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시간에 애국가를 불러도 돼는가?

\"예배 시간에 애국가를 불러도 되는가?\"

(이 글은 고려신학대학원 손재익 형제의 질문에 대한 이광호 목사님의 답신입니다)

손재익 형제, 어려움 중에도 잘 지내시지요? 최근 고려신학대학원에 관련된 형제의 글을 보고 마음이 매우 아렸습니다. 책임있는 위치에 있는 분들이 오늘과 같은 심각한 위기의 때가 올 것을 사전에 미리 감지하지 못한 것이 문제의 원인입니다. 십 수년 전 부터 시작된 작은 문제를 빨리 감지하고 대처했어야 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음으로써 지금처럼 문제를 엄청나게 키우게 된 것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에게 건강에 이상이 있다면 초기 단계에 치료를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사람이 아픈데도 진찰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가 나중 질병이 발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치료를 포기한 채 오랜 세월을 보내면 치명적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형제가 질문한 문제를 생각해 봅시다. \"예배 시간에 애국가를 불러도 되는가?\" 현재 한국교회에는 각종 연합집회나 예배시간에 애국가를 부르는 경우가 흔히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특히 3.1절이나 광복절 등 국경일이 되면 그렇게 하는 교회나 집회들이 많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교회당과 집회장 전면에 태극기를 게양하는 교회와 기독교 집회들도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형제는 이 질문을 하면서 예배시간에 애국가를 불러도 큰 문제가 없는 것인지 아니면 불경한 것인지 물었습니다. 한마디로 간단하게 말씀드리자면 하나님을 예배하는 시간에 애국가를 부르는 것은 예배를 욕되게 하는 행위입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면 속으로 발끈해 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을 죄악인지 모르고 자랑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럴 수 밖에 없겠지요.

이에 대한 이해를 분명히 하기 위해 이런 예를 들어봅니다. 북한에 있는 교회가 예배시간에 북한의 애국가를 부르면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생각할까요? 일본에 있는 교회가 예배시간에 일본 애국가를 부르면 우리는 어떻게 반응할까요? 그러면 좀더 넓게 생각하여, 로마제국에 속해있던 교회가 예배 시간에 로마제국의 애국가를 불렀다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북한이나 일본, 그리고 로마제국의 애국가는 안되고 한국의 애국가만 예배 시간에 부를 수 있다고 할 것입니까?

그러면 무지한 기독교 민족주의자들은 한국의 애국가에는 \"하느님이 보우하사......\"는 문구가 있지 않느냐고 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하느님\'은 \'하나님\'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할 것입니다. 애국가에 나오는 \'하느님\'과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을 동일하게 보는 사람이 있다면 성경의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깨달음이 없기 때문에 생겨나는 문제입니다. 그들은 일반 세속 국가들이 그들의 노래나 문화 가운데 \'신\'을 얼마나 많이 언급하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백성은 오직 하나님만을 찬양할 수 있을 따름입니다.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을 예배하는 데 동원되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곧 우상숭배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조각이나 미술품을 통한 우상숭배 행위보다 훨씬 더 민감하게 경계해야 할 것이 음악을 통한 우상행위입니다. 그리고 가시적 우상 보다 더 훨씬 더 무서운 것이 보이지 않는 사상적 우상들입니다.

지금 한국교회에는 우상이 가득합니다. 어쩌면 교회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으면서 도리어 우상의 전당이 되어 있는 경우가 많이 있을 것입니다. 이는 마치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이 예루살렘 성전을 \'사탄의 위\'로 만들고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던 사실과 유사합니다. 눈이 먼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우상을 섬기면서도 속으로는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며 살았던 것입니다. .

우리 시대에도 그와 매우 유사함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저마다 하나님을 위해 교회당에 태극기를 게양하고 예배시간에 애국가를 부른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인간의 판단이나 주장 자체가 결코 의미를 정당화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생각하면서 실상은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경우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하는 점을 성경 말씀을 통해 살펴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신학을 공부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런 점에 대해 과연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지 구약의 선지자들과 신약의 사도들은 그에 대해 어떤 교훈을 주고 있는지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역사상의 교회들은 그와 유사한 오류를 범한 적이 있지 않은지 혹은 그런 일들을 어떻게 대처하며 이겨나갔는지 살펴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 시대의 교회가 어떻게 세워져 가는 가운데, 하나님을 예배해야 하는지 확인해야 하는 것입니다.

재익 형제, 앞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더욱 민감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부패한 세상을 정확하게 읽을 수 있을 것이며 그 가운데 존재하는 교회의 의미를 알아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존재하되 결코 세상을 닮지 않는 분명한 교회의 모습이 드러나도록 하나님의 은혜를 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머지 남은 몇 가지 질문들에 대해서는 언제 답변할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신학교에서 학문을 접하며 잘잘못을 신중하게 분별하는 가운데 공부하기를 원합니다. 영육간 강건하기를 빕니다.

2005. 10. 21

이광호 목사