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서론 연구

[스텍교수님의 논문을 옮겨 싣습니다. 여호수아뿐만 아니라 성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대한 놀라운 통찰력을 조금이나마 얻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시간날 때마다, 조금씩 번역을 했었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려서, 후반부는 나중에(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각주를 찾아 볼 정도면 영어에 문제가 없는 문이라 생각되어 각주는 생략하였습니다]

Source: Calvin Theological Journal 37 (2002): 28-48

가나안의 라합과 이스라엘: 여호수아 2장의 의미

John Stek


[서론]

이 소논문에서, 나는 기원후 13세기에 \"제2장\"으로 표시된 여호수아서를 살펴 볼 것이다. 나의 가장 주된 질문은 \"성경 내러티브의 이 부분이 도대체 \"무슨\" 의미를 가지는가?\"이다. 하지만 나의 소논문의 상당 부분은 여호수아서의 이 부분이 \"어떻게\" 의미를 가지는가라는 질문에 할애 될 것이다.

의미가 본문에 의해서 만들어지는지 아니면 독자에 의해서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현대의 격렬한 논쟁에 대해서 내가 어떤 입장에 서 있는지를 초두에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한편으로 David M. Gunn 과 같은 사람들은 \"아무리 불편 부당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궁극적 의미를 밝혀 낼 시인은 없다...  또한 본문에 스며든 이데올로기적인 진술들을 이데올로기 없이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독자들도 없다.\"   반대로  구약의 내러티브는 바보라도 이해할 수 있는 작문이라는 Meir Sternberg의 주장에 본질적으로 동의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구약이 비록 읽기가 어렵고, 축소해서 읽기도 하고 과장해서 읽기도 하고 심지어 잘못 읽기가 쉽지만 성경의 메시지와 상충해서 읽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 . .  본질적인 것은 읽는 모든 사람에게 투명하다: 예를 들면, 이야기의 흐름, 그 세계의 순서, 가치체계...   성경의 화자가 이야기하는 것을 아무런 비평없이 따라가 보라. 그러면 큰 노력을 들이지 않고도 당신이 서 있는 [이야기] 세계가 어떤 것인지,  무대의 주인공은 누구이며, 이야기의 요점은 무엇인지 웬만큼 알아들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주저없이 후자의 입장을 취한다. 여기에 관련된 논쟁은 매우 복잡하여 이곳에서 다룰 수는 없을 것이다.

여호수아서 2장의 의미를 발견하기 위해서, 이 발견 속에서 추적될 수 있는 틀을 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틀은 여러개가 될 수 있지만 나는 의미를 생성 시킬 수 있는 4가지 중요한 요소에 주목하고자 한다: 맥락, 구조, 장르, 그리고 청중.

[문맥]

이제 문맥이 근본적이라는 것을 말할 필요도 없는 시대가 되었다. 문맥 없이는 어떤한 단어나 작품이나 사건도 결정적인 의미를 가질 수 없다. 문맥은 여러개의 층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을 차근차근 살펴야 한다. 여호수아 2장은 4가지 문맥이 있다. 첫째는 문학적 문맥이고 여호수아서를 구성하는 내러티브 내에서의 문맥이다. 둘째는 메가 내러티브(Mega Narrative)적인 문맥이다. 라합의 이야기는 지속과 예상이다. 이 이야기는 먼 과거에까지 소급될 뿐 아니라 미래로 확장되는 큰 이야기의 일부이다. 셋째는 역사적 문맥, 즉 본문이 쓰여졌던 역사적 배경이다. 넷째는 정경적 문맥이다.

[문학적 문맥]

