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사회복지의 전망과 과제
정무성 교수(숭실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장)
1. 기독교와 사회복지의 연관성
사회복지의 생성 동기에는 인간사회 내에 기본적으로 존재하는 상부상조의 정신이 기저를 이루고 있다. 어느 인간사회에서나 소외된 개인이나 집단을 도우려는 상부상조의 정신은 모든 사회복지활동의 보편적인 동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동기에 활력을 불어넣은 것은 종교적 계명들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의 모든 종교는 같은 종교를 믿는 사람들에게 뿐만 아니라 다른 곤경에 처한 사람들에게도 자선을 베풀도록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적 관점에서 교회사회사업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인 사랑 실천의 의지와 성경의 가르침 요인이 동기가 되는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복지에서의 종교적인 동기는 개인적 자선행위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조직화되어 기관이나 시설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고, 제도화되어 사회제도로 발전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근대사회에 와서 사회문제가 복잡해지고 왕권이 강화되면서 사회복지에 있어 국가의 역할이 강화되고 종교의 역할은 상대적으로 축소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종교의 사회복지적 역할은 인간이 종교를 신봉하는 한 지속되고 확대시켜나가야 할 사회적 과제이다. 실제로 교회사회사업의 정의에서도 “교회가 사회복지의 주체(기관)가 되어 사회복지자원 동원에 대한 일차적인 책임을 지며, 공식적 종교복지법인 시설을 중심으로 교인과 지역주민의 복지욕구 충족과 복지증진을 위해 사회문제 해결을 사회복지의 객체(대상)로 삼아 실시되는 일련의 활동”(박종삼, 2002)이라고 제시하고 있다.
한국 사회는 급속한 도시화와 산업화를 경험하면서 지역간, 계층간의 소득격차와 상대적 빈곤을 심화시켜 새로운 차원의 사회문제들이 양산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가능한 책임을 최소화하고 그 대신 가족과 기업, 지역사회, 종교 등 민간부문의 역할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사회복지체계의 틀을 마련하여 왔다. 이러한 정부의 사회복지제도는 폭증하는 국민의 복지욕구를 충족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고,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전개되었던 민간부문의 복지체계도 산업화 과정에서 대부분 붕괴되었다. 특히 외국 선교단체들의 도움으로 서구식 사회복지사업을 활발하게 전개하던 교계의 사회복지활동도 70년대 이후에는 외원기관의 철수와 함께 한동안 부진한 면모를 보였다. 당시까지 종교의 사회복지사업들은 주로 개신교와 천주교가 중심이 된 기독교의 활동을 통해 이루어졌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호국적 성격을 강하게 지녀온 한국의 종교계는 IMF체제 이후 국난 극복을 위한 사회적 역할을 확대하고 있다. 특히 경기침체에 따른 가족과 기업의 복지공급 능력을 대폭적으로 약화시켰고, 민간부문에서 종교의 역할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정부에서도 미흡한 공적 사회복지를 보완하기 위해 민간부문으로서의 종교의 사회복지적 역할과 비중에 대해 상당한 기대를 보여 왔다. 그 결과 종교계에서는 소외계층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이들을 위한 사회복지 활동에 상당한 인적·물적 자원을 동원하는 전기를 마련하였다. 이러한 분위기를 타고 불교계의 사회복지 활동 참여가 매우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기독교의 사회복지 활동도 늘어나기는 했지만 다른 종교와 지역사회 NGO들의 사회복지사업에의 참여가 늘어나면서 상대적으로 비중이 낮아지게 되었다.
사회과학적 관점에서 종교의 주요한 사회적 기능은 사회통합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통합의 기능이란 종교가 사회의 지배적인 가치와 규범을 정당화하면서 사회구성원들 사이에 공통된 집단의식을 마련해주고, 이에 따라 사회질서와 안정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복잡한 사회관계 속에서 양극화된 갈등구조를 통합시키기 위해서는 소외계층에 대한 구체적인 복지활동 없이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대부분의 종교들은 개인적, 집단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에 대해 물질적, 정신적 원조를 제공함으로써 인도주의적 방법으로 사회통합을 추구하고자 꾀한다.
