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적 치유
언젠가 비참한 인간들의 창고 같은 정신병원을 방문한 적이 있다.
중증장애를 가진 수백 명 아이들이 방치된 채 간이침대에 누워있었다.
사방이 쥐죽은 듯 조용했다. 어디에서도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아무도 돌봐주는 사람이 없을 때, 누구도 대답해주지 않을 때, 아이들은 울지 않는다.
누군가 들어주리라는 희망이 있을 때에만 사람은 소리를 지른다.
그런 외로움은 사람의 영혼이 저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가장 깊은 구렁 밑바닥에서 오는 철저하고 지독한 우울증을 낳는다.
사람을 우울하게 하는 외로움은 혼돈으로 자신을 표현한다.
뭐가 뭔지 모르는 혼잡함 속에서 자기를 파멸시키고 싶은 충동, 죽고 싶은 충동이 일어날 수 있다.
그쯤 되면 어떤 빛도 위안도 소용이 없고 평화나 기쁨은 더군다나 근처에도 갈 수 없게 된다.
그에게 인생은 더 이상 납득되는 무엇이 아니다.
그런 외로움에 사로잡힌 사람에게는 공허함, 분노, 내적 소란이 있을 뿐이다.
무엇을 바라는 마음이나 채우고 싶은 욕망, 살고자 하는 의욕 따위는 찾아볼 수 없다.
그는 자기가 모든 사람, 모든 사물로부터 완전히 단절되었다고 느낀다.
이렇게 더 살아야 할 아무 의미가 없는 것처럼 생각된다.
누구와 이야기를 나눌 수도 없고 다른 사람 말이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완벽한 혼동 속에서 스스로 철저히 폐쇄되어 있는 것이다.
그토록 제어할 수 없는 분노로 가득 차 있는 사람에게 접근하여 그 내면으로 들어가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내 경험을 얘기하겠다. 에릭을 처음 만난 것은 1977년이었다.
내가 몸담고 있는 라르셰 공동체에서 40킬로 떨어진 지방 정신병원 어린이 병동에 그가 있었다.
그는 보지도 듣지도 못했고 게다가 심한 지능발달 장애인이었다.
제 발로 걷지도 못했고 물론 음식도 먹을 수 없었다.
엄청난 분노와 두려움에 가득 찬 그가 열여섯 살 되었을 때 라르셰로 왔다.
그는 자주 바닥에 앉아 있다가 누가 가까이 오는 기척이 나면 손을 뻗어 그를 움켜잡고 맹렬하게 기어오르려 했다.
일단 손으로 누군가를 움켜잡는 데 성공하면 갑자기 행동이 거칠어지면서 상대방을 제압하려 했고 그러면서 온몸으로 길길이 날뛰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그는 기피인물이 되었고, 그럴수록 그의 분노는 커져만 갔다.
속에 맹렬한 불꽃처럼 분노와 증오가 타오르는 에릭이었다. 분노는 스스로 어지러워서 초점이 모아지지 않는 혼돈의 에너지다.
분노는 잠도 자지 못하게 하고 사람을 무질서의 세계로 데려간다.
외롭다는 것은 아무도 자기를 원하거나 사랑하지 않는다는, 따라서 자기는 사랑 받을 만한 존재가 못된다는 느낌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외로움은 죽음의 맛이다. 너무나도 외로워서 정신질환에 걸리거나 내면의 고통을 잊기 위한 폭력에 휘말려드는 사람들이 있음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다.
에릭은 참으로 외로운 젊은이였다.
그는 사랑에 굶주려 있었지만 그 굶주림이 너무나 커서 아무도 그것을 채워줄 수 없었다.
라르셰에 온 뒤로 그가 내적 평안을 찾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흘러야 했다.
조금씩 그리고 서서히 주변 사람들을 신뢰하는 법을 배워나갔고, 자기도 누군가의 사랑을 받을 수 있고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존재임을 알게 되었다.
에릭과 대조적으로 피에르는 열 세 식구 대가족의 일곱 번째 아이로 태어나 7년 동안 감옥에 갇혀 살았다.
나는 그를 몬트리올에서 만났다.
피에르는 열두 살 때 가족 중 아무도 자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가출했다.
그렇게 해서 오랜 세월을 거리의 갱들과 함께 살았다.
하지만 그의 가슴은 버림 받은 자의 외로움으로 사무쳐 있었다. 갈 곳도 없었고 삶의 의미도 없었다.
그에게는 자신을 되찾고 인생의 목표를 세우도록 도와줄 친구나 선생이 있어야 했다.
열여섯 살이 되었을 때 피에르는 범죄를 저질렀다.
그것은 내가 보기에 도움을 요청하는 부르짖음이었다.
그는 감옥에 갇혔다.
그런데 그곳에 있는 동안, 정기적으로 감옥을 방문하는 한 여인과 사랑에 빠졌다.
그들은 결혼했다.
마침내 그의 인생이 새로운 의미를 찾게 되었다.
그것은 그가 사람으로 되어가는 과정이었고 사랑이 그 길을 열어주었다.
라르셰 공동체에서 우리는 상처 입은 사람이 누군가의 사랑을 받을 때, 자기가 어딘가에 속해있다고 느낄 때 내적 치유가 이루어지는 것을 경험한다.
라르셰 공동체는 사람들이 서로 섬기고 새로운 삶을 창조하고 무엇보다도 서로 사랑하고 사랑 받을 수 있는 그런 곳이다.
치유는 사랑으로 맺어지는 인간관계에서 흘러나온다.
저절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에릭과 피에르의 경우, 그들 안에는 혼돈과 무질서가 있었다.
하지만 바로 그 혼돈과 무질서 복판에 출구가 있었다.
인생이란 결국 질서에서 무질서로, 그 무질서에서 다시 새로운 질서로 나아가는 운동 아닌가?
- Jean Vanier, Becoming Huma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