여호수아 2장의 문학적 문맥을 고려함에 있어서, 나는 제 1장과 제3-4장 사이의 직접적인 배경에서 시작하지 않고 여호수아서 전체를 다룰 것인데, 왜냐하면 그 속에서 내러티브 구조와 전체적인 주제를 뒷받침하는 구성의 발전이 아주 적절하게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호수아서의 주제는 상대적으로 명약하지만, 조금 조심스럽게 규정되어야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흐르는 큰 줄거리는 세명의 주요 인물들, 즉 야훼, 여호수아, 그리고 이스라엘의 상호관계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야훼는 주인공이다: 주도권이 그에게 있고 사건에 대한 그의 관여는 사건의 결과를 결정짓는다.  여호수아는 야훼의 종이고 이스라엘의 통치를 위해 중보자로 선택되었다. 이스라엘은 야훼의 백성이고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언약을 지켜야 하며, 이를 위해 하나님의 군대를 위해 싸울 군사들을 제공해야 한다. 그러므로 여호수아의 주제에 대한 어떤 진술들도 이러한 특징들을 공정하게 다루어야 한다. 나는 이것을 이렇게 진술한다: \"왕이신 야훼는 그의 땅을 회복시키시고, 야훼의 약속된 \"안식\"을 이스라엘이 즐기도록하기 위하여 여호수아의 사역을 통하여 그곳에 그의 백성들을 정착시키신다.\" 여기서 안식이라는 것은 복리에 대한 모든 위협으로부터 생명이 조장된 환경속에서 이스라엘이 정착하는 것을 의미한다 (왕상 5:4; 룻 1:9; 3:1). 야훼의 약속된 안식은 여호수아 1:13, 15과 21:44, 22:4, 23:1에 언급되어 있는데 모두 신명기 3:20, 12:10, 25:19에 언급된 약속을 반복하고 있다.

    비록 내러티브의 문체는 그냥 여러 에피소드가 합쳐진 것처럼 보이지만, 주의 깊게 읽는다면 중심 구도가 네 개의 주요 하부 부문들--주제가 서로 엮어져 있는--에 의하여 점진적으로  발전되고 있음을 금방 발견하게 될 것이다.

주제적 하부 부문들                      성구
1. 왕이신 야훼께서 그의 군대들을 거느리고 그 땅으로 입성하신다.

   이야기는 광야시대의 마지막을 알리는 사건들(5:2-13)에 의해 마감된다.
  1:1 -5:1

2. 왕이신 야훼께서 그 땅을 정복하신다.

   이야기는 그 정복을 요약함으로 마감된다 (12장)
  5:13 -11:23

3. 왕이신 야훼께서 정복된 땅에서 행정을 펼치신다.

    이야기는 약속이 성취되었다는 선언에 의해 마감된다 (21:43-45)
  13:1-21:42

4. 왕이신 야훼께서 이스라엘의 미래의 충성을 염려하신다.

    이야기는 이제는 이스라엘의 본향이된 이스라엘의 설립을 표시하는 사건들에 의해서 마감된다 (24: 28-33)

  22:1-24:27

    여호수아 2장에 진술된 에피소드는 아주 정교하게 구성된 이야기 속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야훼의 가나안 입성에 촛점을 맞춘 하부 부문 속에서, 어떤 구도를 발전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사용 되었다는 것이 분명하다. 여호수아 2장은 제 1장에서 입성을 명하시는 야훼와 3장과 4장에 나오는 실제적인 입성을 연결시키는 고리이다. 제 1장에서 야훼께서 그의 종 여호수아에게, 강력하게 무장된 가나안 사람들에 의해서 오랫동안 정착된 그 땅을 단순히 경유하거나 약탈하는 것이 아니라 영구적으로 점령하라고 명하신다. 일단 강을 건너면, 이스라엘은 전쟁을 직면하게 된다. 이스라엘의 全 미래와 야훼의 왕국 건설 계획은 바로 이 투쟁에 매달려있다. 이들이 받은 명령이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에게 던지는 중심 질문은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가 아니다. 그것은 또한 모세가  야훼의 지시를 받아 12명을 가나안에 파송했을 때의 질문도 아니다(민 13장). 그곳과 이곳에서 그 질문은 동일하다. 우리가 약속의 땅에 들어갔을 때 우리가 부딪힐 상태와 환경은 어떤 것인가? 보다 현대적인 군사적 용어를 빌리자면, 상황과 지세는 어떠한가?

