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죄의 형태적 영향력

원죄의 현재적 영향력

 

원죄는 인간에게 깊은 상처의 흔적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상처의 흔적을 가지고 태어난 인간은 자신에게 상처가 되는 현재적 사건이 주어질 때
아물었던 그 상처의 껍질이 훼손되어 도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 상처의 흔적을 효과적으로 처리하지 못한 상태에서
여러 가지 상처 당하는 현재적 사건을 접하게 되면
자신의 가치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리고 자존감이 낮아지게 됩니다.
자존감이 낮아지게 되면 조그만 사건에서도 마음의 상처를 쉽게 받습니다.

그로 인해 파생되는 악영향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 중에서 몇 가지만 살펴보도록 할까요?

1) 우울증

사람들이 우울해지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울함은 \'자신의 가치에 대한 신뢰 상실\'의 한 가지 표현입니다.
그리고 그 상실감이 주기적으로 나타나게 되면 그것을 우울증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실상 내적치유학에서 가장 관심을 가지는 분야가 바로 이 우울증입니다.

우울증은 현대 사회의 정신 감기라고 말합니다.

그만큼 흔하다는 것입니다.
그 정도로 현대 물질문명 사회에서 가장 만연한 것이 바로 우울증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알고 보면 원죄로 인한 \'원 상처의 흔적\' 때문입니다.
그 아물었던 상처의 흔적이 살아가는 과정에서 다시 도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의학에서는 우울증의 원인이 뇌 속의 신경전달물질 감소에서 온다고 합니다.
의학적으로는 그 말이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왜 뇌 속의 신경전달 물질이 감소되었는지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즉, 인간의 잠재 의식 속에 있는 상처로 인해 생긴 상실감이
뇌 속의 신경 전달 물질의 감소를 초래한 아주 중요한 요인입니다.

그러므로 우울증에 걸린 사람은 가장 내적 치유가 필요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우울증에 걸린 사람을 내적 치유를 통해 치료할 수 있을까요?
의사도 아니면서 자기가 내적 치유의 능력을 가진 것처럼 선전하면
치료는커녕 우울증을 더 악화시킬 수 있는 사이비 의사가 되기에 딱 좋습니다.

여러분! 자신이 내적 치유의 능력을 가진 사람처럼 선전하는 분은 조심하십시오.
우울증은 정말로 다양하고 복잡한 원인이 있고 복잡한 양상으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우울증의 문제에서만은 아주 세심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내적 치유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런 세심한 접근을 하지 않고 자기가 기도하면 낫게 할 수 있는 것처럼 선전합니다.

그런 식으로 접근하는 사람에게 자신을 내어 맡기는 경우
우울증에 걸린 사람에게는 보통 두 가지 현상이 나타납니다.
한 가지 현상은 우울증이 더욱 깊어지고 심해집니다.
또 한 가지 현상은 능력을 가졌다고 하는 사람에게 맹목적인 존재가 되고
그 능력을 가졌다고 하는 사람을 중심으로 한 공동체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합니다.

새로운 삶을 시작했기 때문에 마치 우울증이 치유된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치유된 것이 아니라 \'자기 존재의 단절\'입니다.
더 이상 자기 존재에 대한 미련과 기대가 없어진 것입니다.
세상으로부터 도피해서 더 이상 비교할 것이 없으니까
마치 상실감이 사라진 것처럼 보이는 것일 따름입니다.

그러나 알고 보면 그것은 한 인격체에 있어서 더욱 절망적인 것입니다.
겉으로는 우울증이 치유된 것 같지만 뿌리깊은 절망을 해소하지 못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새로운 공동체도 별 것 아닌 것이 곳곳에서 드러납니다.
결국 그 자신의 무의식은 더욱 주체할 수 없는 절망감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나중에 알고 보면 우울증이 치유된 것이 아니라 상처가 깊어지는 원인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울증의 치료는 기본적으로 주님에게 맡겨야 합니다.
내적 치유의 가장 중요한 원리는 주님으로 인한 구원의 확신을 심어 주고
주님의 용서와 주님의 용납하심을 받아들이게 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어떤 몸부림도 진정한 내적 치유를 가져다주지 못합니다.
내적 치유는 한 개인의 영혼에 주님의 빛이 차고 넘칠 때 주어지는 것입니다.

2) 뚜렷한 원인이 없는 육체적 질병

가끔 뚜렷한 원인이 없는데도 몸이 아프다고 호소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도 사실상 원죄로 인한 상처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머리가 너무 아파서 병원에 갔는데 병원에서는 모든 것이 정상이라고 합니다.
그 경우도 옛 상처의 흔적이 살아가는 과정의 아픔으로부터 도진 결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경우에도 내적 치유가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몸의 자동적인 기능들, 즉 부교감신경체계가 있습니다.
즉 심장박동, 호르몬 분비, 소화계통, 신경계통 체계가 부교감 신경체계입니다.
이러한 부교감 신경체계는 본인이 의도한다고 해서 조절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심장박동 체계를 조절하는 문제에 있어서
본인이 심장박동을 빨리 하고 싶다고 해서 빨리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체계는 머리의 지시를 받지 않고 스스로 알아서 박동을 합니다.

