을 선택하셨다.

그리고 이 율법의 핵심적 교훈은 하나님과 죄인을 화목케 하는 것이었다.

바울이 \"그리스도는 율법의 마침\"(롬10:4)이라고 하신 말씀도 이런 의미에서 하신 말씀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이것만을 말씀하신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계시하신 이외에도 거짓된 일군(一群)의 신들과, 그들의 명백한 특징들을 말씀하여 참 하나님과 혼돈되지 않도록 하셨다.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총을 입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참된 빛을 받아야 건전한 종교적 교리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하시고자 하시는 증거를 경건된 마음으로 받아들일 때,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다.

즉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지식은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할 때 가능한 것이다.

3. 성경에서 떠나면 오류를 범하게 된다.
인간의 마음은 너무 쉽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오류에 빠지고 날조된 그릇된 종교에 심취하고, 세속적 욕심에 빠저서 하나님을 잊어버린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며 인간의 잘못된 감정과 종교적 오류가 얼마나 그릇되고 방자한 것인가를 알게 하기 위해 인간에게 주신 것이다.

하나님은 자연을 통한 계시가 인간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충분히 알 수 있으리라 생각하시지 않았고, 자연계시보다 더 확실한 계시를 해서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말씀을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땅히 하나님의 말씀으로 나아와야 한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들의 부패한 판단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순수한 구원의 말씀인 것을 증거하기 위해서 인간을 미혹하는 미신은 추방되어야 하고, 하나님은 \"영원히 통치하시는 분\"이라고 다윗은 말했다(시93:1, 96:10, 97:1, 99:1).

그런데 다윗은 이 통치라는 말의 의미를, 하나님이 소유하시는 권능, 또는 전 세계를 통치하시는 권능으로 말하지 않고, 하나님 자신의 정당한 주권을 행사하시는 분이라는 뜻으로 말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에 대한 참된 지식이 사람의 마음에 심겨지기 전에는 결단코 그 마음에서 오류를 근절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4. 창조의 계시가 전할 수 없는 것을 성경은 전한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시19:1-2)이라고 말한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계속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시19:7)라고 했다.

다윗이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명상하는 것을 통해 하나님을 잘 알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주셨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와 똑같은 내용이 시편 29편에도 언급이 되어 있는데 이 우주의 우뢰, 바람, 소나기 등을 통해 하나님의 위엄을 나타내시고\"라고 말하고 나서 \"그 전에서 모든 것이 말하기를 하나님의 영광이라 하도다\"라고 말씀을 맺고 있다.

다윗은 다른 시편에서도 말하기를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시19:8)

\"여호와께서 통치하시니 스스로 권위를 입으셨도다 여호와께서 능력을 입으시며 띠셨으므로 세계도 견고히 서서 요동치 아니하도다 주의 보좌는 예로부터 견고히 섰으며 주는 영원부터 계셨나이다 여호와여 큰 물이 소리를 높였고 큰 물이 그 소리를 높였고 큰 물이 그 물결을 높이나이다 높이 계신 여호와의 능력은 많은 물 소리와 바다의 큰 파도보다 위대하시니이다 여호와여 주의 증거하심이 확실하고 거룩함이 주의 집에 합당하여 영구하리이다\"(시93:1-5)라고 했다.
주님은 사마리아 여인을 향해서도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요4:22)라고 하셨다.

인간의 마음은 무력하여 하나님의 거룩하신 말씀의 도움이 없이는 하나님에게 도달할 수 없고 유대인을 제외한 모든 인류가 다 말씀 밖에서 하나님을 찾았으므로 공허와 오류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진단질문

1. 성경과 나와의 관계성은 어떻게 맺고 있는가?

2. 성경에 대한 확신은 언제 드는가?

3. 하나님의 말씀을 벗어날 때 어떤 느낌이 드는가?

 



진리가 머리에서 마음으로 내려오는 묵상

말씀 묵상의 구체적인 방법을 하나님께 받은 사람이 있다면 여호수아일 것이다.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수1:8).
이 짧은 한 절을 묵상하면, 말씀 묵상의 비결을 깨닫게 된다.

모든 승리와 형통의 비결을 깨닫게 된다.
말씀 묵상의 시작은 우리의 입에서부터이다.