그러나 종교계 사회복지는 다양한 종파의 이념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매우 복잡한 과정이다. 조흥식(1998:12)은 종교사회복지를 “사회문제의 해결과 예방, 인간의 사회적 기능수행의 활성화, 생활의 질적 향상 등을 위해 종교가 행하는 복지서비스”라고 규정하였다. 여기에는 개인이나 가족에 대한 서비스 뿐 만 아니라 사회제도의 강화나 수정 및 변화에 대한 노력까지를 포괄한다. 하지만 이는 사회복지학의 관점에서 종교사회복지를 정의하는 것이고 종교계 입장에서는 종교적 이념의 실천을 보다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종파나 교파의 특성에 따라 사회복지를 특정 종교의 확산을 위한 수단 정도로 이해하려는 경향도 있고, 종교적 생활의 하나로서 단순한 자선 정도의 차원에서 사회복지를 개념화하려는 경우도 있다.
지금까지 기독교와 사회복지의 관계에 대해서는 사회복지계와 교계에서 나름대로 논의가 있어 왔다. 그러나 사회복지계에서는 현대사회에서 교회의 사회복지적 역할은 지극히 제한적인 것으로 인식해왔고, 교계에서도 사회복지가 기독교의 본질적 기능은 아니기 때문에 선교의 차원에서 부분적으로 논의되었다. 또한 현재 기독교사회복지 현장에서 보이는 내용이 일반사회복지의 그것과 대동소이 한 것은 한국의 기독교가 자신의 고유한 영성을 확실하게 들어내지 못하기 때문이며, 이는 기독교의 영성이 활발하지 못하거나 침체되어 있다는 사실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여겨지기도 한다.(유장춘, 2004) 이에 본고에서는 기독교의 본래적 영성을 유지하면서 사회복지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해 한국 교회가 고민해야 할 실천과제에 관해 논하고자 한다.
2. 기독교사회복지의 사회복지적 성격과 실태
사회복지적 성격을 규명하기 위한 기준은 다양하지만 일반적으로 복지서비스의 주체에 따라 구분한다.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주체가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인 경우에는 공공복지(public welfare), 개인 또는 민간단체가 주체가 되는 경우에는 민간복지(private welfare)로 구분할 수 있다. 공공복지는 국민연금, 의료보험, 산재보험, 고용보험 등의 사회보험(social insurance)과 생활보호사업 등의 공적부조(public assistance)로 구성된다. 민간복지는 기업, 민간 사회복지기관, 종교단체, 시민단체, 개인 등에 의해 제공되는 사회복지서비스를 의미한다. 따라서 한 사회의 사회복지 총량은 공공복지와 민간복지의 합(合)으로 구성된다.
공공복지와 민간복지는 각각 장단점이 있고 그 범위에도 차이가 있다. 공공복지는 민간복지에 비해 사회효과성이 뛰어나고, 사회연대성의 가치를 구현함으로써 평등의 가치를 보다 효율적으로 실현할 수 있다 (Gilbert, Specht, & Terrell, 1993: 59-62). 반면에 민간복지는 공공복지에 비해 비용효과성이 높고, 덜 관료적이며 융통성이 있고, 시민의 능동적인 참여와 수혜자의 선택의 자유를 보장해 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Mayo, 1994: 27). 즉, 민간복지에서는 특수성과 선별성이 강조되는 반면 공공복지에서는 사회성과 보편성이 강조된다.
그러나 이 둘은 상호보완, 협력관계에서 사회 전체의 복지 증진에 기여하게 된다. 그리고 종래의 사회복지는 공적이거나 민간으로 분류될 수 있었으나, 최근에는 쌍방이 관계되는 복지프로그램도 다양하게 등장하고 있다. 예를 들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토지 · 건물 · 설비를 제공하고 실제의 관리운영은 전문성과 경험을 갖춘 민간 사회복지법인 등에게 위탁하는 관민협력체제의 복지형태가 증가하고 있다.
