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 성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구약 성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구약 성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라는 묻기에 앞서 우리는 성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라고 물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또한 책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또는 글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하는 큰 물음으로 이어집니다.
책 또는 글을 어떻게 읽을 것입니까?

이미 수십 년 글을 읽고 써 왔고 오늘도 숱한 책과 글에 둘러싸여 사는 사람들에게 이런 물음은 너무 유치하고 진부한 것일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오랫동안 또 많이 글을 대해 온 사람들조차도 때로는 글을 바로 읽지 못한다는 느낌을 주는 경우가 드물지 않습니다.
글을 바로 읽는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그 글을 쓴 사람이 전하려고 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글을 읽을 때 중요한 것은 읽는 사람이 제 좋도록 제 생각에 맞추어 글을 읽는 것이 아니라, 일단 제 생각은 접어 두고, 쓰인 문장 하나 하나에서 드러나는 뜻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야 그 글의 내용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할 일이고, 그에 대한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밝힐 수 있습니다.

오늘 적지 않은 사람들이 - 심지어는 글을 쓰고 읽는 것을 전문으로 한다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 남이 쓴 글을 제대로 이해하지 않은 채 자기 생각대로 남의 글을 마구 비평하는 듯한 인상을 줄 때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성경이 ‘본디 말하고자 하는 것’을 들으려 해야 합니다
적힌 글이 본디 뜻하는 바를 이처럼 올바로 이해하려는 마음가짐으로 책을 읽어야 한다는 것은 성경을 읽을 때도 중요합니다. 제 맘대로 성경을 해석해서는 곤란합니다.

제 생각을 성경에 집어넣으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흔히 말하듯이 성경은 보통 책들하고는 달리 계시의 책이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그 책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합니다. 그리하여 이른바 성경의 이른바 \'영적\'인 뜻을 이해하려고 애씁니다.

당연히 그러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는 성경에 적힌 문장 하나 하나가 본디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편견 없[170/171]이 이해하는 것을 전제합니다. 한글 성경의 문장이 뜻하는 바조차 제대로 살피지 않고, 무조건 처음부터 영적인 뜻을 찾아보려 한다는 것은 성경을 바르게 읽는 길이라 할 수 없습니다. 요즈음 설교자들 가운데, 또 평신도 지도자들 가운데, 성경 본문의 한글 문장도 바르게 이해하지 않고 그저 제 좋을 대로 성경 구절을 풀이하고 본문과는 아무런 관련 없는 이야기를 늘어놓으면서 설교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본문이 달라져도 설교 내용은 언제나 거의 같거나 비슷해지기도 합니다.
[29807] 구약 성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알고 읽는 사람은 무엇보다도 성경 본문이 본디 뜻하는 바를 그야말로 사심 없이 듣고자 하는 순수하고도 간절한 마음을 지녀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 이 말씀을 통해서 본디 말씀하시고자 했던 뜻을 제가 바르게 이해할 수 있게 해 주소서\'라고 기도드리는 마음으로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성경이 본디 말하려는 바를 들으려면 ‘문맥을 따라’ 읽어야 합니다
성경 본문이 본디 뜻하는 바를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은 성경의 각 부분을 성경의 흐름을 따라 읽는다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에는 우선 이른바 문맥을 따라서 글을 읽어야 글을 바르게 읽는 것이라는 일반 원칙이 적용됩니다.
아주 간단한 보기를 하나 들어 보겠습니다.
시편 14편 첫머리에 보면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라는 말씀이 있는데, 여기서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도다\"를 빼놓고 \"하나님이 없다\"는 부분만 뽑아 내어, 하나님이 없다는 말이 성경에 있다는 식으로 말한다면, 이는 엄청난 잘못입니다.
이리하여 성경 본문을 문맥을 따라 제대로 읽으려면, 우리가 지금까지 지니고 있던 생각은 일단 접어두고, 성경 본문을 마치 처음 읽는 것처럼, 각 본문의 짜임새과 흐름을 잘 살펴보아서 그 전체가 말하려 하는 바와 또 그 각 부분이 그 본문에서 차지하는 자리와 그에 따른 기능을 잘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시편 1편을 다시 읽어보십시다.
더러 시편 1편에서 의인의 길과 악인의 길이 대조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 6절에서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라고 하고 있으므로 그렇게 보아야 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시편 전체의 짜임새와 흐름을 가만히 살펴보면, 본문이 실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와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본문은 먼저 1-3절에서 복 있는 사람에 대해 길게 말합니다.

곧 복 있는 사람이 하지 않는 일(1절)과 하는 일(2절)과 그 성공적인 삶의 모습(3절)을 묘사합니다.

그런 다음에 4-5절에서 악인에 대해서 말하는데, 1-3절에서 묘사한 \'복 있는 사람\'에 대한 내용 전체가 악인에게는 전혀 해당되지 않는다는 점을 4절 첫머리에서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라는 한 마디로 똑똑히 말합니다.

