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격 장애의 특효약 / 삶의 여유

인격장애의 특효약/ 삶의 여유

 

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 실패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건강한 정신을 유지하려면 실패에 직면하려는 삶의 여유가 필요합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다 보면 어느 누구나 가정에서 실패할 수 있고,
사업에서 실패할 수 있고, 인간관계에서 실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난 강의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실패할 수 있지만, 실망에서는 안됩니다.

실패했는데 실망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까? 충분히 가능합니다.
평소에 관심의 세계를 넓히고, 최선이 안되면 차선,
차선도 안되면 차차선의 선택을 할 수 있는 삶의 여유를 기르면 됩니다.

우리는 흔히 이런 말을 들어 왔습니다.
\"차선(次善)은 최선(最善)의 적이다!\"
무엇을 하고자 시도할 때는 그런 자세를 가지고 할 필요가 있습니다.
무엇을 하든지 최선을 다한다는 의식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그러나 한계가 있는 인간에게는 \'최선\'이란 하나의 관념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위 말을 \"최선을 다하십시오!\"라는 말로 알아서 해석해 들어야지,
정말로 \'차선을 최선의 적\'으로 생각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차선이 꼭 최선의 적만은 아닙니다.
차선은 \'최선 다음 가는 선\'인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최선의 길이 아니면 얼마든지 차선의 길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런 자세를 가지고 살아야지 삶의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되고,
그러한 넉넉함과 여유가 있어야 더 나은 내일을 기약하고,
또한 내일을 향해 걸어갈 수 있는 힘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가정에 대해 실망을 잘하고 아주 힘들어 하는 분이 있습니다.
그처럼 가정 때문에 마음의 고통이 심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분의 평소의 관심의 세계가 그 가정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가정이 조금 잘못 나가는 것 같아도, 인생이 다 끝난 것처럼 실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남편에 대해 실망을 잘하는 사람은 왜 그렇습니까?
평소에 관심의 세계가 남편 그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좋은 장점이 될 수도 있지만, 큰 단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관심의 세계가 남편 하나 뿐이기 때문에
남편이 얼굴을 조금만 찌푸려도 인생이 무너지는 것 같은 느낌을 가집니다.
그러므로 지혜롭게 관심의 영역을 넓힐 필요가 있습니다.

모든 것이 똑같습니다. 사업에 대해 실망을 잘하는 사람은 왜 그렇습니까?
관심의 세계가 사업 그것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친구관계에서 실망을 잘하는 사람은 왜 그렇습니까?
그 친구가 내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아닙니다. 그 친구 아니면 다른 친구도 얼마든지 있고,
새로 또 친구를 사귀면 됩니다.
그리고 새로 친구를 사귈 수 있어야 인생의 발전도 있지 않겠습니까?

삶의 여유가 있어야 합니다.
자신이 추구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되,
잘 안될 때는 곧장 다른 대상을 찾는, 어려운 용어로 \'전위\'가 필요합니다.

꿩 대신 닭을 잡으면 됩니다.
그러다가 보면 나중에 꿩을 잡을 수 있는 기회가 틀림없이 옵니다.
한쪽 세계만 보면 길이 하나도 안 보이는 것처럼 절망적이지만,
생각하는 세계, 보는 세계만 넓히면 무수한 길이 나옵니다.

이 생각하는 세계와 보는 세계를 넓히지 못하고,
삶의 여유를 그 마음속에 가지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금방 실망하고 주기적인 우울증상에 사로잡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들을 자세히 관찰해 보십시오.
점을 치러 다니거나 오히려 종교를 가진 사람이
정신적인 질병에 더 많이 걸리는 경향이 있는 느낌을 가지게 됩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소원에만 지나치게 매달리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사실은 기독교인들 중에서도
주기적인 우울증상에 사로잡히는 사람이 의외로 많습니다.
왜 그런 일이 생기는 것일까요?
환경적 요인도 있겠지만, 신앙적으로 잘못 배운 때문이기도 합니다.

특히 \'만사형통\'을 가르치는 교회에서 \'만사형통\'만을 배운 사람은
주기적인 우울증상이 나타날 확률이 0순위라고 말합니다.
그런므로 만사형통은 하나님의 시각에서, 넓은 시각에서 만사형통이지,
자신에게 어떤 어려움도 없다는 식의 만사형통은 아닙니다.
때로 어려움이 있고 우리의 기도에 응답이 없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이 하나님의 가르침입니다.

그런데 잘못된 \'만사형통\'을 배운 사람은 잘못되는 일이 있을 때마다
\"어, 왜 이러지!\"하며 그 하나의 잘못에 몰입하며,
그러다가 하나님을 원망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만사형통이라면서 왜 이래! 하나님은 너무하셔! 왜 내 기도는 안 들어주시고...\"

그러다가 양심이 있는 분들은 하나님 앞에서는 그럴 수 없는 것을 깨닫고,
결국 공격 대상을 하나님이 아닌 자신으로 돌려 죄책감에 빠집니다.
\"내가 아직 죄인이라서 그런가 봐!
그러니까 다들 만사형통인데, 나만 이렇게 어려움을 당하니...\"
잘못된 \'만사형통\'을 배웠기에, 안되는 일이 생길 때마다
이런 우울증상이 주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만사형통을 복이라고 생각하는 자세도 사실상 틀린 것입니다.
그게 어떻게 복이 되겠습니까?

잘못된 꿈을 버려야 합니다.
그 생각은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망하는 징조입니다.
태평이 안일함으로 발전되어 망하지 않는 나라가 없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개념의 만사형통이란 사실상 있지 않은 것입니다.
그처럼 존재하지도 않는 것을 찾으니 어디서 찾습니까?
실패란 언제 어디서나 있고, 실패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성공이란 많은 실패도 겪은 끝에 따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은 \'실패의 여유\'를 길러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의 증거이고, 이것이 바로 믿는 사람의 소망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일의 소망이 있으면 실패의 순간에도 여유를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한 삶의 여유가 여러분들 모두에게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