    제2장의  구조와 구도 발전에 우리가 눈을 돌릴 때, 이 질문은 정확한 답을 얻게 된다. 그러나 우리의 화자는 정탐군 에피소드를 여러 방식으로 사용한다. 화자는 가나안 기생 라합 속에서 야훼의 왕되심을 심각하게 자각하지 못함으로 인해 그 땅에서 야훼와 이스라엘의 미래에 어떤 유업도 받지 못하게 된 유다 족속의  아간과 강력한 대비를 보여준다. 게다가, 야훼의 권능과 우주적인 절대권의 말씀과 행적을 인정함으로 라합이 이스라엘에 받아들여진 사실은 동일한 근거에 의해서 기브온 족속이 야훼의 왕국에 받아들여진 사건을 예고하고 있다.  따라서, 이 문학적 맥락 속에서 라합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정탐군 에피소드는 3중적인 역할을 부여 받는다. 이 이야기는 이스라엘이 가나안에서 부딪히게 될 일을 보여주고, 그 땅에서 이스라엘 사람이 자신의 유업을 잃어버린 이유를 설명해 주며, 가나안 족속 중 한 족속이 야훼의 왕국에 들어오는 것을 예표한다.

메가 내러티브적(Meganarative)인 맥락

    여호수아서에 담긴 이야기가 보다 큰 이야기의 한 부분이라는 것은 매우 분명하다. 사실, 오경에 나온 이야기에 대한 지식이 곳곳에 스며들어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지식이 없다면, 여호수아의 내러티브의 많은 것이 수수께끼처럼 들릴 것이다. 화자가 이야기를 어떻게 시작하는 지 보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의 시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일러 가라사대,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으로 가라...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무릇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내가 다 너희에게 주었노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이것을 통해서 볼 때, 화자는 처음부터 그의 내러티브에서 위대한 신적 과업이 자신의 종을 통해 야훼에 의해서 설정되었다는 것을 알린다.  이것은 그의 이야기에서 중심적인 주제 촛점이다. 이 상황화에 대한 재 강조가 따라 온다.  첫째, 과거에 야훼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었던 약속들에 대한 여러번의 언급이 있다. 둘째, 야훼께서 모세의 중보를 통하여 맺었던 언약과 법에 대한 언급이 있다. 또한 모세가 이스라엘에게 명했던 구체적인 지시들, 예를들면, 요르단 건너편의 족속들에 대한 것, 에발산과 그리심 산 사이에 행하여졌던 언약 갱신 예식, 레위 족속에게 할당되 유업, 그리고 여분네의 아들 칼렙의 유업에 대한 언급들도 있다. 사실, 모세의 큰 그림자는 여호수아 말미에까지 드리워진다. 그의 이름은 56번이나 언급되고 있다 (주 6.  사사기에는 단지 3번만 언급되고 있음). 셋째, 오경에 기술된 과거의 사건들에 대하여 여러 언급이 있다. 세겜 족속에서 야곱이 땅을 산 이야기, 이스라엘이 애굽을 떠날 때 뼈를 가지고 갔던 일, 이집트 군대는 멸망당하였으나 이스라엘은 안전하게 홍해를 건넌 사건, 모세가 열두 정탐군을 보내었는데 상반된 보고가 나왔던 일, 광야 40년 동안 출애굽 첫 세대들은 다 죽었다는 사실, 광야에서 유랑할 동안 이스라엘이 만나를 통하여 생명을 부지했던 일, 요르단 동쪽의 두 아말렉 왕을 무찔렀던 일, 이스라엘이 바알 브올에 부속된 죄가 그러한 언급에 포함된다.

    이 외에도, 여호수아 내러티브에서 다른 요소들이 오경 이야기를 전제한다.  예를 들면, 요르단을 건넘에 있어서 언약궤의 역할, 천사가 여호수아에게 자기 앞에서 신을 벗으라는 명령,  아낙 자손의 멸절에 대한 특별한 언급, 요셉의 후손을 둘로 나누는 것이 있다. 여기에 여호수아와 오경을 수백개의 실로 연결시킬 수 있는 풍성한 유사한 패턴들이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마직막으로, 이스라엘의 총회에 던진 그의 마지막 설교에서, 여호수아는 야훼께서 이스라엘의 역사에 어떻게 간섭하였는지 설명하기 위해서 아브라함의 직전 조상들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있다.

    비록 우리가 여호수아서의 저자가 오늘 우리처럼 오경을 손에 들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가 세세한 부분까지 오경의 기본적인 이야기 줄기를 잘 알고 있었고 그가 그의 독자들도 마찬가지였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가 오경의 중심 주제를  지속시키고자 하였던 것도 역시 의심할 필요가 없다. 그 중심 이야기가 자신의 이야기를 설정하고, 그 메가 내러티브와의 연결에서 기본적인 의미가 생겨난다.