공공복지가 발달한 나라에서도 많은 사회복지 활동이 가족이나 공동체의 비공식적인 원조망을 통해 이루어지기도 하며, 기업이나 민간기관 등의 민간복지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민간부문의 사회복지는 서구 선진복지국가에서 공공복지가 발전하면서 상대적으로 축소되기도 하였지만, 복지서비스의 공급체계가 다원화되면서 그 중요성이 새롭게 인식되고 있다. 특히 대인서비스의 중심을 이루는 사회복지서비스 분야에서의 민간 사회복지의 효과성은 매우 높이 평가되고 있다. 공공기관의 경우 복지활동에 대한 전문성이 결여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행정 편의주의적인 복지행정으로 비용효과성도 떨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종교는 직접적으로 소외계층을 위한 사회복지사업을 실시하기도 하지만, 사회운동을 통해 더불어 사는 사회분위기를 창출하거나 대정부적으로 사회복지예산 증액이나 사회복지프로그램 확대를 요구함으로써 간접적으로 사회복지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서구사회에서 기독교사회복지는 민간복지로서 공공복지와 깊은 상호관계를 맺으며 보완적 혹은 보충적 역할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주된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특히 오늘날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인간의 행복을 보장하기 위한 전문적인 분야로 인식되고 있는 전문사회복지실천은 교회의 사회봉사 활동에서 그 기원을 찾아볼 수 있다. 기독교의 교리와 가치에 입각한 교회의 사회봉사 활동이 현대 민간부문 사회복지활동의 기원이 되었던 것이다. 실제로 Niebuhr는 “교회는 사회사업을 낳고 키운 어머니”라고 까지 주장하였다. 그러나 어머니로서의 책임을 포기하였기 때문에 사회복지가 세속화되었다고 보고 있다.(박종삼, 2002)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백성의 생활규범은 현대 사회복지의 기본이념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 그들은 ‘위로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아래로는 이웃을 사랑하라’는 모세의 율법에 기초하고 있다. 구체적인 실천의 대상을 고아, 과부, 객으로 삼았으며, 생활규범으로 약자보호, 담보물, 품삯, 추수, 안식년, 구제를 위한 십일조, 희년제도, 도피성에 대한 규범 등이 있다. 이러한 규범 속에는 종교적인 인과응보 사상을 보여주고 있는 것도 특징이다. 특히 모세의 율법에서는 하나님과 이웃의 관계를 정상화시키는 행동 즉, 하나님과 이웃과 더불어 정의롭게 살아가는 삶이 강조되어 있다. 그러한 이유로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가난한 사람을 돌보아 주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는 당연한 것으로 간주되었다.(김기원, 2000) 구역시대의 이러한 사회복지이념은 이집트에서 경험했던 고통과 억눌림을 경험삼아 이스라엘 민족에는 억압당하거나 사회적으로 약한 자들이 없게 하려고 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최무열, 2003)
체계적인 교회 사회봉사 활동의 기원은 초대교회의 집사(deacon)직분을 둔 배경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사도들이 말씀 전파하는 일에 바빠서 봉사하는 일까지 제대로 돌볼 수 없게 되자 과부들에게 식량을 배급하는 봉사활동을 원활히 하기 위해 일곱 집사를 임명하였다. 그 이후 교회의 사회봉사 활동은 시대적 상황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었다. 고대나 중세 교회의 이웃에 대한 사회봉사 활동은 당시 사회의 폐쇄성을 고려할 때 혁신적인 것이었으며 불우한 사람을 도움으로써 사회관계를 확장시키는데 공헌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으나, 중세교회의 무분별한 구제활동은 수혜자의 의존심을 조장하였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김동국, 1986: 26-36).
종교개혁시대에는 영적인 것과 세속적인 것을 구분하는 이원적 신앙관이 강하여 신앙생활에 있어 영적인 측면을 강조하였다. 특히 루터는 구원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사회봉사를 경계하면서 교회와 교인의 무리한 사회선교활동은 배제하였다. 그리고 원칙적으로 국가가 가난한 사람의 문제에 대한 책임을 질 것을 주장하였다. 이는 사회문제의 책임을 지나치게 국가에만 떠맡기는 결과를 낳아 교회의 사회복지활동 활성화를 위해서는 만족스러운 것이 아니었다(이삼열 역, 1992: 96-99).
17,8세기의 유럽의 경건주의와 18,9세기의 미국의 복음주의는 교회로 하여금 사회적 역할을 더욱 멀리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조류는 세상적 가치와 현실을 과소평가 하면서 현실거부 혹은 현실 도피적인 사회적 태도를 조장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이 무렵의 교회의 사회복지사업은 기껏해야 개인의 구제와 자선에 초점을 맞추는 구호적 차원에 머물러 있었고, 그것도 개인구원 및 복음화의 과제에 비해서는 부차적인 것으로 인식되어 복음화의 수단 정도로만 이해되었다 (이원규, 1994).
