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적치유의 현주소와 주의 할점

내적치유의 현주소와 주의할 점

 

내적 치유가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정확하게 알기 힘듭니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현대 오순절계통의 교회가 신유를 강조하면서
내적 치유가 본격적으로 논의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특히 70년대 이후 80년대에 들어와 내적 치유라는 용어가
신유 및 찬양과 경배를 강조하는 공동체를 중심으로 많이 사용되면서
내적치유라는 것이 본격적으로 학문화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리고 내적치유가 현대에 사람의 관심을 끌게 되었던 또 한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현대인들의 심약한 마음 때문입니다.
이상하게 현대인들은 자랄 때부터 과잉보호를 받아 온 탓인지
옛날 사람보다 주변의 환경에 의해 그 마음이 지나치게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그래서 같은 아픔을 당해도 옛날 사람들보다 훨씬 상처를 더 받습니다.

또한 심리학이 발달하면서 이상 심리와 성격 형성에 있어서
옛날의 상처가 원인이라고 자꾸 강조하다 보니까
지워졌던 상처의 흔적이 자꾸 더 도지거나
상처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을 상처라고 받아들이는 환경이 조성되었습니다.

현대인들의 대화를 보면 \"상처받았다\"라는 용어가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선진국으로 갈수록 더욱 그러한 현상이 심화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 이유로 근간에 내적치유학이 더 활발하게 연구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현대 목회에서는 실질적으로 예수님을 믿고 성령의 체험을 통해서
마음의 아픔과 상처를 치유하는 원리가 개 교회 사역에서 많이 활용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적치유학과 내적치유를 위한 기도가
마음의 상처를 당해서 고통하는 사람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많이 주었습니다.

그러나 부작용도 많이 있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가지 예로 분위기와 감정적 도취로 생기는 표면적 감정 변화를 가지고
내적치유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진정한 의미의 치유와 마음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내척치유를 위해서는 아주 사려 깊은 접근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과거에 육신적 치유를 행할 때와 동일한 방법으로 접근하여
오히려 마음이 상한 사람들의 상처를 더 도지게 하고,
그들의 내적인 자기만의 세계를 더 견고하게 만들어 버리는 부작용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내적치유에 관심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시간이 지나면 거꾸로 내적치유를 배척하는 경우도 많이 생기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내적치유를 위해서 내면 세계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그 치유에 사려 깊게 접근하는 것이 더욱 필요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런 의미에서 내적치유를 위해 심리학의 원리도 차용할 필요는 있습니다.
그러나 전통적인 신학에서는 심리학이나 정신의학을 어떻게 보았습니까?
세속적인 학문으로 보고 거의 관심을 두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 신앙인들도 학문은 학문으로 볼 줄 아는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학문을 하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서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처럼 자신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말 중요한 것이지,
어떤 학문 자체를 무조건 배척하는 것이 결코 진실한 신앙인의 모습이 아닙니다.
아마 과시적으로 진실한 신앙인의 모습인 것 같은 느낌은 줄 수 있겠지요?
그러나 그런 식으로 신앙생활을 하면 평안도 없고 발전도 없습니다.

여러분! 돈이 나쁜 것입니까? 아니지요?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이지 돈 나쁘다고 한 구절은 성경에 한 군데도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돈을 누가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할 줄 아는 진실된 의인에게 그 돈이 주어지면
돈은 정말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잘 쓰여질 수 있습니다.

근원부터 잘못된 학문이라면 모를까 일반적인 학문이라면
믿는 사람들이 학문을 대하는 자세는 보다 진지해 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심리학이나 정신의학을 무조건 배척만 할 것은 아닙니다.

지금 사회가 얼마나 다양해지고 있습니까?
진리 자체는 절대적으로 고수하면서 고지식한 모습을 보여야 하지만
진리의 활용, 진리의 적용 문제에 있어서까지 고지식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됩니다.
그러므로 과거의 일률적인 잣대만 가지고
현대인의 영혼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이제 한계에 부딪쳤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안타까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 그리스도인들 중에서도 가정 문제, 정신 문제가 생기면
목사부터 먼저 찾는 것이 아니라 정신과 의사부터 먼저 찾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책임을 그 그리스도인의 믿음이 없기 때문이라고만 여겨서는 안됩니다.
목회자와 먼저 믿은 그리스도인들이
영혼 내면의 문제, 가정 문제, 인간 심리 문제를 너무 외면했던 탓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70년대 이후 내적치유학과 같은 학문이 발달하게 되어
기독교적 치유와 상담에 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과거에는 심리학과 신앙이 배타적인 관계였으나
이제는 점차 많은 목회자와 신학자들이 심리학을 무조건 배타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역시 한계가 있습니다. 심리학과 신앙의 근본적인 배경에서 오는 한계입니다.
심리학은 근본적으로 인본주의이며, 신앙은 신본주의입니다.
그래서 서로 일치하는 부분도 많았지만 서로간에 갈등도 많이 일어났습니다.

예를 들어 오늘날에도 대체적으로 심리학과 정신분석학에서는
신앙을 근본적 치료가 아닌 도피의 수단으로 몰아 가는 경향이 많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내면 문제를 신앙으로 숨기고 방어하는데,
그처럼 신앙을 수단화하면 사람이 더 완고해져서
내면 문제에 깊은 접근이 어려워진다는 인식을 그들은 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신앙은 하나님의 진리를 인본주의로 깎아내리는 위험성 때문에
정신분석학과 심리학적 원리를 근본적으로 불신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문제에 대한 효과적인 접근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 바로 내적치유학입니다.
그렇다면 내적치유학의 발달과 적용이 더욱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런데 사실상 오늘날 더욱 큰 문제는 비복음적인 많은 치유의 형태입니다.
마인트 콘트롤, 요가, 단전호흡, 단(丹), 바이오 피드백(bio feed-back),
최면술, 이완요법(relaxation), 명상, 뉴에이지적 사고 등의 치유원리가
기독교로 포장을하여 나타나 교묘한 방법으로 치유를 원하는 기독교인들을 유혹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방법들이 성령이라는 이름아래,
몇 줄의 성경 구절 아래에서 하나님의 이름과 교회의 이름을 내세워 전해지기 때문에
그 내용이 무엇인지도 자세히 모르고
그것을 하나님의 내적 치유로 수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배경에서 출발된 내적 치유인지 잘 파악한 다음 수용해야 합니다.

여러분! 오늘날 정말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할 가장 중요한 기도제목 중의 하나는
진리와 거짓을 잘 분별할 수 있는 분별력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만큼 우리 자신의 영혼을 지키기 쉽지 않은 때가 되었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더욱 깨어 근심함으로 우리의 영혼을 아름답게 지켜 나가야 하겠습니다.

각종 세상적인 바벨론으로부터 기본적으로 우리 영혼은 우리가 지키겠다는
그런 책임적인 자세를 가지고, 더욱 하나님과 말씀 앞에 겸허히 엎드리는 모습!
이러한 모습이 내적치유에 임하는 성도들의 바른 자세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