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하는 예배
요즘 각종 교회와 유명 예배 단체들의 예배엔 눈에 띄는 \'어떤 경향\'이 있다. 그건 바로 외국번역곡, 즉 유명 예배곡의 짜집기로 예배가 진행된다는 것이다. 예배 자체에 어떤 일관된 흐름도 없고, 주제도 없고, 예배인도자가 별로 전달하고자 하는 요점도 없는 듯 하다. 오로지 폭발하는 사운드와 마구 뿜어대는 열정(?) 그리고 반응, 똑같이 카피한 편곡들 뿐이다. 심지어 외국 예배인도자들의 멘트까지도 거의 똑같이 흉내내며 예배를 드리기도 하는 것 같다. 편곡을 카피하는 것 역시 도를 넘어서 \'저럴 바엔 차라리 립싱크를 하지 뭐하러 저렇게 힘들게 연주할까?\' 하는 쓴 웃음마저 짓게 만들곤 한다.
너무 비관적으로만 보는 걸까?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해서는 분명 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진 않다. 예배라는 것은 하나님과 만나는 것이고 또 거기에 합당한 반응을 하는 것이다. 즉 예배인도자들은 회중들에게 하나님을 보여주고 연결해 주는 다리 역할을 해주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예배인도자들이 하나님과 회중들 사이의 다리 역할에 관심이 있긴 한가?\'하는 생각마저 든다. 대개의 경우 예배인도자들은 회중들의 \'반응\' 그 자체에만 관심이 있는 경우가 많다. 우리 모두가 반성해야할 대목이 아닌가 싶다.
영적인 예배엔 우리 안의 \'회복\'과 \'변화\'가 뒤따른다는 걸 기억할 필요가 있다. 청소년들이 깊게 하나님을 체험했다면, 분명 \'변화\'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 우리들 안에 그런 것들이 일어나고 있는가?
아쉽게도 이 부분에 대해 긍정적인 답을 하기는 어렵다고 생각된다. 예배라는 것이 우리의 삶 속에 정의를회복하고 삶, 그 자체를 바꾸는 역할을 해주어야 하건만 예배를 마치고 나오는 청년, 청소년들에게 그런 모습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들은 방금 전까지만 해도 폭발적인(!) 사운드의 예배 속에서 함께 뛰며 소리쳤지만, 그 이후의 삶은 그걸 따라와 주지 못한다. 심지어 찬양이 끝나고 이어지는 설교 시간에도 그들은 계속 어수선하다. 마치 열정적인 콘서트를 잘 치뤄냈다는 표정을 하며 말이다.
대체 무엇이 문제인걸까? 어디서부터 잘못 되었을까? 물론 청년, 청소년들이 좋아하는 사운드를 만들어 내며 그들로 하여금 즐기고 누릴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주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그리고 그 가운데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이가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건 분명 반가운 일일 것이다.
주님과 심장을 맞대고 만나는 예배
하지만 가능하다면... 가능하다면! 조금 다른 접근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 유행(?)하고 있는 예배곡들로의 음악적인 접근이 아닌.. 정말 그들의 삶에 스며 들어갈 수 있는 깊은 영적인 접근이 필요할 것이다. 아주 친밀하게 주님과 심장을 맞대고 만나는 무척 친밀한 예배로의 접근 말이다.
우리가 죄를 짓지 않고 사는 것은 우리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즉 예배 후에 제대로 된 삶을 영위하는 것은 우리가 \'그렇게 해야지!\' 하는 식의 각오로 인해 그렇게 되는 게 아니라 우리 안에 하나님의 영이 거할 때 그렇게 자연스럽게 행해지는 것이다. 필요한 건 우리의 각오와 결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회중들에게 음악적인 화려함으로 도전을 주는 것 역시 필요하겠지만 그보다 좀 더 하나님의 영에 기댈 필요가 있다.
미국의 패션 부흥운동의 예배음악들은 결코 힐송 유나이티드나 마이클 W. 스미스의 예배음악들 처럼 화려하거나 강렬하진 않다. 하지만 그들의 예배철학은 확고하다. 그들의 예배는 겉모양의 멋진 껍데기를 추구하진 않는다. 그들의 예배음악과 메시지는 개인적인 회개와 각성에 기본을 두고 있고 친밀하고 또 개인적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데 그 촛점을 두고 있다. 매년 그들의 집회는 점점 더 성황을 이루고 영향력이 커지고 있지만, 그들은 변하지 않는다. 음악은 여전히 단촐하고, 그들의 접근법 역시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친근하고 여전히 솔직하다. 결국 이런 그들의 \'예배의 마음\'과 \'목자의 마음\'은 매년 미국의 수많은 청년들을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되어주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일들이 일어나길 기대해야 하지 않을까? 그들을 본받는다고(?) 할 때 단지 그런 패션의 유명 예배곡들의 껍질들만 가져올 게 아니라 그 안에 있는 마음과 또한 우리와 조금은 다른 접근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겉모양의 예배는 그다지 오래가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예배엔 감정적인 부분도 중요하지만, 영적인 부분이 \'얕은\' 감정적인 예배는 결코 우리의 삶에 깊이 뿌리 내리지 못할 것이고, 결국 아이들은 뛰고 박수치며 소리지르는데 더이상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다시 세상으로 나가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기억하자! 이유 없는 반응은 언젠가는 끝난다는 사실을!
지금 별다른 이유 없이도 반응을 잘 해주는 고마운(?) 세대들에게 이젠 \'이유\'를 선물해줄 때인 것 같다. 지금은 왜 이렇게 요란하게 한 분께 반응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해 줄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