말씀이 입에서 떠나지 않도록 성경을 읽는 것이 말씀 묵상의 출발이다.

처음에는 성경의 짧은 한 권을 본문으로 택하는 것이 좋다.

어떤 사건이나 비유를 읽어도 좋겠다.

거룩한 상상력을 사용해서 말씀을 읽으라.

그날 읽은 본문 중에서 핵심이 되는 구절을 선택하라.

그리고 그 말씀이 입에서 떠나지 않게 하라.

묵상은 되새김질이다.

소가 풀을 뜯어 먹은 후에 하루 종일 입으로 다시 끄집어 내어 잘게 씹어서 위로 내려 보내는 되새김질, 그 작업을 우리가 해야 한다.
많이 먹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소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소화된 음식만이 체내에서 에너지가 되는 법이다.

소화되어야만 생명이 된다.

홍수 났을 때 가장 필요한 것은 물이다.

홍수가 나면 온통 사방이 물 천지인데도 정작 먹을 물은 없다.
이 시대를 가리켜 흔히 말씀의 홍수 시대라고들 말한다.

설교, 세미나 테이프로 가득 찬 세상이다.

그런데 생명수는 말라 있다.

말씀을 많이 들어서 귀는 커졌는데 삶의 변화가 없는 이유는 들을 말씀을 소화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야 잘 소화할 수 있을까?

들은 말씀을 묵상해야 한다.

묵상을 시작하는 분들게 아주 적은 양의 말씀을 입으로 읽는 데서 묵상을 시작하라고 권면하고 싶다.
적은 양의 말씀을 붙잡았다면, 그것을 암송하라.

암송은 말씀을 생각에 새기는 것이다.

묵상 이전에 암송이 있어야 한다.

암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말씀을 사랑하는 것이다.

비결은 사랑하는 데 있다. 사랑이 무엇인가? 관심이다.

사랑하는 것을 위해서라면 우리는 어떤 값을 치르더라도 시간을 낸다.

말씀을 사랑하게 되면 우리는 자연히 관심을 갖게 된다.

관심을 갖게 되면 저절로 암송하게 되는 것이다.
여러분 중에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과 전화 번호를 외우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단번에 외우지 못하더라도 반복해 보라. 안 외워질 수가 없다.

반복은 암송의 또 하나 비결이고 학습의 원리이기도 하다.

반복을 통해서 사고의 틀이 형성되고 거룩한 사고의 습관이 길러진다.

그리고 그 습관은 행동을 만들어 낸다.
말씀을 암송할 때는 머리를 사용해야 한다.

지각을 사용하는 것이다.

말씀 암송의 단계에서 말씀 묵상의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이때 말씀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온다.

말씀 묵상의 목표는 비우는데 있지 않고 채우는 데 있다.

말씀으로 채우고 그리스도로 채우는 것이다.

자신을 진리로 충만하게 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진리로 충만하셨다.
사도 요한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고 증거하고 있다.

요한은 계속해서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요1:16)고 증언하고 있다.
죄악을 비우고 무거운 짐들을 주님께 내려 놓은 다음에, 주님의 충만한 데서 받아서 자신을 충만하게 하는 것이 말씀 묵상이다.

마음에 진리를 채우는 작업, 머리에 암송한 말씀을 마음에 채우는 작업이 말씀 묵상이다.

마음에 말씀을 새기는 것이다.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이 형통할 수 있었던 비결이었다.

그들 교육 헌장에 나오는 교육의 원리였다(신6:6-9).
말씀을 묵상하게 될 때 그 말씀은 마음 깊은 곳에 뿌리를 내린다.

말씀을 감정으로 느끼게 되는 것이다.

말씀은 이내 내 삶의 한 부분이 된다.

그때 하나님께서 구체적인 깨달음을 주신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음으로써 깨달은 진리를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축복은 깨달음의 결과만은 아니다.

깨달은 말씀을 순종할 때 오는 결과다.

그러나 그 깨달음을 부분적으로만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할 때 하나님의 축복이 임한다.

말씀 묵상은 입에서 머리로, 머리에서 마음으로, 마음에서 행동으로 발전하는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