팔다리 움직이는 것과 같은 교감신경체계는 본인의 의도대로 조절할 수 있지만
부교감 신경체계는 머리의 지시를 받지 않고 스스로 알아서 조절되기 때문에
상당한 정도까지 잠재 의식의 통제를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잠재 의식 속에 불편한 구석이 있으면 위의 분비물이 감소될 수 있고,
머리에 전달되는 신경전달 물질이 현저히 감소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뚜렷한 원인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육체적 고통을 느끼는 사람은
잠재 의식 속에 있는 훼손된 부분의 치유에 눈을 돌릴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 경우에도 역시 주님의 용서와 용납으로 인한 내적 치유가 필요합니다.

3) 중독

무엇인가 잘 중독되는 사람을 보십시오.
어렸을 때 무엇인가 채움받지 못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갈급함이 있었던 사람은 이 갈증을 만족시키려는 충동적 욕구 때문에 중독에 빠집니다.

여러분! 주님 믿으면서 \"오! 갈급해!\"하며 너무 갈급해하지 마십시오.
그런 식으로 가다 보면 자꾸 충동적 욕구가 생기면서 이상한 신앙에 빠지게 됩니다.

이런 중독 증상도 사실상 알고 보면 원죄로 인한 깊은 상처의 흔적에서 비롯된
죄책감, 상실감, 자신에 대한 증오감, 낮은 자존감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원죄로 인한 \'원 상한 마음\'은 인간의 현실에 큰 영향력을 미칩니다.
그러므로 이 문제에 대한 열린 사고와
하나님의 은혜 아래서 \'원 상한 마음\'을 아물게 하려는 적극적인 시도가 없으면
인간은 필연적으로 각종 신경성, 정신성 질병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저에게는 지금도 잊지 못할 부끄러운 기억이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님한테 수치스럽게 매를 맞았던 기억입니다.
그 당시 저의 의자가 약간 삐걱거렸습니다.
그런데 수업시간에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는데 선생님이 누가 그 소리를 냈느냐고 나오라고 호통을 쳤습니다.
나는 무서워서 나가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몇 번 호통을 치다가 범인(?)을 색출하려고 오셨습니다.
그리고 즉시 저에게 다가오더니 저의 의자를 흔들어 보셨습니다.
이미 선생님은 누가 삐꺽거리는 소리를 냈는지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당장에 범인으로 색출되어 다른 친구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수치스럽게 매를 맞았습니다.
너무 수치스럽게 매를 맞아서 밝히기에 부끄러운 정도입니다.

그리고 수업 시간 도중에 학교에서 쫓겨났습니다.
저는 학교와 집 사이에서 어느 곳을 가야 할지 몰라

집으로 돌아오는 길의 공터에 들어가 한 시간 이상 서글퍼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의 기억은 저의 자존감을 철저히 무너뜨렸습니다.
그후 나의 삶은 상당한 정도까지 급격히 위축되었습니다.

그런 감정을 치유받는다는 것 신앙을 갖기 전에는 너무 어려웠고,
신앙을 가져서도 1984년 하나님의 깊은 은혜를 체험한 후에야
그 상처와 한과 무너진 자존감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역시 주님의 은혜는 우리의 모든 과거의 한을 끊고
우리의 심령을 새로운 것으로 채워 주시에 넉넉한 은혜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사람들은 가끔 우울함에 빠집니다.
알고 보면 과거의 부끄러움으로 인한 상처가 원인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한 상처들로 인해 자신의 자존감이 현저하게 낮아졌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것들도 크게 보면 원죄로 인한 \'원 상한 마음\'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울할 때마다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과거의 그 순간으로 돌아가서 나의 상처입은 마음을 어루만져 주옵소서.\"
\"하나님! 하나님의 은혜에 온전히 젖어 과거의 한과 상처를 차단하여 주옵소서.\"

진지하게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틀림없이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과거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너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변함없이 나에게 가치 있는 존재이다.\"

사람들은 무엇인가 조금 열등한 점이 있어도
그것으로 그들 자신의 전 존재를 거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것이 우울증으로 표현되는데
주님의 사랑을 체험한 사람은 그러한 모습이 현저히 줄어들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과거의 상처를 덮기에 충분한 은혜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과거의 상처를 창조적 삶의 원천으로 만들어주신다.

사람에게는 남에게 밝히고 싶지 않은 부끄러운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면 \"믿음 생활을 하면서 아직도 그것을 끊지 못하느냐?\"는
자책감이 생길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수치와 죄책감, 그리고 패배감을 동반하게 됩니다.
그래서 무의식 속에서 주님으로부터도 거부당할 것이라고 여깁니다.
그러나 주님의 별명이 죄인의 친구였다는 점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사람에게 본인도 끊어버리고 싶은 부끄러운 부분이 있는 것은
대개 사랑받지 못한 마음의 공허를 채우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의 공허는 주님으로만 채워진다는 사실을 항상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주님의 은혜는 우리에게 얼마나 놀라운 은혜입니까?

다시 말씀드리지만 내적 치유는 결국 그리스도의 은혜로 상한 마음을 극복하고
새로운 피조물의 삶을 살아가게 하는 살아계신 주님의 치유의 역사입니다.
여러분들이 부끄럽고 수치스럽게 생각했던 그 과거의 흔적들이
하나님의 은혜의 기운으로 말미암아 깨끗하게 지워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