    저자가 가나안 정복 이야기를 오경의 메가내러티브 속에 설정한 것은 링컨이 그의 가장 유명한 짧은 연설에서 성취한 놀라운 업적과 유사성이 있다. 겉으로 보기에 살륙의 평지인, 게티스버그의 대 전투의 현장에 서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87년전, 우리들의 아버지들은 이 대륙에 자유의 이상을 품고 새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서 왔고 만인이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대의에 헌신하였습니다. 이제 우리는 바로 그 나라, 그러한 이상을 가지고 그렇게 헌신된 나라가 과연 계속될 것인가 테스트 하기 위해서 이 위대한 시민 전쟁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에 남북전쟁의 결과에 대해서 게티스버그 전투가 가지는 의미를 예견하는 것은 시기상조였다. 그러나 링컨은 남북전쟁에서 중요한 그 혈투를 미국 역사의 보다 큰 맥락 속에서 바라 볼 때, 그 전투가 가지는 의미를 알 수 있었다. 링컨은 미국이 그 보다 훨씬 큰 세계사의 맥락 속에서 새로운 정치실험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전투는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정부\"라는 이상을 가진 국가가 이전에 존재하였던 거의 대부분의 민주주의와 공화정이 그러했던 것 처럼 곧 \"지상에서 멸망할 것인가\"를 테스트하는 중요한 전쟁이었다. 미국에서 위대한 정치 실험이 아니 세계의 역사가 어떻게 될 지 모르는 상황이다. 만약 우리가 게티스버그 전투의 그 끔직한 살륙을 보다 큰 맥락 속에서 분리시킨다면 그것은 그 전투를 아무것도 아닌 것을 만들어 버리거나 단지 위대한 비극 혹은 야만스런 음담 패설로 만들 뿐이다.

이와 유사하게, 여호수아에서 진술된 이야기를 메가 내러티브의 맥락에서 떼어 낸다면, 즉 그 이야기를 닫힌 이야기로 고립시키고 어떤 다른 메가 내러티브 속에 집어 넣어 떠돌이 내러티브로 만들어 버린다면, 우리는 저자의 의도를 왜곡시킬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하는 것은 이제까지 너무나 빈번하게 이루어졌듯이 그 이야기를 성경 내에서 음담패설로 만들게 된다. 여호수아서의 저자에게 있어서 그의 이야기는 이스라엘과 열방과 창조세계를 향한 자신의 목적과 헌신을 이루기 위해 인간 역사에 관여하시는 야훼의 미래지향적인 움직임에 있어서 기념비적인 사건에 대한 이야기다.

     다음 단계의 맥락으로 넘어가기 전에 메가 내러티브에 대한 언급해야만 할 두 가지 중요한 특징들이 아직 남아 있다. 첫째, 여호수아에서 진술된 이야기에 대한 맥락을 제공하는 보다 큰 내러티브는 지속이라는 기본적 구도외에도 그 이야기가 펼쳐지는 우주적인 맥락을 포함한다. 그 우주적 맥락은 하늘 위의 영역, 우주적 바다와 관련있는 땅 아래의 영역, 그리고 그 둥영역들 사이에 인간 역사가 공연되는 지구적 영역을 가리킨다.  여호수아서의 저자는 이스라엘이 접촉하고 있는 모든 민족들과 동일한 세계관을 공유한다. 그러나 하나의 근본적 특징이 그의 세계를 다른 것과 구분시킨다.  오경과 마찬가지로 그에게 있어서, 야훼는 유일하신 하나님, 창조자, 보존자, 모든 창조에 대한 주재자로서 모든 면에서 전능하시고, 전지하시고, 지극히 지혜로우시고, 의로우시며, 불변하시고, 그의 피조물에 편재하신 분이시다. 이것이 모든 것은 바뀌었다. 그의 우주 속에는 하나의 구심점, 즉 온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의 주, 하나의 세계 역사만 존재한다.  이것은 신성에 대한 감득 그리고 신성과 일상적 삶의 관계에 대한 감득이었고, 그러한 관계는 너무나 상이하여 심지어 이스라엘 사람들도 그들의 뼈속에서 그 진리를 느낄 수 없었다.