그리고는 악인의 불행한 모습을 4절 후반절과 5절에서 묘사합니다.

마지막 6절 앞부분에서는[171/172] \'의인의 길\'에 대해 말함으로써 1-3절에서 말하는 \'복 있는 사람\'이 곧 의인인 것을 암시하면서 그렇게 행복한 삶의 근거가 여호와에게 있음을 밝힙니다.

이와는 달리 6절 뒷부분은 \'악인의 길\'에 대해 말함으로써 4-5절과 이어집니다.
이리하여 결국 본문은 \'복 있는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을 제시하면서, 이 본문을 읽는 사람들도 그런 복 있는 사람이 되겠다는 결심을 하도록 이끌어 갑니다.

그런 과정에서 한편으로는 이 \'복 있는 사람\'이 \'의인\'이라고 하는데, \'의인\'이라는 낱말은 5절에서야 나올 따름입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렇게 복 있는 사람과 반대되는 악인의 보기를 곁들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4절의 \'악인\'이란 낱말은 1절의 \'악인\'과 이어지기도 합니다.

따라서 본문은 \'의인의 길과 악인의 길\'에 대한 시편이라기보다는 \'복 있는 사람\'에 대한 시편이라 하겠습니다.
또한 이 본문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2절입니다.

왜냐 하면, 우리가 \'이것이 아니라 저것이다\'라는 식으로 말할 때 실제 강조하려는 점은 \'이것\'에 있지 않고 \'저것\'에 있듯이, 본문에서 본디 말하려 하는 것은 1절에서 말하는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에 있지 않고, 2절, 곧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서 2절의 뒷부분은 앞부분의 결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곧, 복 있는 사람이 여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것은 그가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성경도 글로 씌어져 있기 때문에 문맥을 따라 읽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때로는 \'문맥\'을 이보다 더 넓은 뜻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시편 1편은 시편 전체의 맨 첫머리에 있어서 지니게 되는 뜻이 무엇인지, 구약 성경 전체나 신구약 성경 전체에서 어떤 자리를 차지하는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럴 경우에는 시편 전체, 구약 성경 전체, 신구약 성경 전체가 시편 1편의 문맥이 됩니다.

그렇지만, 이는 또 다른 문제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말씀은 다른 기회로 미루겠습니다.

글을 바로 읽는다는 것은 읽고 깨달은 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글을 바로 읽는다는 것은 읽고 깨달은 바대로 살아간다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는 책이 성경이라고 한다면, 성경의 경우는 더욱더 그러합니다.

성경은 우리의 종[172/173]교적인 호기심을 채워주는 책은 아닙니다.

우리의 삶을 뒤바꾸고 이끌어 주는 책입니다.

따라서 그저 종교적인 지식을 넓히려고 또는 종교적인 경험을 깊게 하려고만 성경을 읽는다면, 이는 성경을 바로 읽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많은 지식인들이 글 읽은 대로 살지 않고 오히려 그와 반대로 행동하기 때문에 신뢰감을 주지 못하듯이, 성경을 많이 읽고 잘 알면서도 그대로 살지 않는 기독교인들 때문에 기독교의 신뢰도가 떨어지고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리하여 성경은 그 가르침대로 살려고 하는 단호한 마음으로 읽어야 하는 책인 것입니다.

기독교의 경전인 성경은 구약 성경과 신약 성경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신약 성경의 경우와는 달리 구약 성경의 경우에는 천주교에서 쓰는 구약 성경과 개신교에서 쓰는 구약 성경이 똑같지 않습니다.

천주교 구약 성경에는 개신교에서 흔히 \'외경\'(外經)이라고 부르는 범주의 책들이 더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1977년에 나온 공동 번역을 따라 말한다면, 토비트, 유딧, 지혜서, 집회서, 바룩, 마카베오상, 마카베오하, 또 에스더서와 다니엘서에 덧붙은 부분이 외경에 속합니다.
구약 성경은 본디 대부분 히브리어로, 일부는 아람어로 씌어진 책인데, 이것이 주전 3세기 이후 수백 년에 걸쳐 헬라어로 번역된 적이 있습니다.

히브리어 오경을 칠십이 명의 전문가들이 헬라어로 옮겼다고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따라, 그 칠십이를 칠십으로 단순화시켜 이 헬라어 번역본을 흔히 칠십인역 또는 칠십인경이라 합니다.

이 번역본에 히브리어 아람어 성경에는 없던 책들이 들어 있었는데, 그것이 위에서 말한 것들입니다.

그런데, 초기 기독교인들은 주로 이 칠십인역으로 구약을 읽어 본디 헬라어로 씌어진 신약 성경에서 구약을 인용할 때도 이 헬라어 번역본에서 인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뒤 교회에서는 널리 쓰이던 성경은 라틴어 성경이었는데, 이 라틴어 성경에도 외경에 속한 책들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종교 개혁기에 이르러 루터를 비롯한 개혁자들이 히브리어 원전을 기준으로 이런 책들을 구약 성경에서 따로 떼 내어 다루기 시작했고, 개신교에서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 전통을 따르고 있습니다.

