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과 무의식

의식과 무의식

 

오늘날 사람들의 마음이 대체적으로 약해진 것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상처받았다, 시험들었다는 말이 유난히 많이 떠돌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적치유학>이란 학문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된 것 같습니다.
이제 앞으로 저와 함께 이 학문에 접근해 보도록 합시다.

이 학문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여러분들에게도 놀라운 치유의 역사기 있기를 기원합니다.
여러분들은 정신병자 취급하는 것 아니냐고요?
아닙니다. 현대인의 95%가 정신적 결함이 있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현대인의 거의 모두 내적 치유의 경험을 필요로 합니다.

먼저 내적치유학의 가장 기본적인 원리부터 한번 접근해 볼까요?
내적치유학은 현대 심리학의 원리를 차용한 부분이 꽤 있습니다.
여러분! 심리학이라고 너무 편견을 가지지 마십시오.
심리학이라는 학문의 전반적 조류가 상당히 비신앙적인 부분이 많긴 하지만
심리학이 주는 몇 가지 통찰력을 부분적으로 선별해 수용할 줄 아는 것이
열린 마음을 가지고 학문을 하는 진지한 자세입니다.

학문의 과정에서는 우리가 우리의 가진 것을 극적인 방식으로 절대시하기 위해
가끔 보이는 편견을 제거해야 그것이 학문을 하는 기본적인 자세이고,
우리의 신앙도 바른 방향을 계속 지향해 나갈 수 있습니다.
제가 이 말은 먼저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리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심리학에서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의식과 무의식>의 문제를 내적 치유학에서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 그럼 먼저 내적 치유에 대한 개념을 명확히 하기 위해서
의식과 무의식의 차이를 알아보도록 할까요?
도대체 의식은 무엇이고, 무의식을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우리가 알다시피 인간은 의식이 있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의식할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반면에 인간이 의식할 수 없는 부분도 있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한가지 중요한 사실을 도출해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무의식 부분과 자신의 의식 부분이
상당히 다른 모습일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자신은 의식적으로 분명히 신앙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자신의 무의식 부분은 신앙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자신은 분명이 자기 자식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자신의 무의식 부분에는 자식에 대한 미움과 분노가 있을 수 있습니다.
자신이 의식하는 바에 따르면 분명히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같지만
자신의 무의식 부분에서는 하나님에 대한 원망과 불평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의식과 무의식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 이유는
의식과 무의식을 정확하게 분리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의식과 무의식의 괴리감이 정신적 균형감각을 깨뜨리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은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1) 의식하고 있는 겉모습 부분
2) 의식하고 있는 마음의 부분
3)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마음의 부분

1)번과 2)번이 다른 사람을 흔히 이중인격자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1)번과 3)번이 다른 경우에는 이중인격자라 말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상처입은 인격자\"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적합할 것입니다.

앞의 원리를 예배의 경우 예를 들어 설명해 볼까요?
1) 의식하고 있는 겉모습은 간절히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2) 의식하고 있는 마음 부분도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3) 그러나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부분에서는 예배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그런 경우가 충분히 있을 수 있기에 성령은 다윗의 입술을 통해 말합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시 139:23).\"
다윗은 자기가 의식하는 부분과 의식하지 못하는 부분이 충분히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이러한 겸허한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여러분! 다윗의 시편을 많고 보고 사랑하지 않습니까?
다윗의 시편을 죽 보고 있노라면
인간 정신세계의 비밀을 간직한 수많은 원리들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그 이유는 바로 다윗의 무의식의 부분을 인정하고,
그 부분을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은혜의 손길에 의탁하는 자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라
너희 안에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눅 17:21).
보는 부분에서는 천국이 없고,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 천국이 펼쳐진다는 말입니까?
이 말은 인간의 무의식의 부분에서까지도
천국의 아름다운 확장의 역사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아닙니까?
우리가 보는 부분, 의식하는 부분에서는 의지가 큰 역할을 할 수 있겠지만,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부분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앞서 인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이번에 저와 함께 내적치유학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항상 다윗처럼 이런 기도를 게을리 하지 맙시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시 51:10)

여러분! 천국을 우리는 이렇게 정의 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천국은 하나님의 새로운 영향력이 우리의 존재를 통제하는 상태를 말한다\"라고 말입니다.
이번 공부를 통해서 여러분이 의식하지 못하는 부분까지
하나님의 은혜의 영향력이 아름답게 미쳐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