    둘째, 약속이 \"성취\"되었다는 여러번의 언급에도 불구하고 여호수아서는 자신의 이야기를 메가 내러티브의 끝으로 제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 반대이다. \"그 이후에 그들은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라는 식으로 끝나지 않고, 여호수아의 이야기는 중대한 질문으로 마친다. 더우기, 그 질문은 메가 내러티브의 주요 구도과 관련이 있다: 이스라엘은 정말로 약속한 땅에 들어가서 약속의 땅의 최고의 축복인 안식의 충만 속에서 평안히 거할 것인가?  이것이야 말로, 저자가 주장하듯이, 이스라엘에 대한 끝임없는 질문이고 그 답은 이스라엘의 각 세대와 함께 한다. 왜냐하면, 야훼는 실패하지 않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역사적 맥락

세번째 맥락의 틀, 즉, 여호수아 내러티브가 작성되었을 당시의 역사적 세팅은 처음의 두 틀 보다 훨씬 더 확정하기 어렵다. 그 책이 최종적으로 언제 완성된 형태가 되었는지에 대해서 오랫동안 구약학자들이 관심을 기울였다. 그 결과 왕전 이전시대에서 헬레니즘 시대에 이르기까지 여러견해들이 제시되었다.  1943년 Martin North의 Uberlieferungsgeschichtliche Studien이 출판되고 나서, 가장 광범위하게 지지받은 입장은 신명기가 요시아 왕의 통치 기간에 형성되었고, 전 선지서는 이 위대한 신학 저술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Martin H. Woudstra는 여호수아 당대로 보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견해를 보인다. 그러나 William T. Koopmans은 왕정 시대의 후반부 어느 시점으로 본다. 저술 연대를 정확하게 집어내려고 하는 모든 노력들은 여전히 사변적이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데이타가 지극히 적고 모호하기 때문에 반론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본 네러티브가 전승을 통하여 역사적으로 어느정도의 거리에 떨어져서 과거의 사건을 되돌아 보고 있다는 것은 네러티브 그 자체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사사기서가 여호수아 세대와 다윗의 통치하에 정치적으로 굳건하게 확립된 통일 이스라엘 시기 사이의 진정한 상황들을 그리고 있다고 한다면, 그 시기는 여호수아의 저작을 위한 시기가 아닌 것처럼 보인다. 확립된 문예적 비평에 근거하여, Koopmans는 여호수아서는 사사기와 사무엘 저술 이전 시대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더 진전시키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 책들에 대한 연대 역시 논란이 많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그것들은 왕정이전이나 포로이후의 시대에 속하기 거의 힘들다. 그러므로 우리는 왕정시기 전체를 여호수아서의 형성을 위한 가장 그럴듯한 역사적 맥락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책의 역사적 맥락의 결정정인 특징들을 규명하기 위해서 보다 정확한 연대를 필요로 하는가?  전선지서나 후선지서에 나오는 이스라엘 역사의 자료들을 통해서, 우리는 왕정시대 전체에 흐르고 있는 기본적인 몇가지 특징들을 수거할 수 있다.

1. 이스라엘은 세상 여러 민족 중에서 독특한 민족이고, 정치적 분열의 상황에 직면하여서도 하나됨과 독특성에 대한 의식을 놓치지 않았다.

2. 이스라엘의 가장 큰 특징은 유일신 야훼 사상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야훼의 특별한 창조물이었고 자신들과 야훼는 광야의 유랑시대에서 맺어었던 언약에 의해서 서로 매여 있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3.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을 정복한 것이  창조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역사속에서 참여하고 계시는 야훼의 선물이라는 생각을 잃지 않았다.  그 땅은 야훼께서 가나안인과 싸워서 그곳에서 안식을 누리라는 약속과 더불어 이스라엘에게 주신 유업이었다.

4. 약속의 땅에서 이스라엘의 안전은 전략적 요충지를 확보하려는 여러 이웃 강대국들에 의해서 끊임없이 위협을 받았다.

5. 야훼에 대한 이스라엘의 충성은 주변 나라들의 편만한 다신론에 직면했을 때, 그들로부터 끊임없는 정치적 위협에 직면했을 때 항상 흔들리거나 약화되었다. 한편으로는, 혼합주의 혹은 뻔뻔스러운 배교가 늘 남아 있었고 항상 유혹이었다.  다른 한편으로, 이스라엘은 국제적인 정치력으로 안전을 보장받으려는 유혹을 항상 받았다.

