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천만 기독교인을 자랑하는 우리 나라에는 참으로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요즈음 우리 나라 교계는 “빈야드 운동”, “전도 운동”, “교회 성장 운동” 등이 휩쓸고 있다. 그러나 교회의 성장이 그처럼 단기간의 집회를 통해서 이루어진다면, 세상은 벌써 천국이 되었을 것이다.그리스도인이라는 사람들은 모든 일들에 “하나님의 사역”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를 좋아한다. “기독교 신문”들을 보면 그 안에 있는 수많은 “광고”들을 볼 수 있다. 제목도 다양하고, 하는 일도 다양하다. 세계에서 이단도 제일 많은 나라다.
어떤 광고에는 이 시대의 “누룩이 되자.”는 내용도 있다. (사실 성경에서 “누룩”이라는 단어는 비성경적인 거짓 교리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런 식으로 벌여 놓은 많은 일들과 “기독교인” 수가 많은 사실을 두고 “‘세계가 부러워한다”느니, “영적 부흥”이라느니 한다. 부끄러운 것은 유명하고 큰교회에서 열심히 일하였고 유명한 목사님의 가르침을 받았는데도 천국에 갈 확신이 있느냐는 질문에 가봐야알 것같다는 말을 서슴없이 하게 가르치는 한국교회의 영적 현실이다. 성도들을 천국백성을 만들지 못하고 교인만 만드는 시대에 예수님이 오시면 어떻게 할까 걱정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은 우리 전에 살았던 믿음의 선배들이 하던 일들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일들이다. 어떤 기독교신문에서 “화폐 도안을 바꾸자”는 운동에 대한 광고를 본 적이 있다. 소위 종교인의 안목으로 보자면 그것은 이 나라를 “기독교”적인 나라로 만들자는 노력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에 비추어서 보자면 그 일은 쓸데없는 일일 뿐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카이사의 얼굴이 새겨진 동전을 보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카이사의 것은 카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예수님은 그 동전에 새겨진 형상과 글을 보시고, 그것은 세상에 속했다고 하시며 더 이상 관여하지 않으셨다.
세상이 우리의 믿음을 방해하고,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게 만들며 세상 일을 하도록 아무리 종용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에 관여하지 않는다. 될 수 있으면 세상의 일들과 연계되기를 꺼리는 것이 성경대로 사는 그리스도인들의 성향이고 보면, 이러한 “운동”들은 세상을 바꾸려는 후천년주의적인 발상임을 알 수 있다. 양들을 돌보기에도 바쁜 “목사”들이 그러한 헛된 일에 앞장서서 노력을 경주하는 것을 볼 때, 그 양무리의 영적 빈곤함이 어떠할 것인가 짐작이 간다.
이러한 목사들을 위해서 “목회자 특별세미나”, “목회자 자녀 영성수련회” 같은 모임들이 수시로 열리지만, 단지 며칠의 세미나나 수련회로 무엇이 달라질 수 있는지 의심스럽다. 목회자 자녀를 위한 수련회 같은 곳에서는 “구원의 확신과 성경적 믿음 개발”이 목적으로 제시되기도 한다. 아니, 다른 사람을 구령하는 목사들이 자기 자녀들을 구령하지 못해서 수련회까지 보내야 한다는 말인가? 물론 그렇다! 목회자 자녀들도 분명히 구원받아야 한다. 이 세상에는 목회자 자녀들이 세상으로 빗나가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런 곳에 보내지말고 자녀들과 함께 걸으면서 아이스크림 하나사서 같이 먹으며 대화를 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아버지가 못하면 다른 사람을 통해서라도 구령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믿음이 “개발된다”는 것은 성경에서 눈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는 말이다. 최근 한 신문의 일면에는 “국가를 위한 특별 기도회”라는 작은 기사가 났었다. 그 내용은 이러했다. “...최근의 노사간의 극단적 대립과 파업사태, 그리고... 사태로 이어지는 일련의 경제위기로 인한 민족적 위기 현실을 바라보면서 교회와 성도 모두 깨어 기도해야 할 책임과 사명을 통감한다.” 하지만 이러한 모임은 정치인에게나 어울리는 모임이지 하나님의 사역을 한다는 사람들이 참석하기에는 부적합하다. 노동자들의 요구는 끝이없다. 많이만 받을 수 있다면 무슨일이든지 한다.
나라를 “핵폐기물”에서 구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일인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이러한 일들을 시키시려고 우리를 구원하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일, 즉 영혼들을 구령하고 하나님의 군사로 기르는 일을 하기 원하신다. 에베소서 5:16에서는 『시간을 사서 얻으라. 이는 그 날들이 악하기 때문이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우리가 처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순간 우리는 가장 중요한 선택을 한 것이다. 짧고 유한한 이 세상에서의 삶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에 자신을 의탁한 것은 참으로 현명한 선택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이제는 하나님께 자신을 드려서 하나님께서 도구로 쓰시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이 세상은 악하고 이 세상의 신은 사탄이기에(고후 4:4), 사탄은 그리스도인들을 세상 일에 관여하도록 만들어 하나님의 일을 올바르게 수행하지 못하게 한다. 사탄에게 눈이 가리워진 사람은 하나님의 조명을 받지 못하고, 자신이 하는 일이 무슨 일인지 알지 못해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며, 이 모임 저 모임에 참석해서 자신과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통해서 위안을 받으려 한다. 목회자들도 다르지않다. 남의 은사를 부러워하지말고 내 것이나 잘 활용하여 맡겨진 일을 잘해야 성령님이 역사하신다. 성령께서 역사할 기회를 박탈하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그러한 일은 사역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다. 요즈음 우리 나라 교계는 “빈야드 운동”, “전도 운동”, “교회 성장 운동” 등이 휩쓸고 있다. 그러나 교회의 성장이 그처럼 단기간의 집회를 통해서 이루어진다면, 세상은 벌써 천국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여전히 악하며, 하나님은 이러한 일들을 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악인들이 죄를 짓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당장 벌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일이 정당한 것이 아닌 것처럼, 그러한 사역이 잘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그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은 아닌 것이다. 목회자 자신에게 성령께서 주신 달란트와 개성을 살려야한다. 단시간에 부흥한 남의 것을 쫓다가는 교회에 문제만 이르킨다.
“자신의” 일은 이제 그만 두고 하나님의 일을 하자. 그것이 진정으로 자신을 위하는 길이 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정결한 샘물과도 같음은 우리의 더러운 죄악을 씻기 위함이요. 하나님의 말씀이 망치와도 같음은 우리의 완악한 마음을 깨기 위함이라. 하나님의 말씀이 날선 검과도 같음은 우리의 영과 혼을 가르기 위함이요. 하나님의 말씀이 좋은 씨앗과도 같음은 우리의 마음에 심겨져 열매맺게 하려함이라.
하나님의 말씀이 불과도 같음은 우리의 헛된 행실을 태우려 함이요. 하나님의 말씀이 영원히 보존됨은 우리로 영원히 보존되게 하려함이라. 하나님의 말씀이 정금과도 같음은 우리로 부요하게 하려 함이요. 하나님의 말씀이 빵과도 같음은 우리로 배부르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말씀이 빛과도 같음은 우리의 어두운 마음을 밝히려 함이요.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있고 영원히 있음은 우리로 영원히 살게 하려 함이라. 오늘도 주님께서 맡겨준일을 묵묵히 해나가자.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