이에 대해 19세기말에서 20세기초에 걸쳐 생겨난 유럽의 기독교 사회주의 (Christian Socialism)와 미국의 사회복음운동 (Social Gospel Movement)은 당시 반사회적 개인복음에 집착하고 있었던 교회들에 대한 대응으로 생겨나,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야기되었던 많은 경제·사회문제들에 대한 교회의 책임의식의 회복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경향은 개인의 변화뿐만 아니라 사회전체의 변화를 유도하기 위한 다양한 운동을 전개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고, 구호적 차원의 소극적 태도에 머물러 있던 교회의 사회복지사업을 활성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기독교의 사회적 관심은 특정 교단이나 교파에 속한 사항이 아니며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교회가 마땅히 견지해야할 태도이다. 특정한 시대적 여건이나 교파 혹은 교단의 특성상 사회복지사업의 실천을 등한시 한 경우는 있을 수 있으나 기독교 정신에서 사회복지의 이념을 부인하지는 않고 있다. 이러한 정신들이 서구 사회복지를 발전시킨 원동력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현대 사회복지의 선도적 역할을 한 자선조직협회(Charity Organization Society)나 인보관운동(Settlement House Movement)의 생성과정에서 기독교정신이 영향을 미쳤고, 보수와 진보의 각기 다른 성향을 지녔지만 기독교인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한국 개신교회는 19세기 후반부터 외국 선교사들의 선교활동을 통해 사회복지사업을 실시하기 시작하였다. 선교사들은 초기부터 소외계층에 대한 선교정책을 확고히 수립하여 사회복지사업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였다. 초기 선교사들의 사회봉사 활동은 의료사업과 교육사업에 역점을 두었다. 한국인에 대한 접근방법으로 당시 한국사회의 심각한 욕구가 보건과 교육이라고 판단하여 의료사업과 교육사업을 택한 것이다. 심령의 구원을 위해 선교의 한 방편으로 육신의 치료에 힘썼고, 무지를 계몽하여 새로운 세계를 밝혀 줌으로써 선교의 결실을 맺고자 하였다. 이러한 방식은 선교 초기에 있어 한국정부의 선교금지 정책을 순화시키기 위해서도 효과적이었다(이만열, 1981: 12).
그러나 초기 한국의 선교사들은 내적 신앙의 체험을 강조하는 경건주의자 혹은 심령주의자들의 신앙부흥운동의 영향을 받아 파송된 사람들이다. 따라서 이들 선교사들의 신앙 형태는 경건주의적, 부흥회적 유형의 신앙이었다. 즉, 교회와 사회의 접촉 단절을 전제하고 방주적 개념을 기조로 하는 피안적 신앙이었다. 이러한 신앙적 특성으로 인해 사회문제의 원인을 근원적이고 구조적으로 파악하여 접근하기보다는 선교의 일환으로 동정적인 구제사업 혹은 박애사업에 치중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교사들에 의한 신교육은 국민들에게 일제 식민지하에서의 민족의식과 민권의식을 갖게 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그 결과 구한말과 일제시대에는 교회가 계몽운동과 애국운동에 적극 관여함으로써 사회운동 차원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특히 일제 식민통치기간 중에는 농촌 개발사업, 농민 계몽사업들이 선교의 일환으로 전개되었는데, 농사전문지, 농사학교, 농사강습회, 신용협동조합운동 등을 통하여 선교과제를 실천하였다.
해방 후 60년대까지 우리나라는 정부수립 및 한국전쟁으로 인한 혼란과 빈곤으로 인해 사회문제가 심각하였다. 특히 전쟁으로 인한 고아, 미망인 등의 요보호자가 급증하고 많은 사람들이 가난으로 고통을 받았으나 체계적인 복지제도는 거의 전무한 상태였다. 이 기간동안 외국 선교단체를 중심으로 펼쳐진 고아원과 같은 시설보호, 물자구호 및 민간차원의 자선활동은 당시 한국 사회복지의 핵심을 차지하였다. 이때부터 전쟁 미망인과 고아들을 위한 전문 사회사업기관들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한국개신교회의 이러한 일련의 사회복지사업들은 전도사업을 간접적으로 촉진하여 교회의 성장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박영호, 1979; 22-48).