6. 이스라엘로 하여금 야훼와의 언약에 신실하라는 목소리는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항상 있었다.

그와 같은 시대에, 이스라엘의 향한 야훼의 목적과 위기에 처한 이스라엘 자신의 운명을 염두에 두고 여호수아의 저자는 그와 같은 목소리들의 하나로 여호수아서를 기록하였다.

정경적 맥락

여호수아 2장의 의미를 결정함에 있어서 정경적 맥락의 역할은 2가지 결정적인 요소가 있다. 첫째,여리고의 정탐군 이야기는 책 전체의 주제적 통일성에 완전히 통합된다. 여호수아 내러티브는 오경의 메가 내러티브 내에서 맥락이 결정되며, 그 내러티브 자체가 개방된 큰 질문으로 마친다. 그 질문은 이것이다. 이스라엘이 약속된  즉 약속된 땅에서 최고의 복인 안식 속에 들어가 안전하게 거할 것인가? 바꾸어 이야기하여, 순전히 이스라엘과 함께 하였던 야훼의 왕국 회복 프로그램이 결실을 맺을 것인가?

두 번째 결정적인 요소는 다른 정경 책들의 촛점이, 예를 들면 지혜 문서의 경우와 같이, 이 두 상호 연결된 질문들의 주된 관심으로부터 벗어난다는 사실이다. 오경에서 시작되어 여호수아서에서 확장된 메가 내러티브는 야훼의 계속적인 왕국 건설에 대한 부가적인 내러티브에 의해 진전된다. 그리고 이것들은 예언과, 시편송과 사도들의 서신들과 묵시적 비젼들에 의해 보다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이후의 행위들을 이전 행위들과 연결시켜 하나의 구속 역사를 이루는데, 이 과정 속에서 이후의 것은 이전 것을 종말론적 성취를 향해 나아가게 한다. 이 정경적 관점에서, 눈의 아들 야훼의 종 여호수아의 사역에서 근본적으로 중요한 것들이 마리아의 아들, 야훼의 종 여호수아 2세의 사역에도 여전히 중요하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것이 바로 정경적으로 보여 준 구속 역사의 연속성이다. 이후의 사건들은 이전 것들이 다가올 성취적 사건들의 그림자로 가득차 있음을 보여 준다. 이 이유 때문에,이전의 것들은 이후의 것들을 분명하게 하고 이후의 것은 이전 것을 비춘다. 그리하여 다가 올 하나님의 오심(Missio Dei) 속에서 이전의 것들이 지니고 있는 온전한 의미를 드러낸다.

그러므로, 여호수아서의 의미는, 눈의 아들 여호수아의 사역을 통하여 그의 왕국을 진전시키기 위하여 야훼께서 성취한 것들에 관하여, 제 2의 여호수아의 사역을 통하여 그의 왕국의 진전을 위해 성취하셨고 성취하시는 야훼를 증거하는 이후의 정경적 증거에서 보다 온전하게 드러난다. 정경적으로 선포된 하나님의 구원 목적의 구현이 지니고 있는 연속성과 진행은 신약성경에서 라합에 대한 구체적인 세 언급(메시야의 조상[마 1:5], 믿음의 영웅(히 13: 31), 그리고 \"행함으로 의롭다 함을 얻은\" 믿음의 예[야 2:25-26])이 정당성을 갖게 되는 못자리를 제공한다.

여호수아 2장의 구조

제 2장이 여호수아서 전체에 대한 구체적이 공헌에 대하여 나는 이제 그 에피소드의 발전적 구도의 구조를 살피려 한다.