외경은 정경보다는 그 권위가 조금 뒤떨어지지만 그 나름대로 가치가 있는 책들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특별히 이른바 신구약 중간 시대에 대한 여러 가지 귀중한 정보를 줄 수 있는 책들이어서 구약 성경의 신앙이 그 이후로 어떻게 발전하여 신약 성경의 가르침으로 어떻게 이어지는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173/174]

모든 것을 굳이 그리스도와 직접 연결시키지 않더라도 구약성경은 중요합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구약 성경은 본디 유대교인들의 경전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기독교인들은 기독교의 근본을 알려 주는 신약 성경과 아울러 히브리어 아람어 성경을 구약 성경이라는 이름 아래 기독교의 경전으로 받아들여 읽어 오고 있습니다.

그런 만큼, 기독교인들이 구약 성경을 이해하는 것과 유대교인들이 히브리어 아람어 성경을 이해하는 것이 다를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신약 성경을 염두에 두면서 구약 성경을 읽습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구약 성경은 이스라엘의 역사와 종교를 다루는 책이므로 기독교인들과는 상관이 없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기독교인들 가운데서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기독교인들에게 정말 구약 성경이 필요한가, 필요하다면 어떤 점에서 필요한가 하는 물음에 부딪치게 됩니다.
이에 대해 쉽게 할 수 있는 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 \"구약은 오실 메시야에 대해서, 신약은 오신 메시야, 또 다시 오실 메시야에 대해서 증거하므로, 구약도 빼놓을 수 없다\".

이러한 생각에서 흔히 구약 성경을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시켜서 읽고 풀이하려고 합니다.

실제로 신약 성경에서 구약 성경을 자주 그렇게 이해하고 풀이합니다.

그런 보기는 쉽게 눈에 띄므로 굳이 낱낱이 들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구약 성경의 모든 부분을 그리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구약 성경의 어떤 부분들은 사실 그리스도와 연결시켜 읽기가 쉽지 않아서 그렇게 하려다 보면 그만 억지 해석을 한다는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그런데, 구약 성경은 그 나름대로 - 좀 지나치게 표현한다면, 신약 성경과 관련시키지 않더라도 - 중요합니다.

우리를 온갖 죄 가운데서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바로 온 누리를 지으시고 다스리시고 이끌어가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구약 성경이 분명히 알려 주기 때문입니다.

또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이라 하더라도, 그 하나님이 특별히 뽑으신 이스라엘을 통해서 이루신 여러 가지 일들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우리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알려 주셨으므로 오늘 우리 기독교인들이 배워야 할 중요한 가르침이 구약 성경 안에 많이 들어 있습니다.

그리하여, 모든 것을 굳이 그리스도와 직접 연결시키지 않더라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이루신 지난날의 구원의 역사는 그 자체로 귀중한 뜻을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 점을 오늘 우리가 구약 성경을 읽을 때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구약 성경 각 부분이 본디 뜻하던 바는 그대로 존중하면서 구약 성경을 읽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 다음 그것이 신약 성경과 어떻게 관련되는지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리하[174/175]여 구약 성경을 일단은 될 수 있는 대로 그 구체적인 역사 상황에 비추어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를테면 이사야 7장9절 끝에서 \"너희가 믿지 아니하면 정녕히 굳게 서지 못하리라\"라는 말씀을 읽을 때, 이를 곧바로 오늘 우리가 예수를 믿지 아니하면 성공할 수 없다는 식으로 아주 일반적이고도 막연하게 이해할 수만은 없습니다.

그보다는 먼저 주전 730년 대 당시 신흥 강대국이 된 앗수르의 세력을 막고자 동맹을 맺은 아람과 북왕국 이스라엘이 남왕국 유다를 자기들의 동맹에 가담시키려고 예루살렘으로 쳐들어 왔을 때(이사야 7장1-2절과 열왕기하 15장5-9절 참고), 이들도 두려워 말고 앗수르도 두려워 말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면 살 수 있다고 하나님이 예언자 이사야를 통해서 아하스 임금에게 전해 주시려 한 말씀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습니다.

이리하여 이 본문을 직접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시켜 이해하지 않더라도, 그렇게 믿음을 권고하신 그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시기에 이는 오늘 우리에게도 중요한 교훈의 말씀이 됩니다.

온 누리를 지으시고 다스리시고 이끌어 나가시는 분이 하나님이신 줄을 예수를 믿어 알게 된 사람들은 그 어떤 어려운 국제 정세 가운데서도 하나님만 굳게 의지해서 자신과 가정과 교회와 나라와 겨레와 세상을 살려낼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그렇게 살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