한국보건사회연구원(1999)이 기독교 7개 교단 소속교회를 대상으로 사회복지활동에 대한 실태를 조사한 결과 전체 응답교회의 23%가 사회복지관련 시설을 운영하고 있었다. 교회가 운영하고 있는 사회복지시설은 아동복지시설(23.2%), 노인복지시설(11.0%), 청소년복지시설(7.6%), 장애인복지시설(2.4%), 여성복지시설(2.0%), 부랑인복지시설(1.7%), 사회복지관(1.7%) 등의 순으로 조사되었다. 그리고 노인복지시설의 운영하는 45개 시설을 교단별로 살펴보면 기장(27.8%), 구세군(17.6%), 침례교(16.1%), 감리교(14.5%), 예장통합(8.7%), 성결(8.0%), 예장합동(7.1%) 등의 순이다.
교회는 사회복지적 입장에서 보면 지역 내 훌륭한 민간복지 자원이며, 종교적 입장에서 지역사회는 교회의 사명을 완성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장이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급속한 산업화와 그에 따른 불평등 구조의 악화 등 각종 사회문제가 팽배한데 비해 공공복지가 미흡한 사회에서 문제해결을 위한 촉매자로서의 교회의 역할은 매우 크다고 하겠다. 따라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사랑의 당위성과 책임을 가지고 있는 한국 교회는 정부 사회복지사업의 협력자, 보완자, 비판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3. 한국 사회복지실천 현장의 변화와 기독교사회복지
우리나라 현대 사회복지 실천현장의 발달과정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김융일 외, 2003; 박종삼 외, 2002; 이강희 외, 2004; 참여복지기획단, 2004; 황성철 외, 2003)
(1) 1970년대 이전: 외국 원조위주의 사회복지현장
1960년대에는 군사혁명으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이 사회보장에 관한 법, 공공부조로서 생활보호법과 의료보호법, 사회보험으로 공무원연금법, 군인연금법,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사회복지서비스로 아동복지법과 사회복지사업법 등을 제정함으로서 사회보험과 공공부조, 사회복지서비스의 제도적 기반을 구축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사회정책은 자활지도 위주로 이루어지고, 시설보호사업은 외국의 민간원조기관의 후원으로 유지되었다.
(2) 1970년대: 사회복지시설의 공식화와 입소시설 중심의 사회복지현장
1970년대에는 사회복지사업법, 의료보험법 등이 제정되고, 1960년대에 입법화된 각종 제도들이 시행되어 사회복지시설은 사회복지사업법의 제정으로 법령절차에 따라 그동안의 사설시설에서 재단법인으로 또는 사회복지법인으로 전환되어 공익 법인체로서 정부의 사업을 공공의 복지 목적에 따라 위임받아 정부의 지원금에 의해 운영하게 되었다. 그러나 경제개발 우선정책에 밀려 활발하게 발전하지 못하였다.
(3) 1980년대: 이용시설 증가, 국가의 보조금 지원, 공공부문의 전문인력
경제성장과 복지 욕구의 다양화에 따라 사회복지 관계법령의 제정 및 개정의 필요성에 대한 사회복지법인의 설립을 비롯한 시설의 종류와 기능 등 많은 부분의 복지서비스 내용이 개선 또는 변화되었다. 1988년에 출범한 제6공화국 노태우 정권은 복지국가의 건설을 국정목표로 제시하였고 노인복지법과 장애인복지법 등을 개정하고 전국민의료보험제도와 국민연금제도를 실시하고 최저임금제도를 도입함으로써 입법조치와 복지행정의 확대가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다.
(4) 1990년대: 공공복지의 확대와 생산적복지
1990년대에는 장애인고용촉진 등에 관한 법과 영유아보육법을 제정하고 사회복지사업법을 개정하였다. 또한 김영삼 정부에서는 고용보험법 제정 및 실시, 국민연금실시, 윤락행위 등 방지법 개정, 국민연금법 개정, 입양특례법 개정과 국민건강증진법,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 정신보건법, 여성발전기본법, 사회복지공동모금회법 등을 제정함으로써 복지행정의 확대가 이루어졌다. 1997년말 금융위기는 실업자의 양산과 가족해체의 증가로 인한 심각하고 다양한 사회복지서비스 대상자를 발생하게 하였다. 따라서 ‘생산적 복지’를 강조한 김대중 정부는 고용보험과 실업 및 빈곤대책을 확대하였고,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제정하고 전국민연금을 확대하여 실시하였다. 1997년 금융위기는 정부와 시민단체들의 사회복지서비스에 관한 관심 증가와 전문적인 프로그램 개발의 큰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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