A. a1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싯딤에서 두 사람을 정탐으로 가만히 \"보내며\" 그들에게 이르되 가서 그 땅과 여리고를 엿보라 하매,
   b1 그들이 가서 라합이라 하는 기생의 집에 들어가 거기서 유숙하더니
   B2 혹이 여리고 왕에게 고하여 가로되 보소서 이 밤에 이스라엘 자손 몇 사람이 땅을 탐지하러 이리로 들어 왔나이다. 3. 여리고 왕이 라합에게 이 메시지를 \"보내어\" 가로되 네게로 와서 네 집에 들어 간 사람을 끌어내라. 그들은 이 온 땅을 탐지하러 왔느니라. 4. 그러나 그 여인이 그 두사람을 이미 숨긴지라. 가로되 과연 그 사람들이 내게로 왔었으니 그들이 어디로서인지 나는 \"나는 알지 못하였고 5 그 사람들이 어두워 성문을 닫을 때 쯤 되어 나갔으니 \"어디로 갔는지 알지 못하되\" 급히 따라가라 그리하면 그들에게 미치리리 하였으나 6(실상은 그가 이미 그들을 이끌고 지붕에 올라가서 그 지붕에 벌여 놓은 삼대에 숨겼더라. 7. 그 사람들은 요단 길로 나루턱까지 따라갔고 그 따르는 자들이 나가자 곧 성문을 닫았더라.

C8 두 사람이 눕기 전에 라합이 지붕에 올라가서 그들에게 이르러 9말하되
   a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b너희에 대한 심한 두려움이 \"우리에게\" 임하였고 이 땅 백성이 다 너희 앞에 간담이 녹나니
        c 10\" 이는 \"우리가\",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편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들었음이니라.
     b` 11 \"우리가\" 듣자, \"우리의\" 마음이 녹았고 너희의 연고로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a`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상천하지에 하나님 이시니라. 12-13 그러므로 청하노니 내가 너희를 선대[헤세드]하였은즉 너희도 내 아버지의 집을 선대[헤세드]하여 나의 부모와 남녀 형제와 무릇 그들에게 있는 모든 나를 살려 주어 우리 생명을 죽는 데서 건져 내기로 이제 여호와로 맹세하고 내게 진실한[에메트] 표를 내라.  14 두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의 이 일을 누설치 아니하면 우리의 생명으로 너희를 대신이라도 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 땅을 주실 때에는 인자[헤세드]하고 진실[헤세드]하게 너를 대우하리라.

B` 15라합이 그들을 창에서 줄로 달아내리우니 그 집이 성벽 위에 있으므로 그가 성벽 위에 거하였음이라.  16 라합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렵건대 따르는 사람들이 너희를 만날까 하노니 너희는 산으로 가서 거기 사흘을 숨었다가 따르는 자들이 돌아간 후에 너희 길을 갈지니라.

17 두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로 서약케 한 이 맹세에 대하여 우리가 허물이 없게 하리니 18 우리가 이 땅에 들어 올 때에 우리를 달아 내리운 창에 이 붉은 줄을 매고 네 부모와 형제와 네 아비의 가족을 다 네 집에 모으라.  19 누구든지 네 집 문을 나서 거리로 가면 그 피가 그의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우리는 허물이 없으리라. 그러나 누구든지 너와 함께 집에 있는 자에게 누가 손을 대면 그 피는 우리의 머리로 돌아오려니와 20 네가 우리의 이 일을 누설하면 네가 우리로 서약케 한 맹세에 대하여 우리에게 허물이 없으리라. 21 라합이 가로되 너희의 말대로 할 것이라 하고 그들을 \"보내어\" 가게 하고 붉은 줄을 창문에 매니라
22. 그들이 가서 산에 이르러 따르는 자가 돌아가도록 사흘을 거기 유하매 따르는 자가 그들을 길에서 두루 수색하다가 \"그들을 발견하지 못하고\" 되돌아 가니라.

A`b`23 그 두 사람이 돌이켜 산에 서 내려와 강을 건너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나아와서 그 당한[발견한] 모든 일을 고하고
  a`24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진실로 여호와께서 그 온 땅을  우리 손에 붙이셨으므로 그 땅의 모든 거민이 우리 앞에서 간담이 녹더이다.

이 에피소드의 범위는 분명한 구조에 의해 아주 잘 한정되어 있다: 1a 에서, 여호수아는 간단한 직접적인 메시지와 함께 정탐군을 보낸다; 그리고 1b에서 그들은 그들의 목적지에 도착한다.  23-24절, (b`) 정탐군들은 여호수아에게로 돌아와 (a`) 간단한 직접적인 메시지를 전한다. a-b, b`-a`의 이러한 구도가 에피소드를 효과적으로 마감시킨다.

이 구도 속에서, 화자는 독자를 금방 놀라게 한다. 우리는, 여호수아가 관련된, 이전의 가나안 정탐군 이야기를 했던 화자가 했던 것처럼(민수기 13장 특히 21-25절), 화자가 자신의 초점을 정탐군에게 계속 맞출 것이라고 기대할 것이다. 우리는, 정탐군들이 얼마나 교묘하게 자신을 위장하였는지, 어떻게 자신들을 속이는데 성공하는지, 여리고 왕의 가장 핵심적인 작전계획을 어떻게 용감하게 입수하게 되는지, 여리고 성의 방어망에 대한 예리한 관찰을 어떻게 하게 되는지 화자를 통하여 듣기기를 기대할 것이다. 사실, 정탐군을 적에게 노출시키는 그와 같은 모든 일들은 군사적인 기밀을 모으고 적에게 붙잡히지 않고 마침내 그들을 보낸 사람들에게로 돌아오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그러나 화자는 여기에 대해서는 아무말도 하지 않는다. 우리의 화자는 정탐군을 여리고라는 장소에 세우고는 바로 자신의 촛점을 라합에게로 옮긴다. 나중에 밝혀지겠지만, 그녀의 주도권은 이스라엘과 가나안의 이 초기적인 충돌로 야기되는 모든 결과들을 결정한다.

첫째, 내러티브의 전환이 이루어진다. 정탐군의 임무는 우리가 전혀 모르는 어떤 것에 의해서 즉시 희석되어 버린다. 그들이 도착한 날 해가 지기 전에, 그들이 그 도시에 있다는 정보가 여리고 왕에게 전달되고 그는 혀호수아가 \"보낸\"(2:1) 사람들을 잡기 위해 자신의 부하들을 \"보낸다.\"(3:2)그 결과, 두 나라의 대표들, 즉, 왕이신 야훼의 종 여호수가가 보낸 사람들과 여리고 왕이 보낸 사람들은 바로 그날 라합의 집에 와서 문을 두드린다. 라합은 여호수아가 보낸 사람들은 영접하지만, 여리고 왕이 보낸 사람은 헛수고 하게 만든다. 이야기의 바로 시작부터, 화자는 우리에게 중요한 이슈가 무엇인지를 정밀하고도 생생하게 그리고 있으며 그 이슈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보고 있는 한 주인공을 소개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두 왕국의 미래이다. 하나는 흥왕하는 야훼의 왕국이고 다른 하나는 제자리에 맴도는 가나안 왕국이다. 메가 내러티브의 관점에서, 비록 라합은 몰랐겠지만, 독자들은 이 가나안 왕국이 자신들이 의지하는 신에 의하여 보장받은, 바벨탑 사건 이후에 확립된 인간들의 야망으로 이루어진 시스템을 대표한다는 것을 안다.

초기 구도의 발전은 라합의 행동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세가지 움직임을 통하여 진전된다. 이 움직임들은 이야기의 기본 구도를 형성한다.  2-7절에서, 라합은  도시 \"안에서\" 그녀의 집 지붕으로 정탐군을 \"데리고 올라가\" \"숨김으로서\", 그들이 여리고 왕의 신하들에게 잡히지 않도록 보호한다. 15-6절과 22절에서, 그녀는 도시 \"밖에서\" 그녀집의 창문을 통하여  끈으로 정탐군을 \"내려서\" 그들이 그들의 다시 안전하게 돌아 갈 때까지 \"숨을\" 곳을 알려 줌으로 그들이 여리고 왕의 신하에게 잡히지 않도록 보호한다. 라합의 긴 말과 정탐군의 대답(8-14)은 이 두 사건을 연결시키고 구도 전체가 의도하고 있는 핵심이 된다.

이 가운데 위치한 이야기 단위가 지닌 중요한 기능과 구조는 특별한 주의를 요구한다. 이 단위는 뚜렷이 구별되는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우리는 라합에게서 그녀가 어떻게 상황을 평가하고 있는지 듣는다(9-11);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가족 전체를 살리기 위해 정탐군들과 협상을 한다(12-4). 첫째 부분은 점차적으로 중심 구도를 만들어 내면서, 무게 중심을 차지한다. 또한 그것은 정타군의 안전을 보장한 라합의 모든 행동의 이유를 설명하고 정탐군들이 여호수아에게 가지고 갈 정보를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